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04)
먼치킨 길들이기 104화
* * *
남작은 관자놀이를 이어 턱까지 내려온 털이 산적처럼 난 남자였다.
‘……털을 좋아하시나.’
그날도 원숭이를 쉴 새 없이 쓰다듬고 있긴 했지.
키네미아가 무의식적으로 황태후의 취향을 가늠하는데, 남작이 예를 갖춰 차를 거절했다. 그에 키네미아는 하녀를 내보내고 그에게 되물었다.
“황태후 폐하께서 길드전을 주최하신다?”
털 남작이 다짜고짜 꺼낸 말은 이것이었다. 황태후가 길드전을 열 생각이라는 것.
4년에 한 번, 길드 관리 본부에서는 길드 리그전을 열어 랭크를 조정하는데, 저번 리그전이 아직 2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다시 열 수는 없었을 테고.
대신에 다른 방법을 찾기로 한 심산이 엿보였다.
키네미아의 물음에 ‘예.’라고 답한 남작이 제 무릎 위에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낀 채 말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시련의 탑 공략전’입니다.”
시련의 탑? 키네미아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시련의 탑이라면 곧 토벌이 있을 그 탑 말인가?”
“맞습니다.”
시련의 탑. 총 10층으로 된 거대한 원통형 건물로, 층마다 상위 마물로 가득 차 있는 제국의 골칫덩이이기도 했다.
지금은 시련의 탑으로 불리지만, 일전에는 고대 신의 사제들이 수련하는 곳으로서 ‘수련의 탑’으로 불리던 유물이었다.
어느 순간 10층 꼭대기에 ‘탑의 주인’이라 불리는 마물이 자리를 잡으면서 수련은 시련으로 탈바꿈하고 말았지만.
원칙적으로는 황실의 기사단이 9층까지의 마물을 주기적으로 소탕하게 되어 있는데, 이번에는 길드전이라는 명목으로 길드들을 모아 토벌을 대신하겠다는 뜻일 터였다.
‘길드전으로 시련의 탑 공략까지 한 번에 해치우겠다니, 대단하네.’
이게 바로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거지. 역시 내 롤모델. 감탄한 키네미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공략전에 나가서 실력을 보이라는 건가?”
“황태후 폐하께서는 ‘이 정도는 해 주어야 나도 면이 설 게 아닌가.’라고 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황태후는 무작정 나서서 비호하는 것보다는 적당한 구실을 쌓아 두는 게 모양새가 나쁘지 않을 거라 계산했을 것이다.
키네미아는 답을 기다리며 몸을 굳힌 남작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부탁하는 입장이기도 하고, 따져 봐도 불합리한 명은 아니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것이네만, 10층에서 탑의 주인을 만나지는 않아도 되는 거겠지?”
10층에 자리 잡은 탑의 주인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공략이 불가능하다.
“그렇게 무리한 명을 내리진 않으셨습니다. 그저 상위권에만 들면 충분하다고 하셨지요.”
각지의 내로라하는 영웅들마저 지금까지 10층 공략엔 무수한 실패를 겪었다는 건 황태후도 이미 잘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10층에 가지 않는다면야…….’
키네미아가 납득의 의미로 두어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으음.”
괜찮을까? 흑야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스멀스멀 밀려오는 걱정을 떨쳐 내기는 힘들었다.
‘늘 변수라는 게 있기 마련이고…….’
지금 시련의 탑 공략전에 참여하게 된 것도 전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아닌가.
만에 하나 성공적으로 마치지 못한다면 자충수가 될 텐데.
‘……용병을 넣을까.’
“궁금한 것이 하나 있는데, 용병은 사용 가능한가?”
“인원 제한만 지켜 주시면 됩니다. 접수하실 때 함께 이름을 등록하시면 되니까요.”
“음, 알겠네. 유의하도록 하지.”
“그럼 대공녀, 좋은 결과 있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대화를 깔끔하게 마무리 지은 남작이 일어섰다. 인사하고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을 보던 키네미아가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 * *
로우가 길드장으로서 길드전 신청 접수를 하러 간 사이, 크샨들은 길드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마른 천으로 검날을 닦았다.
“시련의 탑이라면서?”
“10층까지는 올라가지 못한다던데.”
“그럼 가나 마나 아닌가? 아, 맛보고 싶다. 탑의 주인.”
호전적인 크샨답게 그들은 시련의 탑에 입성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긴장하는 기색 없이 태연하기만 했다. 그들에게 시련의 탑이란 그저 색다른 도전일 뿐이었다.
그렇게 기대에 찬 이야기들을 나누던 중 비주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야. 9층까지면 용병 없이 우리끼리도 충분하잖아?”
이를 들은 마렌이 혈기왕성하게 말하는 비주를 흘겼다. 그 용병 둘이 현재 같은 방 안에 있기 때문이었다.
마렌의 눈빛에 찔끔한 비주가 화제를 돌렸다.
“수장이 길드명을 바꾸시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그러자 모두가 순식간에 말을 잃었다.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새로 바뀐 길드명은 누가 들어도 흑야의 질 낮은 유사품이었다. 이렇게 꼬인 데에는 자업자득인 면이 컸다.
그들은 흑야라는 길드 아래에 모여 있었지만, 이에 큰 자부심을 가진 건 아니었다. 하나 사칭이 돼 버린 작금의 상황에 착잡함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
각자 착잡한 마음에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마렌이 이를 수습하기 위해 시작했다.
“지나간 일은 모래바람에 흘려 두자. 그보다 이제 포션을 많이 챙기지 않아도 되니 평소보다 쉽지 않겠어? 쉔 티엔 님께서 계시니…….”
그에 크샨들의 시선이 창가로 향했다. 창틀에 자리를 잡은 쉔 티엔은 어딜 봐도 의욕이 없어 보이는 몸짓으로 잔에 술을 따르고 있었다.
“서대륙식 정원도 안주로 삼기에 나쁘지 않단 말이지.”
그리 말한 쉔 티엔이 극락에 앉은 신선처럼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의 한량 같은 모습을 보며 비주가 마렌에게 속삭였다.
“쉔 티엔 님, 탑에 올라가서도 마시는 건 아니시겠지?”
“안 마시면 상황은 더 나빠져. 알코올 중독 증세 때문에 술을 안 마시면 쓸모가 없잖아.”
그때 크샨들 중 누군가가 동대륙에는 취권이라는 게 있다면서, 취권의 고수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했다.
크샨들은 미심쩍지만 수긍한다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올라오자 마렌이 재차 큰소리로 말했다.
“리카샤도 계시니 이제 원거리 공격에도 문제없겠지.”
크샨은 다들 검을 사용했으므로 원거리전에 취약한 편이었다.
보통 검을 쓰는 길드에서는 주술사들을 귀하게 모셔 와 공략조에 끼워 넣곤 했는데, 여느 길드들과 달리 흑야는 폐쇄적 집단이라 제 무리에 주술사를 들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 까닭에 지금까지 원거리전에 취약한 부분을 힘과 스킬로만 무식하게 보완해 오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법사가 있다. 그런 그들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에이얀 님께서는 리카샤 아니신가!”
필사적으로 용병들의 이점을 찾아 이야기하던 크샨들이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또 다 같이 한쪽을 응시했다.
모두가 바라본 곳에서, 새카만 머리카락을 가진 소년은 방만하게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물론 그 책은 불쌍한 크샨의 소장품을 갈취한 것이었다.
그는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듯 결계를 치고 그 안을 마력으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제 얘기가 한창이었는데도 그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책장을 넘기는 중이었다.
비주가 에이얀은 역시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으음, 마렌 역시 침음을 흘렸다.
처음부터 키네미아가 시켜서 온 거지, 큰 의욕은 없다는 얼굴들이긴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저 둘의 사기는 가뭄이 든 땅보다 메말라 보였다.
사실 마렌은 저 둘을 데리고 오면서 넌지시 ‘저희들로 충분하니 굳이 따라오지 않으셔도 된다.’고 제안했다.
“뭐 어려운 일이라고 피하겠는가. 이 몸도 가겠네.”
그러나 이렇게 말한 쉔 티엔은 연초 연기를 내뿜으면서 아득바득 따라왔고.
“꼴에 고고한 자존심이라도 가졌나 보지? 그래도 사양 마. 너희들 전부 모은 것보다 내가 나을 텐데.”
이렇게 말한 에이얀은 나긋하게 눈을 휘어 웃었다.
탄식한 마렌은 저 둘 다 귀찮긴 하지만 출전하지 않았다가 키네미아에게 밉보이고 싶진 않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마렌이 아까와는 다르게 조용히 검을 손질하는 크샨들을 바라보았다.
키네미아의 바람과는 달리 투입한 용병들은 흙탕물을 퍼트리는 미꾸라지처럼 크샨의 사기를 떨어트리는 중이었다.
‘용병을 받은 게 아니라 사실 짐 덩어리들을 받은 게 아닐까.’
상당히 정당한 의문을 품은 채 마렌은 쫄래쫄래 쫓아온 개에게 간식을 주었다.
곁눈질로 보아하니, 키우겠다 데려온 쉔 티엔보다 키네미아를 제 주인처럼 따르는 녀석이었다.
‘……그런데 이건 개가 맞나? 늑대?’
그녀가 빤히 바라보자 늑대의 동공이 세로로 갈라졌다.
“……?!”
그간의 수많은 마물을 베어 왔던 이력으로 직감하건대 이건 개도, 늑대도 아니다. 마물이다.
“…….”
마물을 마주한 마렌의 표정이 일그러졌다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
‘참, 내가 무슨 바보 같은 생각을……. 마물이 인간을 따를 리가 없잖아.’
그래, 그럴 리가 없지. 멍청한 생각을 애써 떨쳐 내면서도, 마렌은 키네미아 곁에 있는 건 모두 어딘가 살짝 이상한 것 같다는 걱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