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13)
먼치킨 길들이기 113화
* * *
광룡 셀테어.
과거에는 신적인 존재였다고 한다. 어둠의 힘으로 세계를 위협하기 전까지는.
그러다 그는 오래전 제국을 연 용사에 의해 제 힘과 눈과 영혼을 잃고, 미쳐서 잠적하게 된다. 용사가 사라진 후에야 셀테어가 수련의 탑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비화는 유명했다.
“쉿.”
에이얀이 검지를 입술에 대고 동굴 안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우-”
키네미아는 에이얀의 손에 이끌려 동굴 벽에 등을 기댄 채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시야를 고정했다.
어둠 속에서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실루엣이 점점 명확해졌다.
소리를 낸 것은 눈가리개를 한 도마뱀이었다.
성인 남성 크기에 사람처럼 이족보행을 하는 도마뱀은 코를 킁킁대기도 하고, 우우- 소리를 내기도 하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저게 셀테어의 분신인가?’
시련의 탑 10층.
셀테어의 공간은 일종의 ‘미로’였다. 눈을 잃은 셀테어는 제 분신을 미로 속에 풀어 놓고, 그들이 적을 발견해 위치를 알리면 곧장 이동해 온다.
분신은 벽에 바짝 붙은 둘 쪽으로 고개를 한 번 돌렸다가 별다른 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이내 지나쳐 갔다.
키네미아는 분신이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하고 조용히 물었다.
“여기, 셀테어의 미로 맞지?”
“맞아.”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으로, 10층이 미로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과 미로의 중심에 셀테어의 심장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음알음 알려져 있었다.
다만 미로는 마력을 흡수해서 유지되므로, 마법사인 에이얀과는 상극인 장소이기도 했다.
“마력은 어느 정도로 쓸 수 있어? 워프는 가능해?”
“시야가 닿는 곳까지.”
역시 힘들구나. 키네미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안 그래도 힘든 상황이건만, 셀테어는 심장을 부수지 않는 한 죽지 않는다.
‘그래서 셀테어는 심장을 떼어 놓고 다닌다지.’
때문에 10층 공략 방법은 이렇다.
셀테어에게 들키지 않고 미로의 중앙으로 향할 것.
그리고 미로의 중앙에 숨겨진 셀테어의 심장을 부술 것.
사실 그 분신들을 모두 피해 미로의 중앙으로 향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미션이나 다름없었다.
마력이 빨려 나간 이들이 제 앞에 나타난 셀테어에게 대항하는 것조차 무리였고.
지금까지 10층을 공략할 수 없었던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이 맞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어.’
키네미아가 휙 눈을 돌려 에이얀을 쏘아보았다.
“……?”
의아해진 에이얀이 고개를 모로 기울이자 그녀가 운을 떼기 시작했다.
“있잖아.”
“응.”
어떻게 설명할지 주저하던 키네미아가 소곤소곤 이야기하듯 말을 이었다.
“나는 좀 특별해.”
내뱉고 나니 왠지 부끄러운데. 빠르게 부가 설명을 하려는데 에이얀이 생글생글 웃으며 대꾸했다.
“응, 우리 미아는 나한테 제일 특별한 사람이야.”
뭐?! 키네미아가 볼을 붉히며 소리를 잔뜩 죽인 채 물었다.
“이, 이런 상황에서 그럴래?!”
“이런 상황이니까 그런 건데.”
에이얀이 뻔뻔하게 미소 지었다.
“그게 아니라, 나한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거야.”
“응.”
“응이라니…….”
안 믿기나? 그럴 법도 하지만…….
“그때 결계를 부쉈잖아. 산에서.”
아. 키네미아가 입을 벌렸다.
에이얀도 내 힘을 직접 눈으로 봤었지……. 그 이후로 한 마디도 꺼내지 않기에 깜빡 잊고 있었다.
“왜, 왜,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안 물어봤어?”
누군가에게 알고 싶은 게 생기면 당장 고문이라도 할 마법사가 아니던가. 답지 않게 의문을 속에만 품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의문스러운 일이었다.
그러자 에이얀은 그거야 당연하지 않냐는 듯 답했다.
“그야 난 네가 뭘 가졌든,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으니까.”
에이얀이 멍하니 눈을 마주친 키네미아를 보며 시무룩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그래서 싫어?”
“아니…….”
키네미아가 고개를 도리도리 젓자 그가 미소를 보였다.
“그럼 좋아졌어?”
또 그런다. 키네미아는 와락 미간을 구겼다.
더 이상 분위기가 이상해지기 전에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한 그녀가 후다닥 몸을 떨어트렸다.
“어쨌든 이 미로, 마력으로 이루어진 거지?”
“응. 이게 내 마력도 흡수하는 중이야.”
에이얀은 평온하게 대꾸하면서도 제법 약이 오른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이걸 당장 부수고 싶다는 듯 벽을 두어 번 두드렸다.
흐음. 키네미아가 동굴 벽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어느 순간 우지끈, 벽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키네미아는 불끈 주먹을 쥐었다.
‘하! 그럴 줄 알았지!’
굳이 미로를 돌 필요가 있나. 미로의 중심까지 깨고 가면 되는걸!
나는 마력 파쇄 능력이 있는 몸이라 이거야.
에이얀이 놀란 눈으로 응시해 오자 키네미아는 내심 뿌듯한 얼굴을 감추며 말했다.
“중심으로 가자. 여기서 나가야지.”
* * *
“마탑의 지엄한 군주를 뵙습니다.”
관리자 프로스트와 기사단장이 울프만에게 예를 표했다.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탑에 온 울프만은 얼어붙을 듯한 눈으로 그들을 응시하다가, 문 안으로 들어섰다.
프로스트와 기사단장이 그 뒤를 따랐다.
마침 다시 문밖으로 나오려던 로우가 울프만의 일행과 마주쳤다.
로우가 예를 갖춰 인사하자 울프만은 고개를 끄덕인 후에 말했다.
“게이트가 열린 곳은 이쪽인가?”
“그렇습니다.”
“좋네. 다들 뒤쪽으로 자리를 비켜 주게. 이 일대를 복원해야겠으니.”
복원하겠다는 말에 프로스트와 기사단장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복원한다면 게이트의 핵도 다시 나타나고, 10층으로도 들어갈 수 있으리라.
사람들이 뒤로 빠지니 울프만의 거대한 마력이 일대를 뒤덮었다.
곧 모래 아래에서 거대한 갑옷이 몸을 일으켰다. 공허한 흑기사들이 재차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오!”
프로스트가 감탄성을 내뱉었고, 모두가 한결 마음을 놓는 사이였다.
솨아아-
되살아나나 싶던 공허한 흑기사들이 다시 모래로 스러졌다.
그 모습에 울프만은 혀를 찼다.
‘고대 유물 안이라서인지 마법 저항이 심하군.’
그나마 복원 마법이 아예 먹히지 않는 건 아니라 다행인 상황이었다. 그랬다면 울프만마저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어야 했을 테니까.
다시금 마력을 끌어 올린 울프만이 뒤쪽으로 손짓했다.
“벤자민.”
“예.”
보좌 벤자민이 울프만에게 힘을 보탰다.
울프만을 뒤따랐던 수행원들도 함께 힘을 모아 9층을 복원하기 시작했다.
* * *
키네미아와 에이얀은 짧은 워프를 반복하며 벽을 부수고 미로의 중심으로 움직였다.
파스스-
키네미아가 벽을 무너트리자 돌덩이들이 카펫 위로 툭툭 떨어져 내렸다.
처음에는 그저 동굴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벽을 부수며 중앙으로 향할수록 미로는 점점 성의 복도 같은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검을 들고 선 갑옷이나 넝쿨이 새겨진 기둥을 넘어 키네미아가 벽을 부수니, 에이얀이 벽 너머를 확인하고 움직였다.
몇 번 들킬 뻔한 적은 있지만, 아직까지는 수월하게 움직인 편이었다.
‘다 와 가고 있는 건가.’
이를 증명하는 것처럼 내부는 점차 견고해졌고.
‘분신이 점점 많아지네…….’
바깥쪽에서는 한두 마리 정도만 보였던 분신들이 안으로 향할수록 수십 마리로 불어나 있었다.
‘안 좋은데.’
분신이 많아진다는 건 그만큼 불가피하게 셀테어를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었다.
상황이 점점 나빠지자 에이얀은 줄곧 무언가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마력 때문인가.’
키네미아는 멈춰 선 에이얀의 손을 끌고 반대편 벽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킁.
“……?!”
귓가에서 킁, 냄새를 맡는 소리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어깨를 뻣뻣하게 굳힌 채로 시선을 돌리니, 눈을 가린 도마뱀이 얼굴 바로 옆에서 머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
목 위로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 순간 시야가 훅 바뀌면서 몸이 멀찍이 이동했다.
하지만 워프된 것은 그녀 혼자였다.
이에 당황하던 것도 잠시, 머릿속으로 에이얀의 전음이 들려왔다.
– 미아,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낌새를 볼 때, 아마 이 벽을 넘어가면 바로 미로의 중심일 거야.
벽에 손을 올린 키네미아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 저 안에는 분신이 더 많을 거야.
“…….”
그렇겠지.
그런데 왜 나만 여기에 두고 그런 소리를? 키네미아가 고개를 돌린 그때였다.
멀찍이서 에이얀이 도마뱀의 머리를 벽에 처박았다.
쿵-!
“갸아아아아아악!”
분신이 괴성을 지르며 셀테어를 목 놓아 불렀다.
키네미아와 눈이 마주친 에이얀이 미소를 지었다.
– 움직여야지, 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