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21)
먼치킨 길들이기 121화
에이얀임을 뒤늦게 알아차린 키네미아가 대꾸했다.
“맞아.”
그리 대답하며 에이얀의 손을 맞잡는 순간이었다. 삽시간에 풍경이 바뀌었다.
“음?”
쏴아아아-
시원한 폭포수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공중 섬이었다.
일전에 모의 공성전이 끝나고 에이얀과 함께 거닐었던 정원임을 확인한 키네미아가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다.
“마탑?”
말없이 사라져도 괜찮을까?
하지만 이내 걱정을 털어 버린 키네미아는 털썩 그네에 앉았다.
그네 줄을 잡고 내려다보던 에이얀은 변명처럼 덧붙였다.
“연회장에서는 조용하게 이야기하기 힘들 것 같아서.”
키네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한 곳이긴 했다. 마탑에서는 에이얀을 보면 다들 피하니까. 지금도 에이얀을 발견한 마법사들이 우수수 흩어지는 중이었다.
“다행이야.”
“응?”
“대공비가 아니라 정부여도 괜찮다고 할 뻔했는데. 그 전에 숙부님인 걸 알게 돼서.”
정, 뭐?! 에이얀이 돌연 꺼낸 미친 소리에 키네미아가 입을 벌렸다.
“……이, 이미 말했잖아!”
아, 에이얀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러게.”
그러게라니. 키네미아가 괜한 부끄러움에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곧 훅 잦아든 목소리로 말했다.
“죽어 버리면 정부 노릇도 못 해.”
에이얀이 난처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말에 뼈가 있어서 아프네.”
“아프라고 한 말이었어.”
“아야.”
그가 가슴에 손을 댄 채 시무룩한 표정을 꾸며냈다.
그 가증스러운 모습에 키네미아가 눈을 흘겼다.
“계약은?”
“여기에 있어.”
에이얀이 눈을 휘며 웃었다.
“보여 줄까?”
“……다음에.”
눈살을 찌푸린 그녀가 못마땅하게 대꾸했다.
“그건 그렇고, 계약은 어떤 상황에 발동하는 거야?”
음, 목을 울린 에이얀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내가 날 제어할 수 없게 될 때.”
힘을 과도하게 쓴다거나, 정신이 나갔을 때나…….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덧붙인 그가 검지로 제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에이얀은 입을 꾹 다문 키네미아를 올려다본 채로 그녀를 눈에 담듯 길게 눈을 한 번 깜빡였다.
“미아.”
“응?”
“모르간 왕국이 어떻게 됐는지 알고 있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잖아.”
어느 순간 갑자기 왕국이 허허벌판이 됐다는 이야기는 아주 유명했으니까.
“그때 나도 거기에 있었어.”
“……?”
키네미아가 한 박자 늦게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살아남은 사람은 나 혼자야.”
“…….”
“당연하겠지. 내가 한 짓이니까.”
“……뭐?”
에이얀이 자조하듯 말했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거든. 내가.”
쿵,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 * *
그 이야기를 시발점으로, 에이얀은 차근차근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풀어 나갔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나날들에 대해서. 그가 얼마나 자신을 두려워했었는지. 버려졌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그 절망감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묻어 놨던 이야기들을,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담담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한 에이얀은 허탈하다는 듯 바람 빠지는 웃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쉽게 털어놓을 수 있었던 얘기였던가.
아버지에게 버려졌던 과거쯤 별것 아니며, 때문에 아무것도 날 상처 입힐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와 연관된 정말 중요한 이야기들은 항상 깊은 곳에 꽁꽁 숨겨 놓았었다.
그러나 막상 그것들을 밖으로 풀어 놓으니, 아주 어릴 적, 두려워서 침대 밑에 숨겨 놓았던 괴물이 그려진 그림책을 꺼내 보는 느낌이었다.
케케묵은 그림책에 그려진 괴물은 단지 우스꽝스러운 그림으로 남아 있었다. 지금까지 은연중에 피해 왔던 게 우스운 일이었던 것처럼.
사실 오래된 그림책의 괴물보다 무서운 건-
“내 얘기를 전부 털어놓으면 네가 날 어떻게 볼지 겁이 났어.”
사실 지금도 그래.
에이얀은 키네미아의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속삭이듯 말했다. 마지막 참회라도 하는 것처럼.
“네가 날 무서워할까 봐.”
다시 버려질까 봐.
“내 삶에 소중한 건 너밖에 없어서.”
에이얀이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그래서였어.”
그 말을 끝으로 폭포수 소리가 귀를 세차게 두드렸다.
재판정에 서서 판결을 기다리는 것처럼 숨이 죄어 왔다. 줄곧 어떤 말도 떨어지지 않아서, 에이얀이 고개를 들었다.
돌연 멈칫한 그가 키네미아의 얼굴에 손을 뻗었다.
하얀 볼 위로 툭 눈물방울이 떨어진 건 거의 동시였다.
눈물을 떨어트린 키네미아가 눈을 깜빡거렸다. 후드득, 눈물이 쏟아지자 에이얀은 차마 뭘 하지도 못하고 굳어 버렸다.
손등으로 거세게 눈을 문지른 키네미아가 에이얀을 끌어안았다.
“네가 불안해할 줄 몰랐어.”
키네미아는 에이얀을 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에이얀이 키네미아를 마주 끌어안으며 등을 쓸어내렸다. 그가 마른 숨을 깊게 내쉬었다.
“불안해하지 마. 넌 내 사람이라고 했잖아.”
“응.”
“이제 숨기려고 하지도 마.”
“응.”
“다시는 이런 계약 같은 바보 같은 짓도 하지 말고.”
“응.”
에이얀은 답지 않게 멍청히 대답만 내뱉으며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이제야 겨우 에이얀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내내 불안해하면서 내가 손을 놓지 않기만을 바라며 극단적인 선택을 마다하지 않는 열아홉 살짜리가.
키네미아가 코끝을 찡그리며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셀테어를 죽인 날, 나도 너랑 같은 생각을 했어.”
“응?”
“나는 네가 특별해도 상관없어.”
에이얀이 그 말을 곱씹듯 눈을 감았다. 그가 내쉰 뜨거운 숨이 손바닥을 간지럽혔다.
이내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키네미아는 숨을 가다듬었다.
연회장에서 춤을 추면서 숙부가 했던 말을 줄곧 곱씹었다.
네게 실망하고 화가 나면서도, 떠나려는 내 손을 놓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네 과거가 두렵고 끔찍하기보다, 네가 다친 마음이 더 걱정되고 괴롭지 않았으면 했다.
이런 게 사랑이겠지. 문득 시간을 돌아간다 해도 다시 널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네가 뭘 했든, 어떤 사람이든. 네가 좋아.”
“응.”
반사적으로 대답하던 에이얀이 돌연 고개를 들었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그가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미아, 그렇게 말하면 내가 오해하잖아.”
나쁘진 않지만. 에이얀이 어설피 웃었다.
그런 에이얀에게 키네미아가 고개를 저었다.
“오해 아니야.”
그러자 미간을 찌푸린 에이얀이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럼 내가 생각하는 그 뜻이 맞아?”
마주한 새카만 동공에 열이 들끓었다. 절박하게 대답을 갈구하는 듯한 표정에서 질식할 정도의 감정이 밀려들었다.
순간 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확언을 바라는 그를 마주하던 키네미아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망토에 얼굴을 반쯤 파묻었다. 그러곤 애써 변명을 덧붙였다.
“그게, 사실은 셀테어가 죽은 날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에이얀이 키네미아의 얼굴을 감싸 밖으로 끄집어냈다.
“미아, 피하지 말고. 나 좀 봐 줘. 응?”
사방으로 눈을 굴리던 키네미아가 정면을 마주했다.
딱딱하게 굳은 키네미아를 바라보며 에이얀은 목 안에서 긁히는 듯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정말 나랑 같은 뜻이야?”
“응?”
키네미아의 턱을 들어 올린 에이얀의 얼굴이 훅 앞으로 다가왔다. 삽시간에 촉, 입술이 맞닿았다가 떨어졌다.
“이렇게 닿아도 괜찮다는 뜻이야?”
갑작스러운 접촉에 키네미아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나는 널 친구로 좋아하는 게 아니야, 미아. 알고 있지?”
에이얀이 손에 입술을 묻었다. 깊게 숨을 들이켜던 그가 눈을 마주쳐 왔다.
“그래도 나와 같은 뜻이야?”
에이얀은 키네미아의 입이 벙긋거리다 닫히는 걸 유심히 응시했다.
“그러니까…….”
“응.”
“…….”
“그러니까 다음에는?”
에이얀은 뜸을 들이는 그 짧은 시간조차 무척 괴로운 것처럼 눈을 감고 이마를 맞댔다.
누구의 심장 소리인지 모를 것이 귓가를 가득 메웠다. 차마 그래도 괜찮다고 제 입으로 말할 수가 없어서 키네미아는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그러고는 일어서기 위해 에이얀을 밀어냈다.
“이, 이제 돌아갈 시간 다 됐어. 갑작스럽게 이동해서 인사도 못 하고 왔으니까.”
“미안.”
이제 참을 수가 없어서. 에이얀이 키네미아의 머리를 감쌌다. 모로 고개를 기울인 얼굴이 다가오고, 입술이 맞닿았다.
“……!”
키네미아가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에이얀이 그녀의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입술 앞에서 그가 쉰 듯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미아, 긴장돼?”
“어? 어?”
입을 벌린 그 순간, 다시 입술이 덮쳐 왔다. 그가 목 안으로 웃으며 녹진하게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키네미아의 손이 에이얀의 망토를 그러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