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03)
먼치킨 길들이기 103화
* * *
어둠이 완연하게 내려앉은 깊은 밤이었다. 키네미아는 거세게 이불을 걷고 몸을 일으켰다.
‘잠이 안 와.’
황태후와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침실로 돌아온 후부터 머릿속을 꽉 채운 생각에 좀처럼 잠에 빠지지 못한 채였다.
할아버지에게 독을 탄 사람은 누굴까? 아직 살아 있을까? 엄마와도 관련이 있는 걸까?
대략 그럴 만한 인물을 떠올려 봤지만 수많은 원한인들 중에 한 명이겠지, 라는 결론에만 다다랐다.
‘……용의자가 너무 많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생각 탓에 키네미아는 침대 밖으로 나왔다.
‘머리 좀 식히자.’
몰래 별장 밖으로 빠져나온 그녀는 한적한 인공 연못 근처로 다가갔다.
손을 담그고 이리저리 내젓자 색색의 물고기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키네미아는 별장 연못에서 물놀이를 하던 어릴 적을 떠올리며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머릿속을 뒤져 봐도 그 이상의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가족과 함께했던 행복한 시간이 길지 않았던 탓이다.
……추억이 많았다면 좋았을 텐데.
‘조금 우울해지네.’
그때, 검은 안개로 만든 듯한 까마귀가 머리 위를 빙글 돌았다.
“……?”
이내 까마귀가 키네미아의 어깨에 앉았다.
“에이얀?”
이름을 알아들은 것처럼 까마귀는 아장아장 옆으로 움직이더니 강아지처럼 키네미아의 턱에 머리를 비볐다.
곧이어 주변이 환하게 밝아졌다. 광구였다.
키네미아가 쪼그려 앉은 채로 고개만 빠끔 들어 올리는데, 허리를 숙인 에이얀과 눈이 마주쳤다.
기다란 눈을 마주하자 괜스레 심장이 쿵 떨어졌다.
“미아.”
에이얀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는 긴 손가락을 들어 조심스럽게 키네미아의 머리카락을 넘겨 주었다.
“왜 나와 있어. 이 밤에.”
“그냥……. 머리 좀 식힐까 해서.”
“그랬어?”
빙긋 웃은 그가 키네미아를 제 무릎 사이에 두고 품에 가두듯 안았다.
“엥!”
놀라 바르작거리는 키네미아와 달리, 그는 제법 만족스러운 듯 귓가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자는 줄 알았는데, 얼굴 봐서 좋다.”
쿵쿵 뛰는 에이얀의 심장 소리가 너무 커서 되레 키네미아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좀 떨어져……. 바보야.”
키네미아가 투덜거리듯 말하니 에이얀이 칭얼거렸다.
“봐주면 안 돼? 나 오늘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또 뭐 했는데?”
“사령술사들을 추적하다 고향에 다녀왔어.”
“…….”
정말 할 말 없게 만드는 재주가 있네. 작게 한숨을 내쉰 키네미아는 그에게서 빠져나오는 대신 팔로 무릎을 안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 그러자 그에게서 나지막이 목으로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사령술사들이 왜?”
에이얀의 고향은 무슨 일인지 폐허가 됐다고 들었다. 왕국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바람에 한동안 주변국들에서 소란이 끊이지 않았던 것을 생생히 기억했다.
“글쎄…….”
생각에 잠긴 에이얀이 말을 줄였다.
키네미아가 그런 에이얀의 팔을 두드렸다. 에이얀은 웃으며 물었다.
“위로?”
“……맞아.”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키네미아를 품 안 깊숙이 끌어안았다.
“……!”
키네미아가 두 주먹을 꾹 쥐고 뻣뻣하게 몸을 굳혔다.
“우리 미아는 언제 주먹을 이렇게 안 쥐게 될까.”
에이얀이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그녀의 주먹을 살살 폈다. 민망해진 키네미아가 부루퉁하게 답했다.
“네가 안 이럴 때.”
“내가 평생 펴 줘야겠네.”
“……!”
왠지 당한 기분에 그녀가 눈을 홉떴다.
“그런데 미아, 무슨 일 있어?”
“잠이 안 와서 나온 건데…….”
“음, 옆에서 재워 줄까?”
에이얀이 침실에 입성하겠다는 이야기를 에둘러 말하자 키네미아가 실토하듯 술술 내뱉었다.
“오늘 황태후 폐하를 만나 뵈러 갔다가 할아버지에 관해 신경 쓰이는 이야기를 들었어.”
“내가 재워 주는 게 그렇게 싫었어?”
“싫어.”
키네미아의 단호한 대답에 시무룩해진 에이얀이 눈을 내리깔았다.
이내 자초지종을 들은 그가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할 거야?”
“이대로 수도에 남을 생각이야. 어차피 작위도 받으려고 했고.”
범인이 원한인들 중에 하나라면 그놈과는 어떤 식으로든 부딪치게 되겠지.
“내가 혼내 줄까?”
에이얀이 빙긋 웃으며 하는 말에 키네미아가 눈매를 좁혔다.
“누군지도 모르잖아. 그리고 됐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해.”
음, 키네미아를 가만히 바라보던 에이얀이 그녀의 손등에 깍지를 꼈다.
“네가 나한테 좀 더 의지하면 좋겠는데.”
“많이 하고 있는데?”
마법 셔틀로 써먹히고 있으면서 무슨 소리람. 키네미아가 웃음을 터트렸다.
에이얀은 그런 키네미아의 입매를 엄지로 매만졌다.
“그것보다 더.”
너한테 내가 없으면 안 될 정도로. 에이얀이 작게 미소를 띠었다.
지금껏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해 온 키네미아의 자립심이 무척 대견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제게 뭐든지 의지했으면 하는 마음도 공존했다.
“그럼 계속 네 옆에 있을 수 있을 테니까.”
애매한 시험의 시간이 끝나도.
그가 흐릿하게 말하자 키네미아가 지그시 눈을 마주쳐 왔다.
“계속 옆에 있어. 무슨 일이 생겨도 너는 내 사람이니까.”
* * *
침실까지 데려다주겠다는 에이얀의 뒤를 키네미아가 쫄래쫄래 쫓아가던 중이었다. 돌연 에이얀이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니.”
“응?”
“우리 미아가 대공이 되면 난 대공비인가?”
“……?!”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 에이얀의 참신한 발상과 긍정적 마인드에 놀란 키네미아가 물었다.
“왜 혼자 진도를 거기까지 나가?”
“마음에 든다, 대공비.”
“난 시켜 줄 생각도 없는데 왜 혼자 거기까지 갔어?”
“옆에서 잘 보필할게.”
“내 말 안 들려?”
“잘 들리는데?”
“……다행이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키네미아가 픽 웃음을 터트렸다.
마탑주 대공비를 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21장 위협
– 제가 대공녀께 무슨 모욕을 들었는지 알기나 해요?
통신구 너머로 던전 관리국 국장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링 후작은 다짜고짜 연락해 30분 동안 쏘아붙이는 그녀의 말을 들어주던 차였다. 대공녀가 갑작스레 나타나 국장실을 뒤엎었다나.
“국장이 목걸이를 받아서 정식 항의도 못 한 게 내 탓은 아니잖소.”
허링 후작이 반박하자 멜라니가 입을 다물었다.
할 말이 없겠지. 혀를 찬 허링 후작은 짜증스럽게 물었다.
“결과는 대체 언제 나오는 거요? 며칠이나 지났는데.”
– 사흘 뒤에요. 제가 할 일은 다 했으니 뒷일은 후작님께서 알아서 하세요.
“아니, 그렇게-”
허링 후작의 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통신구를 끊었다. 그에 허링 후작이 답답한 듯 목덜미를 쓸었다.
‘……확실히 처리해야 할 텐데.’
영지에 틀어박혀 있던 대공녀가 수도까지 올라오다니, 예감이 좋지 않았다.
* * *
“오라버니.”
키네미아는 제 앞에 선 쉔 티엔을 가만히 응시했다.
연금술사들과 로우의 예상과는 다르게 며칠을 가출했다가 돌아온 쉔 티엔은, 키네미아가 수도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뒤를 따라온 참이었다.
마차에서 내린 쉔 티엔을 맞이한 키네미아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 고정돼 있자, 담뱃대를 물고 있던 쉔 티엔이 제가 안고 있는 개를 보면서 설명을 덧붙였다.
“추위에 떨고 있던 이 몸의 체온을 지켜 준 영리한 개다.”
늑대는 저를 개라고 표현하는데도 키네미아를 보며 세차게 꼬리를 흔들었다.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아무리 봐도 저 늑대는 동굴에서 그녀가 놓고 온 그 녀석이었다.
‘매몰차게 버리고 왔는데, 왜 반기는 거야.’
밖에 내다 버리고 온 강아지가 집으로 돌아와 마주친 느낌이다. 양심이 콕콕 찔린 키네미아는 난처한 기색으로 늑대의 시선을 피했다.
“오라버니께서 키우시려고요? 동물 안 좋아하시잖아요.”
로우가 혜민원에서 키우는 고양이도 싫어하던 쉔 티엔이었다. 한데 개를 키우겠다고?
“비록 말 못 하는 미물이다만, 근본 없는 서대륙과는 다르게 동대륙에서는 보은이 중요한 가치니까.”
곁에서 이를 듣고 있던 로우가 드물게 얼굴을 찌푸렸다.
“사부님. 왜 제겐 보은하지 않으십니까?”
그는 서대륙에서 불법 체류자로 전전하던 쉔 티엔을 거두어 준 장본인이었다.
그러나 쉔 티엔은 인간에겐 관심 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상놈은 내 연못에 손대지나 말거라.”
그렇게 로우와 쉔 티엔이 티격태격하는 사이였다. 별장의 철문이 열리더니 다른 마차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
올 사람이 또 있었나? 키네미아가 의아해하는데 마차에서 내린 남자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리온의 날개를 뵙습니다. 길 베리지 남작입니다, 대공녀.”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키네미아 앞으로 바짝 다가와 속삭였다.
“황태후 폐하의 명을 전하러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