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32)
먼치킨 길들이기 132화
“끝났나?”
뒷짐을 진 에버렛이 땅을 깊게 판 인부들에게로 허리를 숙였다.
“나왔습니다, 공작님.”
흙 속에서 월계관 모양으로 된 화려한 금관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이리아 리온이 승전식에서 받은 영광의 증표였다.
이를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응시하는 에버렛을 요제프가 물끄러미 관찰했다. 시선을 느낀 듯 에버렛이 눈동자를 옆으로 굴렸다.
“아들이 증오스러운가?”
요제프가 일순 제 가슴을 내려다봤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감각을 잃은 탓이 아니다. 두근거리던 심장이 이미 없기 때문이다.
지금 말하고 움직이는 그는 썩은 몸을 이끌고 돌아온 사령일 뿐이었다.
심장을 쥐어뜯을 것처럼 주먹을 쥐던 요제프가 텅 빈 눈으로 하하, 소리를 내어 웃었다.
“우스운 질문을 하십니다. 아시잖습니까? 제 심장은 이미 멎었습니다. 숨 쉬는 법도, 살아가는 법도 알 수 없죠. 제게 증오와 분노 말고 달리 남은 것이 있을까요?”
음, 그의 말을 들은 에버렛이 팔짱을 꼈다.
그래, 잊을 뻔했으나 요제프 크로츠는 사령이었다.
기묘하다. 다시 살아난 시체들이 제 의지를 가지는 건 고작해야 하루뿐이었다.
하지만 요제프 크로츠는 며칠? 아니, 거의 보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지를 유지하고 있었다. 정말 되살아난 것처럼.
“사령이 이렇게 오래 이지를 가질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뭐가 특별한 거지? 원한? 그런 것 따위는 시체가 된 이들 대부분이 가지고 있을 텐데, 안 그래?”
이에 요제프는 마치 기다리던 말을 들었다는 것처럼 양옆으로 입을 찢었다.
“진실을 알려 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공작님께서 제 원한을 갚아 주실 테니까요.”
“들어 보지.”
“저는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어둠과 가까웠던 사람입니다. 태어난 순간부터 그 아이와 함께였으니까요. 때문에 어둠에 뒤덮였을 때에도 가여운 영혼만은 이지를 가지고 있었으니, 지금의 저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도 이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요제프가 흔든 낚싯바늘을 에버렛은 아무런 의심 없이 덥석 물었다.
역시, 우리는 동류다. 비슷했기 때문에 그가 바라는 것을 미끼처럼 내보일 수 있었다.
요제프는 그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건네는 악마처럼 말했다.
“제가 어둠 너머에서 무엇을 듣고, 어떤 것을 배웠는지 아십니까?”
“흐음?”
에버렛의 눈이 반짝였다.
“어둠 속에 삼켜졌을 때, 저는 죽었지만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곳에서 아주 기나긴 시간을 보냈죠.”
분노로 뒤덮였던 그 모든 시간은 억겁처럼 느껴졌다.
아들에 대한 분노, 영리하게 처신하지 못한 자신을 향한 분노, 어둠 속에 갇혀 죽지도 못하는 상황을 향한 분노, 그저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향한 분노, 그를 이런 고통에 빠지게 둔 온 세상을 향한 분노.
그때를 되짚으며 고통스러운 듯 몸을 떨던 요제프가 웃었다.
“하나 태초의 지식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신인지 악마인지 모를 무언가가 제 귓가에 매일 속삭여 주었지요. 동서고금의 마법과 술법을, 세계를 이루는 모든 비밀과 이치를.”
그는 검지로 에버렛의 심장을 쿡 찔렀다.
“힘을 원하십니까? 기꺼이 제 아들을 바치겠습니다. 그 어둠을 빼앗는 것은 누구도 불가능한 일일 테지만 단 한 분, 공작님께선 가능하십니다. 전 압니다. 공작님께서는 아주 특별한 영혼을 가지고 계시다는 걸.”
“……!”
순간 에버렛의 얼굴이 희열로 물들었다. 끝내 듣고 싶은 말을 얻어 낸 것이다.
그럴 줄 알았다. 매일 모멸감에 차 잠들면서도 언제나 의심치 않았다. 내가 누구도 원하지 않던 사생아가 아니라는 걸. 특별한 인간이라는 걸!
평생에 걸쳐 무척이나 듣고 싶었던 달콤한 이야기를 악마처럼 속삭이면서, 요제프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제 손을 잡으신다면 새로운 세계의 왕이 되실 겁니다. 죽지 않는 백성들과, 마물로 이루어진 병사들을 드리겠습니다.”
에버렛이 침을 삼켰다.
“당신은 해가 닿고 그림자가 지는 모든 땅의 왕이 되실 겁니다. 그 누구도 해할 수 없는 곳에서 우뚝 서게 되실 겁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세상의 그 누가 이런 달콤한 제안을 거절할 수 있을까.
그는 홀린 듯 악마의 손을 잡았다. 검은 눈을 가진 악마는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큰 힘을 얻기 위해서는 큰 대가가 따르는 법. 우선 수많은 제물이 필요합니다.”
“바라던 바야.”
그의 허락과 함께 몸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곧 어디선가 땅 울림이 시작됐다.
* * *
‘왜 저런 걸 내게 맡기는 건지.’
쉔 티엔은 잔뜩 심통이 난 미친 마법사를 흘깃 쳐다보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견주가 ‘나는 황궁에 다녀올 테니 잠시 혜민원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명령하여 바로 혜민원으로 날아온 모양이었다.
그런 에이얀의 잘생긴 얼굴에는 고분고분 말을 듣기는 했는데 짜증은 참을 수 없다는 기색이 잔뜩 어려 있었다.
그가 팔걸이에 턱을 괴고 느릿하게 말했다.
“혜민원은 늘 바쁘던데 틀어박혀 술이나 마시는 걸 보면 혼자 한가로운가 봐.”
저저, 심술 좀 보게.
“원래 고위직들은 앉아서 책임을 지는 자리 아니겠나.”
“그랬나? 마탑은 아닌데 말이지.”
너도 키네미아 뒤꽁무니 쫓아다니면서 노는 건 마찬가지 아니냐는 소리가 목까지 올라왔으나 참기로 했다.
쉔 티엔은 그나마 에이얀이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동대륙의 책들을 건네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견주가 빨리 오길 바라면서.
한껏 불편한 공기를 느끼며 쉔 티엔이 잔을 들려고 할 때였다. 잔 안에서 술이 거세게 출렁거렸다. 그와 함께 공기의 진동이 진하게 느껴졌다.
“지진?”
책을 들던 에이얀이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고 쉔 티엔이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온 세상이 흔들리는 듯했다.
에이얀이 이상할 정도로 거대한 마력의 흐름에 의문을 느끼는 사이, 쉔 티엔이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꺼림칙한 무언가를 느낀 쉔 티엔은 잰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렀다. 에이얀이 그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그때, 복도 끝에 누군가 그들을 기다리듯 서 있는 게 보였다.
“엔 님-”
소년은 긴 머리는 풀어 헤치고 옷은 마치 흙더미 속에서 구르고 온 것처럼 지저분했다.
갈라진 목소리가 나직이 말했다.
“쉔 티엔 님-”
“나옌?”
그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쉔 티엔이 눈을 크게 떴다.
얼마 전 사고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혜민원의 점소이였다.
“네가 어떻게-”
쉔 티엔이 아이를 향해 몇 걸음 다가섰다. 나옌이 그를 환영하듯 두 팔을 벌렸다.
이를 지켜보던 에이얀이 뒤에서 쉔 티엔의 팔을 낚아챘다.
“현혹되지 마, 연금술사. 저건 사령이다.”
에이얀이 미간을 설핏 찡그리며 손을 튕겼다. 곧 펑, 소리를 내며 사령의 머리가 부서졌다.
에이얀은 사령에게로 다가가 상태를 확인했다. 안은 썩은 형태가 그대로 보였지만 겉은 정말 사람처럼 멀쩡해 보였다.
“일반 사령술로는 이렇게 예쁘게 되살릴 수가 없을 텐데-”
그가 조용히 읊조렸다.
멀쩡해도 너무 멀쩡하지 않은가. 마치 부러 사람들을 현혹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처럼.
“으아아악!”
“이거 놔!”
둘이 시간을 지체하는 사이에 혜민원 곳곳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쉔 티엔이 비명 소리를 향해 달려갔고, 에이얀은 상황을 살피기 위해 처마를 벗어나 둥실, 몸을 띄웠다. 하늘을 걷듯 지붕으로 올라간 그는 높이 서서 주위를 관찰했다.
혜민원뿐만이 아니라, 수도 곳곳에서 연기와 비명이 울려 퍼지는 중이었다. 갑작스러운 재난에 사람들이 사색이 되어 도망 다녔고, 제국의 숙련된 정찰 기사들이 사령들을 제압하고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있었다.
이상 현상이 당혹스러울 만도 한데, 정찰 기사들은 누군가에게 지령을 받고 미리 준비라도 한 것처럼 능숙한 움직임을 보였다.
‘흠.’
이런 일을 벌이려면 아주 출중한 사령술사와 마탑에서도 손꼽을 만큼 뛰어난 마법사가 필요할 텐데.
그럴 만한 인물이 있던가? 당장 조사해 보고 싶을 만큼 흥미로운 사건이 되긴 했다만, 그에게는 지켜야 할 사람이 있었다.
제 주인을 찾아 바로 황궁으로 움직이려던 그의 시선이 돌연 한곳에서 멈췄다. 새카만 눈동자 안에 저 멀리 웅장한 건물이 비쳤다.
분명 그곳은 비어 있어야 할 곳이었다.
하나 아무것도 남지 않은 황무지여야 하는 곳에 성이 있었다. 푸른 첨탑을 가진 지붕과 어두운 회색 벽.
어릴 적 매일 볼 수 있던 정경이었지만, 어린 에이얀에 의해 한순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져 버린 곳.
고향, 모르간 왕국의 성.
‘어째서?’
목이 꽉 조여 왔다.
신기루나 환상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분명 그는 거대한 마력의 기운을 느꼈다.
‘내가 관련되어 있다?’
작은 단서만으로도 직감적으로 깨닫는 것들이 있다. 바로 지금처럼.
긴장과 불안으로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저런 것에 시선이 팔려 있을 때가 아니다. 내가 관련되어 있다면 지금 당장 키네미아를 찾아야 했다. 그를 죽이고 살릴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