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48)
먼치킨 길들이기 148화
분명 착각이 아니다.
의심하지 말자. 답은 여기에 있어.
말이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뭐든 해 보는 수밖에.
지금 너를 위해 내가 어떤 선택을 한 건지 협박이라도 해 볼까. 내가 평생 어둠에 잠겨 있는 꼴을 보고 싶냐고.
아니면 날 사랑한다면 고분고분 따르라고 해 볼까.
아니면…….
아니면…….
키네미아는 눈을 감았다.
무엇이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내 마음을 뒤흔들었던 사랑하는 엄마. 뒤이어 에이얀의 사랑은 거짓이라 절규하던 요제프의 말을 떠올렸다.
“얀!”
크게 소리치자 누군가가 돕기라도 하는 것처럼 파동이 일면서 소리가 뒤따랐다.
먹먹한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어둠 속에서 손이 보이기 시작했다. 앞을 향해 걷자 다리와 발이 나타났다.
어둠 속에서 온몸의 형태를 다시 만들어 내면서 키네미아가 담담히 말했다.
“얀. 우리는 가족이 될 거야.”
너는 이런 가족의 사랑에 비관적일 테지만.
그녀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작은 아이를 낳을 거야.”
내가 원하면 너도 별수 없잖아. 너는 나한테 약하니까.
“날 닮으면 정말 예쁘고 사랑스럽겠지.”
너무 작아서 무서울지도 몰라. 아기는 너무 작고 약하니까.
“선선한 바람이 부는 좋은 날에, 너는 아이의 손을 잡고 숲으로 산책을 나갈 거야. 아이가 보이지 않아 가슴을 졸이고, 숨어 있는 아이를 걱정스레 찾아다니기도 하겠지. 너는 한참이나 너를 골린 끝에 네 품으로 뛰어드는 아이를 안아 줄 거고, 노을이 지면 내가 걱정하지 않게 아이와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겠지.”
옷을 다 엉망진창으로 더럽히고 말이야. 그래도 반겨 줄 테지만.
“얀, 너는 우리 아이를 아주 사랑해 줄 거야. 너는 이제 그런 사랑을 할 거야.”
키네미아는 어린 에이얀의 앞에 섰다. 아이의 얼굴은 새카만 어둠으로 잠식돼 보이지 않았다.
뒤에 선 그림자처럼 누군가의 실루엣이 아이를 감싼 게 보였다. 요제프가 남긴 속박이었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키네미아가 보란 듯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어둠이 걷히고, 텅 비어 버린 검은 눈동자가 나타났다. 무표정한 얼굴에서 작은 망설임이 느껴졌다.
“그러니 이제 돌아가자.”
단단한 목소리에 아이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순간 새벽녘의 빛이 눈앞을 하얗게 물들였다.
* * *
황제 프랜시스는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그 어떤 어둠에도 잡아먹히지 않았던 것처럼 찬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왕국은 고요했다. 마물도, 사령도 모두 사라졌다. 상황을 모르는 기사들만이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기사들을 물리고 프랜시스가 성벽을 올랐다.
우진이 술을 홀짝이며 그녀를 반겼다.
“왔어?”
그녀는 성벽에 앉아 술잔을 건네받았다.
“잘못된 선택을 수천 번 반복한 누군가와는 다르긴 달랐나 봐.”
근데 이건 누구 술이야? 프랜시스가 술을 받아먹으면서도 어리둥절하다는 듯 물었다.
‘내 오랜 친구.’라고 대답한 우진이 성벽 아래로 내려간 쉔 티엔과 로우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수많은 시간을 지나면서 배운 게 하나 있는데.”
그가 술잔을 비우고 말을 이었다.
“후세대보다 뛰어난 전세대는 없다는 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은 늘 발전하고 앞으로 나아갔어. 내 후대는 나보다 현명한 길을 걸은 거겠지.”
“황제로서 듣기 좋은 말이네. 네 말이 맞다면 제국은 계속 발전할 테니.”
여상히 말한 프랜시스가 그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피.”
아, 우진이 손수건으로 피를 닦아 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라며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황궁으로 돌아가다 송장 보는 거 아닌가.”
아하하, 웃은 우진이 심각하게 대꾸했다.
“그럴지도.”
뭐? 프랜시스가 경악해 돌아보았고, 우진이 걱정 말라면서 누가 봐도 걱정될 만큼 흐느적거리며 일어섰다.
* * *
소년은 바닥에서 팔찌를 주워 들었다. 그는 자리에 동그랗게 쌓인 먼지가 휘날리는 것을 무감하게 응시했다. 먼지가 갈망하던 힘은 아직 소년의 안에 잠들어 있었다.
“컁!”
생각에 잠긴 그를 깨우듯 륜이 짧게 짖었다.
소년은 팔찌를 찬 후에 바로 마탑에 있는 제 방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책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더러운 방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찾는 이는 보이질 않았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사람의 흔적을 찾아 책상까지 발을 옮긴 그는 무언가를 발견한 후에야 숨을 골랐다.
에이얀이 책상 위에 걸터앉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책상 밑에 금색의 머리카락이 비죽 삐져나와 있었다.
그가 조심스레 이름을 불렀다.
“미아.”
이에 금세 불퉁한 목소리가 대꾸했다.
“……너 나한테 크게 잘못했어.”
“미안.”
한숨을 내쉰 에이얀이 한 손으로 눈을 짚으며 마른세수를 했다.
책상 위의 영상구에서 모든 걸 본 것이 분명했다. 너를 위한 선택이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더 화를 낼 테니까.
키네미아는 책상 아래 쪼그려 앉은 채 옆으로 눈을 굴렸다. 책상 위에 걸터앉은 에이얀의 다리만 보였다. 불현듯 열이 받은 키네미아가 다리를 주먹으로 팡팡 쳐 댔다.
“아야야.”
에이얀이 아픈 척 엄살을 피웠다.
“넌 더 맞아야 돼.”
키네미아는 분이 안 풀렸는지 몇 번이나 더 주먹을 휘둘렀다.
“너 내가 얼마나……!”
울먹이는 목소리가 나오자 입을 꾹 다물었다가 숨을 흥 내뱉고는 말을 이었다.
“일주일 동안 안 볼 거야.”
“뭐?”
에이얀이 화들짝 놀라 허리를 굽혔다. 잔뜩 뿔이 난 듯 파란 눈이 세모꼴이 되어 그를 노려보았다.
에이얀은 한껏 측은한 표정을 지은 채 키네미아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저리 가.”
그가 자신에게로 슬그머니 다가오려 하자 키네미아가 손을 쭉 뻗어 에이얀의 어깨를 밀었다. 에이얀이 자신을 밀어내는 손목을 잡았다.
“미안해.”
“…….”
애처롭게 눈을 내리까는 에이얀을 바라보며 키네미아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안다. 사실은 모든 선택이 이어져 옳은 답을 찾았다는 걸.
그럼에도 멀쩡히 에이얀의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영상구 속에서 너무나 쉽게 죽음을 택하던 그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실망스러움이 울컥울컥 차올랐다.
“너는, 왜 자꾸만 그렇게 쉽게 떠나려고 하는 건데?”
“그런 게 아니야, 절대.”
다급하게 고개를 든 에이얀의 손이 손목을 타고 올라가 깍지를 꼈다.
“이대로는, 내가 널 망칠 것 같았어.”
그건 죽는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이었다. 미간을 찌푸린 에이얀이 꼭 쥔 키네미아의 손등에 입술을 묻었다.
“쉽게 네 옆을 떠나려던 게 아니야.”
절대로. 에이얀은 절절한 진심을 꾹꾹 눌러 담듯 말했다.
“……알았어.”
하여간 사람을 약하게 만든다고 우물거린 키네미아는 에이얀의 턱을 잡아 들어 올리며 눈을 맞췄다.
“해 줄 얘기가 많아. 죽지 않는 용사랑 내 힘이랑, 너에 대한 것들……. 아무튼 희생하려고 하지 마. 거창하지만 이 세계를 위해서라도.”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에이얀이 눈을 접어 예쁘게 웃었다. 키네미아는 아직 모르는 모양이었다.
“네가 내 세계야.”
그가 키네미아의 손안에 볼을 기댔다.
“네가 날 미워해도, 이번처럼 좋은 결말을 맞지 못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했을 거야. 나한테 네가 아닌 건 아무 의미도 없으니까.”
말문이 막힌 듯했다. 키네미아가 뭐라 말해야 할지 새파란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사이, 에이얀이 앞으로 몸을 당겨 왔다.
에이얀은 품 안에 들어오는 작은 몸을 가두어 안았다.
“네가 아닌 다른 모든 것들은 어떤 것도 사랑할 수 없어. 그렇게 태어난 것 같아.”
아버지의 말대로였다. 에이얀 크로츠는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애정을 가질 수 있는 인간은 될 수가 없다. 근본적으로 무리일 터였다.
네가 아닌 아이를 사랑하고, 네가 원하는 삶을 보여 줄 자신이 없는데. 네가 내민 손은 왜 그렇게 잡고 싶었는지.
애정이 아니라 그저 가지고 싶은 욕심일 뿐이라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줄곧 귓가를 맴돌았다.
애정인지, 욕심인지. 감정의 이름은 알 수 없으나 어떤 식으로든 그녀의 곁에 있고 싶은 갈망 하나만은 알았다.
“네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없어서 미안해.”
키네미아를 안은 팔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실망할 모습이 두려워서 품에서 놓을 수도, 표정을 볼 수도 없다. 그에 대한 연민이나 세계를 위한다는 거창한 목적을 위해서라도 좋으니까, 단지 곁에 있어 주길 바랄 뿐이다.
“그런 걱정 할 필요 없어.”
어느새 품에서 꼬물꼬물 벗어난 키네미아가 두 손으로 에이얀의 얼굴을 짝, 소리를 내어 쳤다.
“우리 아이는 날 닮아서 네가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을 테니까.”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자신만만한 말에 무심코 웃음이 터졌다. 키네미아가 마주 웃었다.
“그만큼 네 세계도 넓어질 거야. 너도 나 말고 다른 것들을 지키고 싶어질 거야.”
키네미아는 그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달콤한 미래를 보여 주며 눈을 반짝였다.
“또 네가 힘들어져서 어둠에 빠지면 내가 널 구하러 갈게, 몇 번이고. ……그러니까, 떠나려 하지 말고 내 옆에 있어.”
눈을 마주친 채로 키네미아가 부끄러운 듯 배시시 웃었다.
아버지는 틀렸다. 이 감정은 사랑이 아닐 수가 없어.
에이얀은 키네미아의 손에, 눈가와 볼에 입을 맞췄다. 귓가에서 작은 새가 지저귀는 것처럼 웃음소리가 터졌다.
“사랑해, 미아.”
불안과 두려움은 언제나 그의 등 뒤에 서 있을 터였다. 그래도 좋았다.
내 어둠을 걷는 건 언제나 너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