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29)
먼치킨 길들이기 29화
* * *
타다닥!
키네미아가 내달리자 얼마 전 새로 들어온 하녀와 복도를 걷던 유모 바네사가 제법 엄한 목소리로 꾸중했다.
“뛰지 마세요, 아가씨!”
“알았어!”
“넘어져요!”
“응응!”
바네사의 호통을 피해 호다닥 응접실로 달려간 키네미아는 응접실 테이블 위에 놓인 상자를 발견하고는 눈을 빛냈다.
‘미스릴!’
전령이 가져온 상자의 뚜껑을 열자 푸르스름한 미스릴의 귀퉁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호오오오오오오!’
미스릴이 완연히 모습을 드러냄에 따라 키네미아가 눈을 찡그렸다.
‘아앗, 눈부시……!’
그녀가 손등으로 눈을 가렸다.
‘-진 않네.’
손을 내린 키네미아는 눈을 깜빡였다.
‘……뭐지?’
‘푸르스름한 것 빼고는 평범한 철광석 같은데.’
‘사기당했나?’
그럴 리가. 던전 안에 마물도 없어서 사용인들을 보내 가져오게 한 것이었다. 사기를 당했을 리는 없고…….
키네미아가 게슴츠레 뜬 눈으로 미스릴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그래, 이렇게 잘 보면 뭔가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흘러나오……!’
키네미아는 미스릴 아래를 떠받치고 천장을 향해 들었다.
‘-진 않네.’
그녀가 얌전히 미스릴을 상자 안에 넣었다.
‘나 같은 문외한이 본다고 뭔가 알 리가 있나.’
이건 전문가한테 맡겨야겠다…….
자타공인 최고의 대장장이들인 베히모스가 있는데, 뭘 걱정하랴.
간단히 정리한 키네미아가 그렇게 상자의 뚜껑을 닫을 때였다.
탁-
바네사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아가씨, 복도에서 뛰지 말라고 몇 번을 말씀드려요.”
힉!
“그러다 다치시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요, 예?”
“으응…… 잘못했어.”
이럴 때는 무조건 저자세다. 키네미아는 울망울망한 눈으로 바네사를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보셔도 안 돼요. 잘못했을 때는 어떻게 한다고 했죠?”
키네미아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에에에엥, 또? 유모, 이제 안 뛸게. 아까는 잠시 마음이 급해서 그랬어.”
“어떻게 한다고 했죠?”
그러나 바네사는 허리에 손을 얹고 짐짓 엄하게 되물었다. 키네미아는 개미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간식 금지…….”
“오늘은 간식 없습니다.”
뎅! 키네미아가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한 얼굴로 바네사의 치맛자락을 잡았다. 그러나 그녀는 반성하라고 말하더니 매정하게 응접실을 총총 떠나 버릴 뿐이었다.
‘……간식도 하루에 한 번밖에 못 먹게 하면서!’
떠나는 바네사의 뒷모습에 키네미아가 처절한 마음을 담아 속으로 외쳤다.
‘유모는 삼세번도 모르면서!’
그렇게 그녀가 절망에 빠져 있는 사이, 바네사와 함께 들어왔던 하녀가 시무룩해진 키네미아에게 다가왔다. 너무 상심하지 말라며 위로한 하녀는 키네미아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아가씨, 이거 받으세요.”
“응?”
자그마한 호박과 실을 얽은 팔찌였다.
“예쁘다-”
“오늘 ‘인연절’이잖아요. 가서 친구한테 선물해 주세요.”
“인연절?”
“모르세요? 친우에게 인연 팔찌를 선물하는 날이요. 귀족분들은 모르시려나…….”
그녀가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호오오오오! 그런 날이 있었단 말이야?
“친구 주려고 만든 거 아냐?”
“저는 이미 많이 만들어서요. 오늘은 친구에게 팔찌도 주고 재밌게 노세요.”
“응응, 고마워.”
하녀가 인사하며 방을 나서자 키네미아가 손을 흔들었다. 그러고는 원피스 주머니에 팔찌를 집어넣었다.
그때, 창 너머로 새카만 머리카락이 둥실둥실 움직이면서 어디론가 가고 있는 게 보였다.
키네미아는 미어캣처럼 번쩍 고개를 들었다.
대공 성에서 저런 새카만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은 하나뿐이다.
‘에이얀?’
키네미아가 살금살금 창문으로 다가갔다.
어디론가 가고 있는 에이얀은 바구니를 챙긴 채였다.
‘그러고 보니 요즘 뭔가 꿈지럭꿈지럭하는 것 같았지.’
원체 생글생글 웃으면서 숨기는 게 많은 녀석이라 그러려니 했지만, 대체 뭘 하는지 궁금하긴 했다.
‘흐응-’
잠깐 생각에 잠겼던 키네미아가 조심스럽게 에이얀의 뒤를 따랐다.
* * *
대공 성의 복도와 기둥을 지나친 에이얀은 어딘가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침방?’
침방은 대공 성 내에서 자수와 바느질을 담당하는 곳이었다.
그곳으로 쏙 들어간 에이얀을 보며 키네미아가 기둥 뒤에서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침방? 침방이라니. 에이얀과는 5억만 년 정도 떨어진 곳 같은데.
‘뭐지? 옷에 자수라도 놔 달라고 하려는 건가?’
에이얀과 그런 귀여운 부탁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그런 거라면 몰래 움직일 리가…….
“흠, 대체 안에서 뭘 하는 거지?”
“누구?”
“에이얀 말이야.”
“뭐가 궁금한데?”
“……?”
지금 그걸 묻는 넌 누군데……?
키네미아가 삐걱삐걱 고개를 돌리자 에이얀이 빙그레 웃었다.
“아, 아, 안으로 들어간 거 아니었어?!”
“누가 쫓아오기에.”
문을 애용하라고, 이 사악한 마법사야. 키네미아가 벌렁거리는 심장을 가다듬었다.
“그래서 나 왜?”
“응? 뭐가?”
키네미아가 아무렇지 않게 말을 돌리니 에이얀이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갈수록 미려해지는 얼굴이 다가오자 그녀가 기둥으로 바짝 등을 기댔다.
“미아.”
에이얀은 달착지근한 목소리로 나직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궁금해? 내가 뭘 하는지.”
“아아니! 전혀!”
“가르쳐 달라고 하면 알려 줄 텐데.”
“저언혀 안 궁금한데. 그냥 여길 지나치다가 네가 침방에 들어가는 게 보여서 뭘 하려는지 잠깐 스쳐 지나가듯 본 것뿐이야.”
“그래?”
“어.”
단호하게 답하자 생글거리던 에이얀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는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새카만 눈으로 그는 키네미아를 내려다보며 옆머리를 귀 뒤로 넘겨 주었다.
“난 너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은데. 넌 나에 대해 하나도 안 궁금해?”
“어.”
눈을 내리깐 에이얀이 한숨처럼 말을 내뱉었다.
“너무하네……. 나는 온종일 네 생각뿐인데.”
그가 비 맞은 강아지처럼 시무룩한 얼굴로 공격을 감행하자 키네미아가 호다닥 물러났다.
이 자식……! 날이 갈수록 공격력이 세지고 있어.
음흉한 놈. 무슨 꿍꿍이인지는 몰라도 이러다 홀랑 넘어가 버리면 큰일 난다.
정신 바짝 차리자, 키네미아 리온!
그때 에이얀이 키네미아의 주머니에서 떨어진 팔찌를 들어 올렸다.
“이게 뭐야?”
“아, 그거…….”
“……?”
“오늘 인연절이잖아.”
“인연절?”
“친구한테 팔찌 주는 날이래.”
그런 날은 처음 듣지만. 그러고 보니 왜 처음 듣지? 귀족이라서? 키네미아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그사이 에이얀은 팔찌를 꼭 쥔 채 서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누구한테 받은 거야? 그 덜 진화한 영장류?”
엥?
“덜 진화한 영장류라니. 냥파파?”
“응. 그놈한테 받았어?”
표정이 왜 저래! 자기는 못 받았다고 화풀이하는 건가?! 당황한 키네미아가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친구 주라고 해서 받아 온 거야.”
“그래? 친구 누구 주려고?”
에이얀이 빙긋 웃으며 되물었다.
눈이 안 웃잖아. 그렇게 팔찌가 받고 싶은 건가? 키네미아는 자꾸 식은땀이 나는 것 같은 손바닥을 치맛자락에 닦았다.
“너, 너 주려고.”
키네미아가 에이얀의 손에서 팔찌를 빼앗았다. 그러고는 그의 왼손을 잡아끌어다 손목에 빙 두르고 매듭을 묶었다.
에이얀은 그 모든 과정을 뚫어지게 지켜보았다. 어쩐지 굳은 표정으로,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은 채로.
리본으로 매듭을 마무리하던 키네미아가 그런 에이얀을 흘깃 응시했다.
‘왜지? 표정이 안 좋은데…….’
받고 싶은 게 아니었나.
아, 설마 싸구려라서 싫다 이건가?
이 어려운 놈……!
“싫으면 다시 줘.”
키네미아가 허둥지둥 매듭을 풀려고 하자 에이얀이 왼손을 빼냈다.
“싫어.”
“……?!”
저렇게 단호하게 싫다고 말하는 에이얀은 처음이라 키네미아가 화들짝 놀라 입을 살짝 벌렸다.
이에 에이얀은 오른손으로 왼쪽 손목의 팔찌를 감추며 낮게 말했다.
“이제 다시 무른다고 해도 돌려줄 생각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