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14)
먼치킨 길들이기 114화
벽을 짚은 키네미아가 힘을 불어넣자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를 확인한 그녀가 에이얀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같이 가.”
– 미아.
“내 손 잡아. 아니면 나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일 거야.”
에이얀은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물었다.
“기에에에에엑!”
분신이 재차 괴성을 내질렀다.
분신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던 에이얀이 마법으로 놈의 숨통을 끊었다. 분신이 먼지가 되어 사라지자 에이얀은 다시 전음을 흘려보냈다.
– 미아, 셀테어가 올 거야.
그가 경고하듯 말했지만 키네미아는 너와 함께가 아니면 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마력을 잃은 에이얀이 셀테어를 잠시라도 막을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자신이 심장을 찾아 부술 때까지 살아 있을 확률은?
‘절대 안 돼.’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문제였다.
키네미아는 언제나 떠난 이들 뒤에 남아 있었다.
이제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도, 감수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다른 반박은 받지 않겠다는 듯 키네미아가 버티고 있자 에이얀이 차갑게 물었다.
– 함께 죽고 싶어?
“차라리 그게 나아.”
키네미아의 목소리에서는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심이 엿보였다.
내가 널 그렇게 놔둘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허탈한 웃음을 내뱉은 에이얀이 달래듯 말했다.
– 약속할게.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 없을 거야.”
“그러면?”
– 방법이 있어.
“그게 무슨 뜻-”
– 쉿.
에이얀이 검지를 입에 댔다.
곧 스산한 한기가 밀려들었다.
키네미아는 겁에 질린 시선을 돌렸다. 한 인영이 비틀거리면서 에이얀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탁, 쓰윽-
무언가를 끄는 듯한 소리가 선뜩했다.
탁, 쓰윽-
셀테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팔과 다리에는 비늘이 돋아나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용의 꼬리가 쓰윽, 쓰윽, 바닥을 쓸었다.
눈가리개를 한 셀테어가 좌우로 고개를 돌렸다.
킁.
미로로 숨어든 적을 찾는지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놈이 에이얀에게 바짝 다가가 냄새를 맡았다.
킁.
그럼에도 에이얀은 키네미아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초조한 표정의 키네미아를 바라보며 에이얀이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 믿어 줘, 미아. 응?
여느 때처럼 칭얼거리는 투에 키네미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방법이 있는 거야? 그래서 날 혼자 보내려는 거야?
그녀가 망설이는 사이였다.
킁, 킁.
에이얀의 냄새를 맡던 셀테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놈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내, 힘. 내, 것.”
쭈뼛 소름이 돋았다.
‘힘?’
키네미아가 의아해할 때였다.
“셀테어의 것이었나.”
무언가 알아차렸다는 듯 에이얀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가 키네미아와 눈을 마주쳤다.
– 미아, 어두워질 거야.
“……?”
그러곤 제 바람을 속삭이듯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 무서워하지 마.
순간 불이 꺼진 것처럼 눈앞이 캄캄해졌다.
홀로 광활한 공간에 떨어진 것처럼 선뜩한 적막도 함께였다.
‘뭐지…….’
눈을 크게 뜬 키네미아가 사방을 살폈다. 시야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에이얀이 한 건가?’
그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에이얀의 전음이 들려왔다.
– 기다릴게.
이에 출발 신호라도 들은 것처럼 키네미아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무작정 내달리기 시작했다.
* * *
“해냈다!”
프로스트가 환호성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공허한 흑기사들이 완연히 몸을 일으켜 검을 뽑았고, 멀리서는 주술사도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결국 저항을 뚫고 9층을 복구해 낸 것이다.
프로스트는 마탑주를 선망의 시선으로 돌아보았다.
“후-”
울프만은 가볍게 숨을 내쉬며 식은땀을 닦아 내고 있었다.
“수고했네. 자네들은 나가서 기다리게.”
기진맥진한 마법사들은 울프만의 명에 따라 로비에서 대기하기로 하고 문을 나섰다.
“10층으로 가는 문은 저희가 열겠습니다.”
울프만에게 말한 로우가 검을 뽑았다.
“지쳤을 텐데 괜찮겠는가?”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다소 힘들긴 했지만 다시 10층의 게이트를 여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이내 쉔 티엔, 그리고 크샨들이 마물을 잡기 위해 쇄도했다.
한데 그 순간이었다. 갑작스레 사위가 어두워지자 모든 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된 건가요?”
“갑자기 왜 이렇게 어두워졌지?”
“탑주님, 이건…….”
벤자민이 울프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마력이 아닌 짙은 어둠. 그날과 같은 현상이었다.
“…….”
별다른 대꾸 없이 울프만은 다시 마력을 끌어 올렸다.
“벤자민, 한시라도 빨리 올라가야겠네.”
“알겠습니다.”
울프만과 벤자민이 9층 공략에 동참했다.
프로스트는 광범위 마법이 쏘아지기 시작하는 것을 얼이 빠진 표정으로 응시했다.
* * *
“헉, 허억!”
가쁜 숨을 내쉬자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기를 반복했다.
미로의 중심은 적막과 함께 어둠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안 보여.’
그 순간 두리번거리던 키네미아가 무릎에 걸린 무언가에 넘어졌다.
“……!”
조각상이나 장식품인 모양이었다. 눈물이 고일 정도로 시큰한 아픔이 밀려들었다. 키네미아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어서 찾아야 되는데.’
눈을 감으나 뜨나 같은 어둠이었다. 어둠. 방금까지 셀테어를 걱정하던 것과는 다른 종류의 불안감에 가슴이 쿵쿵 뛰었다.
문득 일전의 기억이 침습하듯 몰려왔다.
라이언이라는 마법사에게 끌려갔던 날.
그저 마법이라고 생각했지만, 분명 그때 느꼈던 소름 끼치는 어둠의 감각.
그 이후 마탑주에게 이끌려 곁에서 사라졌던 에이얀.
내 힘이라고 말하던 셀테어.
머릿속에서 흩어졌던 퍼즐 조각들이 하나둘 맞춰졌다.
머리는 명쾌해졌으나 감정은 복잡한 실처럼 엉켜들었다.
이럴 때가 아니야. 정신 차리자. 키네미아는 양 뺨을 내리쳐서 불안과 떨림을 떨쳐 내고 몸을 돌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 공간에서, 어떻게든 심장을 찾아야 한다.
그때였다.
어딘가 불유쾌한 느낌이 드는 것과 동시에 귓가로 서늘한 기운이 다가왔다.
킁.
“……?!”
소스라치게 놀란 키네미아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분신? 분신이 왜?’
본체는 이미 에이얀에게 갔는데…….
그러다 남겨진 분신의 의미를 돌연 깨달은 키네미아가 주먹을 쥐었다.
‘심장.’
셀테어는 제 심장을 지키기 위해 분신을 남겨 뒀을 것이다.
‘여기인가.’
키네미아는 조심스럽게 발을 움직였다. 카펫을 밟는 발소리가 들리자 분신이 휙 몸을 돌려 반응하는 듯했다.
킁.
귓가에서 다시 한번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마른침을 삼킨 그녀는 숨소리를 잔뜩 죽이고 손을 휘저었다.
손바닥에 닿은 것은 유리의 매끈한 표면이었다.
키네미아는 표면을 더듬더듬 만지다가 살포시 유리 위에 귀를 댔다.
두근, 두근, 두근.
안에서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찾았다.’
남은 문제는 한 가지.
‘유리를 깨야 하나…….’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분신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한다.
‘잘될지는 모르겠지만.’
후- 숨을 내뱉은 키네미아가 제 머리에서 보석으로 된 머리핀을 빼냈다.
그러곤 있는 힘껏 던지자 머리핀이 벽에 맞고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툭, 데구르르르-
킁! 킁! 킁!
스슥, 스슥, 스슥.
사방에서 킁킁거리는 분신들이 머리핀이 떨어진 곳으로 비늘을 쓸며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마리가 아니었나!’
온갖 곳에서 들려오는 콧소리와 비늘 소리에 바짝 얼어 뒷걸음질 치는데, 등에 유리가 걸려 움직임을 막았다.
“……!”
키네미아는 곧장 몸으로 유리를 밀었다.
기우뚱 기울어진 유리 진열대가 바닥으로 쓰러지면서 시끄러운 파열음을 냈다.
콰장창-!
“갸아아아아악!”
“갸아아아!”
이에 심장이 위험해진 것을 알아차린 분신들이 괴성을 질렀다.
스슥, 스슥, 스슥!
어둠 속에서 비늘 소리가 그들이 키네미아에게 다가옴을 알리고 있었다.
“……!”
온몸의 솜털이 바짝 일어났다. 입을 꾹 다문 키네미아는 바닥을 더듬거려 깨진 유리 조각을 집어 들었다.
‘심장은?’
스슥, 스슥!
그사이에도 분신의 비늘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힉!’
키네미아는 재빠르게 움직였다. 곧 손에 잡히는 묵직하고 따스한 무언가를 찾아냈다.
유리 조각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아픔을 무시한 채로 그녀가 온 힘을 다해 아래로 손을 내리꽂았다.
“기에에에에엑-!”
때마침 분신이 손을 뻗어 키네미아의 손목을 잡아챘다.
“윽!”
분신의 힘에 의해 키네미아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하지만 그녀는 곧장 몸을 움직여 반대쪽 손으로 바닥을 더듬거렸다. 자그마한 유리 조각이 겨우 손끝에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