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6)
먼치킨 길들이기 16화
“너 뭐 했어?”
부루퉁한 표정으로 키네미아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니, 아무것도 안 했어. 그냥 네가 아직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아서.”
경계심을 풀지 않아서? 아니, 사실 마음의 문을 모두 열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약간의 틈만 있으면 마법은 먹혀드니까. 마탑에서도 저를 싫어하는 이들에게 이미 몇 번 시전해 봤던 경험이 있었다. 조건은 완벽했다.
그럼 도출되는 결론은 단 한 가지.
키네미아 리온에게는 마법이 먹히지 않는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자신에게 해가 되는 마법을 무의식중에 걸러 낸다는 게 맞을 것이다.
어째서?
어떻게?
새로운 의문들이 다시 머릿속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마력에 극도로 예민하면 이런 것들이 가능한가? 정말 그런 게 가능하긴 한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데도? 제게 마법을 쓴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걸 보면, 예민하다기보다는 극도로 둔한 것처럼 보였다.
그럼 대체…….
“진짜야?”
그때 키네미아가 에이얀을 바라보며 눈매를 좁혔다.
“솔직히 말해.”
제게 다시 벽을 세우는 키네미아를 마주하자 머릿속을 맴돌던 의문점들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
그러고는 에이얀 자신이 봐도 이상하다 생각될 정도로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방금 전까지 새카맣던 머릿속이 전부 날아간 듯 새하얗게 변해 버렸다.
‘……왜?’
에이얀이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지금껏 그는 제가 가진 의문점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알아냈다.
대상이 어떻게 되든, 어떤 반응을 보이든.
‘이런 적은 한 번도…….’
“에이얀.”
키네미아가 으르렁거리듯 그를 불렀다. 쯧, 속으로 혀를 찬 에이얀이 달래듯 말했다.
“정말 아니라니까.”
“그럼 뭐였는데.”
“졸린 것 같아서. 지금도 눈 다 못 뜨잖아.”
키네미아는 에이얀의 변명에도 아까의 행동이 걸리는 듯했지만…….
“그런데 미아는 숙부와 친한가 봐. 애칭으로 부르는 걸 보면.”
에이얀이 화제를 돌리려는 듯 말하자 그를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한숨을 내쉬고는 대꾸했다.
“하나 남은 가족이니까. 수도에서 자주 내려오시진 못해도 꼬박꼬박 편지를 써 주셔.”
제 당황을 완전히 감춘 에이얀은 다시 친밀한 어조로 화제를 이어 나갔다.
“귀족가는 원래 친척들끼리 자리싸움으로 사이가 나쁘지 않나.”
“다른 집안은 그럴지도……. 그렇지만 우리 숙부님은 그런 데 관심이 없으셔. 지금도 멀리 떠나서 시나 쓰고 싶어 하실걸. 장래 희망이 알디움 제국의 야벤 뵈텔러거든.”
야벤 뵈텔러는 루크 공국의 유명한 시인이었다.
숙부는 그의 시를 너무나 감명 깊게 본 나머지 그를 따라 한다고 매일 아침 장미를 푼 물에 몸을 담그고, 독한 술을 마시며, 지금은 사멸된 바크스어로 세상의 아름다움과 비장함을 떠들어 대곤 했다.
언젠가 한 교수에게 ‘당신 어법은 모조리 틀렸소.’라는 이야기를 듣고 눈물, 콧물을 한 바가지나 쏟았지만.
그리 말한 키네미아가 비실비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터트렸다.
에이얀은 그런 키네미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서늘하게까지 느껴졌던 심장 언저리에는 다시 꽃이 피듯 따스한 온기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시를 잘 쓰시나 보네.”
“아니.”
표정을 굳힌 키네미아가 단호하게 부정했다. 너도 이참에 알아 두라며,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른 거라면서.
“흐응.”
그녀가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동안 에이얀이 키네미아의 뾰족 선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침마다 머리가 서나 보네.’
저번에도 이랬는데. 자다 일어나 머리카락을 삐죽이 세웠던 키네미아를 떠올리고는 에이얀이 조용히 웃었다.
그때 키네미아가 에이얀의 옆구리로 시선을 돌렸다.
“……마탑은 야만적이야.”
“갑자기?”
에이얀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키네미아는 마탑 때문에 정말 화가 난다는 듯 씹어뱉듯 말했다.
“야만스러워.”
“왜? 리카샤가 되겠다고 내 옆구리를 뚫어서?”
“아아니!”
“그럼?”
“몰라.”
“말해 봐. 뭐 때문인데. 응?”
“모른다고.”
자신 때문에 키네미아가 저렇게 투덜거리듯 말하는 걸 보니 묘하게 기분이 들뜬다.
아까 세운 경계심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자 이내 짓궂은 마음이 새록새록 샘솟았다.
“난 가족이 없어. 7살 때 버려져서.”
순간 키네미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안쓰러움, 걱정, 염려, 동정, 연민.
에이얀은 내심 이런 모습이 보고 싶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저를 향한 경계가 아니라.
궁금증은 나중으로 미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갈 정도로.
“아버지가 나를 숲에 버렸어. 눈가리개를 씌우고.”
놀리고 싶다는 짓궂은 마음으로 꺼낸 말이었지만 거짓은 아니었다.
“아…….”
키네미아는 커다란 눈을 굴리더니 어쩔 줄 몰라 하며 말을 줄였다.
“…….”
“…….”
이내 둘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키네미아는 입을 벙긋거리다가 다시 다물면서 어떻게든 뭔가 위로의 말을 건네기 위해 노력하는 듯했으나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에이얀은 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끌어내렸다.
‘이쯤 해 둘까.’
그가 시무룩한 표정을 꾸며 내며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나 불쌍하지, 응?”
장난스레 말하자 키네미아의 얼굴이 다시 구겨지기 시작했다.
“아, 아아니! 아닌데! 내가 더 불쌍한데? 우리 부모님은 다 원한 살해당하셨는데?!”
“그래?”
키네미아가 지지 않겠다는 듯 당차게 말하다가 핫, 소리를 내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곤 후회가 가득한 표정으로 입매를 삐죽인다.
“……어…….”
돌연 키네미아가 귀를 축 늘어트린 토끼같이 시무룩해졌다.
“그러네. 우리 미아가 더 불쌍하네. 예뻐해 줘야지.”
몰래 피식피식 웃던 에이얀이 키네미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 마.”
“왜. 쓰다듬어 주는 건데.”
“나 갈 거야.”
키네미아가 벌떡 일어서는데, 에이얀이 키네미아의 손을 잡고 반대쪽 손을 딱 튕겼다.
‘그아아악!’
눈 깜짝할 사이에 방에 도착한 키네미아가 살랑거리며 위에서 떨어졌다. 에이얀이 그런 키네미아를 달랑 들어다 카펫 위에 바로 세웠다.
“……예고 좀 해 줄래?”
“다음에는.”
“저번에도 그 소리 했잖아.”
“아, 들켰네.”
“…….”
“화났어?”
키네미아가 말을 말자며 몸을 돌렸다. 나만 피곤해지지.
“아, 맞아. 갑자기 생각났는데.”
“응?”
“그때는 왜 마법으로 이동 안 한 거야?”
“언제?”
“개구리 간판 찾을 때.”
“아아…….”
“찾고 나서 그냥 마법으로 움직였으면 됐잖아. 이런 식으로.”
키네미아가 손가락 튕기는 시늉을 보였다. 그러자 에이얀이 그림처럼 빙그레 웃었다.
“잘 안 돼. 익숙한 장소가 아니면.”
키네미아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그를 응시했다. 그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가늠하는 것처럼.
그에 에이얀이 애교스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아직 2차 각성 전이잖아.”
키네미아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마법사같이 강대한 마력을 가진 이들은 2차 성장기 즈음에 2차 각성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몸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마력이 성장하면서 생기는 현상인데, 2차 각성 전이라는 건 마력이 전부 성장하기 전이라는 뜻이었다.
한데 2차 각성도 전인데 리카샤라니, 괴물 같은…….
“씻을래.”
키네미아는 손을 내젓고는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뭐, 목적지까지 잘 도착했는데 이제 와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욕실 안에 들어선 키네미아가 옷을 훌렁훌렁 벗어 던지고 거대한 탕 끄트머리에 발을 넣었다.
“7살 때 버려져서.”
사실 아직도 그 말이 진득하게 귓전에 달라붙어 있었다.
원작에서도 에이얀의 과거에 대해 짤막하게 나와 읽은 바가 있다.
‘거기서도 저렇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얘기했지.’
정말 별것 아닌 일처럼.
그럴 리 없을 텐데…….
키네미아가 따스한 물에 턱까지 몸을 담갔다.
‘7살…….’
그때면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였나. 키네미아는 한동안 미친 듯이 울어 젖혔던 제 7살 때를 떠올리면서 눈을 감았다.
자신으로서도 7살의 에이얀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
괜히 싱숭생숭한 마음에 울컥한 감정이 솟아오르자 키네미아가 물속에 머리를 끝까지 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