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41)
먼치킨 길들이기 141화
* * *
‘이건 함정이야.’
정신 똑바로 차려. 휘둘리지 마!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을 되새기며 키네미아는 맞잡은 아이리아의 손을 바라보았다.
아이리아는 다짜고짜 키네미아의 손을 붙들고 달리기 시작했고, 키네미아는 얼결에 함께 움직이는 중이었다.
문득 죽은 아이를 뿌리치지 못하고 잡아먹혔을 슈제트의 엄마가 떠올랐다.
“사랑하는 자를 되돌려 줄 것이다.”
지능이 있는 마물을 휘하에 두고 움직일 수 있다면, 죽은 자를 되살려서 이용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닐 터.
더군다나 이렇게 뛰어난 사령술사라면 사령을 부리는 건 어린아이의 손가락을 꺾는 것처럼 쉬운 일일 것이다.
지난 사례들을 떠올려 보면, 엄마가 나를 데려가는 것도 먹기 위함일까? 날 모르간의 제물로 삼기 위해서?
어떤 이유건 간에 이건 함정이다.
‘다 알아.’
그렇기에 키네미아는 현재 상황에 굉장히 적절한 답을 알고 있었다.
‘엄마의 손을 뿌리치는 거야. 지금 당장.’
하지만 몸은 좀처럼 머리를 따라 주질 않았다.
그러한 와중에도 숲의 나무들 사이로 낮은 가지들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지금은 놓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 않나? 한 발자국 떼기도 어려운 수풀 사이에서 엄마와 실랑이를 벌일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엄마는 손꼽히는 영웅이었다. 아까의 기억을 돌이켜 봤을 때, 그녀의 실력은 죽음을 거친 이후에도 녹슬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런 환경은 불리할 수 있다. 그녀를 막아 내려면 운신이 수월한 곳으로 가야 했다.
‘맞아, 그래야 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제멋대로 합리화가 이어졌다. 그러나 그녀에게 있어서 지금의 결정은 아주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느껴졌다.
이대로 한 발자국만 더 가자.
조금만 더 가서 공터가 보이면 놓자. 싸움을 벌이든 도망을 가든 그때 가서 결정하자.
‘그 전에 딱 한마디만 하고.’
그냥 너무 그리웠다고, 이 한마디만.
울컥, 무언가 차올랐지만 입술을 깨물어 참았다. 콧잔등이 시큰하고 눈앞이 희뿌옇게 물들어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손이 너무 찬데 놓고 싶지 않았다.
키네미아는 그저 손을 바투 끌어 잡았다. 아이리아의 손이 마주 힘을 주었다.
이내 공터가 보였다. 무슨 이유인지 멈칫한 아이리아가 손에 오러를 담았다.
선택을 주저하던 키네미아의 얼굴에 절망이 서렸다.
어떻게 하지. 갈팡질팡 어쩔 줄 모르면서 키네미아가 검을 잡으려는 순간이었다.
“쉬이-”
아이리아가 검지로 입술을 막았다.
그녀가 원한 대로 숨을 죽인 채 귀를 기울이자 근방에서 마물의 기척이 느껴졌다.
발소리로 가늠하건대 한둘이 아니다. 군단 단위였다. 방향은 아마도 성벽 쪽. 일행이 있는 곳이겠지.
삽시간에 싸한 현실감이 덮쳐 들어왔다. 갈팡질팡하며 망설일 때가 아닌데. 지금 제 어깨에 짊어진 목숨이 한둘이 아니지 않던가.
‘사람들에게 알려 줘야 해.’
만약 마물의 군단이 후방으로 진격한다면 승세가 기울어질지도 모른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어서 돌아가야 하는데, 엄마는 손을 놓지 않았다.
키네미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리아는 방향을 바꿔 마물이 있는 곳을 피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엄마. 잠깐만-”
키네미아가 겨우 따라잡을 정도로 빠르게 달린 아이리아가 다다른 곳은 언덕배기 위에 선 커다란 고목 앞이었다.
그녀는 밑동에 난 커다란 구멍에 키네미아를 밀어 넣었다.
“미아, 여기에 숨어 있어야 해.”
키네미아가 황급히 그녀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왜, 왜?”
정말 함정일까? 나를 여기에 두어서 일행들에게 경고하지 못하게 하려고? 사령술사에게 조종당하는 걸까? 엄마는 날 먹으러 온 거야?
숱한 의문들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아이리아는 경계하듯 주위를 살피고는 키네미아 앞에 앉아서 두 손을 포개어 잡았다.
“있잖아, 미아.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잘 들어야 해.”
그녀는 자신이 세상을 떠나던 해에서 키네미아가 자라지 않은 것처럼, 마치 7살짜리 아이인 것처럼 설명을 이어 나갔다.
“미아도 알겠지만 엄마는 하늘나라에서 쉬고 있었어. 그런데 나쁜 마법사가 엄마에게 나쁜 짓을 시키려고 마법을 건 거야. 그래서 이렇게 다시 미아를 보러 올 수 있게 되었지만, 오랫동안 같이 있을 수는 없어.”
“나쁜 짓?”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제국의 긴 역사에서도 독보적인 영웅이었던 아이리아는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서워하지 마. 엄마가 어떻게든 지켜 줄 거야.”
가슴이 세차게 울렁였다.
“나쁜 짓을 하지 않으면 엄마는 어떻게 되는데?”
아이리아는 딸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고목의 밑동에는 하얀 버섯들이 오밀조밀 자라나 있었다.
그녀는 손으로 버섯을 한 움큼 땄다.
“미아, 이건 먹어도 되는 거야.”
그녀가 두 손에 버섯을 들고 보여 주면서 웃었다. 어느새 그녀의 손가락은 아주 오래전에 꺾인 나뭇가지처럼 까맣게 말라붙어 있었다.
“이번에는 약속 지켰지?”
* * *
에버렛은 피비린내가 짙게 느껴지는 지하의 석실에서 발을 멈칫했다.
“그것참, 끔찍하군.”
“폐하.”
사령술사가 에버렛을 맞이해 허리를 숙였다. 기사들은 삼삼오오 모여 시체를 들고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에버렛은 참혹한 현장에 손수건으로 코를 가렸다.
“아이리아 리온의 짓인가?”
“예. 그 괴물 년이 이렇게…….”
사령술사는 분을 삭이며 이를 악물었다. 에버렛의 명에 따라 혼신의 힘을 다해 살려 내 주었건만, 그년은 제 주인의 말을 듣기는커녕 맨손으로 숙련된 기사를 수백이나 죽여 버렸다.
“그건 그렇고-”
에버렛은 희생자들에 대한 동정심 한 자락 느끼지 않는 것처럼 말을 이었다.
“그 괴물 년은 딸에게 갈 것 같은가?”
“사령들은 다 그렇습니다. 그리워하는 이를 찾고, 결국에는 이지를 잃어 피와 살을 탐하게 되지요.”
에버렛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도, 요제프 크로츠를 떠올렸다. 모든 사령이 이지를 잃진 않던데 말이지.
“자네도 알겠지만, 아이리아 리온은 전장에서 한두 번 구른 여자가 아니야. 정신력이 남다를 텐데.”
“걱정이 되십니까? 제약은 걸어 놓았습니다만…… 명하신다면 그년의 뇌를 뒤집어 놓을 수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대답이 들려오자 에버렛의 눈이 반짝였다.
“오, 잘했군. 자네는 왕실 주술사가 될 자질이 충분해.”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마지막 리온의 날개가 떨어진다니, 그것도 제 어미의 손에 의해서.
“벌써 기대가 되는군.”
모르간의 지하 석실에서는 갖가지 소리가 들려왔다.
대륙으로 향하는 마물의 날갯짓, 사령의 고통에 찬 신음 소리, 제물을 받고 부화하려는 모르간의 탐욕스러운 목 넘김.
그에게는 그 모든 소리가 마치 축제 같았다.
* * *
돌연 버섯이 빨갛게 보이자 아이리아는 눈을 감았다 떴다. 그 이후로 줄곧 눈앞이 붉게 물들었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이성이 바람 앞에 선 촛불처럼 깜빡였으나 그녀는 정신을 차리려 애를 썼다.
제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명확히 알지는 못했다.
살아 있을 때도 머리 쓰는 일은 늘 젬병이었지.
기억나는 것은 드문드문했다.
분명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눈을 떴다는 것.
“너는 네가 제일 사랑하는 아이의 피와 살을 갈구하게 될 거다.”
눈을 뜨자마자 뱀 같은 사령술사가 전한 말에 의해 분노에 뒤덮여 수많은 이들을 죽였던 것.
머리에 두건이 씌워진 채로 움직이던 마차 안에서 키네미아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
그녀를 알아본 것은 몸에 새겨진 본능이었다.
키네미아. 사랑하는 내 딸.
“흑-”
아이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너는 네가 제일 사랑하는 아이의 피와 살을 갈구하게 될 거다.”
빌어먹을 주술인지 뭔지가 머릿속을 시끄럽게 울려 댔지만 그녀는 그저 제 딸을 끌어안았다.
“울지 마. 우리 아기 토끼.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아이가 울면 이미 멎어서 딱딱해진 심장이 조여드는 것 같았다.
“대신 여기서 한 발자국도 나가면 안 돼. 밖은 무서운 마물들이 있으니까.”
아이리아가 키네미아를 숨이 막힐 정도로 끌어안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널 혼자 두는 게 아니었는데.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널 두고 떠나던 날은 어찌나 발길이 떨어지지 않던지 너는 알까.
나쁜 엄마가 되었다는 죄책감에 며칠을 괴로워했는지. 뒤를 따르는 기사들이 그녀를 아무리 칭송해도 실은 그들을 얼마나 탓했는지.
재차 머리가 조여 왔다. 뇌가 헤집어지는 느낌이 들면서 눈앞이 다시 붉게 물든다.
“그 어떤 것도 너한테 손 못 대게 할 거야.”
그르릉, 마치 짐승이 우는 것 같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이렇게 말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는데. 머릿속이 녹이 슨 것처럼 뻑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