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05)
먼치킨 길들이기 105화
* * *
길드 에렉시나의 길드장, 케이릴은 제 앞의 남자를 마주한 채 단검을 만지작거렸다.
이내 그가 제 앞으로 내밀어진 두툼한 주머니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쉭,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주머니의 입구를 죄고 있던 줄이 끊어졌다.
백금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흐음.’
예상했던 것보다 만족스러운 색깔이 아닌가. 케이릴이 미소를 띠었다.
마주 앉은 남자가 의뢰와 함께 내민 돈이었다. 케이릴이 눈만 움직여 안을 확인하는 중에 남자가 확인시켜 주듯 말했다.
“선금으로 20플라티나를 주겠네.”
“와우-”
예상보다 더 큰 숫자에 케이릴은 휘파람을 불었다.
“성공적으로 마치면 20플라티나를 더 주도록 하지.”
“보기와는 다르게 통이 크시군요, 귀족 나리.”
그는 케이릴의 이죽거리는 태도에 미간을 찌푸렸다.
“내게도 거금이야. 대신 확실하게 처리해 주게.”
“맡겨만 주시죠, 허링 후작님.”
허링 후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버렛 공작이 지나가듯 말했던 대로, 에렉시나 길드는 위험한 일이라 해도 돈이면 마다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황태후가 나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얼마나 당황했던가.
‘이제 한숨 놓을 수 있겠지.’
허링 후작이 거금을 들여서까지 나선 데에는 일종의 오기와 알 수 없는 떠밀림이 컸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어찌 됐든 곤란하게 만들기는 했으니 이쯤에서 멈춰도 될 것 같은데.
무언가에 휩쓸리듯 움직이는 것 같으면서도, 왜인지 제 힘으로는 멈출 수 없는 느낌에 사로잡힌 그였다.
* * *
수련의 탑은 태생부터 그 자체가 고대 유물이었던지라, 탑의 주인이 자리한 이후부터는 마물의 생태계에 맞춰 진화를 거듭했다.
그 때문인지 몇 가지 특이점이 생겼는데-
각 층에 제일 강한 마물이 플로어 마스터가 되고, 플로어 마스터를 물리칠 시에 다음 층이 열리는 구조로 바뀌게 된 것이 첫째.
그리고 수련을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탑이었던 탓에 탑에서 개개인의 공적을 기록하는 것이 둘째였다.
“그런 이유로 여러분의 성과는 시련의 탑이 모두 체크할 것입니다. 공략 진행 과정에서 숫자로 표시해 상단에 별도 표시될 거고요.”
이것이 길드전 접수 시 참여자의 이름을 적게 하는 이유였다.
여기까지 설명한 후에, 관리자 자격으로 나선 길드 관리 본부의 프로스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
그 순간, 마물의 음산한 울음소리가 탑을 쩌렁쩌렁 울렸다.
프로스트 앞에 선 참가자들은 괴물의 아가리처럼 벌린 어두운 복도 너머를 응시했다.
그들이 선 곳은 시련의 탑 1층 입구.
이곳까지 마물이 나오는 일은 거의 없지만, 멀지 않은 곳에 위협적인 것들이 간간이 울음소리와 발소리를 내며 제 존재감을 드러냈다.
다시 사위가 잠잠해지자 프로스트가 말을 이었다.
“9층까지 공략이 끝난 이후, 합산하여 제일 높은 성과를 낸 길드는 황태후 폐하께 포상을 받는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굳이 덧붙이자면, 상금은…….”
길드에서 가려낸 정예들은 프로스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포상 이야기가 나오자 시선을 모았다.
“200플라티나. 부상으로는 S급으로의 길드 등급 상승입니다.”
프로스트의 말이 끝나자마자 참가자들의 미소가 짙어지면서 저마다 기선 제압을 하듯 힘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시련의 탑의 난이도는 최상급 던전 이상.
그 때문에 한 길드를 제외하고는 전부 A급 길드들이었다.
A급 길드들이라면 전부 소드 마스터에 준하는 실력자들을 데리고 왔을 터.
확실히 그들에게서는 뒷덜미의 털이 쭈뼛 설 정도로 남다른 마력과 기세가 느껴졌다.
프로스트는 그들을 돌아보다 고요하지만 묵직한 존재감을 가진 한 길드 앞에서 시선을 멈췄다.
표범 같은 인상을 가진 거구의 남자와 여우 같은 인상의 호리호리한 남자 뒤로 가면을 쓰고 베일을 두른 자들이 도열해 있었다.
그들은 포상에는 큰 관심이 없는지 아까와 같은 모습을 고수한 채였다.
‘흑야를 사칭했다고 하던가.’
사실일까? 그런 것치고는 풍기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은데.
프로스트는 저들을 예의 주시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설명을 이어 갔다.
“시련의 탑은 10층까지 있지만, 참가자분들께서는 9층까지만 공략을 진행해 주시면 됩니다. 10층은 탑의 주인이라 불리는 무척 위험한 마물의 영역이므로 혹여라도 접근하지 않도록 유의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때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A급 길드 에렉시나 소속의 길드원이었다. 그는 까불거리는 태도로 물었다.
“질문이 하나 있는데 말입니다. 저희가 10층으로 올라가 탑의 주인을 공략하면 어떻게 됩니까?”
프로스트가 예의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렇게 되면 합산할 필요가 없겠군요. 두말할 것 없이 그 길드가 이번 길드전의 승자가 될 테니까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에렉시나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마치 자신들이 10층을 공략할 수 있다는 것처럼.
여타 다른 길드들도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묘한 호승심을 불태우며 눈을 빛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에 프로스트는 속으로 쯧쯧 혀를 찼다. 아직 겪어 보지 않아서 모르나 본데, 그들의 노림수처럼 누군가 10층을 공략하고 세기의 용사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전멸이라도 안 당하면 다행이지.’
대강의 설명을 마친 프로스트가 참가 인원을 확인하려는 그때였다.
허공에 화르륵 불이 붙었다.
“저건 뭐야!”
“뭐지?”
놀란 이들이 모두 위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불이 붙은 곳에서는 문자가 하나씩 새겨지고 있었다.
‘저건 탑의 메시지인데.’
프로스트는 당황하며 동행한 황실의 기사단장에게 시선을 주었다. 기사단장은 늘 토벌을 지휘해 왔으므로 이 이상 현상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기사단장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뭔가에 반응이라도 한 건가?’
프로스트와 기사단장을 포함한 모두가 숨죽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글자가 모두 완성되었다.
[1. 에이얀 크로츠 : 38,000점] [‘에이얀 크로츠’에 의해 2층 개방 완료.]“에이얀 크로츠?”
“이게 무슨 일이야?”
“2층이 열려? 지금?”
참가자들의 수군거림과 함께 프로스트도 어리벙벙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2층이 열렸다고? 지금? 아직 설명도 안 끝난 상황에서?
날벼락 같은 메시지에 프로스트가 명단을 넘기며 에이얀 크로츠를 찾는 사이였다. 요사스럽다 생각될 정도로 미려한 소년이 그들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왔다.
참가자들 내에서 ‘저놈인가.’라는 웅성거림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프로스트가 고개를 들었다.
확실히 설명 내내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인물이 분명했다.
“그쪽 분이 에이얀 크로츠 님?”
“맞는데-”
에이얀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자세 그대로 프로스트와 눈을 마주쳤다.
아직 1층이라곤 하지만, 혼자서 불쑥 플로어 마스터를 잡고 온 사람치고는 아주 멀끔한 모습이었다.
“-무슨 문제라도?”
연이어 물은 에이얀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예? 아니, 그게 말입니다…….”
뻔뻔한 낯에 되레 말문이 막힌 프로스트가 버벅이는데, 표범같이 생긴 사내가 그에게 주의를 주듯 말했다.
“아직 설명이 끝나지 않았는데 함부로 움직이시면 관리자님께서 곤란하실 겁니다, 에이얀 님.”
프로스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하던 행동을 자제하고 큼, 헛기침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이얀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설명이 필요 이상으로 길어서.”
설명을 짧게 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라면서 프로스트를 되레 책망하는 눈빛이었다.
그는 억울함에 입을 벌렸다. 설명이 길어서라고? 그럴 리가. 에이얀 크로츠는 처음부터 이 자리에 없었다. 애초에 설명이 길건 짧건 아예 들을 생각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쯤 해 두지.”
프로스트 대신 입을 연 것은 아까부터 담뱃대를 문 채 연거푸 연기만 내뱉던 여우같이 생긴 호리호리한 남자였다.
이국적인 외모와 차림새의 남자는 에이얀과 마찬가지로 귀찮다는 얼굴로 말했다.
“거두절미하고, 보이는 족족 다 잡으라는 뜻 아닌가. 다 알아들었네.”
그가 후, 연기를 내뱉었다.
“그럼 이 몸은 먼저 움직이도록 하겠네.”
쉔 티엔이 짧은 인사를 남길 동안 에이얀은 말도 없이 다른 방향으로 발을 움직였다.
이것이 신호라도 된 것처럼 각 길드들은 프로스트가 당황을 하건 말건 어디론가 우르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두 분 다 어디들 가십니까.”
그 와중에 로우가 유순히 웃으며 두 사람을 턱, 턱, 붙잡아 제 양팔 사이에 꼈다. 그러자 에이얀이 눈썹을 틀어 올렸고, 쉔 티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먼저 성질을 낸 것은 쉔 티엔이었다.
“손대지 마라, 이 상놈아!”
“구석에 숨어서 술 자시려는 속셈을 제가 모를 줄 아십니까?”
“너는 대체 이 몸을 뭘로 보고-”
“알코올 중독자로 봅니다.”
“……!”
정답이었다.
“이곳에선 다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요정님께서 우리 모두 힘을 합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 적 없다.”
“그런 적 없어.”
드물게도 의견이 맞은 쉔 티엔과 에이얀이 동시에 말했다.
그러나 로우는 그런 잡음 따위 무시할 줄 아는 사내였다.
“그럼 저희도 곧바로 2층으로 올라가죠.”
그들이 이러니저러니 하는 사이, 다른 길드들은 벌써 2층으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로우는 무해한 미소를 지으며 둘을 이끌고 움직였다.
팔에 오러까지 담은 터라 에이얀과 쉔 티엔은 속절없이 끌려가게 되었고, 그의 뒤를 따르면서 흑야는 수장에 대한 존경심이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