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00)
먼치킨 길들이기 100화
* * *
‘아……. 이러다 죽겠다.’
키네미아는 난로 앞에서 녹은 고양이처럼 마차 의자 위로 늘어졌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유모 바네사가 걱정스레 묻자 키네미아가 팔을 부들부들 떨면서 들었다가 다시 툭 떨어트렸다.
수도로 가 보겠다고 마차를 탄 지 장장 4일째였다. 엉덩이는 아프고, 좀은 쑤시고, 온 관절이 삐그덕대는 느낌이다.
‘그냥 조금 기다렸다가 마법으로 다녀온다고 할걸 그랬나.’
키네미아가 수도로 올라갈 시기를 확정 지었을 때는, 에이얀이 다시 마탑으로 불려 갔을 때였다.
에이얀이 가기 싫다며 키네미아의 손을 꼭 붙들고서 칭얼거리는데, 그를 데리러 온 벤자민은 넌지시 키네미아에게 ‘에이얀 탓에 마법사들이 앓아누웠다.’는 이야기를 이르듯 전했다.
키네미아는 셰넌벨 정비에 마법사들을 동원한 걸 모른 척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책임감을 느낀 이유로, 이번에 수도로 나서는 길은 정직하게 마차로 움직이기로 결정했는데…….
‘너무 쉽게 생각했나.’
데뷔탕트에 나섰을 때처럼 홀로 다녀오는 길이 아니다 보니, 이전 수도에 나섰을 때보다 자연스레 일정이 길어지고 말았다.
‘으으.’
그동안 키네미아는 아주 죽을 맛을 보는 중이었다.
‘그제까지만 해도 그나마 괜찮았는데.’
첫날은 기사 중 하나가 누구랑 사귀는지 내기하는 데 정신이 팔려서 괜찮았다. 그녀는 바네사를 시켜서 내기에 금화를 걸었는데, 모두가 다 ‘사귄다.’에 거는 바람에 내기는 흐지부지됐다.
‘얼마나 티를 냈으면…….’
키네미아에겐 아쉬운 일이었다.
둘째 날은 그 기사가 시녀와 공개 연애를 선포하는 바람에 다른 시녀들과 같이 소리를 지르거나 휘파람을 불면서 보냈기에 괜찮았다.
그런데 그건 정말 잠깐이었다. 셋째 날이 되니 남의 행복한 연애와 꽁냥거림 따위 보기 싫은 흉물일 뿐이었다.
“댜기, 이런 거 들지 말라구 했짜나.”
“그치마눈, 나나는 일해야 되는 거얼.”
“힘쎈 남푠 냅 두구 댜기가 왜 이런 걸 들오.”
“힝구, 힝구. 이거 마니마니 무거운데 갠차나아?”
“그러엄. 나눈 댜기만 생각하면 힘이 나자나.”
그건 어제까지만 해도 이들의 사랑을 응원하던 시녀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둘이 딱 달라붙어 애정 표현을 할 때마다 동물원 우리 안에서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알파카처럼 침을 뱉어 댔다.
“이봐들, 놀러 왔어? 재깍재깍 일이나 하란 말이야!”
“쟤 손은 손이고, 내 손은 족발이여? 왜 내 손의 짐은 모른 척하셔요, 기사님. 예?”
순식간에 시녀들이 길거리 양아치처럼 돌변하자 공개적인 사랑의 열기는 급속도로 잦아들었다.
그로 인해 기사들은 무의식중에 빼 들었던 칼을 넣어 두었고, 마부는 손바닥에 피가 날 정도로 세게 쥐고 있던 채찍을 내려놓았으며, 키네미아는 저 커플을 해고시키기 전에 끝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썸 탈 때가 제일 재밌는 건 국가와 차원을 초월하는 모양이었다.
여하간 이러한 사정으로 어제부터는 다시 무료한 마차 생활을 시작하게 된 차였다.
그때 누군가가 똑똑, 마차의 창문을 두드렸다.
키네미아는 벌떡 튀어 올라 자리에 앉고는 창문을 열었다.
“마렌?”
던전 관리국에 방문하겠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전령으로 미리 보냈던 크샨, 마렌이었다.
“던전 관리국의 국장님께서는 오늘도 자리를 비웠다고 하십니다.”
“……오늘도?”
“예…….”
마렌이 가면 너머로 말을 끌었다.
“응, 고생했어. 좀 쉬어.”
키네미아의 명에 고개를 조아린 그녀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끙, 소리를 내면서 키네미아는 다시 마차 안에 널브러졌다.
4일 내내 보냈던 전령이 4번 다 허탕을 치고 돌아왔다.
‘이 정도면 일부러 피하는 건데.’
던전 관리국에서 자신을 타깃으로 했다는 건 이제 확신으로 자리 잡았다.
‘어째서? 혹시 원한? 관리국 내에 그럴 만한 인물이 있나? 아니면 주변인이라든가…….’
복잡한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 보는데 돌연 마음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내막이 어떠하든 간에.
‘못 참아! 안 참아!’
고작 던전 관리국 국장 따위한테 내가 왜 참아!
* * *
던전 관리국 국장실.
“국장님, 대공녀께서 찾아오셨습니다만.”
“지금 자리에 없다고 전해.”
던전 관리국 국장, 멜라니 호킨스는 서류를 넘기며 제 비서관의 말에 심드렁하게 답했다.
며칠 내내 전령으로 귀찮게 굴더니만, 결국 무거운 몸을 이끌고 수도까지 올라온 모양이었다.
비서관은 난처해하면서도 결국 대공녀에게 말을 전하기 위해 사무실을 떠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니! 국장님은 지금 자리에 안 계신다고 말씀드렸- 잠시만요!”
문밖에서 제 비서관이 누군가와 아웅다웅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멜라니는 귀를 쫑긋 세운 채 두꺼운 나무문으로 눈을 돌렸다.
소란은 이내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곧 낭랑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키지 않으면 다칠 텐데.”
“예에?!”
서걱-
놀란 비서관의 목소리와 동시에 무언가가 부드럽게 잘리는 소리가 들렸다. 멜라니는 놀라 굳은 채로 문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쿠웅-
굳게 닫혀 있던 문이 무언가에 의해 깔끔하게 잘려 바닥으로 넘어지며 굉음을 냈다.
그리고 그 너머로 천사처럼 생긴 금발의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공녀?”
과연 소문이 무색할 만큼 아름다운 얼굴이다. 멜라니가 저도 모르게 감탄하는 사이, 키네미아는 예쁘게 웃으며 말했다.
“요즘 제국에서는 예절 교육을 어떻게 시키고 있는지 모르겠어.”
소문만큼 성격도 좋지 않은 것 같네.
“……리온의 날개를 뵙습니다. 멜라니 호킨스 국장입니다.”
다른 이 같았다면 문을 가르고 억지로 들어온 무례부터 지적했을 터이나, 작위가 없느니 어쩌느니 해도 상대는 대공녀였다.
멜라니가 예를 차리자 키네미아가 고개를 끄덕인 후에 팔짱을 꼈다.
“난 어디에 앉으면 되지?”
* * *
“거듭 말씀드렸다시피, 이번 던전 관리국의 방침이 대공녀를 타깃으로 한 건 절대 아닙니다.”
멜라니는 차를 내온 비서관에게 한번 눈길을 주고는 말을 이었다.
“그저 공정하지 않은 문제가 없도록 지난 규정을 보완하다 보니 안타까운 상황이 되었을 뿐이지요.”
키네미아는 찻잔을 들어 향을 맡은 후에 조용히 물었다.
“내 길드가 흑야임을 증빙할 서류가 필요하다는 뜻인가?”
“그것도 좀 무리가 있긴 합니다. 대공녀께서도 아시다시피 길드 관리나 등록이 별다른 절차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진다는 것은 알고 계실 테고, 때문에 그런 서류 자체가 미비합니다.”
하, 키네미아가 어이없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눈썹을 일그러트렸다.
애써 에둘러 말하고 있지만 요점은 단 한 가지였다.
네가 무얼 가져오든 우리 측에서는 꼬투리 잡을 사항들이 수도 없이 많고, 믿을 생각도 없으니 포기해.
키네미아는 찻잔을 내려두었다.
“차가 쓰네.”
“다시 내올까요?”
“아니, 찻잎이 나빠. 다시 우려도 쓰겠지.”
심상한 티를 숨긴 멜라니가 예의 바른 미소를 걸친 후에 말했다.
“저희 쪽에서도 대공녀께 큰 불이익이 없도록 길드 건은 면밀하게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쪽이라면 던전 관리국을 말하는 건가? 아니면 국장에게 손을 내민 쪽을 말하는 건가?”
“……대공녀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통 알 수가 없군요.”
멜라니가 눈을 굴리자 키네미아가 빙긋 웃었다.
“뭐, 상관없네. 기대하지.”
“오늘은 정말 죄송스러운 일뿐이군요.”
멜라니가 입에 발린 소리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인사를 받으며 키네미아는 장갑을 손에 쥐고 일어섰다.
“대공녀, 결론이 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겁니다.”
멜라니가 이죽거리듯 말하던 그때였다.
“그럼 우리 쪽에서 더 빨리 움직여야겠네.”
“……?”
움직인다니? 그녀가 의아해하며 고개를 드니, 어느새 키네미아의 주위로 가면과 베일을 쓴 이들이 도열해 있었다.
‘누구지?’
긴장한 멜라니는 팔을 모아 팔꿈치를 잡았다. 그들에게서 풍기는 흉흉한 기세가 저절로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이분들께서는.”
순간 그녀는 제게 쏟아지는 시선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이를 눈치챈 듯 입꼬리를 올린 키네미아가 말했다.
“흑야.”
던전 관리국의 국장으로서 실력자들을 심심치 않게 봐 왔던 바, 그들이 예사롭지 않은 인물들이란 것은 본능이 먼저 눈치챘다.
소리 없이 다가온 표범같이 생긴 사내의 시선이 멜라니를 스쳐 지나가자 그녀는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그는 별다른 내색 없이 키네미아의 손에 장갑을 끼워 줄 뿐이었다.
“오늘 나눈 이야기는 정말이지 즐거웠네, 멜라니 호킨스 국장. 차는 별로였지만.”
오만한 투에 멜라니가 눈썹을 치켜들었다.
“아, 이건 내 무례 대신 준비했네.”
멜라니의 언짢은 내색에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키네미아가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로우가 미리 준비해 온 벨벳 상자를 열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것은 다이아몬드가 주렁주렁 달린 목걸이였다.
“이게 마음에 차지 않는다면 정식으로 항의해도 좋네.”
그리 말한 키네미아는 느릿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멜라니에게 자존심과 다이아몬드 중에 마음에 드는 걸 선택하라 말하는 것처럼.
‘……유세라도 부리는 건가.’
멜라니는 자존심 높은 바보가 아니었다. 고작 문짝 하나 부순 것쯤의 무례와 다이아몬드 목걸이라니. 굳이 저울질할 필요도 없지.
“무례라니요. 아무쪼록 좋은 결과가 나오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대공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읽어 낸 키네미아가 피식 웃음을 보였다. 그러더니 로우에게 손짓을 했다.
“로우, 일단 저쪽 창문부터 부수는 게 좋겠어. 저기부터 저기까지.”
“예?”
키네미아가 사무실에 늘어선 창문을 가리키며 로우에게 명하자, 멜라니가 놀라서 반문했다.
“대공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아까 말하지 않았나. 내 무례 대신 목걸이를 주겠다고.”
“아니, 그건 문을 부수고…….”
그러자 키네미아는 재미있는 농담을 들은 것처럼 웃었다.
“고작 문 한짝에 다이아몬드 목걸이라니, 언감생심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키네미아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는 동안 흑야는 창문을 부수기 시작했다.
쨍그랑! 쨍그랑!
“꺄악!”
소리를 듣고 들어온 비서관이 소리를 지르고, 멜라니는 사색이 된 채로 입을 벙긋거렸다.
그사이 키네미아의 손짓에 따라 트로피와 표창장이 진열된 멜라니의 진열장이 앞으로 고꾸라지고 있었다.
로우는 키네미아에게 유리 조각이 튀지 않도록 앞을 막아섰다.
와장창!
깨지고 굴러다니는 소리와 함께 국장실은 그야말로 엉망이 되어 갔다.
“이 정도로 해 둘까.”
그 순간, 길드원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멜라니는 당혹을 감추지 못한 채 뻣뻣한 목을 돌려 난장판이 된 국장실을 망연자실하게 둘러보았다.
“이게, 다…….”
키네미아는 멜라니 앞으로 빙글 돌아서며 말했다.
“그럼 국장, 또 보지.”
멜라니의 어안이 벙벙한 시선이 대공녀를 향했다.
하지만 대공녀는 사신 같은 말을 남기고 미련 없이 자리에서 떠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