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46)
먼치킨 길들이기 146화
* * *
“독이다! 피해!”
두 번째 고동이 끝나자 머리 위를 빙빙 돌던 가고일들이 독을 뱉기 시작했다.
“결계를 펼친다!”
울프만이 마법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다리를 구르려던 순간이었다.
“……!”
그는 제 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음을 느끼고 눈을 크게 떴다.
이제 그가 가용할 수 있는 마력은 많지 않았다. 사실 거의 바닥난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를 직감하자 선뜩한 질문이 치고 들어왔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게 아닐까?
지금이야말로 제약을 발동시켜야 하는 게 아닐까?
탑주가 된 이후로 모든 선택은 쉽지 않았다. 위치만큼 선택의 결과도 더 무거워졌으니까.
반면 이번 선택은 오히려 쉽다.
어떤 것을 가져다 대도 수억의 목숨과는 비교할 수 없을 테니까.
“탑주님, 이제 결계를 푸셔도 괜찮습니다. 더 무리하지 마십시오.”
“…….”
울프만은 자신을 걱정하는 원로를 향해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누구에게 책임을 떠넘길 것인가. 오롯이 그 자신이 떠안을 짐인 것을.
“그러지.”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꾸한 울프만이 결계를 거뒀다. 새어 나가던 마력은 이제 다른 곳에 써야 한다.
그가 마음을 다잡을 때였다.
쐐애애액-
기다란 검이 그의 얼굴 옆으로 날아갔다. 울프만의 시선이 검을 따랐다. 이내 검은 그를 덮치려던 가고일의 얼굴에 꽂혔다.
‘이 문양은…….’
울프만이 검에 새겨진 문양을 알아보는 사이, 마법사들의 뒤에서 함성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탑주님, 저것은……!”
그건 바로 사람의 물결이었다.
제국의 깃발을 선두에 둔 채 대륙 모든 왕국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각국의 내로라하는 정예 부대들이 전부 모인 것이다.
판금 갑옷으로 중무장한 기사들이 지휘에 맞춰 일시에 걸음을 멈추었다.
다각다각, 말을 타고 앞으로 나선 황제가 울프만에게 경의를 표했다. 울프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 프랜시스는 기사들을 향해 말을 돌렸다. 제 뒤를 따른 군단을 응시하며 그녀가 검을 들어 올렸다. 검 끝이 어둠으로 물든 하늘을 찔렀다.
“진군한다!”
이윽고 기사들이 썰물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어리벙벙한 얼굴이던 마법사들은 정신을 차리고, 자신들 사이로 날렵하게 빠져나가는 기사들을 엄호했다.
“겨우 시간을 맞췄군.”
작게 웃은 울프만의 턱으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키네미아와 에이얀이 결계를 깨러 간 사이, 그는 프랜시스와 밀담을 나누었었다. 결계가 무사히 깨진다면 마탑에서 왕국을 상대하는 동안 프랜시스가 다른 왕들을 설득해 지원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안도한 울프만이 휘청거리자 원로들이 탑주를 부축했다.
“무리하셨습니다.”
“탑주님, 마력이 모두 고갈되셨습니다. 쉬셔야 합니다.”
그도 자신의 상태는 익히 알고 있는 바였다. 하지만…… 그는 짙은 어둠을 응시하며 말했다.
“아니.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네.”
“뭘 하려 하십니까?”
“어둠을 거둬야지.”
“그걸 어떻게 하시려고요.”
걱정 어린 말에 울프만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내 아이를 바쳐서라도 해내야지.”
그가 바닥난 마력을 긁어모았다. 시야가 어지러운 이유가 고갈된 마력 때문인지, 잔인하게 밀려오는 슬픔 때문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안 됩니다, 탑주님.”
그를 막은 이는 어느새 그들 곁으로 다가와 있던 황제 프랜시스였다. 그녀가 진중한 표정으로 울프만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지금 그를 죽이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됩니다.”
* * *
“어떻게?”
요제프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에이얀이 손가락을 튕기자 마력은 분명 움직였다. 하지만 키네미아에게는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마력이 통하질 않아?’
당황한 것도 잠시, 짚이는 것이 하나 있었다.
“용사?”
키네미아가 정곡을 찔린 듯 어깨를 흠칫 떨었다.
‘이 남자,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요제프는 입 밖으로 내뱉지도 않은 키네미아의 물음을 읽은 것처럼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어둠 속에서 나는 모든 걸 들을 수 있었거든. 동서고금의 비술은 물론, 이 세계의 비밀까지.”
계획을 수정해야겠다.
마침 잘됐어. 모든 위험 요소를 없앨 수 있게 됐군.
요제프는 부러진 키네미아의 검을 주워 들었다.
“걱정 마, 용사 친구. 우리는 신세계에서 영원히 행복한 나날을 보낼 테니까. 그렇지, 얀?”
에이얀은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은 채 텅 빈 눈을 그에게로 향했다.
반응이 좋지 않다. 완전히 깨어난 셀테어의 영혼을 먹은 순간부터 그는 에이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본능적으로 알아채기 시작했다. 서로의 영혼이 이어진 것처럼.
때문에 이제 알고 있었다.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다는 것을.
‘빨리 죽여야겠어.’
그가 부러진 검을 드는 순간이었다.
“멍!”
짧게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륜?”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개 한 마리가 키네미아의 손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이 키네미아를 구속한 어둠의 용을 찢자, 키네미아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윽!’
고통을 감지한 키네미아가 목을 움츠렸다.
에이얀의 몸이 움직인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몸이 기억하듯 두 팔이 저절로 떨어지는 키네미아를 향해 움직였다. 이를 발견한 키네미아 또한 힘껏 손을 뻗었다.
요제프가 비명을 내질렀다.
“안 돼!”
용사인 걸 알게 된 이상 둘이 접촉하게 둘 순 없다. 키네미아의 힘이 에이얀의 속박을 풀어 버릴 테니까!
“으아아아아아아!”
요제프가 비명을 지르자 어둠의 용이 그의 의지에 따라 움직였다. 그러나 륜이 달려들어 막아섰다.
“에이얀!”
키네미아가 두 팔을 쫙 펼쳤다.
놔둘 수 없어! 요제프가 둘을 막기 위해 몸을 던졌다.
“에이얀! 그 애에게서 떨어져라!”
키네미아를 향해 뻗었던 에이얀의 팔이 움츠러들었다. 속박당한 뇌가 아버지의 말에 반응해 몸을 굳혔다.
키네미아가 온 힘을 다해 에이얀을 불렀다. 제발, 내 목소리가 닿기를.
“에이얀!”
그러자 뻣뻣한 몸이 움직임과 동시에 에이얀의 발이 주춤주춤 한 발자국 다가섰다.
쭉 뻗은 두 팔이 다가왔다. 곧 두 사람의 손가락이 얽혔다.
막혀 있던 둑이 무너지는 것처럼 에이얀의 머릿속으로 지난 기억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다신 잡혀 오지 마, 리카샤.”
“……네가 걱정돼.”
“불안해하지 마. 넌 내 사람이라고 했잖아.”
기다란 손가락이 단단히 깍지를 꼈다. 이내 강한 힘이 키네미아를 잡아당겼다.
* * *
두 주먹을 꼭 쥐고 눈을 질끈 감고 있던 키네미아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안겨 있다는 것을 깨닫자 조심스레 실눈을 떴다.
눈이 마주치자 소년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에, 에이얀이야?”
나 지금 속고 있는 건 아니겠지? 의심을 확인시켜 주듯 그가 다정히 이름을 불렀다.
“미아-”
다행이다. 다정한 목소리에 단숨에 맥이 풀렸다. 배시시 웃음을 지으며 에이얀의 목을 끌어안으려 할 때였다.
“-잘 있어.”
뭐?
에이얀이 손을 튕겼다. 딱 소리가 나는 것과 동시에 아공간이 열렸다. 안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왔고 세찬 바람에 키네미아가 아공간으로 빨려 들어갔다.
“에이얀!”
갑작스러운 상황에 애타게 소리쳤지만, 텅 빈 방 안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키네미아가 서 있는 곳은 익숙한 장소였다. 마탑 내 에이얀의 방. 순간 제일 안전한 곳으로 보낸 것이리라.
키네미아는 절뚝거리며 수많은 책들을 지나 책상 위로 다가갔다. 무수한 영상구에 모르간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에이얀의 사역마들이 모르간의 곳곳에서 보내는 영상들이었다.
키네미아는 성문으로 향하는 황제와 기사들, 발레리의 목을 베는 쉔 티엔과 로우, 마법사들에게 부축을 받고 있는 울프만을 지나 에이얀과 요제프의 모습을 찾아냈다.
“어째서…….”
에이얀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정말 내 안전만을 위해서 날 여기로 보낸 거야?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한 거야?
손끝이 저려 온다. 두려웠다. 안 좋은 예감이 이루어질 것만 같아서.
* * *
공기가 저릿했다. 요제프는 죽은 제 몸에서 털이 오소소 돋는 착각에 빠졌다.
“드디어-”
에이얀이 자조 섞인 웃음을 삼키고 말했다.
“-이제야 대화다운 대화가 가능하겠군요, 아버지.”
에이얀은 바닥에 떨어진 키네미아의 검을 쥐었다. 그가 부러진 검을 들자마자 부서진 조각들이 날아와 다시금 형형한 날을 완성했다.
그가 검을 든 뜻을 알아챈 요제프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제가 보내 드린 지옥은 편안하셨습니까?”
검 끝이 바닥을 긁었다. 기리릭, 기리리리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