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01)
먼치킨 길들이기 101화
* * *
제국 수도에 리온의 거처는 두 곳.
수도 중앙에 있는 타운 하우스와 수도 외곽에 자리 잡은 거대한 별장이었다.
키네미아를 따라나선 대공 성의 사용인들은 모두 타운 하우스에서 지내게 되리라 예상했으나, 키네미아가 선택한 곳은 외곽의 별장이었다.
“오래된 타운 하우스보다는 별장이 더 크고 깨끗하고 예쁘잖아.”
라고 말했지만, 다들 내심 키네미아가 수도 한복판에서 지내는 걸 꺼린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물론 말로 꺼내진 않았지만.
‘……거짓말 아닌데.’
저를 보는 시선이 어떤지 알아차리는 바람에 풀이 죽은 키네미아는 수풀로 감싼 하얀 외벽의 저택을 감상하며 산책로를 걸었다.
‘정원이 아기자기하네.’
이곳은 아빠와 엄마의 혼인을 축하하기 위해 할아버지가 세운 별장이었다.
당시 엄마의 배 속에 이미 키네미아가 있었기 때문에 곧 태어날 아이를 염두에 두었는지, 별장 곳곳엔 아이가 놀 수 있는 놀이 공간이 있었다.
‘옛날에는 몇 번 와 본 적 있었지.’
그때,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는 키네미아에게로 두 인영이 뛰어왔다.
“아가씨!”
“요정님.”
얇은 원피스에 카디건 차림으로 나온 키네미아를 발견한 로우와 유모 바네사였다.
추우니 든든하게 입으라며 로우는 제 겉옷을 벗어 주었고, 바네사는 제 목도리를 키네미아의 목에 감싸 주었다.
커다란 로우의 겉옷을 입은 키네미아가 펄럭거리는 소매를 날리면서 하늘을 가리켰다.
“오늘은 햇볕도 쨍쨍한데?”
“아가씨, 병은 방심하는 순간 훅 오는 거예요.”
“부인의 말이 맞습니다, 요정님.”
대체 겨울은 언제 가는 걸까. 키네미아가 우울하게 되새기는 동안, 키네미아의 손 밑으로 내려오는 긴 소매를 접어 주던 로우가 그녀에게 물었다.
“한데 요정님, 뭘 기다리는 중이십니까?”
“응?”
“어제는 분명 빨리 움직여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 같아서요.”
“아아, 맞아.”
키네미아가 어제 던전 관리국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이자 로우가 유순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명하시면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처리? 어떻게?
“그럴 필요 없어. 나도 생각해 둔 방법이 있으니까.”
약간의 심술과 깽판이야 목걸이로 무마했지만, 인명 피해라도 나면 돈으로 무마하기 힘들어질 터.
“생각해 두신 방법이요?”
“응, 흑야를 인정할 수 있는 요건을 만들어 주려고.”
듣지 않는다면 강제로라도 듣게 해 줘야지.
그게 나로는 불가능하다면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라도.
여기까지 말하니 로우는 쉽게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로우의 뒤를 이어 바네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어 왔다.
“그런데 말이에요, 아가씨. 백작님께는 연통을 보내지 않으세요?”
“아, 맞다.”
그제야 수도에서 지내는 제 숙부를 생각해 낸 키네미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워낙 급하게 올라오는 바람에 숙부께 미리 말해 둔다는 걸 잊고 있었다.
그 모습에 바네사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연통도 없이 수도로 오신 걸 알면 백작님께서 우실 텐데요.”
“으응, 우시겠지”
숙부는 풍부한 감수성과 함께 눈물이 많은 남자였다.
종종 보내오는 편지에도 눈물방울이 말라 있는 걸 모른 척하기 어려웠는데.
“이번 일만 마무리 짓고 찾아뵈면 되겠지.”
미루자. 키네미아가 너무 바빠서 연락할 새가 없었다는 변명을 곱씹을 때였다.
끼이이익-
별장의 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마차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에 키네미아는 올 게 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셨나 보네.”
바네사가 마차에 그려진 창을 든 사자 문양을 보며 입을 가렸다.
“어머, 저 문양은 설마…….”
“맞아. 응접실로 모셔 줘. 로슬린 공작 부인이셔.”
* * *
응접실 안으로 안내받은 로슬린 공작 부인은 키네미아와 별장에 대한 담소를 나누며 연신 웃음꽃을 피웠다.
그녀는 혜민원의 약을 복용한 이후로 이곳저곳 여행도 잘 다닌다면서 대화 중에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표했다.
그렇게 다시금 친분을 다진 후에 키네미아가 천천히 던전 관리국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자초지종을 듣게 된 로슬린 공작 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라면 십중팔구 허링 후작님이실 거예요. 던전 관리국 국장이 허링 후작 부인과는 인척 관계시거든요. 게다가 허링 후작님은 그럴 만한 이유도…….”
재잘거리는 새처럼 막힘없이 말하던 로슬린 공작 부인이 설핏 웃으며 말을 줄였다.
허링 후작은 널 싫어한단다, 라고 말하고 싶었겠지. 이를 알아챈 키네미아도 예쁜 웃음으로 화답했다.
“대충 무슨 사정인지 이제야 알겠네요.”
허링 후작이 국장과 모의를 했다는 거네. 이제 와 이런 후환을 남길 줄이야.
‘에이얀이 영지를 더 부수게 놔뒀어야 했는데.’
키네미아가 지난날을 후회하며 이젠 가만히 놔두겠다고 결심하는 사이였다. 차를 들던 로슬린 공작 부인이 방실방실 웃으며 물었다.
“대공녀, 제게 청이 있으신 거죠?”
“아…….”
키네미아가 커다란 눈을 굴리자 로슬린 공작 부인이 귀엽다는 듯 웃었다.
“어쩐지 전령을 보내셨을 때부터 그럴 거라 예상했어요. 괜찮으니 편하게 말씀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도울 테니까요.”
난처한 표정을 지은 키네미아에 반해 로슬린 공작 부인은 오히려 무슨 부탁을 할지 궁금하다는 듯 눈을 빛냈다.
“실은 황태후 폐하를 알현하고 싶은데, 다른 방도가 없어서……. 혹시 황태후 폐하께 다리를 놔 주실 수 있으신가요?”
황태후, 수잔.
그녀는 병약했던 선황이 승하한 후, 어린 황족들과 황실을 지켜 낸 여걸이었다. 지금은 황제에게 모든 걸 물려주고 뒤로 물러나 있었으나 아직도 제국에서 그녀의 영향력은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평소에는 은둔하는 터라 아무나 만날 수 없는 인물이지만, 로슬린 공작 부인이라면 황태후와 계속 교류하고 있을 터였다.
그녀는 제국의 황녀이자 수잔의 딸이니까.
때문에 국장과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로슬린 공작 부인에게 연통을 넣은 것이었다.
황제에 준하는 권력에 줄을 대기 위해서!
신전과의 대립 때 황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실감했으니, 이제는 황태후를 뚫을 수밖에…….
‘던전 관리국에서도 황태후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
키네미아는 별장 산책을 하던 때부터 아련하게 떠올리던 기억을 되살려 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생전에 갓 3살이 된 키네미아를 안고 물으셨다.
“미아, 새끼 고양이가 커다란 사냥개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알고 있니?”
“우웅, 아니요.”
“그건 말이야-”
할아버지는 순진무구한 눈을 빛내는 키네미아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연줄이란다.”
“……!”
할아버지는 진지했다.
“줄을 잘 타야 돼.”
아빠는 말해 주지 않는(아마 모르는) 인생 성공의 비밀이었다.
“우리 미아.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 여우 동화책은 읽어 봤지?”
“응.”
“그거란다. 네 앞에 포식자가 있다면, 네 등 뒤에는 상위 포식자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지.”
어린 키네미아는 고개를 끄덕여야 할지 조금 고민했다. 동화책 마지막 부분에서 여우는 폭삭 망하기 때문이다.
그 얘기를 하자 할아버지는 그건 여우가 줄을 잘못 선 거라고 했다.
앞에 호랑이가 나타나면 용 가죽을 뒤집어써야 하는 거라고.
“호오……!”
키네미아 리온, 3살의 어느 날.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 때였다.
‘할아버지, 잘 계시나요? 미아는 할아버지께서 해 주신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해요.’
키네미아는 사무치는 그리움에 그렁그렁 차오르는 눈물을 삼켜 내며 말했다.
“혹시 곤란하시다면 무리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아뇨. 곤란한 일은 아니고, 황태후 폐하께 말씀드리는 일이야 쉬운 일이지만…….”
머뭇거리던 로슬린 공작 부인이 말을 이었다.
“……대공녀께서 괜찮으실지 모르겠네요. 혹시 저희 어머니를 둘러싼 풍문을 들으신 적이 있으신가요?”
황태후의 풍문? 키네미아가 귀를 쫑긋 세웠다. 수도의 일에는 무지한 편이지만 몇 가지 주워들은 이야기는 있었다.
“인간에게 환멸이 나는 바람에 은둔하고 계신다느니, 지금은 온실에서 영장류 연구를 하신다느니…… 하는.”
영지에 콕 틀어박힌 자신이 아는 것만 이 정도였으니 수도 내에서 떠도는 소문은 더하겠지. 몇 가지를 손에 꼽으며 말하던 키네미아가 손을 내저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전 항간의 소문은 잘 믿지 않아요.”
소문은 소문일 뿐이란 건 키네미아 자신이 직접 겪어 본 바가 아니던가.
그러나 로슬린 공작 부인은 진지한 눈을 한 채 찻잔을 탁자에 올려 두었다.
“지금 대공녀께서 말씀하신 부분들 말이에요.”
“예.”
“전부 진짜랍니다.”
“예?”
진짜라니?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이에요.”
“……?”
왜죠?
키네미아가 치밀어 오르는 질문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