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11)
먼치킨 길들이기 111화
* * *
황립 도서관이 황궁 바로 옆에 붙어 있어, 안쪽 정원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서면 바로 황궁 안이었다.
“어디까지 가려는 거야? 함부로 들어와도 돼?”
“괜찮아, 괜찮아.”
남자는 태평한 기색을 고수한 채 손을 아래위로 흔들었다.
‘……묘하게 화가 안 나네.’
병자라서 그런가. 아니면 의심스럽긴 해도 무해해 보이는 태도 때문인가. 어쩐지 불만스러워진 키네미아가 와락 미간을 구겼다.
도서관에서 바로 길이 이어지는 데다가 막는 사람도 없는 걸 보면, 들어서면 안 되는 길은 아닌 것 같긴 한데.
‘뭐 하는 사람이지? 왜 굳이 나한테 산책을 하자는 건데?’
몇 가지 의문점 외에 그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있었는데, 바로 도서관의 지박령은 정말이지 말이 많은 남자라는 것이었다.
“이쪽은 207년 전에 만든 정원인데…… 쿨럭!”
“그, 그만 말해도 돼!”
간헐적으로 피를 토하면서도 그는 키네미아에게 걱정 말라며 쉴 새 없이 떠들어 댔다.
“저 동상은 말이야. 542년 전에 성녀 로라가 남긴 비교적 최근의 유물인데, 1년에 한 번 성 로라의 날이 되면 눈을 뜨고 노래를 부르지.”
“……아, 동상이 눈을 뜨고 노래를…….”
키네미아는 자그맣게 중얼거리면서, 무슨 괴담에나 나올 법한 고대 유물이라고 생각했다.
성녀 로라의 동상은 연못 한가운데, 수련 잎처럼 만든 받침대 위에서 기도하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성녀께서 그런 힘을 두고 가셨을 줄은 몰랐네…….”
그러자 남자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성녀가 남긴 힘이 아니야. 고대 유물은 신의 힘이 깃든 거니까. 신의 선택을 받은 물건인 거지.”
“흐음?”
고대 유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까지는 몰랐던 키네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힘의 근원이 같으니, 종종 고대 유물은 다른 고대 유물을 끌어당기기도 해.”
끌어당긴다고? 재차 동상으로 시선을 돌리던 키네미아가 연못을 응시하며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안에서 누군가의 실루엣이 어른거렸다.
음? 키네미아는 손을 뻗었다.
그때 키네미아의 뒤에서 남자가 다시 울컥 피를 쏟아 낸 후에 입을 닦아 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제게 낑낑거리며 머리를 비비는 륜을 쓰다듬었다.
* * *
케이릴의 두 손이 에이얀의 등을 떠밀었다.
에이얀이 10층으로 향하는 게이트 안으로 밀려난 건 한순간이었다.
그가 게이트 너머로 완전히 사라지자, 케이릴은 단검으로 게이트의 핵을 찔러 부쉈다.
퍽!
핵이 깨짐에 따라 게이트는 흐릿해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듯 입구를 닫아 버렸다.
“하하!”
케이릴이 웃음을 흘렸다. 이제 에이얀 크로츠는 10층에서 빠져나올 수 없으리라.
케이릴은 전투가 벌어지고 있던 사막을 돌아보았다. 플로어 마스터가 쓰러져서인지, 어느새 공허한 흑기사들은 무너져 먼지가 되어 있었다.
그는 제게로 향하는 시선에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보였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여타 길드의 참가자들, 그리고 순식간에 에이얀을 10층으로 보내 버린 모습을 멀거니 보고 있게 된 흑야의 시선이 집중된 채였다.
침묵이 감도는 사이, 재빨리 다가와 게이트의 핵을 확인한 로우가 케이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이게 무슨 아둔한 짓이지?”
“현명한 짓이지.”
로우를 경계한 케이릴이 단검을 빙글 돌려서 쥐었다. 로우도 검을 뽑아 쥐었다.
“케이릴 혼. 정말 게이트의 핵을 부순 건가?”
“왜. 보고도 믿기지가 않아?”
케이릴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안됐어. 그 애송이는 이제 빠져나올 방법이 없겠는데?”
로우는 무심코 쉔 티엔과 시선을 마주쳤다. 그러나 쉔 티엔이라고 딱히 다른 방법을 알고 있을 리가. 둘 사이에서 당황한 시선이 오갔다.
“에렉시나!”
그때 케이릴이 큰소리로 길드원들을 불러모았다. 그가 크샨들을 가리키자 에렉시나가 무기를 고쳐 쥐었다.
케이릴의 지시에 기민하게 반응한 로우는 검을 들어 그의 목에 비스듬히 댔다.
크샨들도 다시 무기를 쥐었다. 동시에 쉔 티엔이 담뱃대에 오러를 입혔다.
“전부 해치워!”
몸을 꺾으면서 로우의 검을 피한 케이릴이 외쳤다.
* * *
습윤한 공기가 느껴졌다. 에이얀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습하고 무거운 공기가 폐를 묵직하게 감싸고 나가길 반복했다.
그가 선 곳은 야광석이 박혀 제 앞만 겨우 밝힐 정도로 어두컴컴한 동굴 안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탑 바깥으로 좌표를 잡고 워프 마법을 시도해 보았지만, 역시나 먹히지 않았다.
아마 탑 자체가 고대 유물이기 때문이겠지.
혹여나 다시 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기다려 봤지만, 긴 기다림 끝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게이트가 사라진 걸 보면 핵을 부순 것 같은데.’
에이얀은 자신이 들어왔던 곳을 다시 한번 만져 보다가 주먹을 쥐었다.
핵이 부서졌으니 탑이 리셋되기를 기다려야 하겠지만…….
탑이 다시 리셋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있어야 하지?
주기적으로 토벌을 하는 기간을 생각해 보았을 때, 다음 토벌까지는 빨라도 1년.
그렇게 되면 답은 하나. 탑의 주인을 물리치지 않으면 빠져나갈 가망은 거의 없다는 뜻이었다.
탑의 주인, 광룡 셀테어를…….
“우우-”
때마침 어딘가에서 동굴 안을 웅웅, 울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물 잡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건 아니었지만 평소와는 상황이 다르다.
에이얀은 두 손을 가볍게 쥐었다 펴면서 마력을 움직였다.
10층으로 들어선 이후로 줄곧 마력이 어딘가로 빨려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가 규격을 벗어난 마력의 소유자였기에 망정이지, 보통 이들 같았으면 벌써 마력이 바닥났을 정도로 마력 누출은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에이얀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래서야 내로라하는 영웅들마저 탑의 주인을 처치하지 못했던 건 당연한 일이리라. 오러도, 마법도 모두 마력을 기반으로 하니까. 쉴 새 없이 마력을 빼앗기면서 탑의 주인을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그가 쯧, 혀를 찼다.
여차하면 이곳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그 힘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
‘제어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13살 이후로 꺼내 본 적 없는 힘이 아니던가.
에이얀은 미간을 좁힌 채 손으로 입가를 쓸었다.
선택해야 할 순간이었다.
계약이 걸린 가슴께가 욱신거리는 듯한 환통이 느껴졌다.
“…….”
잠시 생각에 잠겼던 에이얀은 동굴 벽에 손을 올렸다. 그러고는 모든 감각을 예민하게 세운 채 동굴을 울리던 소리가 났던 곳으로 무작정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키네미아에게서 떨어진 채로, 홀로 남은 채로 이성을 붙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그러느니 차라리 움직이는 것이 나으리라.
그때였다.
“……?”
타박타박, 제게로 걸음을 옮기는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셀테어?
에이얀은 마력을 끌어 올렸다. 검은 마력이 안개처럼 차올랐다. 평소보다 옅은 농도였다.
그는 제가 끌어 올린 시답잖은 마력의 양에 한숨을 내뱉었다. 할 수 없지. 미간을 좁힌 에이얀이 제 힘을 움직였다. 주위로 스산한 어둠이 짙게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한데 어둠과 적막이 차오르는 순간, 눈앞에 나타난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
에이얀이 돌처럼 굳은 채 앞을 바라보았다. 분명 여기에서 볼 수 있을 만한 얼굴이 아닌데.
금발, 오밀조밀한 얼굴, 고양이처럼 올라간 눈매, 우왕좌왕하듯 움직이던 새파란 눈동자는 이내 에이얀을 향해 고정됐다.
의문보다 몸이 앞섰다.
어느새 키네미아의 코앞까지 바짝 다가간 에이얀은 음, 목을 울렸다. 드디어 완전히 미친 건가.
“아니면 너무 보고 싶어서 환각을 보는 건가.”
에이얀이 조심스레 손을 뻗어 키네미아의 볼을 쓸었다.
위험을 감지한 탑의 주인이 그를 현혹하려는 환상일 수도 있다.
에이얀은 모로 고개를 기울였다. 손바닥에 닿은 말캉한 살갗의 감촉에 머릿속이 아찔했다.
이 정도로 진짜 같다면 환각이라도 상관없겠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란 걸 알면서도 본능이 이성을 잠식했다.
그때 키네미아가 눈을 좌우로 굴리다 자그맣게 말했다.
“뭘 생각하는지도,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알 것 같은데. 하여튼 환각은 아니야.”
그녀가 에이얀의 손등 위에 제 손을 포갰다. 환각이 아니라는 걸 알리는 것처럼.
따스한 체온이 닿자 눈을 감은 에이얀이 키네미아의 손을 끌어 얼굴을 묻었다. 그는 냄새를 맡듯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볼을 비볐다.
읏. 키네미아가 볼을 붉힌 채 물러서려는데 에이얀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모르겠어.”
“응?”
“진짜인지 더 시험해 봐야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