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4)
먼치킨 길들이기 14화
* * *
‘이 기분, 뭘까…….’
회의실 상석에 앉은 키네미아는 양손을 깍지 끼고 배 위에 올려 둔 채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아, 그건가.’
가슴속에서 촤아악 물감이 퍼지는 것처럼 ‘아, 입방정을 떨면 안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을 때의 기분.
‘아니, 아니야. 그것보다는 권력을 지닌 자의 책임.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뭐 그런 걸까.’
권력자가 아무렇지 않게 둘러댔던 말 한마디가 이런 파장을 일으킬 줄이야.
“여기 보시면, 이 부분!”
키네미아는 리온 상단의 상단주인 미카엘라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바짝 올라간 작은 눈. 깐깐해 보이는 그녀는 회의실 앞에서 영상구로 자료를 틀어 놓고 열정적으로 발표를 진행 중이었다.
“이 아무것도 묻지 않는 깨끗한 손이 핵심입니다.”
가신들이 미카엘라의 프레젠테이션을 보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리온 상단을 맡고 있는 미카엘라가 직접 자신을 찾아온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안 그래도 그녀를 슬슬 만나 보려던 참이었다.
‘베히모스가 만든 검을 명검 중의 명검으로 브랜딩해서 팔아먹으려면 일단 그녀를 만나야 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미카엘라의 방문이 아니라, 미카엘라의 방문 의도였다.
그녀가 슬라임은 수익성이 굉장히 높은 사업 아이템이라며 기획안을 들고 찾아왔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됐지.’
키네미아는 갑자기 왜 이렇게 된 건지 고심했다.
키네미아에 대한 감사와 애정으로 가득 차 있던 베히모스 자매였다. 별 의심 없이 ‘슬라임’은 키네미아가 차마 말하지 못한 숙원 사업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아직 아이 같은 면이 있으셔.”
“귀여우시다니까.”
자매는 그렇게 웃으면서 연구를 거듭했고, 진짜 마물 슬라임들을 만지면서 결국…….
키네미아는 제 앞에 올려진 슬라임을 만지작거렸다.
‘정말 만들어 냈잖아…….’
정말 가능했던 거야? 천재인가?
“대공녀께서는 천재이심이 분명합니다!”
미카엘라가 회의장의 테이블을 쾅 치며 말했다.
‘……!’
미카엘라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키네미아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이런 획기적인 생각. 대공녀께서는 천재 그 이상이십니다.”
미카엘라가 양손을 테이블 위에 짚고 키네미아를 존경 섞인 눈으로 응시했다.
애써 시선을 회피한 키네미아가 손을 들었다.
“……으응. 고맙네…….”
“대공녀께서 아직 11살이시라니, 이 미카엘라는 도통 믿기지가 않습니다. 저는 슬라임이란 장난감의 설명을 들었을 때, ‘아…… 리온 상단에 들어온 것에 한 점의 후회가 없다. 온갖 유명 가문의 제안을 모두 거절하고 리온 상단에 온 것은 전부 오늘을 위함이었다. 이 미카엘라 쿠퍼, 평생 키네미아 대공녀께 뼈를 묻겠다.’ 감히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키네미아는 미카엘라가 리온 상단에 들어온 건 고용 조건이 가장 괜찮았기 때문 아니냐는 말을 삼키기로 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키네미아 리온 찬송가를 읊던 미카엘라는 붉게 물든 얼굴로 큼큼 기침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이건 뜹니다. 무조건!”
미카엘라가 영상구로 띄운 화면을 가리키자 키네미아가 흐린 눈으로 정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슬라임의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대체…….’
키네미아가 다시 아연한 기분을 느끼며 입을 다무는 동안, 가신들이 일어서서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역시 훌륭하십니다.”
“대공녀께서는 슬라임계의 지존이십니다!”
“지존이십니다!”
가신들의 입에서 듣기 싫은 찬사가 쏟아졌다.
‘싫다…….’
키네미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저 둘러대려고 말한 것뿐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슬라임계의 지존도 장인도 생겨나 버렸다.
미카엘라는 돈을 벌 생각에 적잖이 흥분했는지 작은 눈동자를 시종일관 반짝거렸다.
“어떻게…… 마물을 가공하실 생각을 하시다니……!”
‘이걸 만들려고 한 건 아니지만…….’
키네미아가 슬라임을 만지작거렸다.
촉감은 보드랍고 말캉거렸는데, 만져도 부스러지지 않을 만큼 단단했다.
제국의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모래 장난감이나 밀가루 반죽보다 훨씬 효용성이 높은 제품인 건 확실하다.
미카엘라가 재차 말을 이어 갔다.
“마물의 단단한 뼈나 가죽처럼 특수한 기술이 필요한 부위도 아니라, 적당한 기술자들을 모아 대량 생산이 가능한 점…….”
잠깐, 그럼 대체 어느 부위로 만들었다는 거지?
“이 슬라임, 어느 부위로 만든 건데?”
“아, 그건-”
미카엘라가 웃었다.
“-슬라임의 체액과 (삐-)입니다.”
툭, 키네미아의 손에서 슬라임이 떨어져 내렸다.
* * *
– 정말 마력은 없어 보이는구나.
“…….”
종달새가 되어 간간이 찾아오는 스승은 오늘도 에이얀의 어깨에 앉아 말을 걸고 있었다.
지붕 끄트머리에 앉아 있던 에이얀은 입을 다물고 키네미아를 내려다보았다.
연한 금발의 아이는 대장장이 자매와 함께 조잘거리며 산책을 하는 중이었다.
– 특별한 점은 없어 보인다만…….
처음 키네미아를 만난 이후로 수개월. 키네미아에게서는 여전히 마력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았고, 그걸 감춘다거나 신경 쓰는 기색도 아니었다.
스승과 제 감각을 피해 마력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기에는 어폐가 있어 보일 정도로…….
– 저 아이의 체질이 특별할 수도 있다. 마력에 예민한 이들이 종종 있으니까.
“그렇습니까.”
제일 그럴듯한 가설을 세워 봤지만 에이얀은 별로 수긍하는 것 같지 않은 투였다.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게 마법사의 본능이라지만…….’
종달새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에이얀의 이런 행보에는 무언가 걸리적거리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도 같은,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 언제까지 여기서 지낼 테냐.
“상처가 다 나을 때까지 있을 생각입니다.”
–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다고?!
몇 개월이 지났건만…… 그가 말을 줄이는데, 에이얀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예. 이번에 워낙 호되게 당하지 않았습니까.”
– 네가?
에이얀은 그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당한 건 그쪽이겠지. 마법사가 몇이나 죽어 나갔는데…….
워낙 손속이 잔인해 산전수전 다 겪었던 그조차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아무리 본보기였다고는 하지만.’
원로들이 화가 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아무리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상대긴 하나, 마법사에 대한 존중이 전혀 보이지 않던 그의 잔인함 때문에.
아직도 원로들은 에이얀이 마탑주가 되면 대륙에- 아니, 세계에 큰 화를 만들 거라 주장하며 적대적인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
“라이언은 제가 보이지 않아 속 시원해하고 있겠군요.”
라이언뿐인가. 온 마탑이 너의 부재를 기뻐하고 있단다, 라는 말이 혀까지 치달아 올랐지만 스승은 이를 꿀꺽 삼켰다.
에이얀은 그런 상황을 만든 제 자신에게 반성은커녕 더 기뻐할 녀석이었으니까.
– 라이언, 그 녀석은 뭐. 녀석도 근신 중이지…….
라이언은 에이얀을 죽이기 위해 이번 일을 꾸민 마탑의 상급 마법사였다.
젊고 총명하고 충분히 실력이 있었지만, 쉬이 분을 참지 못했고 야망이 너무 컸다.
‘에이얀이 없었다면 라이언이 리카샤가 될 수도 있었겠지.’
라이언도 이를 알고 있으리라. 아주 사무치게.
불행한 것은 에이얀 또한 그의 마음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단 사실이었다.
에이얀은 라이언이 제게 가진 열등감과 경쟁심을 이용해 그를 도발하고, 화를 참지 못한 라이언을 능멸하고 모욕했다.
‘그래서 그 사달을…….’
에이얀에게 이를 가는 마법사들이 많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라이언의 지휘하에 모여 에이얀을 치려고까지 할 줄이야.
결국 열댓 명의 마법사들은 모두 사망했고, 라이언은 겨우 도망쳤지만 한쪽 눈을 잃었다.
‘에이얀이 여기 있는 걸 그놈이 알지 못해야 할 텐데.’
종달새가 뾰로롱 울었다.
‘아직은 근신 중이라 일을 벌이지도 못하겠지만…….’
그가 시선을 내렸다. 바로 아래에서는 키네미아와 자매가 그들 아래를 종종걸음으로 지나가는 중이었다.
꽃처럼 웃을 줄 아는 귀여운 소녀는 자매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시시각각 표정을 바꾸고 있었다.
키네미아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전부 숨겨 버리는 에이얀과는 다르게, 저를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소녀였다.
그는 작은 날개로 턱을 쓸었다.
‘소문은 역시 악의적인 낭설일 뿐이었나.’
저리 귀엽고 사랑스러운 소녀를 악녀라 부르는 이들이 제국에 셀 수 없이 많다니.
그들이 진실에 관심이나 있을까. 그저 가십거리로 소비하는 것을 즐기는 데만 관심이 있을 뿐이겠지.
‘안타까운 아이들이구만…….’
에이얀에게로 시선을 돌린 종달새가 다시 한번 뾰로롱 울었다. 7살에 버려진 에이얀도 그리 행복한 과거를 가진 아이는 아니었으니까.
에이얀은 이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행동하고는 있었지만-
‘……그렇지 않겠지.’
그럴 수 없다. 인간인 이상은.
그 상처는 아마 에이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아주 깊은 곳에 잠들어 있으리라.
아까부터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에이얀은 키네미아를 내려다보며 무언가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이 녀석이 솔직해질 때가 오긴 하려나? 쯧쯧쯧.’
종달새가 고개를 내젓는데 에이얀이 문득 입을 열었다.
“알아보죠.”
– 뭐를?
다짜고짜 꺼낸 이야기에 스승이 되묻자 에이얀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정말 대공녀 아가씨에게 특별한 게 없는지. 알아보면 되잖습니까.”
– 내내 해 왔지 않느냐.
그걸 시험해 보려고 일부러 위험에 빠진 키네미아를 지켜보기도 하고, 지금까지 몇 개월 동안 주위를 맴돌지 않았는가.
“아시잖아요. 한 가지, 안 해 본 게 있다는 걸.”
그리 말한 에이얀이 지붕 끝을 딛고 일어섰다.
안 해 본 거라니? 종달새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부산히 움직이다 충격이라도 받은 듯 펄떡거리며 날갯짓을 했다.
– 에이얀! 너 설마 정신계 마법을 쓰려는 건 아니겠지?
제 눈앞을 막아서듯 날아오른 종달새를 보며 에이얀이 걸음을 멈춰 섰다.
– 아니 된다! 사람한테 정신계 마법을 쓰는 건 금지야!
최면, 세뇌 등과 같은 사람의 정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마법은 마법사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금지되어 있었다.
워낙 어려운 마법이라 성공시키는 것부터가 어렵긴 하지만.
– 다른 사람의 정신을 조종하려 하다니! 금지 마법이 괜히 금지인 줄 알아?!
그러자 에이얀이 눈을 접으며 웃었다.
“금지된 일들은 제가 늘 해 오던 일이잖습니까.”
– 뭐…… 뭐라?!
스승이 그의 뻔뻔한 대꾸에 당황하는 사이, 에이얀이 휙 몸을 돌렸다.
– 에이얀-!
하지만 에이얀의 자취는 이미 사라진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