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29)
먼치킨 길들이기 129화
* * *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아.’
황제의 초대를 받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응접실 소파에 앉은 키네미아는 얼떨떨한 상황에 두근대는 심장을 내리눌렀다.
왜 불렀을까. 이 순간 갑자기 날 참수하겠다고 굴지는 않을 테고.
‘설마.’
잘했다고? 이제 별거 아닌 원한 관계는 청산하자고? 작위를 주겠다고? 이제 내가 명실상부한 리온의 주인이라고?
‘네! 얼마든지요! 좋아요! 감사합니다! 평생 충성하겠습니다!’
온갖 상상으로 목구멍까지 치달아 오르는 감사 인사를 하던 중이었다.
“이렇게 뒷구멍으로 몰래 만나게 돼서 미안하군. 난 거창한 연회가 영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
황제였다.
시종도 물린 채 단출하게 들어온 그녀는 황제답지 않은 털털한 말투로 웃어 보였다. 키네미아는 그저 영광일 따름이라며 인사를 올렸다.
그때, 황제 말고 한 사람이 더 시야에 잡혔다.
‘저 사람은?’
그 남자다. 도서관의 지박령이라고 스스로를 칭했던 남자.
이상한 남자라고 생각은 했지만 여기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치 못했다.
시종? 그렇다기에는 황제를 제대로 보필하는 것 같진 않았다.
‘황제가 문도 직접 열고 들어왔고 말이지.’
설마 정부? 대체 정체가 뭐지? 키네미아가 한껏 경계한 고양이처럼 털을 세운 채로 바라보자, 남자는 머쓱한 얼굴로 턱을 긁었다.
“우린 구면이지.”
“일단 앉지.”
황제가 먼저 자리에 앉았고 키네미아와 남자가 따라 앉았다.
기묘한 상황에 키네미아는 입을 꾹 다물고 그들이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어디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
키네미아가 어디 한번 말해 보시지, 라는 무시무시한 눈으로 쏘아보자 남자의 눈동자가 여기저기 배회했다.
“…….”
“…….”
짧은 침묵 사이에 끼어든 것은 황제가 폭탄처럼 떨어트린 발언이었다.
“대공녀, 그대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건 다 이자가 꾸민 일이야.”
“……예?”
“……너무 갑작스럽지 않아?”
키네미아와 남자가 동시에 답했다.
“하지만 진실이지.”
그녀는 대충 대꾸하며 손을 내저었다.
“이자는 대공녀가 살아남길 바랐거든.”
이에 남자가 난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 소개가 늦었구나. 내 이름은 김우진. 내가 보내 준 ‘연대기’는 도움이 됐지? 여러모로…….”
연대기? 그를 따라 조용하게 읊조리던 키네미아가 미간을 살포시 찡그렸다.
설마 이곳의 원작 ‘알디움 연대기’를 말하는 건가?
거기에는 베히모스, 혜민원, 지클린까지 자신에게 필요한 이들의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었다.
게다가 황제가 보낸 워맥 자작에게 휘말려 륜을 데려오게 됐던 일부터, 전혀 연관이 없던 시련의 탑을 올라야 했던 일까지.
더군다나 지클린이 말했던,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까지 합하면 큰 그림이 보이기 시작했다.
퍼즐이 맞춰지며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모든 걸 되물을 필요도 없었다. 이 상황에서 연대기란 하나뿐이다. 어릴 적 불현듯 떠올랐던 바로 그 소설.
그래, 석연치 않은 부분은 늘 있었다. 누군가 의도하는 일에 끌려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었고.
스스로가 소설 속 주인공처럼 느껴진 것도 이상한 게 아니다.
결과적으로 주인공처럼 행동하도록 이야기가 방향을 정해 준 셈이니까.
키네미아는 놀라고 황당한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황제와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황제도 모든 걸 알고 있었단 말인가?
황제는 키네미아의 무례에도 죄라도 지은 양 시선만 옆으로 돌려 피했다.
‘일단 진정하자.’
내게 무슨 짓을 한 건지 화를 내거나 소리를 쳐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모든 내막을 들은 이후에 하자.
키네미아는 휘몰아치는 감정을 내리누른 채 최대한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설명해 줘.”
“네게 보낸 이야기처럼, 나는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란다. 한국에 사는 평범한 인간이었고 죽음과 함께 세계를 넘어오면서, 나는 신의 축복을 받아 용사가 됐지. 일종의 계약이었어. 내 목숨을 연장하는 대신 이 세계를 구하는 임무를 맡게 된 거지. 그런데 안타깝게도 신은, 사람을 잘못 선택한 것 같아.”
큼, 그는 가라앉은 목을 가다듬었다.
“나는 실패했거든.”
그는 초대의 용사였다.
하지만 능력에 한계를 느껴 셀테어를 온전히 죽이지 못했다. 대신 셀테어의 껍데기와 힘과 영혼으로 봉인을 나누었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서글서글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계약 이행에 실패한 탓인지 나는 죽지 못했어.”
신체의 시간이 멈췄다. 셀테어를 봉인하던 바로 그 순간에.
“세계를 언제고 위협할 수 있는 악을 완전히 멸하는 게 조건이었던 것 같아.”
그러나 멸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의미 없는 삶이 시작되었다.
“여러 가지로 방법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역시 무리였지. 사실 기존에 그런 방안이 존재했다면 신은 굳이 내가 필요하지도 않았을 거야.”
껍데기는 마모되어 너덜너덜해져 갔지만 삶의 끝은 요원했다. 그는 썩어 가는 몸을 추스르면서 지독하게 살아야만 했다.
이제 멀쩡히 움직이는 장기가 없는 수준이라고, 그는 담담하게 제 상태를 설명했다.
“고문이지. 유병장수만큼 고된 삶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그러나 탈출구는 다시 그를 찾아왔다. 수많은 시간을 넘어 다시금 셀테어의 힘이 부활하게 된 것이다.
행운이었다. 이번에야말로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죽을 순간이 왔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동안 나는 늘 고민했지. 신조차 이 세계의 악을 멸할 수 없어 다른 이의 손이 필요하다면, 처음부터 신의 힘을 이어받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을까?”
다년간 머릿속을 침습하던 악몽처럼 그는 또다시 실패했다. 결국 세계는 어둠으로 뒤덮여 멸망을 목전에 두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죽을 수 없었다. 아마 이대로라면 영원한 어둠 속에 혼자 남게 되겠지.
그럴 수는 없었다. 도저히 그렇게 놔둘 수는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 할 수 있는 일은 있었지.”
그는 남은 힘으로 시간을 되돌렸다.
봉인된 셀테어의 힘이 깨어나기 전으로.
그가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0년. 그럼에도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거란 희망을 가지고 몇백 번, 몇천 번이고 시간을 돌렸다.
“모조리 실패했지만, 오랜 경험으로 깨닫는 것도 있더구나.”
그는 수많은 실패를 거쳐 알아냈다.
“답은 내가 아니라 대공녀였지.”
불시에 지목당한 키네미아가 어깨를 움찔했다.
“키네미아 리온, 내 소명을 이어서 악을 없애고 나를 죽여 주길 바라.”
* * *
내용을 정리한 키네미아가 물었다.
“왜 나였어? 마법이 통하지 않는 내 능력 때문에?”
“그 능력은 내가 신에게 받은 거야. 내가 대공녀께 대물림한 거지. 그러니 그 힘 때문이 아니라-”
콜록, 우진이 기침을 삼키고 말했다.
“-대공녀는 에이얀이 모든 걸 내줄 유일한 인간이니까.”
심장 끝이 싸해졌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저 용사가 수많은 시간을 회귀하게 만든 ‘악’이란 건 역시 에이얀을 말하는 거구나.
“내가 겪은 일들이 궁금할 거야. 어떻게 에이얀이 대공녀를 사랑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같은 것들 말이야. 하지만 과거에 있었던 모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겠지. 그저 수많은 시간을 거쳐 수많은 가능성들을 모두 보고 왔고 대공녀라는 답을 내린 것은 내 모든 고생의 일환이라고 이해해 주면 좋겠어.”
“그럼 과거의 일 말고, 현재의 이야기를 물어볼게. 왜 내게 직접 말하지 않았어?”
그는 갸우뚱 기울였다.
“지금 하고 있단다.”
맹한 대답에 키네미아가 잠깐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힘을 풀었다.
“왜 내가 어릴 때 직접 찾아와 얘기하지 않고, 내 머릿속에 이야기를 주입했느냐는 말이야.”
제 관자놀이를 툭툭 두드려 보이자 우진은 난처한 듯 웃었다.
“불쾌했지? 나도 좋아서 한 일은 아니란다. 여러 방법을 써 보긴 했는데, 대공녀가 자꾸 죽더란 말이지……. 누구에게든, 어떤 이유로든. 가문의 원한이 꽤 깊었던 모양이야.”
제기랄. 괜히 물어봤다. 리온 가문의 치부에 순식간에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두어 가지 위험에서 지킨다고 해서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 그렇다고 리온의 전대부터 손을 대기에는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았지. 간섭이 커질수록 미래가 바뀔 확률이 더 높아지는 만큼 내가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 확률이 커지기도 하고. 결국 그럴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 대공녀에게 맡겨 보기로 했어. 결과는 보시다시피-”
그가 두 손으로 키네미아를 가리켰다.
어쨌든 멀쩡히 살아 있으니 그의 도박은 성공하긴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