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49)
먼치킨 길들이기 149화
EPILOG
어둠에 잡아먹혔던 세계의 기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모양이었다.
스멀스멀 피어나던 어둠은 모르간이 내뿜은 사악한 힘으로 일컬어졌고, 세계가 멸망했던 순간은 송두리째 지워졌다.
끔찍했던 지난 시간들은 이렇게 표현됐다.
멸망했던 왕국이 대륙을 뒤흔들었지만, 마탑이 나서고 제국이 뒤따라, 악을 물리치고 세계는 평화를 이룩했다고.
‘오히려 좋은 일이지, 뭐.’
세계가 아예 멸망했었다는 걸 사람들이 기억해 봤자 혼란만 가중될 뿐이었다.
키네미아는 혜민원, 베히모스와 함께 영지의 곳곳을 돌며 보수를 도왔고, 시간은 금방 흘러 리온 대공 작위 수여식 날이 되었다.
리온 대공 작위 수여식은 황실의 알현실에서 성대하게 이루어졌다. 황제가 리온 대공을 위해 성대한 연회를 열겠다는 말에 다른 귀족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것은 덤이었다.
키네미아가 감사를 표하자, 프랜시스가 미소를 지었다
“감사는 내가 해야지. 알아 두게, 내가 리온 대공을 참 아낀다는 걸.”
황제의 폭탄 같은 발언에 수도는 내내 시끄러웠다.
귀족들이 대공가로 득달같이 모여들자, 키네미아는 혜민원으로 피신했다.
하지만 거기서도 결국 대공 전하가 되셨다며, 저만 보면 만세를 외치는 혜민원 사람들을 피해 후원으로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후원에서는 쉔 티엔과 우진이 창가에 앉아 술잔을 주고받고 있었고, 그 옆에서는 로우가 꾸물꾸물 자수를 놓고 있었다.
우진은 크- 소리를 내며 술잔을 테이블 위에 탁 놓더니 자랑스레 자신의 무용담을 펼쳤다.
“동대륙에도 갔었지, 물론. 불로불사의 영약을 찾는 황제한테 도망 다니기도 했고. 쿨럭.”
“수천 년을 살아서 한 게 고작 도망이란 말이냐?”
쉔 티엔이 핀잔을 주자 우진이 아주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약하단다. 무지하게.”
“제가 봐도 우진 님에게서는 유약함이 한눈에 느껴집니다.”
로우가 말을 거들었다. 편을 드는 건지 면박을 주는 건지 모르겠지만.
“남는 건 힘보다는 연륜이지, 연륜.”
우진이 웃으며 말했고, 로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단호하게 답했다.
“그것도 보이진 않습니다.”
우진이 속상하다며 울먹이자 쉔 티엔이 낄낄대며 비웃었다.
키네미아는 팔자 좋게 놀고 있는 셋을 바라보며 팔짱을 낀 채 눈을 가늘게 떴다.
세상에 저렇게나 입이 싼 (전직)용사가 있을까? 저리 쉽게 누구에게나 알려 주는 비밀이었어? 나한테는 도서관의 지박령이니 뭐니 하며 정체를 숨겼으면서?
그때, 쉔 티엔이 키네미아를 발견하고 손을 들어 반겼다.
“우리 대공 전하 아니신가.”
“오셨습니까. 작위 수여 축하 선물로 리온의 까마귀를 수놓고 있었습니다.”
로우가 자수를 들어 올렸다.
고마워, 키네미아가 웃으며 로우의 선물을 보다가 날카로운 눈으로 우진을 흘겼다. 아하하, 웃던 우진이 옆으로 눈을 굴리며 술을 홀짝였다.
쉔 티엔이 키네미아의 시선이 닿은 곳을 알아차리고는 말했다.
“아, 뻥이 좀 심해도 착한 친구야. 술맛도 잘 알고.”
“아니, 친구. 뻥이라니. 전부 다 진실이라니까?”
우진이 난처한 기색으로 변명하자 키네미아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하긴, 쉽게 믿을 만한 이야기는 아니지.
그가 변명하듯 자신의 영웅담을 늘어놓는 사이, 키네미아는 테이블 한 자리에 앉아 술잔을 받았다. 그러고는 자신이 용사임을 떠들어 대는 우진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가 물었다.
“그런데 신과의 계약을 마친 (전직)용사는 이제 어떻게 돼?”
우진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글쎄다, 나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미래라서.”
쉔 티엔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용사가 다 있나. 세계가 벌써 몇백 번은 멸망했겠구만.”
“동의합니다.”
자수 실을 쭉 당기던 로우가 동의했다.
이에 우진이 힘없는 팔로 테이블을 통통 두드렸다.
“아니, 마지막에는 성공했다니까 그러네. 그러니까 세계가 이렇게 평화로운 거지.”
우진이 ‘그렇지?’라며 키네미아에게 동의를 구했다. 한숨을 폭 쉰 키네미아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에 우진은 빙긋이 웃으며 키네미아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직 계약은 남아 있잖아. 앞으로 (현직)용사는 어떻게 할 것 같니?”
음, 목을 울린 키네미아는 술을 홀짝 들이켠 후에 말했다.
“아주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 그때에 맞는 선택을 하겠지. 지금은 말고.”
키네미아는 그들과 담소와 함께 술 한 잔을 나누고 대공가의 별장으로 돌아왔다.
집무실 책상 위에는 수많은 선물과 초대장이 잔뜩 쌓여 있었다.
키네미아는 유모가 건네는 초대장을 받아 비행기를 접어 날리면서 투덜거렸다.
“흥, 기회주의자들.”
바네사가 일순 흠칫하며 키네미아를 돌아보았다. 저 거만한 언행, 오만한 태도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그녀는 키네미아의 얼굴을 붙들고 눈을 맞춘 채 진중하게 말했다.
“대공 전하, 제 말 잘 들으세요.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재떨이를 던지시거나, 모멸감을 주는 언행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셔야 합니다.”
“응? 갑자기?”
바네사가 걱정스레 입을 틀어막았다.
“전하께서 전전대 주인님께서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을 입에 올리시니, 저도 모르게 걱정이…….”
내가 할아버지를? 나도 모르게 업보를 쌓고 있나? 키네미아가 우수수 내다 버렸던 초대장을 다시 끌어모았다.
“유모, 걱정 마. 다시 볼게. 울지 마, 응?”
키네미아가 울먹이는 유모의 어깨를 두드리는데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들어와.”
문이 열리고 시종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마탑에서 전하를 꼭 뵈어야 한다고…….”
“대공 전하!”
그 뒤를 득달같이 따라온 주디스가 손을 흔들었다.
키네미아가 그녀를 반기려는데, 주디스에 이어 마법사들이 우르르 안으로 밀고 들어오더니 키네미아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전하! 마탑을 굽어살피셔야 합니다!”
“음?”
뭐? 나? 내가?
당황한 기색으로 눈을 깜박이자 마법사들을 대표해서 주디스가 침착하게 설명했다.
“리카샤께서 마탑의 일은 모르겠다고 하고 떠나셨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키네미아가 전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갸웃거리자 주디스가 애처로이 외쳤다.
“자기는 이제 공식적으로 대공비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뭐?!”
키네미아가 비명을 질렀고, 바네사가 손에 들고 있던 티 세트를 와장창 떨어트렸다.
유모가 말을 더듬으며 키네미아를 향해 물었다.
“어, 어, 어, 언제……!”
“아니야! 유모, 오해야!”
두 손과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부정해 봤지만 유모는 이미 사색이 된 채였다.
“그런 적 없어!”
“그, 그럼…….”
키네미아와 바네사가 동시에 마법사 일행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졸지에 괴소문을 퍼트리게 된 주디스가 땀을 뻘뻘 흘리며 부연했다.
“그, 그게, 분명 본인 입으로 그러셨습니다. 얼마 전에 대공 전하께 찐한 청혼을 받아서 수락했다고.”
얼마 전? 찐한 청혼? 키네미아의 머릿속이 지난날을 떠올리며 세차게 굴러갔다.
“얀. 우리는 가족이 될 거야.”
“그, 그건……!”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아니, 사실이긴 하지만!
차마 아니라고는 하지 못하고, 단숨에 말문이 막혀 입만 뻐끔거렸다.
‘했구나.’
‘했어.’
대공이 강하게 부인하지 못하자, 모두 그렇게 확신하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미친! 키네미아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이제 내조에 집중하기 위해 신부 수업을 받아야 한다면서 마탑을 떠나셨고, 탑주님께서는 위험인물이 탈주했다며 쫓아가셔서 지금 마탑은 지도자 없이 텅텅 비어 있는 상황입니다. 마탑에는 마력을 채우느라 앓아누운 마법사들이 천지인데 말이죠…….”
제발 거짓말이라고 말해……. 키네미아는 눈앞이 어질어질해짐을 느꼈다.
“대공 전하……. 저랑 천년만년 살겠다고 하셔 놓고…….”
설상가상으로 바네사는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이었다.
“아, 아니야, 유모! 이거 다 거짓말이야! 그런 적 없어!”
바네사를 달래기 위해 이건 다 비열한 마법사의 중상모략이라면서 애꿎은 마법사들에게 화살을 돌릴 때였다.
돌연 누군가 나타나, 뒤에서 키네미아를 끌어안았다. 그는 키네미아의 정수리에 턱을 올리고는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짓말이라고 하면 나 서운해.”
“너어!”
키네미아가 머리로 에이얀의 턱을 들이받았다.
“아야야.”
에이얀이 턱을 문지르며 시무룩하게 웅얼거렸다.
“미아, 이러기야?”
“그건 내가 할 말이야!”
이, 이렇게 대놓고 떠들고 다니는 게 어디 있어?! 키네미아가 눈을 부릅뜨고 마법사들을 손가락질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이얀은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는 다시 슬그머니 키네미아를 끌어안았다.
“다 새빨간 거짓말이었어? 우리, 아이를 낳기로 했잖아.”
“그리고 작은 아이를 낳을 거야.”
키네미아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아! 그만 말하라고!”
어느새 엄마 미소를 지으며 흐뭇하게 자신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발견하고는 눈물을 글썽인 키네미아가 소리를 질렀다.
“그래! 다 거짓말이야! 무효야! 알겠어?! 제기랄!”
“여보, 우리 아이를 생각해서 이제 예쁜 말 해야지.”
으꺄아아아아악! 키네미아의 비명 소리가 집무실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