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47)
먼치킨 길들이기 147화
“그 끔찍한 지옥에서 쉼 없이 널 저주했다, 이 패륜아야!”
음, 목을 울린 에이얀이 기분 좋은 듯 감미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런 말에 상처받을 나이는 이미 지났습니다. 이리 강하게 키워 주신 아버지 덕분입니다.”
에이얀이 한 발자국 다가서자 요제프가 한 발자국 물러났다. 요제프는 다시 그 옛날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제 아들 앞에서 언제나 힘없고, 무력하던 아버지로.
숨이 거칠어졌다. 기리리리릭- 검은 계속 그에게로 향했다. 자연히 공포와 분노, 원망이 뒤섞인 말이 새어 나왔다.
“또, 네가 나를…….”
요제프가 그때를 떠올리는 것을 아는 듯, 에이얀이 미소를 머금었다.
“아버지는 늘 제가 당신을 업신여긴다 생각하셨죠. 그런데 그때 제 눈에는 말입니다. 아버지가 정말 거대해 보였습니다. 아버지의 인정이 절대적인 무언가처럼 느껴졌었죠.”
에이얀이 경멸하듯 그를 내려다보았다.
“당신이 이토록 초라한 겁쟁이였음을 깨닫지도 못하고.”
요제프의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다시 그 지옥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잘 들어라, 얀. 네 힘에 의해 우리의 영혼은 완전히 이어졌어. 내 죽음은 너의 죽음과도 같아. 너도 느끼고 있겠지?”
“제게는 죽음보다 두려운 것이 있습니다.”
“그 여자아이를 말하는 거구나.”
요제프가 조소했다.
“나는 안다. 나는 알아. 네 사랑은 모두 거짓이다. 보아라, 네가 갈구하던 사랑이란 것을 주지 못한 내가 어찌 되었는지!”
일순 에이얀의 걸음이 멎었다. 제일 듣고 싶지 않았던 말에 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
“태어날 때부터 너는 인간 위의 존재였다. 네게 인간이란 하찮은 개미일 뿐이었지. 네 발밑을 봐, 네가 죽인 사람들의 시체가 산이 되어 있지 않니.”
에이얀이 그가 가리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뒤에 길게 늘어선 그림자가 절규하는 듯했다.
“네 걸음걸음마다 피로 물들었다. 너는 애초부터 짓밟는 것밖에 알지 못한 채 태어났어. 포식자가 사냥감을 사랑한다고? 그럴 수는 없지. 그건 애정 같은 것이 아니라 그저 소유하고 싶은 욕심이야. 욕심의 끝이 어떻게 되는지 나는 이미 잘 안다. 너란 괴물이 가졌다고 생각하는 그 사랑이란 것이 날 잡아먹었듯, 그 소녀도 잡아먹게 될 거다. 네 존재가, 네 힘이 그 아이에겐 영원한 걸림돌이 될 거야!”
“…….”
침묵 속에서 흥분한 요제프의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그간 속에 담아 둔 저주의 말을 모두 쏟아 낸 요제프는 씩씩거리던 숨을 가라앉혔다. 에이얀은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 입을 다문 채였다.
실수다. 공포에 질려 해선 안 될 말까지 꺼내고 말았다. 그는 다시 한 번 더 기회를 잡기 위해 세 치 혀를 놀렸다.
“에, 에이얀, 이제 내가 널 이끌어 줄 수 있다. 이제 무언가를 바랄 필요 없이 네 힘으로 원하는 모든 걸 손에 쥘 수 있어. 소녀를 위한 예쁜 새장을 만들어 주마. 영원히 널 위해 노래해 줄 거다.”
요제프가 열심히 말을 주워섬기는데, 에이얀이 덤덤하게 말했다.
“당신 말이 맞아.”
아버지라서일까. 확실히 그의 말은 대부분 맞았다. 에이얀에게 다른 인간은 언제나 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그가 가지고 태어난 강대한 힘이란 것은 늘 다른 존재를 하찮이 여기도록 만들곤 했다. 그 누구의 생사에도 관여할 수 있는 신 같은 힘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건, 인간으로서는 저주일지도 몰랐다.
“언제나 내가 문제였지.”
에이얀은 발목이 부러진 채 절뚝거리며 다가오던 키네미아를 바라보면서 심장을 짓누르는 무력감이 어떤 것인지 그제야 깨달았다.
의도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몇 번이고 그 애를 위험에 처하게 한 건 전부 그로 인해 비롯된 문제였다.
겨우 그 애를 끌어안았던 그 순간부터 결정은 내려졌다. 처음부터 모든 게 욕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신 같은 힘을 가진 대신, 평범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사랑한다 속삭이는 것들이 전부, 허락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 그럼!”
화색이 된 요제프가 손을 뻗었다. 제 손을 잡으라는 듯.
그러나 에이얀은 손을 잡는 대신 검을 들어 올렸다.
“네가 말한 사랑이 이런 거야?”
너는 날 미워할지도 모르지만.
이게 널 위해 내가 줄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 아닐까?
“이번에는 함께 가시죠, 아버지. 지옥으로.”
무심하게 휘두른 검은 요제프의 심장을 단번에 꿰뚫었다. 그와 동시에 에이얀의 팔찌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 * *
황제의 명에 따라 성문 안으로 기사들이 전진했다. 마법사들은 후방 지원을 위해 옆으로 물러났다.
쉔 티엔은 가뿐히 성벽 위에 올라서서 인파를 확인했다.
“이제 좀 쉬어도 되겠군.”
그가 성벽에 걸터앉아 허리춤에서 술병을 빼내자, 어느새 따라온 우진이 품 안에서 잔을 꺼냈다. 어찌나 자연스러운 모습인지, 쉔 티엔은 우진의 손에 들린 잔을 한 번 빤히 보더니 말했다.
“누가 보면 우리가 백년지기라도 되는 줄 알겠어.”
우진이 하핫, 웃으며 술을 받았다.
이를 지켜보던 로우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는 둘 사이를 가로질러 성벽을 발로 밟았다.
“이럴 때입니까?”
“로우도 한잔하지.”
우진이 친한 척 말을 걸었고.
“적절한 휴식도 전략이야.”
쉔 티엔이 어깨를 으쓱이며 술병을 들이켰다.
로우는 고개를 저으면서도 사투가 제법 힘들었던지 성벽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걸 보며 킬킬 웃은 쉔 티엔은 성벽 아래를 관찰하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우리 공주님은?”
“예?”
로우가 얼빠진 목소리로 대답하며 성벽 아래를 응시했다.
그러나 마탑주와 마법사들이 모여 있는 곳을 아무리 뒤져 보아도 금발의 소녀가 보이질 않았다. 당연히 마탑주와 함께 있을 줄 알았는데.
“성안인가?”
쉔 티엔이 심각한 얼굴로 일어섰다.
“잠깐.”
그들을 말린 것은 우진이었다.
우진은 창백한 얼굴을 더 새하얗게 물들인 채였다. 그는 수백 번 느꼈을지 수천 번 느꼈을지 모를 감각을 되새기며, 절망적인 말을 뱉어 냈다.
“실패했어.”
그와 함께 온 세상에 어둠이 눈처럼 쌓였다. 눈앞이 검게 물들었다.
28장 Whisper
영상구의 화면 안에서 에이얀은 아주 느리게 재생되는 것처럼 움직였다.
검날이 요제프의 심장을 꿰뚫음과 동시에 모든 빛이 꺼졌다.
키네미아는 어딘가에서 풀려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단숨에 진공 상태로 진입한 듯했다.
그 어떤 것도, 내 존재조차 분별할 수 없는 어둠 속으로.
영혼마저 심해에 잠식된 것처럼 감각은 마비되고 의식은 흐려졌다. 순식간에 모든 감정과 이지가 죽어 버린 듯도 했다. 흐린 의식은 자연스레 고요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그대로 심연 속에 잠길 때였다.
푸드덕거리며 까마귀가 나는 환영이 스쳤다. 키네미아는 순간 숨을 몰아쉬듯 눈을 떴다.
‘에이얀.’
그의 마지막을 떠올리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에이얀이 요제프와 함께 죽음을 선택했다. 아버지를 죽이는 데 망설임이 없던 그 손을 떠올리자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비로소 숨이 멎을 것 같은 아픔과 두려움이 엄습한다. 우진은 이렇게 통제할 수 없고 예견할 수 없는 상황을 수없이 겪었던 걸까.
무서워. 이제야 알았다. 뭐든 할 수 있으리란 낙천적인 믿음은 네가 옆에 있어 주기 때문이란 걸.
아무리 찾아보려 해도, 분별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에이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에이얀은 어떻게 된 걸까. 그대로 죽음을 맞이한 걸까? 날 혼자 놔둔 채로?
혼란한 가운데,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어둠을 펼칠 그릇이 없는 채로 어둠만이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걸까?
만약 그럴 수 없다면…….
[여기에 있어.]그때, 무언가가 귀엣말을 속삭였다.
‘……?’
어릴 적 머릿속에 박히던 것처럼, 그녀를 인도하듯.
[그는 여기에 있어.]키네미아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를 깨워.]이것이었나.
지난 시간 동안 용사가 한 번도 선택하지 않았던 길.
직접 어둠 속에 빠져 에이얀을 끄집어내는 선택.
에이얀을 사랑하지 않고서야 택할 수 없었을 돌파구.
“……고약하시네요.”
누구인지 모를 이에게 핀잔 섞인 말을 건넸지만, 입으로 꺼낸 말은 귀로 들려오지 않았다. 이를 의아하게 여기던 키네미아는 몸을 일으켰다.
“발목도 안 아프네.”
발목이 있을 법한 부분을 휘휘 돌려 보았다. 어둠 속에서는 관념적 존재가 된 것처럼 육체의 고통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고, 내가 진짜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곳.
이런 곳에서 널 깨울 방법이 있을까.
끙, 키네미아가 머리를 굴리다가 냅다 소리쳤다.
“에이얀! 얀! 이 바보야!!”
하지만 몇 번을 불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입만 뻐끔거리는 기분이었다.
나 사실 되게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막막함은 스스로에 대한 의심마저 불러일으켰다.
“방법이 있는 건가요…….”
소리 없는 물음에 누구도 답해 주지 않았다. 깨우라는 의무를 주었으면서 왜 방법은 알려 주지 않는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뭔가를 들었다고 착각한 것뿐인가…….’
사실 처음부터 전부 환청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존재하지도 않는 입술과 혀를 움직여 목소리를 낸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무엇을 들었다는 것조차 착각이었을지도.
“그냥 시간을 돌리고 썩어 문드러지는 게 나았을까…….”
체념에 반응하듯, 어둠 안에서 기묘한 반응이 일었다.
“에이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