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7)
먼치킨 길들이기 17화
“푸-”
물 밖으로 머리를 내민 그녀가 향유 통이 있는 곳으로 느릿하게 헤엄쳤다.
아, 몰라. 어차피 상처만 나으면 헤어질 텐데. 괜히 신경 쓰지 말자. 키네미아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못 고친다고는 했지만 혹시 모르니 사제를 불러 상처를 한 번 보게 하는 게 낫겠지.’
시간이 약이라고는 하지만, 신성력이라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 * *
이내 씻고 나온 키네미아가 사제를 부르려던 때였다. 하녀 셰인이 손님의 방문을 알려 왔다.
“어!”
수염이 성성하게 난 노인이 키네미아에게 아는 척을 하며 다가왔다.
“허허, 대공녀. 많이 자라셨군요.”
엥!
“안드레아 사제님?”
“리온의 날개를 뵙습니다. 키네미아 아가씨, 오랜만에 찾아뵙게 되었네요.”
사제님, 양반은 못 되시는구나. 조그맣게 웃은 키네미아가 폴짝폴짝 뛰어 그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에 봬요, 사제님. 잘 지내셨어요?”
“저야 늘 신이 보내 주신 하루를 감사해하며 지내고 있지요. 아가씨는 점점 예뻐지십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아버지를 쏙 닮아 아름다운…… 어…… 아름다운…….”
안드레아의 말이 줄어들었다.
다시 되새김질된다. 아빠 트로이 리온은 미모로 사교계를 제패하고 치정 싸움에 휘말려 칼침 맞아 사망했다.
“…….”
“…….”
둘 사이에 불편한 침묵이 감돌았다. 안드레아는 성호를 긋고는 잠시 망자를 위한 기도문을 외웠다.
“대공녀, 선대 대공께서는 좋은 곳에 가셨을 겁니다.”
정말요……? 치정 싸움의 중심이 되어 칼침을 맞아도 좋은 곳에 갈 수 있나요? 그러나 키네미아는 혀까지 치달은 물음을 차마 내뱉을 수 없었다.
그냥 그렇게 믿자.
“그런데 사제님,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
“아, 그게…….”
안드레아가 말끝을 줄이자 키네미아가 옆에 서서 지켜보고 있던 하녀 셰인을 불렀다.
“아, 셰인. 응접실로 다과를 준비해 줘.”
“네, 아가씨.”
“사제님, 이쪽으로 오세요.”
안드레아가 허허, 웃으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 * *
“예?! 아, 뜨!”
날벼락 같은 소리에 뜨거운 차를 홀짝이던 키네미아가 얼얼한 혀를 빼냈다.
“괜찮으십니까?”
“괜, 괜찮아요. 그런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사제직에서 물러나신다니요?”
“저도 이제 많이 늙었으니까요. 신성력은 그릇에 담긴 물 같은 것이라, 저 정도 나이가 되면 다 소진하고 말지요.”
“아…….”
이렇게 갑자기……. 키네미아가 눈을 도르륵 굴렸다. 물론 오래 일해 주신 사제님이 떠나는 게 아쉬운 것도 있지만, 혀를 델 정도로 놀란 데에는 사실 다른 이유가 있었다.
“저어…… 사제님께서 떠나시면 저희 신전에 다른 사제분께서 언제 와 주실까요?”
“아…… 음…….”
안드레아의 표정이 낭패로 물들었다.
‘얼굴만 봐도 알겠어!’
안 온다. 이건 거의 99.98%의 확률로 오지 않을 거란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더 엄청난 이야기를 폭격하는 것처럼 떨어트렸다.
“제가 확언드릴 수 없는 부분이긴 합니다만…….”
설마…… 키네미아가 절망적인 상상을 머릿속에서 애써 지워 내려 했지만 현실은 상상 이상이었다.
“대공령의 신전은 폐쇄될 예정이라는 소리가 본관에서 나오더군요…….”
“그럼……!”
“예……. 교단은 대공령에서 아예 철수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안드레아는 염치가 없다는 듯 수염을 매만졌다.
‘왜죠!’
키네미아가 뎅,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굳어 있자 안드레아가 괜찮으신 거냐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 지…… 않아요.”
괜찮지 않다! 괜찮을 리가 없잖아!
“허허허…….”
그가 난처함이 가득 담은 웃음을 터트렸다.
‘갑자기 철수한다고?’
대공령이 돈이 안 되는 지역도 아니고…… 키네미아는 찻잔을 만지작거리면서 머리를 굴렸다.
갑자기? 이렇게 갑자기 폐쇄?
이유가 없진 않으리라. 리온에서는 사제 파견을 해 주는 대가로 신전에 충분한 값을 지불하고 있으니까.
“사제님. 있죠, 그 신전 폐쇄 건…….”
“예.”
“혹시 로슬린 공작님 때문인가요?”
로슬린 공작이 화두에 오르자 안드레아의 눈이 양옆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그것까지는 제가 잘…… 큼, 커흠! 목이 타네……. 컥!”
안드레아가 뜨거운 차를 벌컥벌컥 들이켜다 신성력으로 제 목을 치유하기 시작했다.
키네미아는 흐린 눈으로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제라 그런지 거짓말 못하시는구나.
로슬린 공작은 신전에 기부금을 제일 많이 내는 큰손 중의 큰손.
그리고 그가 누구냐 하면…….
‘아빠를 연모하다 혼인까지 깨 버린 페어리 로슬린의 아버지!’
페어리 로슬린은 가문의 불명예를 가져다준 것뿐만 아니라, 트로이 리온이 제안한 투자 사업에 거액을 쏟아붓기까지 했다.
그 거액은 트로이 리온의 죽음과 함께 공중분해되어 버렸고…….
‘이제 리온이라면 꼴도 보기 싫겠지.’
그가 신전에 ‘리온과 거래할 시 기부금을 끊겠다.’ 선언한다면 신전으로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터.
사실 키네미아로서도 공작의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이해는 되는데…….
그렇게 잔혹하게 거래를 끊으라고 하면 대공령 사람들의 치유는 누가 한단 말인가!
신성력의 존재로 인해 서대륙의 의술은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다. 의원이라고 해 봤자 어떤 병인지 진단을 하고, 괜찮은 약초를 선별해 상처에 대 주는 정도가 전부.
‘그러면 이제 우리 영지는…….’
참혹한 미래에 키네미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허허, 대공녀.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주신께서 도우실 겁니다.”
안드레아가 위로답지 않은 위로를 건네자 키네미아가 그를 멀거니 응시했다.
이에 안드레아가 큼,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 * *
‘이럴 수가…….’
키네미아는 안드레아를 떠나보내고 난 뒤 응접실 소파에 늘어지듯 누웠다.
불쌍한 안드레아를 닦달해 봤자였다. 그는 지금까지 대공령을 지켜 주지 않았는가. 오랫동안 리온과 교류해 온 정이 있어, 로슬린 공작의 압박에도 대공령을 지키고 있었던 거겠지.
‘힝.’
울상을 한 키네미아가 쭈글쭈글 소파에 몸을 웅크렸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하녀 셰인이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지만, 키네미아는 눈물이 차오르는 걸 애써 막아 내기에도 바빴다.
‘큰일 났잖아.’
가난한 영지민들은 영지를 떠날 수 없지만, 부유한 이들은 영지를 떠날 수 있다. 전생이나 현생이나 세상에 돈이면 안 되는 게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신전이 사라진 영지에 그들이 남아 있으려고 할까?
당연히 떠나겠지.
그렇게 되면 일단…….
‘리온은 빈 곳간……!’
게다가 부유한 영지민들이 떠나고, 남은 가난한 영지민들은 질병에 충분한 대처가 불가능할 터.
키네미아의 머릿속에 영지민들의 모습이 몽실몽실 떠올랐다.
‘신전의 폐쇄는 누구의 탓인가!’
‘저 리온의 악녀 때문이다!’
‘리온의 악녀를 매달아라!’
‘단두대다!’
뎅겅-
원한 엔딩이었다.
키네미아가 파르르 떨며 무릎을 끌어안았다.
‘방법이 필요해……!’
지금 생각나는 건 첫째, 공작에게 기부금 싸움을 건다.
단순히 말해 공작과 경매라도 붙은 것처럼 교단에 기부금을 쏟아붓는 것이다. 한 사람이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으음……!’
아빠가 벌어 놓은 돈과 영지로 들어오는 세금, 그리고 베히모스에서 차차 벌어들일 돈이면…….
머릿속에서 키네미아의 양팔 저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치킨 게임인데……?’
제국의 두 대귀족이 교단만 배 불려 주는 꼴이었다.
‘그럴 수는 없지.’
기부금에 휘둘려서 병자를 모른 척하는, 자비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배금주의의 화신들에게 좋은 일을 해 주고 싶진 않다.
그렇다면 두 번째, 신성력이 아닌 새로운 블루 오션을 찾아낸다.
블루 오션이라면…….
‘치유할 수 있는 능력자.’
키네미아는 이에 딱 알맞는 먼치킨의 이름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