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23)
먼치킨 길들이기 123화
“연회에 안 나가셨나 보네.”
“네가 없으면 갈 필요가 없으니까.”
아하…… 그렇구나. 키네미아가 어색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럼 마탑으로 가 봐야겠네.”
작게 중얼거린 키네미아가 마탑으로 가기 전에 일단 해 두어야 할 일을 정리하는 동안, 에이얀은 얼굴 한번 제대로 보여 주지 않는 키네미아를 아쉽게 바라보며 아무렇게나 흘러내린 금발을 손 갈퀴로 가다듬었다.
“미아.”
“…….”
제 부름에도 아랑곳없이 생각에 잠긴 키네미아에 에이얀이 폭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을 옆에 두고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은지.
긴 밤 내내, 둘만의 시간에 애가 닳아 있던 건 그 자신뿐이었는지.
한동안 말이 없는 키네미아를 끌어안은 채, 에이얀은 근처에 있던 구름다리 꼭대기로 이동했다.
“윽?!”
갑자기 몸이 공중으로 올라서자 키네미아가 짧게 비명을 질렀다.
그사이 에이얀은 구름다리 위에 걸터앉아, 깜짝 놀란 키네미아를 제 오른쪽 다리 위에 앉혔다. 그러곤 키네미아의 머리끈을 풀어 다시금 묶기 시작했다. 나 좀 신경 써 달라는 자그마한 심술이었다.
공중에 떠서 잔뜩 긴장했던 키네미아는 안정된 자세에 그제야 안심했는지, 불끈 쥔 주먹을 간신히 풀었다.
이를 확인한 에이얀이 나지막이 웃었다.
“아, 에이얀. 워맥 자작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어?”
워맥? 마탑주에 이어지는 다른 남자의 이름에 에이얀의 미간에 실금이 그어졌다.
“그- 영지에 기사단을 끌고 왔던 얼간이?”
“맞아, 그 얼간이.”
“무슨 일로 찾는데?”
“그때 동굴 안쪽에서 고대 유물을 찾았는데-”
키네미아가 손을 쫙 펴서 내보였다. 작은 손엔 반지가 하나 끼워져 있었다.
“워맥 자작이 이걸 찾으려고 했던 걸 보면, 이게 뭔지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 만나 보려고.”
실은 그가 가진 책을 찾고 있는 것이지만, 키네미아는 에이얀이 이해하기 쉽게 돌려 말했다. 어찌 되었건 간에 그를 만나야 할 테지만, 워맥 자작과 초대장을 보내 한담을 나눌 만한 사이가 아니었으니. 그가 어디에 있는지만 알면 직접 찾아가 볼 생각이었다.
음, 목을 울린 에이얀이 손을 들어 올리자 손끝으로 새카만 까마귀가 올라앉았다. 이내 까마귀는 순식간에 수십 마리로 분열한 채 날아오르며 어딘가로 사라졌다.
‘호오오오오-’
키네미아가 눈을 빛내니 에이얀이 귀엽다는 듯 웃었다.
“오늘 안으로는 얼간이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 거야.”
“응응.”
자신을 향한 유순한 눈을 바라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던 에이얀의 시선이 무심코 아래로 내려갔다.
그는 살짝 부어올라 도톰한 입술에 시선을 두었다가 고개를 돌렸다. 키네미아가 다시금 입을 틀어막으면 곤란했다.
혹여나 제 시선을 눈치챘을까 에이얀이 키네미아의 허리에 감은 팔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키네미아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지 태연한 기색이었다.
그는 괜히 불만스러운 내심을 숨기며 키네미아의 정수리에 이마를 기댔다.
에이얀은 스스로를 잘 컨트롤하는 편이었다. 특히나 상대의 도발에 욱해 감정적으로 반응하거나, 본능에 휘둘린 섣부른 행동을 멸시하는 편이었다.
그가 가진 힘 때문에라도 에이얀은 계속 그런 사고를 가지고 살았을 것이다. 키네미아 리온만 아니었다면.
하지만 그녀를 만나고부터 컨트롤은커녕, 점점 더 이성을 붙들어 놓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스승이 제게서 키네미아를 더 떼어 놓으려 한 거겠지만.
그때는 그저 만나는 것으로 족했는데, 지금은…….
‘……발정 난 짐승도 아니고.’
미친 새끼. 에이얀은 자신에게 소리 없이 욕설을 내뱉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예 닿지 못했을 때보다, 닿고 나서 참아야 하는 것이 더 괴로울 줄이야. 사실상 고행이나 마찬가지였다.
“에이얀, 피곤해?”
에이얀이 제게 머리를 기댄 채 숨을 죽이고 있자 키네미아가 순진하게 물어 왔다.
에이얀은 작게 웃으며 조금, 이라고 답했다. 속으로 간신히 진정하고 나서야 그는 이마를 떼어 내며 입을 열었다.
“이제 마탑으로 갈까?”
“어, 응. 가야지.”
키네미아의 대답에 에이얀은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허리에 감았던 팔을 떼어 냈다. 이후에도 같이 있을 시간은 남아 있을 테니까.
“갈까?”
다정히 웃으며 물었으나 키네미아가 일어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미아?”
에이얀이 이름을 부르자 그녀가 작게 웅얼거렸다.
“조금만 이따가 가.”
“응?”
“……조금만 둘이 있다가…… 가자…….”
키네미아가 순간 경직된 에이얀의 팔에 얼굴을 묻으며 가볍게 소매를 끌어당겼다.
에이얀은 새빨개진 얼굴을 숨기는 키네미아를 보며 아득해지는 이성을 붙들었다.
그가 숨을 깊게 내뱉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키네미아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어떡하지. 지금 죽을 것 같은데, 나.”
“뭐?!”
키네미아가 놀라서 입을 벙긋거리는데, 단단한 두 팔이 키네미아의 몸을 바투 끌어당겨 안았다.
이러다 정말 죽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심장이 사납게 뛰어 댔다. 그는 새하얗게 휘발되는 머릿속을 정리했다.
키네미아는 빠르게 뛰는 에이얀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얼굴을 붉히다, 부끄러웠는지 다시 그의 팔에 얼굴을 묻었다.
망토가 없어 숨을 곳이 없으니, 팔에 매달리는 모양이었다.
귀여워 미치겠네. 그는 키네미아의 새로운 반응을 찾아낸 걸 즐거워하며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미아, 네 망토 다 태워 버려도 돼?”
“갑자기?!”
“앞으로 숨을 곳을 좀 없애야 할 것 같아서.”
내 방어막을 왜 없애는데. 키네미아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싫어, 안 돼.”
단호하게 내뱉은 후에 가볍게 밀어내자 에이얀이 자그마한 몸을 재차 끌어안았다.
“알았어, 안 태울게. 가지 마.”
품에 갇힌 채 키네미아가 잔뜩 인상을 썼다.
“음, 화났어?”
“……놀리지 마.”
놀린다니. 줄곧 들었다 놨다 하는 사람이 누군데. 낮게 웃은 에이얀이 손을 뻗었다. 커다란 손은 가느다란 목을 감싸고 머리를 가다듬다가 볼을 쓸었다. 노곤한 숨소리가 닿자 그가 귓가에 입술을 댔다.
“사랑해.”
사랑해. 연신 귓가에 속삭이니 눈을 질끈 감은 키네미아의 귓바퀴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미치겠네. 무심코 입 밖으로 나오려 한 욕설을 꾹 누르며 에이얀이 키네미아의 귓바퀴에 입을 댔다. 여린 살을 깨물자 빽 비명을 지른 키네미아의 어깨가 튀어 올랐다.
“하, 하지 마!”
키네미아가 귀를 틀어막으며 어깨를 떨었다. 에이얀은 그 손등에 입을 맞췄다.
“사랑해, 미아.”
“…….”
“응?”
칭얼거리듯 말꼬리를 올리니 눈동자를 데구르륵 굴린 키네미아가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녀가 에이얀의 볼에 짧게 입술을 댔다가 떼어 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에이얀이 키네미아의 뒷머리를 감싸며 입술을 포갰다.
그가 가볍게 자극하듯 닫힌 입술을 깨물고 핥자 결국 입이 열렸다. 에이얀은 깊게 파고들었다.
이후로도 에이얀이 매달리는 통에, 키네미아는 한참 후에야 마탑으로 향할 수 있었다.
* * *
타다다닥, 타다다닥.
울프만은 손으로 의자의 팔걸이를 피아노 치듯 두드렸다.
사실 일언반구도 없이 에이얀이 키네미아를 데리고 사라졌던 그날, 울프만과 벤자민은 동시에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납치했구나!’
납치, 감금 따위의 온갖 피폐한 상황들을 떠올리며 장로들을 모아야 하는 건지 심각한 패닉에 빠져 있던 그들을 간신히 진정시킨 것은 마탑에서 날아온 사역마들이었다.
공중 섬의 정원에서 산책을 하다가 불시에 나타난 에이얀을 발견하고 마법사들이 사역마를 보내온 것이다.
그 덕에 납치 소동은 금세 끝이 났다. 납치, 감금을 공중 섬의 정원에서 하진 않을 테니까.
‘그건 그렇고.’
울프만은 제 앞에 나란히 앉은 키네미아와 에이얀을 살폈다. 분위기가 묘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 건 연륜 때문만은 아니리라.
울프만의 옆에 선 벤자민도 은연중에 이를 느꼈는지 안도감과 측은함이 뒤섞인 얼굴이었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저 녀석, 설마 울면서 빌기라도 했나.’
제법 근접한 상황까지 떠올린 울프만은 말도 안 된다며 자신의 허황된 상상을 날려 버렸다.
‘헛헛한 마음에 별생각을 다 하게 되는군.’
자그마한 아이들이 사탕을 받으러 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훌쩍 커서는 말이야.
감상에 빠졌던 울프만은 내내 초조한 기색으로 답을 기다리는 키네미아를 보며 큼, 목을 가다듬었다.
“그래, 계약 마법 말이구나.”
마탑으로 찾아온 키네미아는 지난 일을 따지거나 추궁하는 대신, 에이얀에게 걸린 계약 마법을 풀고 싶다는 뜻을 비쳐 왔다.
마법사 10명을 모아 화려한 사과 이벤트까지 준비했던 울프만은 안도 반, 상실감 반이 혼재된 마음으로 입맛을 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