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2)
먼치킨 길들이기 2화
* * *
아버지가 그렇게 한심한 최후를 맞던 무렵, 키네미아 리온의 나이는 10살.
그즈음부터였다. 원한이 켜켜이 쌓인 키네미아 리온에게 ‘할아버지의 포악함, 어머니의 공격성, 아버지의 미모를 이어받은 리온의 악녀’란 소문이 돌기 시작한 건.
다분히 악의적이었으나 누구도 굳이 리온의 편을 들어 주고 싶지는 않았으리라.
그렇게 소문은 입에서 입을 타고 제국 안팎으로 퍼져 나가기만 했다.
덕분에 리온은 귀족 사회에서 찬밥 신세였으며, 키네미아는 제대로 된 데뷔탕트는커녕 청혼서 하나 날아오지 않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그런 키네미아의 삶이 행복할 리가 있나.
삐뚤어질 대로 삐뚤어진 키네미아는 올곧은 악역의 길을 걷게 되는데…….
그런 키네미아의 마지막?
악독한 영주로 훌륭하게 자라나 단두대에 오른다. 잔뜩 분노한 영지민들의 호소를 들은 주인공에 의해서!
“지난 전염병도, 마물들의 습격도, 가혹한 세금도 전부 저 리온의 악녀 때문입니다!”
그리고 뎅겅-
키네미아의 안타까운 최후를 소설 속의 인물들은 혀를 차며 이렇게 표현했다.
저게 바로 지독한 원한의 끝이라고.
‘아니, 세금은 그렇다 쳐도 전염병과 마물의 습격, 이런 건 내 탓이 아니잖아?’
그러나 이미 굳어 버린 나쁜 소문에는 굴러가는 낙엽도 키네미아의 탓으로 만드는 힘이 있었으리라.
‘……제기랄.’
이 모든 걸 기억해 낸 키네미아는 절망했다.
‘어쩐지, 왜 우리 성에서는 파티를 열지 않느냐고 물을 때마다 다들 표정이 안 좋더라니.’
초대장을 보내 봐야 아무도 안 올 테니까 그랬겠지!
침대 위에서 몸을 둥글게 만 키네미아는 송골송골 맺히는 눈물을 닦아 냈다.
‘아, 눈에서 자꾸 땀이…….’
가문이 이렇게 된 게 어찌 키네미아의 잘못이겠는가.
그러나 이 세계에서 원한은 연좌제였나 보다.
* * *
이런 말도 안 되는 설정의 영주라니.
평범한 시대의 영주라도 갑갑했을 텐데, 마물이 날아다니고 던전이 튀어나오는 이세계에서 악녀라는 악독한 소문이 도는 영주였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안 봐도 훤했다.
바로 원한 살인 엔딩인 것이다.
‘망했어! 망했다고!’
그때였다.
유모 바네사가 요즘 따라 우울해하는 키네미아를 위해 먼 곳에서 왔다는 귀한 인형 하나를 공수해 주었던 건.
“이거 보세요, 아가씨. 노란색이 귀엽죠?”
곧 죽을 거 인형이 뭔 소용이냐며 투덜거리면서도 키네미아는 훌쩍거리면서 인형을 받아 들었다.
“이거 피카츄 닮았네.”
“……피, 뭐요?”
“아니야.”
바네사는 포켓몬스터 따위는 모를 테니까…….
……포켓몬스터?
그 순간, 키네미아에게 벼락처럼 영감이 떠올랐다.
이거다.
포켓몬스터.
초반에 운빨로 먼치킨 귀요미 피카츄를 뽑아서, 열심히 일하는 피카츄가 명예도 성공도 가져다주는 그 만화.
‘이거다아!’
키네미아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건 신이 내린 기회란 걸. 나도 피카츄를 구하면 되는 거란 걸.
원작을 읽었기에 어떤 인물들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숨죽여 있는지 키네미아는 전부 알고 있었다.
‘만약 그 먼치킨들을 내 세력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키네미아는 그들 옆에서 굿이나 보고 뽕이나 따면서 편안한 말년을 보내면 되는 것이다.
‘포켓몬스터처럼!’
싸움은 앞에서 귀여운 몬스터들이 하고, 주인은 뒤에서 응원만 하는 주제에 승리의 기쁨은 나눠 가지고, 보상은 주인이 배로 받는 그 만화처럼!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받는다 했던가.
하, 맙소사. 그 왕서방은 키네미아의 롤모델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건 상생이지!’
먼치킨들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주인공을 만나기 전까지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지 못하는 곳에서 숨죽여 지내고 있을 테니.
‘그래. 살아남자! 원한의 굴레를 모두 이겨 내고 살아남는 거야!’
키네미아는 노란 쥐 인형을 꼭 끌어안았다.
‘좋은 영주는 못 되더라도, 괜찮은 영주만 되면 되는 거잖아!’
큰 위기 없이 먹고살 만한 땅.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영주가 되면 나쁜 소문이야 한 귀로 듣고 흘리게 될 테니까!
키네미아는 당장에 일어나 노트를 펴고 쓸 만한 이들에 대한 정보를 적기 시작했다. 다행히 머릿속의 모든 정보들은 다시 책을 읽는 것처럼 생생했다.
‘내게 원한이 있는 사람들은 제외해야 해.’
원한이 있는 먼치킨이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렇게 보기 쉽게 정리하기 위해 이름과 정보를 적던 키네미아는 어느 순간 펜을 멈추고 한 이름 주위에 몇 번이고 동그라미를 그렸다.
에이얀 크로츠.
마탑주 후보로, 주인공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나타나던 베일에 싸인 인물.
‘음, 당장 만날 수 있는 먼치킨이긴 한데…….’
머릿속 저울이 위험도와 필요성 사이에서 이리저리 기울어졌다.
그리고 곧 ‘쿵!’ 하고 돌이 잔뜩 쌓인 듯 위험도 쪽으로 확 쏠렸다.
‘그래, 얘는 좀 위험하지…….’
주인공이 키네미아를 단두대로 보낼 때, 자신도 그녀에게 원한이 있다면서 도움을 줬던 인물 중 하나니까.
그는 어릴 적 마탑 내의 다툼에 의해 상처를 입고 쓰러졌다가 대공 성에 잡히게 되는데, 그때쯤 삐뚤어지기 시작한 키네미아의 장난감이 되어 원한을 쌓은 먼치킨이었다.
‘……에이얀은 버리자.’
원작에서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를 인물로 표현되어 있었고, 혹여나 있을 불상사를 감당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안 엮이는 게 제일이지.’
그리하여 지하 감옥으로 내려오게 된 것이다.
바로 지금.
저 먼치킨과의 인연을 끊어 버리기 위해.
“키네미아 리온 대공녀시다. 죄인은 무릎을 꿇고 예를 표하라.”
발목에 찬 족쇄가 철컹거렸다. 마력을 제어하기 위해 족쇄에 새긴 술식이 횃불의 빛을 받아 반짝였다.
“여기 이놈입니다, 아가씨.”
지금 키네미아의 앞에는 한 소년이 앉아 있었다.
‘에이얀.’
흔들리는 작은 횃불의 빛을 모두 빨아들이는 것처럼 가라앉은 흑색 눈동자가 키네미아를 응시했다.
‘원작에서도 그렇게 눈이 부신 미모를 강조하더니.’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목 위로 짧게 자른 검은 머리칼, 길고 날카로운 눈매, 아직 앳된 티를 벗어나지 못한 얼굴은 누군가 빚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매끄러웠다.
지금은 감옥에 갇혀 있는 터라 머리카락이 좀 푸석하고 더러웠지만, 깨끗하게 씻기고 잘 입혀 놓으면 어딜 가든 눈에 띄는 수려한 외모일 것이 분명했다.
그만큼 소년의 외모는 가히 독보적이었다. 에이얀을 본 유모가 저도 모르게 작게 탄성을 내질렀을 정도로.
눈이 마주치자 소년이 키네미아를 관찰하듯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리온의 인사는 ‘리온의 날개를 뵙습니다.’였던가. 대공녀 아가씨.”
“…….”
발목에 찬 족쇄에, 옆구리에 깊이 팬 상처까지. 무엇으로 보나 열세인 상황에서도 그에게서 풍겨지는 강자의 오만함이나 여유로움은 좀체 숨겨지지 않았다.
‘역시 위험한 놈이야.’
키네미아는 눈매를 좁혔다.
“대공녀면 대공녀고, 아가씨면 아가씨지. 대공녀 아가씨는 뭐야?”
나지막한 타박에도 에이얀은 사르르 눈웃음을 쳤다.
“잘 보이려고 두 번 말해 봤어.”
“잘 보이지 않아도 돼.”
“죄인의 소명도 안 들어 주고 그냥 죽이려고? 리온의 영주는 매정하네.”
죽인다고 죽어 줄 것도 아니면서 말은 잘하네.
“아직 영주도 아니고, 죽일 생각도 없어.”
“……?”
키네미아는 의아한 기색의 에이얀을 내버려 두고 간수에게 손짓했다.
“얘 풀어 줘.”
“예? 풀어 주라니요?”
간수와 마찬가지로 에이얀도 놀란 얼굴이었다.
“……왜?”
“풀어 주겠다는데 그게 왜 궁금해?”
“아, 날 도망가게 해서 인간 사냥을 하려는 건가?”
얘는 대체 날 뭘로 생각하는 거지?
“아니야.”
“정말?”
인간 사냥 같은 걸 할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되묻지 말라고.
키네미아가 찔끔 나올 것만 같은 눈물을 겨우 참아 냈다. 내 소문이 마탑에까지 퍼져 있었나. 억울하다.
“……뭐, 네가 원하면 해 줄 순 있어.”
“원하는 것 같아?”
“조금?”
“거짓말쟁이 아가씨네.”
키네미아는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렸다.
“나는 아직 유력한 리카샤(마탑주 후보)를 죽일 배짱이 없어서.”
“……?”
물 흐르듯 이어졌던 에이얀의 말이 처음으로 막혔다.
“어떻게 알았어?”
웃고 있었지만 눈은 서늘하게 굳어 있는 채였다.
“리…… 리카샤요?!”
“그게 무슨!”
경악할 만한 이야기를 들은 간수와 유모가 소리를 높였다.
키네미아는 여전히 자신에게 향해 있는 검은 눈동자에 고개를 기울였다.
“어떻게 알았냐니, 궁금한 게 많네.”
“마탑은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거든. 대공녀 아가씨.”
“여기-”
키네미아가 에이얀의 귀를 가리켰다.
귓불부터 귓바퀴를 잇는 귀걸이 아래로 현란한 문양이 문신처럼 남겨져 있었다. 고위급 마법사가 되면 받는 표식이었다. 급이 높을수록 원이 늘어나는데 3개는 원로급, 4개는 리카샤, 5개는 마탑주였다.
순간적으로 에이얀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이건 대공녀 아가씨가 알 만한 게 아닐 텐데.”
“뭐, 어떻게 하다 보니 알게 됐어.”
원작을 읽었으니까. 키네미아가 대충 손을 흔들었다.
짤그랑-
그사이 얼떨떨한 얼굴로 에이얀의 족쇄를 풀어 준 간수가 열쇠를 들고 일어섰다.
에이얀은 자리에서 일어난 뒤에도 왜인지 줄곧 키네미아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러나 키네미아는 미련 없이 철창을 두어 번 두드리곤 몸을 돌렸다.
“다신 잡혀 오지 마, 리카샤.”
이거면 얘랑은 끝나겠지.
‘이제야 마음이 좀 편하네.’
-라는 것은 전부 오해였다.
……그건 지나친 악연의 시작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