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17)
먼치킨 길들이기 117화
* * *
오늘도 대공녀에게 제발 살려 달라는 메시지를 적어 사역마를 보낸 벤자민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쥬디스를 이용해 볼까?’
그녀는 마력 기계 사업으로 리온과 얽혀 있어, 마탑에서 키네미아와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니, 그건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 두자.’
쥬디스를 이용했다가 외려 더 대공녀의 화를 부를 수 있으니까.
벤자민이 그렇게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때쯤이었다. 초대장을 든 마법사가 문을 두드린 건.
“제국에서 초대장이?”
“예, 연회 초대장이 왔습니다만…….”
길드전은 상상 이상의 결과를 가져왔다. 시련의 탑을 완전 공략하고 해방시킨 탓에, 황태후가 길드전 수상식을 겸해서 성대한 연회를 주최한다는 이야기였다.
“돌려보낼까요?”
마법사가 조심스레 물었다.
울프만이 제국이든 어디든 여느 국가의 초대에 응한 적이 있던가. 발걸음을 무겁게 떼기로 유명한 그였으니 이번에도 같은 수순일 것이라 예상한 것이다.
그러나 벤자민은 흥분한 모습으로 초대장을 낚아챘다.
마법사가 열띤 그의 모습에 놀라 뒤로 물러선 사이, 벤자민이 마탑주의 방으로 곧장 이동했다.
“탑주님! 이것 좀 보십시오!”
이마 위에 젖은 수건을 얹고 드러누운 마탑주는 앓는 소리를 내며 벤자민에게서 몸을 돌렸다. 하지만 벤자민은 굴하지 않고 그에게 다가갔다.
“제국에서 며칠 동안 성대한 연회를 열 생각인가 봅니다.”
그러자 울프만이 조금 흥미가 생겼는지 되물었다.
“……연회?”
“탑의 주인이 죽었지 않습니까.”
“그랬지.”
“그래서 제국 안팎으로 아주 난리랍니다.”
“그렇겠지.”
관심 없다는 듯한 투에 벤자민이 다시 힘주어 말했다.
“그 탑의 주인을 죽인 게 누구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영웅이 된 당사자는 꼭 참여할 수밖에 없겠지요.”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이 키네미아고, 연회에 참여하게 되면 키네미아가 아무리 싫다고 해도 마주칠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울프만이 벌떡 일어났다.
“키네미아가 연회에 오겠군!”
그럴 줄 알았지. 벤자민이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애써 내리는 사이였다.
울프만이 부랴부랴 옷을 챙겨입고 어디론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탑주님? 어디 가십니까? 연회는 아직 멀었는데…….”
혹시나 들뜬 마음에 날짜를 착각했을까 봐 조심스레 붙잡자 울프만이 퍽 불쾌한 듯 근엄한 얼굴을 했다.
“나도 숫자는 읽을 수 있다네, 벤자민.”
과연 초대장을 받기 전에도 그 정도 정신이 있었을까? 라는 말이 혀끝까지 치밀어올랐으나, 벤자민은 충실한 수족답게 사죄하기로 했다.
“송구합니다, 탑주님.”
울프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에이얀에게 가 봐야겠네. 이거라도 가져가면 면목이 설 테지.”
“……?”
벤자민이 의문을 그득 채웠지만, 울프만은 대꾸 없이 바로 에이얀의 방으로 이동할 뿐이었다.
* * *
방 안은 검고 짙은 마력으로 뒤덮여 있었다.
울프만은 손을 내저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내 그가 온갖 종이와 책, 동물의 피 등으로 복잡하게 어지러워진 방 사이를 가로질러 걸어가면서 마른침을 삼켰다.
온갖 수식이 적힌 종이가 바닥에 흩뿌려져 있었다. 한 종이를 들어 수식을 읽어 낸 울프만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놈이 설마…….’
“에이얀!”
울프만은 그를 크게 부르며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에이얀은 피로 그린 커다란 술식 위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기묘하게 공간이 뒤틀려 있었는데, 아공간과는 다른 형상이었다. 구현한 마법은 깜빡깜빡 점멸하다가 팟, 사라졌다.
울프만이 엄하게 물었다.
“에이얀, 대체 뭘 하려던 게냐.”
그제야 에이얀이 창백한 얼굴을 돌렸다.
“시간을 돌려 볼까 하는데요.”
“너……!”
울프만은 한달음에 다가가 벼락처럼 외쳤다.
“주변에서 전부 미친놈, 미친놈 하니 정말 미쳤나 보구나! 감히 인간의 시간을 돌릴 생각을 해?”
시간계 마법은 제한이 크다.
특히나 인간의 시간을 되돌린다는 건 이치를 거스르는 일이었다.
보통의 마법사라면 시도조차 불가능한 일이지만, 에이얀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않던가.
눈앞의 제자는 보통의 마법사가 아니었다. 울프만이 에이얀을 거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보통의 마법사가 아니라서.
울프만이 입을 다물었다.
에이얀이 이렇게 된 데에는 제 잘못도 있었다. 그가 숨기고 피하게만 만드는 것에 일조하지 않았던가.
그동안 아이처럼 침대에 파고들었던 건, 키네미아를 상심하게 했다는 자책감과 에이얀에게 느낀 죄책감 때문이었다.
다룰 수 없는 그 힘처럼, 그는 에이얀을 다룰 수 없는 아이처럼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솔직히 마주하게 하는 대신에 숨기고 피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결국에는 이렇게 다시 돌아오게 될 텐데.
울프만은 에이얀이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이해했다.
그 자신도 지금 시간을 돌리고 싶었으니까.
울프만이 마법으로 의자를 끌어오고 에이얀을 밀쳤다. 에이얀이 쓰러지듯 의자에 앉자 그가 물었다.
“그래. 시간을 돌렸다 치자. 되돌아가서 그 애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
에이얀이 생각에 잠겼다.
아직도 답을 알 수가 없다.
대체 뭐라고 말하면 잡을 수 있는 걸까?
모든 걸 위협할 수 있는 특별한 힘이든, 자신을 무서워하던 아버지를 죽인 이야기든. 어떤 이야기를 꺼내도 오답일 것만 같은데.
눈을 내리깐 에이얀은 손으로 입을 쓸었다.
“……계속 시간을 돌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알 수 있겠죠.”
울프만이 미간을 일그러트렸다. 이내 그가 저릿한 마음을 안고 읊조리듯 솔직하게 제 마음을 전했다.
“네게 미안하다.”
에이얀이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뭘 말씀이십니까.”
“줄곧 숨기고 피하라 했던 것. 그걸 최선이라 여기게 했던 내 잘못이다.”
에이얀은 무표정하게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혀를 찬 울프만이 나직이 말했다.
“숨기고 피하는 걸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는데 말이다.”
그러자 에이얀이 조용히 웃음을 흘렸다.
“스승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어떤 것들은 알지 못하는 것이 나을 때도 있습니다.”
후, 한숨을 내뱉은 울프만은 피아노를 치듯 팔걸이를 두드렸다.
“그 애는, 키네미아는 네 아버지와 달라. 너도 알고 있잖니.”
“…….”
울프만이 에이얀에게 초대장을 던졌다.
“나오거라. 같이 키네미아 앞에서 무릎 꿇고 빌어 보면 되겠지.”
마탑주가 하찮은 계획을 쓸데없이 멋지게 말하며 돌아섰다. 그의 망토가 장엄하게 펄럭이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 * *
마탑주의 연회 참석은 은밀해야 했다. 마탑에서 마법사들이 온다는 소문이 돌면 대공녀가 참석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벤자민은 연회가 시작할 때까지, 마법사들이 연회에 참석한다는 사실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이내 연회 날 당일이 되자 그는 첩보원처럼 은밀히 연회장 앞에 섰다.
황태후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화려한 연회장 안에선 초대받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다. 대부분이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물론 키네미아였다.
벤자민은 그 소란에 괜스레 자신이 뿌듯해하면서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만에 하나 대공녀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파국이다.
‘그럼 다 같이 거처로 몰려가 머리를 조아려 봐야 하나.’
하지만 벤자민은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상상치 못했다. 키네미아가 연회에 나타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생길 줄은.
“대공녀?”
누군가가 문이 열리는 사이로 발견한 금발의 소녀를 보며 운을 떼었다.
주인공이 등장하자 연회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키네미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벤자민이 무심코 손에 마력을 흘려 잔을 깨트렸다.
치장한 대공녀는 눈을 홀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를 방증하듯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벤자민은 외려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끼며 침음성을 흘렸다.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웬 낯선 남자가 키네미아를 에스코트하고 있었으니까.
‘어째서?’
벤자민은 혼란스러운 정신을 가다듬었다.
저 남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왜 대공녀의 파트너로 연회에 등장했는가.
둘은 무척 가까운 사이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남자는 대공녀를 ‘미아.’라고 다정하게 불렀고, 대공녀는 이에 응하듯 예쁘게 웃음까지 보였다.
‘미아?!’
애칭까지 허락하다니.
벤자민은 직감했다. 이건 정말 파국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