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27)
먼치킨 길들이기 27화
* * *
던전 구매 방법은 간단하다.
어느 순간부터 이 세계에서 던전이 생겨남에 따라 ‘던전 관리국’이라는 기관이 만들어졌는데, 그곳에 던전 구매 의사를 담은 서신을 보내면 던전 관리국에서는 흔쾌히 카탈로그와 명단을 보내 준다.
‘던전 영업으로 먹고사는 곳이니.’
명단은 던전 구매 예약자 목록으로, 이는 혹시 각자의 사정으로 던전 구매가 힘들어지거나, 특정한 던전을 갖고 싶을 경우 구매자들 간에 서로 양도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보통은 서신으로 의사를 교환한 후에 양도를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아주 귀족적이네.’
키네미아는 픽 웃으며 카탈로그를 넘겼다. 대박이 터질 로또 던전 몇 개를 이미 골라 놨으니 이 정도로 충분했지만, 사람 욕심은 언제나 끝이 없는 것.
‘아, 이건!’
키네미아는 던전 하나를 발견하고 눈을 빛냈다. 이 던전에서 마정석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미스릴이 있지!’
최초 던전이 생성된 이후 던전들이 하나하나 공략되어 가자, 추후 새로 생성되는 던전에서는 더 값진 보상이 추가되기 시작했다.
이 미스릴처럼!
비록 지금은 양이 적을 테지만, 검 한두 자루 정도는 만들 수 있을 터.
원작에서도 주인공이 제일 처음 만들었던 검도 바로 이 미스릴로 만든 것이었다.
키네미아는 예약자 명단을 살폈다.
명단 위에서부터 글자를 후루룩 훑고 내려가던 키네미아의 시야에 아주 익숙한 이름이 잡혔다.
[듀론 하브]“……듀론?”
아, 제발…….
키네미아가 벌떡 일어나서 눈을 비비고 물로 세안을 한 번 한 다음 다시 돌아와 앉았다.
[듀론 하브]‘…….’
왜! 왜 하필 이 남자냐고! 키네미아가 두 손으로 제 양 볼을 감싼 채로 듀론 하브 백작에 대해 떠올렸다.
[듀론 하브]원한도 : 별 9/10개
위험도 : 별 7/10개
원한 이유 : 섭정이었던 키네미아의 할아버지가 듀론 하브의 백부를 숙청했기 때문!
‘아니, 제국에 귀족이 한둘이야?! 왜 하필 듀론 하브냐고!’
그러나 이렇게 미공략 던전에 올인하는 큰손은 듀론 하브 백작 하나뿐이긴 했다.
“…….”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 그렇게 생각하면서 키네미아는 아쉬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카탈로그의 던전을 매만졌다.
‘아까워, 미스릴…….’
‘내 미스릴…….’
키네미아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미스릴의 소유권은 제가 가지고 있었고, 듀론 하브 백작은 이를 강탈한 야비한 약탈자였다.
‘아니지…….’
이 원한도란 ‘아마 이럴 것이다.’라는 키네미아의 주관이 가득 들어가 있었고. 마정석 가격 상승의 주범이 듀론 하브 백작이란 확언도 듣지 못했다.
사실 당사자가 키네미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는 직접 접촉해 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 아닌가.
‘맞아.’
그렇게 정당화를 이루어 낸 키네미아는 당장 편지지를 꺼내고는 곱게 편지를 썼다.
한 장은 던전 관리국에게 던전을 사겠다는 편지를.
다른 한 장은 듀론 하브 백작에게.
[이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는 듀론 하브 백작께.먼저 그간 안부를 묻지 못한 데에 사과부터 드리겠습니다. 지금 백작의 영지에는 예쁜 감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겠군요.
-중략-
오늘 이렇게 서신을 드린 이유는 던전 구입을 위해 예약자 명단을 살피던 중, 백작의 이름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혹 바로 구매하시지 않고 예약만 걸어 놓으신 이유는, 그 던전을 구매하실 마음이 크지 않으신 건 아닌지요.
그러하시다면 백작께 염치 불고하고 청하건대, 그 던전을 제게 양도해 주십사 합니다.
사례는 섭섭지 않게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길게 써 내려갔지만 결국 요지는 이러했다.
‘이참에 백작이 나한테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알아봐야겠어.’
키네미아는 편지 봉투 위에 촛농을 떨어트린 후, 도장을 꾹 눌러 찍었다.
그리고 이튿날이었다.
“백작님께 편지가 왔네요.”
유모 바네사가 생긋 웃으며 갖다 준 편지를 열어 보자 이런 답장이 와 있었다.
[내 이성과 합리성은 너의 할아버지가 내 큰아버지를 죽일 때 모두 달아났다.]무려 혈서였다.
“흐에에에에엥!”
키네미아는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역시! 그런 형편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인가!
그러나 그녀는 굴하지 않았다. 키네미아는 뻔뻔하고 강철 같은 의지의 소유자니까.
삼고초려란 말도 있지 않던가.
별 9/10개짜리의 원한이 편지 한 통으로 쉽게 사그라들지는 않겠지.
그래, 고난 뒤에 행복이 오는 법.
삼세번, 삼세번을 중얼거린 키네미아가 다시 길게 편지를 썼다.
요지는 이러했다.
[그 일에 대해서는 할아버지도 하늘에서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무척이나 안타깝게 생각한다.사죄의 의미로 기념비를 세우고 참배를 할 생각이며, 그의 가족에게도 충분한 배상을 할 용의가 있다.]
눈물을 찍어 낸 키네미아가 도장을 살포시 찍고 다시 편지를 보냈다.
‘삼세번. 삼세번.’
그러자 다음 날, 백작에게서 답장이 도착했다.
[네 사과는 저승에서 받겠다. 네 할아비가 기다리고 있는 지옥에나 떨어져라.너만 가면 너희 가족들은 모두 지옥에서 만나겠구나.]
또 혈서였다.
“후…….”
이놈은 편지 쓰다 피가 모자라겠구나, 라고 생각하며 키네미아는 편지지를 들었다.
[할아버지가 귀족들을 숙청할 때에는 모두 명분이란 게 있었다. 네 큰아비는 황실을 농락하고 영지민들의 고혈을 빨지 않았더냐.지옥에 떨어진 건 우리 가족이 아니라 네 큰아비다. 지옥에 떨어진 네 큰아비의 정수리에 고통받던 영지민들의 곡괭이가 찍히는 소리가 들리는구나.
깡! 깡!
어, 왜 돌소리가 들리지?
깡! 깡! 깡!]
쾅!
키네미아가 웃으며 봉투 위에 인장을 찍었다. 새빨간 촛농 위에서 리온의 문장이 섬뜩하게 빛났다.
세상에 누가 삼세번이라고 했던가. 상대가 내 가족을 들먹이며 패드립을 치는 순간, 그건 전부 개소리다.
그러자 이튿날, 듀론 백작은 이렇게 답했다.
[이 (삐-) 같은 (삐—)(삐—–)]키네미아는 웃으며 다시 답장을 썼다.
[창의성이 부족하다.네 편지를 친히 수도 곳곳에 붙여 줄 용의가 있으며, 네가 12살짜리에게 그런 욕설이 담긴 편지를 보냈음에 통탄할 제국민들이 많을 것 같구나.
빌미를 주어 고맙다. 아, 이건 혼잣말이었다.]
그다음 날, 듀론 백작은 답했다.
[나는 네게 조금 미안하다고 생각한다. 저번 편지는 아마 고양이가 쓴 내용인 것 같다.]‘고양이라니, 이성이 돌아오려다가 말았나 보네.’
키네미아는 다시 어른스럽고 차분하게 글을 썼다.
[고양이는 무슨. 32살이나 먹었으면서 추태가 하늘을 찌를 정도구나. 나는 너 같은 어른은 되지 않겠다.여하간, 더 말 섞고 싶지 않으니 네 던전이나 내게 양도해라.]
듀론 백작이 답했다.
[너야말로 12살짜리가 벌써 도박에 손을 대려 하다니, 발랑 까진 계집이 분명하구나.]키네미아는 말없이 편지를 접었다. 그러고는 새로운 편지지 한쪽에 민둥산 같은 삽화를 그렸다.
[발랑 까진 건 네 머리다. 잔말 말고 던전이나 내놓아라.네가 지금까지 던전 공략을 빙자해 노예들을 학대해 온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잡놈아.
돈이 많이 든다며 길드나 용병을 통하지 않고 노예들을 던전 안으로 밀어 넣고 있다지?
제국법에는 ‘노예 학대 방지법’이란 게 있다는 걸 네놈도 잘 알고 있을 터. 네놈 손에 고통받은 노예가 한둘이 아닐 텐데, 네 재산으로 국고를 얼마나 풍족하게 해 줄지 기대가 된다.
이날을 위해 돈은 많이 벌어 두었는지?]
마지막 문장을 쓸 때는 무려 빨간색 잉크까지 사용했다. 저자를 위해 피를 쓰는 건 매우 아까운 일이니까.
키네미아는 시뻘건 촛농을 떨어트리고 인장을 쾅 소리를 내며 찍었다.
듀론 하브 백작이 막대한 벌금과, 마정석이 나올지 안 나올지도 모를 미공략 던전 양도 중에 무엇을 선택하게 될까?
‘답은 뻔하지.’
이튿날, 키네미아는 던전 관리국에서 편지를 받았다. 듀론 하브 백작이 그녀에게 던전을 양도했다는 서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