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22)
먼치킨 길들이기 122화
* * *
줄리안 에버렛은 제 앞에 선 검은 머리카락의 남자를 유심히 살폈다.
실제로 보니 제 아비와 더 닮지 않았던가.
‘역시 혈육은 혈육이라는 건가.’
그는 턱을 괴었다.
대공녀가 연회의 주인공이었으니 당연히 참여하리라 예상했고, 이 구울을 범인으로 내세워서 돌아가던 길에 강도에 당한 것으로 꾸미려 했다.
하나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마탑주와 리카샤가 직접 연회에 참석할 줄이야.
‘까다롭네.’
아무래도 대공녀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 같았다.
22장 실마리
‘아, 오늘도 못 잤다.’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창문을 바라보던 키네미아는 다시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불에 머리를 콕 박고서 베개로 머리를 감쌌다.
‘몇 시지.’
그녀는 눈만 들어 시계를 확인한 후에 벌러덩 굴러서 대자로 누웠다.
‘……연회에는 못 가겠다.’
대공녀 체면이 있으니 참석하려면 몇 시간 동안 치장을 해야 하는데, 오늘은 체력적으로 무리였다.
‘으으-’
키네미아가 침대 끄트머리에 늘어져 있는데, 무언가가 할짝거리며 손가락을 핥았다.
‘음?’
빼꼼 내려다보니 륜이다.
꼬리를 흔드는 륜에 그녀가 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결 보들보들해진 털이 손에 감겼다.
‘얼마나 잘 먹고 잘 놀았으면…….’
이 마물은 어찌나 똥꼬 발랄한지, 들인 지 얼마나 됐다고 이곳저곳을 통통통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온갖 예쁨을 받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마물 주제에 말이야.’
“손.”
손을 내밀자 륜이 제 앞발을 올렸다.
“잘했어.”
륜의 턱을 쓰다듬었다.
키네미아는 그르릉거리는 륜을 바라보며 밤새 잠들지 못하게 했던 문제를 다시 떠올렸다.
잠을 자지 못한 데에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탓이 컸다.
에이얀.
그리고 이어져 떠올린 것은-
‘에이얀의 힘.’
그녀는 머릿속에서 책을 팔랑팔랑 넘겨서 얻어낸 정보를 조합해 보았다.
‘흠.’
에이얀이 가진 힘이 셀테어의 힘이라면, 원작에서 등장한 그 어둠일 것이다.
‘그럼 힘을 봉인하는 것도 할 수 있을까…….’
원작에서 표현하기를, 아주 오래전에 용사가 어둠을 봉인했다고 했으니까.
‘무슨 방법이 있겠지.’
주인공이 메인 스토리만 제대로 진행했어도 알 수 있었을 텐데!
어깨를 늘어트린 키네미아는 드레스 룸으로 들어가 보석함에서 고대 유물을 꺼내 들었다.
‘가지고 다녀야 하나.’
이게 언제 어디서 중요한 힌트가 될지도 모르니까.
그녀는 유물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손가방에 넣고 다니기에는 분실 위험이 있어서 걱정인데…….
‘반지로 만들어 볼까.’
알이 너무 큰가?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쥐고 있던 고대 유물의 감촉이 변했다.
“……?”
손안에서 스르륵 사라진다 싶더니, 검지에 딱 맞는 반지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호오오오오오!’
손을 쫙 펴고 민자 반지를 살피며 키네미아가 눈을 빛냈다.
‘변신 아이템!’
대단해. 처음 봐. 그녀가 두근두근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어머, 일어나셨어요?”
키네미아를 깨우기 위해 방에 들어온 유모 바네사였다.
근래 잠에 취한 채로 침대에서 벗어나질 못하더니, 오늘은 아예 잠을 못 잔 얼굴이었다.
‘어제 연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호화로운 마차를 달고 갔던 아가씨가 리카샤에게 안겨 오질 않나.
내심 걱정이 가시질 않았던 바네사가 물끄러미 키네미아를 응시했다. 그러다 순간 바네사의 표정에 살짝 금이 갔다.
이에 키네미아가 의아해하는데, 바네사가 품을 뒤적이더니 연고를 꺼내 그녀의 입술에 발라 주었다.
“……?!”
갑작스러운 행동의 연유가 무엇 때문인지 알 것 같았던 키네미아가 뎅, 얻어맞은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얼굴이 화끈거려서 눈을 마주칠 수가 없다. 키네미아는 고개를 푹 숙였다.
바네사는 그런 키네미아의 이마에 입을 맞춘 후에 스산하게 말했다.
“아가씨, 이제부터 통금 시간은 저녁 7시예요.”
“응.”
“에이얀 님께도 전해 주세요. 꼭이요.”
“……응.”
키네미아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키네미아는 대충 머리를 질끈 묶고 연무장으로 향했다.
영웅인 엄마 때문인지 수도의 별장에도 널따란 연무장이 존재했고, 지금도 무척이나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목검을 찾아 들고 중앙으로 움직이려는데, 문득 입술에 연고가 덧발린 느낌이 불편해서 만지작거렸던 키네미아가 파드득 놀라 비명을 질렀다.
“……!”
당장 뭐라도 부숴 버릴 듯 목검을 휘두르면서 키네미아는 자꾸만 떠오르려는 기억을 애써 지우고 다른 생각으로 전환시켰다.
‘고대 유물, 고대 유물! 고대 유물!’
‘어디부터 찾으면 되지?’
‘도서관으로 다시 가 볼까.’
아니면…….
생각을 되짚어보던 키네미아가 문득 한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워맥 자작.’
원작에서는 그가 저택에서 기록을 찾아내 고대 유물을 찾으러 갔었다.
지금은 황제가 따로 명을 내린 것으로 달라지긴 했지만…….
만약 워맥 자작이 가지고 있었던 기록을 찾아내면 얼추 방향이 잡힐지도 몰랐다.
‘자작에게 사람을 보내 봐야겠다.’
응응, 그렇게 하자. 결심한 키네미아가 목검을 다시 걸어 놓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한데 그 순간, 누군가의 단단한 가슴이 시야를 가렸다. 굳이 올려다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아차린 키네미아가 한 발짝 물러나며 미간을 찌푸렸다.
“어떻게-”
무심결에 말을 이으려던 키네미아는 화들짝 놀라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고는 검지를 번쩍 들어서 에이얀과 연무장을 번갈아 가리켰다.
에이얀이 손짓의 뜻을 눈치채고 되물었다.
“어떻게 여기 왔냐고?”
키네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 싶어서.”
그가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오자, 뒤로 물러나 벽에 등을 기댄 키네미아가 양손을 크로스해 엑스자를 만들었다.
“다가오지 말라는 거야, 아니면 보고 싶어 하지 말라는 거야?”
그녀가 입을 벙긋거리려다가 헙, 소리를 내며 다시 닫았다. 이 간악한 마법사 같으니.
키네미아는 야무지게 입을 다문 채로 둘 다라면서 손가락을 두 개 펴 보였다.
“두 번째?”
키네미아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둘 다라고?”
작은 머리통이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음, 에이얀은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손을 들어 키네미아의 볼을 감쌌다.
“미아, 어디 아파? 왜 말을 안 하고…….”
걱정스레 묻던 에이얀의 시선이 키네미아의 눈동자에 닿았다.
새파란 눈동자는 그의 입술을 노려보다가 눈으로 다시 시선을 들어 올렸다.
“아-”
그녀가 왜 그러는지 눈치챈 에이얀이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는 웃음을 삼키며 난감한 기색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조금 과했던가?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젓는 키네미아에게 ‘한 번만 더.’라고 매달려서 놓아주지 않긴 했었다.
나중에는 성이 난 키네미아가 가슴을 퍽퍽 때려서 떼어 냈지만.
그 이후에도 품에 안고 있다가 입을 열 때마다 입을 맞췄더니, 이제는 아예 말을 하지 않기로 한 모양이었다.
에이얀이 칭얼거리듯 물었다.
“미아, 나 싫어졌어?”
키네미아는 짜증이 가득 담긴 표정이었으나 고개만큼은 좌우로 가로저었다.
싫지 않은 게 짜증이 나는 얼굴이었다.
에이얀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흘렸다.
“솔직하게 답하면 어떡해. 싫다고 해야지.”
볼을 감쌌던 손으로 귓불을 만지작거리자 키네미아가 다시 팔을 겹쳐 엑스자를 그었다.
에이얀은 살짝 아쉽다는 기색을 지우며 손을 떼어 냈다. 대신 그는 키네미아의 두 손을 잡고 애교스럽게 이름을 불렀다.
“미아아아아-”
“…….”
“계속 말 안 할 거야?”
에이얀의 측은한 물음에 키네미아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
의아해하는 에이얀 앞에서 그녀가 엄지를 아래로 내렸다.
이제 허튼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는 뜻인 모양이었다.
네 생각이 맞다는 걸 방증하는 것처럼 키네미아가 엄지로 목을 슥 그었다.
“그건 너무하잖아.”
에이얀이 목 안으로 웃으면서 항복을 선언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키네미아의 어깨를 가볍게 잡고 뒤로 돌려서 제 품에 꼭 끌어안았다.
커다란 체구에 폭 싸여 안긴 키네미아가 오만상을 구긴 채 그의 가슴에 머리를 쿵 박았다.
아야, 앓는 소리를 낸 에이얀이 키네미아의 어깨로 얼굴을 내렸다.
“이러면 괜찮지?”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에 솜털이 오소소 돋았다. 여전히 불만에 가득 찬 키네미아가 고개를 꺾어 얼굴을 떨어트렸다.
“이런 자세도 별로야.”
몸이 너무 많이 닿잖아. 새빨개진 얼굴을 비비며 키네미아는 탐탁잖다는 투로 대꾸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이얀은 이제야 목소리를 들으니 됐다는 듯 한 귀로 흘리며 키네미아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그런데 에이얀, 할아버지는 마탑에 계셔?”
“그렇겠지?”
스승님께 별 관심이 없나 보구나. 늘 그래 보이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