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02)
먼치킨 길들이기 102화
“대공녀께서 들으신 대로 어머니께서는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세요. 은둔하시기 전에는 다소 불쾌한 유언비어도 돌았고…….”
그 이야기를 입에 올리면서, 로슬린 공작 부인이 키네미아의 눈치를 보았다.
“……?”
왜 날 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던 키네미아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그래서 어머니께 그리 좋은 소리는 듣지 못하실지도 몰라요. 괜찮으시겠어요?”
“예. 부탁드려요.”
사실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키네미아에게는 이 일에 황태후를 끌어들이려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었다.
* * *
키네미아 리온. 올해로 18세.
길지 않은 생이긴 했다만, 이보다 무서운 곳에 가 본 적은 없었다.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소리를 질러 대는 원숭이와 침팬지들 사이에서 그녀는 그리 생각했다.
끼이이익-! 끼에엑!
온실을 걷던 키네미아가 흠칫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황태후가 은둔한 온실은 리온의 별장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키네미아는 점점 핏기가 가시는 얼굴로 온실에 난 길을 걸었다.
황태후가 키네미아의 알현 요청을 무척 흔쾌히 받아들이는 바람에, 넌지시 말해 본 로슬린 공작 부인 자신도 놀라고 말았다는 비화까지 전해 들은 참이었다.
‘왜지? 주인공 버프 같은 건가?’
혹여나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을까 싶어 머릿속 책을 팔랑팔랑 뒤져 봤지만 마땅한 수확은 없었다. 원작에서 주인공은 제국 수도에 들어선 적이 없으니까.
고심에 잠겨 있는데 어쩐지 한쪽 어깨에 메고 있던 손가방이 묵직해진 것 같은 느낌에 시선을 내리자, 원숭이와 눈이 마주쳤다.
“……?!”
원숭이 하나가 키네미아의 손가방을 열고 금화 주머니를 가져가려고 하는 중이었다.
“너-!”
“끼이익!”
‘이 자식, 생각보다 힘이 세잖아!’
세상 대공녀로 태어나 원숭이와 금화를 사이에 두고 힘겨루기를 할 줄 몰랐던 키네미아는 살짝 멘탈이 흔들렸다.
그렇게 키네미아가 원숭이와 돈주머니를 가지고 옥신각신하는 사이였다.
“미니는 사람을 무니 조심하게.”
엥! 키네미아가 흠칫해 물러섰다.
사냥복을 입고 두꺼운 장갑을 낀 노부인이 팔짱을 낀 채 구석진 곳에 놓인 책상 앞에 서 있었다.
17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큰 키에 매서운 눈을 가진 여성.
“미니, 이리 온.”
미니라 불린 원숭이가 돈주머니를 안고 노부인의 어깨로 올라갔다. 마치 키네미아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듯 히히대는 표정이었다.
키네미아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애써 표정 관리를 한 후에 웃으며 말했다.
“이 아이 이름이 미니군요.”
키네미아가 무릎을 굽혀 정중히 인사했다.
“제국의 빛을 뵙습니다.”
흐음, 황태후가 뜯어보듯 키네미아를 위아래로 훑었다.
“아이리아를 닮은 곳이라고는 꼿꼿한 자세뿐이군.”
엄마를 이름으로 부르다니, 친분이 있는 사이신가…….
문득 드는 생각을 갈무리한 키네미아가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그 남자의 손녀치고 담은 작아 보이고.”
그녀가 이어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운운하자 키네미아의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선황 대신 섭정 자리를 꿰차고 있던 할아버지다.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게 청이 있다지. 해 봐.”
황태후의 박력에 놀라 움찔한 키네미아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제 길드가 흑야가 맞다는 걸 공식적으로 공표해 주셨으면 합니다.”
순간 황태후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청하려는 게 그거였나?”
엥. 그럼 다른 걸 기대하셨나? 키네미아가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데 황태후가 어깨에서 꼬리를 살랑거리는 미니를 품으로 안아 들었다.
“인간들은 이해득실을 따지고, 손해가 나는 짓은 좀처럼 하지 않으려 들지. 나도 인간일 뿐이고. 자네를 도와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있나?”
“저는-”
하지만 그녀는 키네미아가 내걸 것이 무엇이든 기대하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을 끊었다.
“귀족들은 내게 천금이나 귀한 선물을 약속하더군. 지금 내가 있는 곳을 보게.”
그녀가 두 팔을 들어 온실을 가리켰다.
“내가 그런 재물에 흔들릴 성싶은지.”
뭣하면 돈까지 써 보려던 생각을 간파당한 듯해서 찔끔한 키네미아가 눈을 굴렸다.
황태후는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미니를 쓰다듬었다. 미니는 돈주머니를 꼭 안은 채 그녀의 손에 머리를 맡겼다.
키네미아는 폐하께서 기르시는 저 원숭이는 재물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는 말을 하려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관심 없으니 돌아가게.”
키네미아가 침묵을 유지하자 냉정히 말한 그녀가 더 이상 미련이 없다는 듯 몸을 돌렸다.
그에 키네미아는 황급히 말문을 떼었다.
“폐하. 저는 분명 폐하께 천금과 귀한 선물을 약속드릴 수 있지만, 오늘 제가 약속드릴 것은 다른 것입니다.”
“다른 것?”
“예. 길드 관리 본부의 권한 재정립을 위한 명분입니다.”
인간이 싫다며 은둔했다지만 황태후가 아직 제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
아직 제국 내 기관들의 권한을 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길드 관리 본부도 그중 하나고.’
한때 황실을 좌지우지했던 황태후. 그런 그녀가 은둔한다고 해서 쥐고 있던 힘까지 한 번에 놓기는 힘들었을 테지.
그제야 조금 관심이 생긴 듯 황태후가 고개를 까딱였다.
“앉지, 대공녀.”
황태후가 지저분한 책상 앞에 놓인 의자 하나를 가리켰다.
미니와 눈을 마주친 키네미아는 주춤주춤 다가가 자리에 앉았다.
황태후는 그제야 대접할 마음이 들었는지 넌지시 말했다.
“이거라도 들게.”
그녀가 내민 것은 바나나였다.
“……!”
일단 주는 건 받아먹는 키네미아가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 들었다.
‘진짜 바나나가…….’
황태후에게서 받은 바나나……. 묘한 감흥에 빠진 키네미아는 바나나 껍질을 까며 입을 열었다.
“폐하. 현재 길드를 검열하겠다고 나선 던전 관리국의 행태는 명백히 길드 관리 본부에 대한 권한 침해입니다.”
힘에 집착하는 황태후가 저와 대립하는 기관 사이의 파워 게임을 달갑게 여기리라는 계산이었지만-
“나와 던전 관리국 사이에 싸움을 붙이시겠다, 이거군.”
황태후가 워낙 차갑게 말하는 통에 키네미아가 조금 순화해 말할 방법을 찾아 입을 달싹였다.
“폐하의 권한을 되찾아 드리면서 제 권리를 찾기 위한 작은 청일 뿐입니다.”
하나 의외로 황태후는 꽤 솔깃하다는 표정을 내보였다.
역시 완전히 헛다리를 짚은 건 아니었나.
키네미아가 살짝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분명 구미는 당기는 이야기야.”
그녀는 떠보듯 고개를 기울였다.
“하지만 자네 쪽도 움직여 줘야 할 텐데.”
“폐하께서 명하시는 건 어떤 일이든 따르겠습니다.”
“대공녀 꽁지에 불이 붙었나 보군그래.”
처음 만났을 때부터 깨달았지만, 황태후는 내내 말에 거침이 없었다. 키네미아는 그런 황태후가 조금 멋있다고 생각하면서 바나나를 우물거렸다.
저런 사람으로 커야겠다. 키네미아가 롤모델을 정립하는 사이, 그녀가 대뜸 화제를 바꾸었다.
“뭐, 나는 대공녀가 아이리아처럼 그 남자의 이야기를 들으러 온 줄 알았는데. 내 착각이었군.”
아이리아? 갑작스레 튀어나온 엄마의 이름에 키네미아가 눈을 깜빡였다.
“외람되지만 폐하, 그 남자라면…….”
“자네 조부 말이야. 청이 있다고 해서 처음에는 그걸 물으러 온 줄 알았지. 소문과는 달리 케네스 리온의 잔에 독을 탄 건 내가 아니라고 말해 주려고 했는데.”
“……아.”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황태후에게서 할아버지와 엄마의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은…….
할아버지를 독살한 범인은 아직도 잡히지 않았다. 그 사실이 갑작스럽게 현실로 다가왔다.
“내가 죽인 거라느니 주위에서 어찌나 수군대든지. 그 일로 인간들에게는 진저리가 났지. 추악한 인간들보다 동물이 더 나아.”
황태후는 그 일로 은둔을 생각했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이야기는, 어머니도 알고 계셨나요?”
“그야 내가 이야기해 주었으니까.”
황태후가 미니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리아도 세상을 뜨고 말았지만.”
* * *
이제 사라진 왕국은 우거진 나무들로 가득했다.
숲으로 변모한 왕국에서 마법사들은 되살아난 구울들을 하나둘씩 처리해 나갔다.
에이얀은 그들을 지나쳐 어딘가로 향했다.
아직도 익숙한 길을 따라 움직이자 도착한 곳은 나무 십자가가 서 있는 빈 땅이었다.
그는 나무 십자가 아래에 서서 미간을 찌푸렸다. 이곳은 아버지와 함께 살던 집의 터였다.
“……사령술사들은 대체 뭘 찾고 있는 거지.”
* * *
왈칵, 피를 쏟아 낸 워맥 자작이 입을 훔쳤다. 다짜고짜 온몸을 구타당하는 통에 눈앞이 흐릿했다. 그는 제 앞에 선 남자를 보며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저는 정말 아무것도 보지 못했-”
“그것참, 실망스러운 대답이군.”
냉랭하게 말한 남자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워맥 자작의 심장에 검을 꽂았다.
이내 그는 자신을 따른 이들에게 명했다.
“워맥 자작이 소유한 집을 모두 뒤져. 무슨 흔적이라도 나오겠지.”
그때 뒤에 서 있던 주술사가 남자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저, 그때의 구울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 아들이라며 리카샤의 이름을 댄 구울을 뜻하는 것이었다.
사령술사는 큰돈을 쥐여 주고 돌아가는 길에 죽여 없애 버렸지만, 어쩐지 구울은 그대로 지하에 가둔 채였다.
“……구울 말이지.”
남자가 작게 읊조리며 구울이 내뱉었던 이름을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에이얀 크로츠.
다른 이도 아니고 하필 마탑의 리카샤라니. 곤란하게 됐어. 남자가 혀를 찼다.
에이얀 크로츠에 대해 조사했던 남자는 묘한 연관성을 재차 떠올렸다.
키네미아 리온의 데뷔탕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던 리카샤.
키네미아 리온의 영지에서 허탕을 치고 돌아온 워맥 자작.
어느 날 갑자기 두각을 드러낸 키네미아 리온.
“리온은 정말이지, 대대로 지긋지긋한 놈들이야.”
잘 들리지 않게 중얼거린 남자가 이윽고 몸을 돌렸다.
“그건 곁에 두고 길러 보지. 어떻게든 쓸모가 있을 것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