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31)
먼치킨 길들이기 31화
* * *
사막의 전사를 자처하는 ‘크샨’.
‘크샨의 영혼은 검에 깃들어 있다.’가 입버릇인 그들은 가면을 쓰고 얇은 베일을 전신에 둘러싼 사막의 소수 전투 민족이었다.
전투 민족이라는 이름답게 어마어마한 전투력을 자랑하는 크샨은 오아시스를 침공한 보요타 왕국의 전군을 고작 40여 명으로 궤멸 직전까지 몰아넣은 전적이 있었다.
그런 그들은 오아시스가 마르자 수장을 따라 거처를 떠났고, 제국으로 들어와 길드 ‘흑야’를 만들었다.
제국 최초의 S랭크 길드, 흑야.
강력한 전투력으로 실력은 말할 것도 없으며, 사막의 이름을 걸어 신뢰도마저 최상.
그 까닭에 흑야 길드가 한참 활동하던 시절에는 누구나 흑야 길드에 의뢰를 넣고 싶어 했지만, 대기 줄이 상상을 초월했다고 한다.
이러한 흑야 길드가 돌연 사라진 것은 제국에 여러 가지 소문을 불러일으켰다.
수장이 죽었다거나, 길드 내 파벌 싸움으로 인해 와해됐다거나, 연합 길드의 습격으로 무너졌다거나. 호사가들은 내내 여러 가설들로 입방아를 찧었지만, 사라진 흑야 길드는 기든 아니든 어떤 대답도 돌려주질 않았다.
이후로는 흑야 길드의 잠적설에 대해 저마다 믿고 싶은 대로 믿는 모양이었다.
‘전부 틀렸지만…….’
키네미아는 원작의 내용을 떠올렸다.
수장이 죽은 것도, 내부의 파벌 싸움이나, 연합 길드의 습격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흑야 길드가 잠적한 이유는 수장의 부재.
정확히 말해 제 검이 부러지자 검을 놓은 수장의 부재 때문.
사막의 검은 최상의 품질을 자랑한다. 크샨은 이를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여겼는데, 이것이 화근이었다.
수장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명검이 부러지자 로우는 이를 뛰어넘는 검은 세상에 없으리라 단언했고, 영혼을 잃은 크샨으로서 검을 놓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에 다른 길드원들 또한 검을 버린 채 흑야 길드를 어둠 속에 잠재웠던 것이다.
이후 흑야는 구전으로만 남은 전설의 길드로 남게 된다. 원작 후반께까지.
‘그래, 전설의 길드.’
음흉한 미소를 띤 키네미아가 두 손을 모았다.
‘그 흑야를 부활시킬 수만 있다면…….’
안정적인 마정석 확보.
원한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마정석 공급과 유통.
그렇게만 된다면…….
키네미아가 두 주먹을 꾹 쥐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제 방에서 히터를 2개씩 틀 수 있어……!’
2개뿐인가. 가는 길목 길목마다 하나씩 두고 틀어 둘 것이다.
‘부르주아처럼 마정석을 흥청망청 써도 유모한테 안 혼날 거라고!’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
게다가 흑야 길드의 이른 부활은 키네미아의 소박한 욕심만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겸사겸사 대의를 위해서지.
‘제국의 평화를 위해서!’
원작에서 크샨들은 악역으로 출연했다. 그들은 미래에 아르바이트 노조 파업으로 제국의 평화를 위협하게 되니까!
그러니까…… 그들이 악역이 된 경위는 이러했다.
크샨은 평생 검 말고는 잡아 본 적이 없던 이들이 아니던가.
이는 즉 검을 놓고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한정돼 있다는 뜻.
검술 외에는 쓸 줄 아는 게 힘밖에 없던 크샨. 때문에 그들은 각자 여관 점원, 술집 서빙, 주방 보조 등등…… 아르바이트로 삶을 연명해야 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검에 죽고 검에 사는 사막의 전사.
……당연히 세상 물정을 몰랐다.
점주들은 그런 크샨들의 어수룩함을 기민하게 알아챘다.
결국 ‘숙식 제공 아르바이트’라는 미명하에 크샨들은 최저 시급도 받지 못한 채 염전 노예처럼 부려먹히게 된다.
하루 일당을 제대로 받지 못해도 네가 일을 못했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점주는 이리저리 빠져나가기 일쑤였고.
여기가 아니면 어디서 너희들에게 숙식 제공이며 급여며 이만한 대우를 해 주겠느냐는 말은 그들을 옴짝달싹 못 하게 했다.
그렇게 수년이 지난 어느 날. 파견을 나온 복지가들에 의해 크샨들은 자신들이 불공정 계약에 얽매여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분노한 그들은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적절한 임금을 보장하라며 노조를 결성해 무력시위를 벌이게 되는데…….
보통 사람들이라면 문제가 없었으리라.
하지만 그들은 크샨. 사막의 사신들이었다.
그들의 파업은 제국의 큰 재앙이 되었다.
원작에서는 주인공이 제국의 평화를 위협하는 악역, 크샨들을 무력으로 진압한다.
그때 등장하는 것이 크샨 로우. 제 수하들의 폭주를 막기 위해 주인공을 돕는 인물이었다.
그렇게 주인공과 제 수장에 의해 정의 구현을 당한 크샨들은 눈물을 또르륵 흘리면서, 우리는 그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고 싶었을 뿐이라고 외친다.
그러자 정의로운 주인공은 말한다. 이런다 해도 너희가 피땀 흘려 노동했던 시간들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이럴 게 아니라 아르바이트생들의 불합리한 노동 환경을 비폭력적으로 개선할 방법을 찾으면서, 지난 일을 잊고 새로운 방향의 일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그 말을 듣고 크샨들은 새카맣게 물들었던 마음을 돌리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키네미아는 ‘그러니까 그 시간만큼 돈을 돌려받으면 되잖아.’라고 생각했다.
‘피땀 흘려 노동했던 시간만큼 적절한 보상을 받으면 되잖아. 돈으로…….’
뭐, 그들만이 공유하는 무언가가 있었던 거겠지.
‘아마도.’
하여튼 크샨들이 그렇게 불우한 환경에서 지냈다는 걸 모르던 로우는 검을 놓았던 제 결정을 굉장히 후회했고, 이후에는 흑야 길드를 다시 재건한다는 해피엔딩이었다.
‘맞아! 어차피 흑야는 이렇게 될 악역이었다고!’
그러니 악역이 되기 전에 그들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다면 키네미아 자신에게도 이득일 뿐만 아니라, 제국에도 큰 도움이 아니겠는가.
‘이게 바로 윈윈!’
키네미아가 그렇게 쉴 새 없이 정당화를 하고 있을 때 쉔 티엔이 입을 열었다.
“듣자 하니 검이 부러졌다고 하던데, 세상에 널린 게 검이 아니냐. 뭐 그리 까다롭게 구는지. 능서불택필이라 했거늘.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 법인데 도구를 탓하기 전에 제정신 수련부터…….”
그가 열심히 구시렁거리기 시작하자 키네미아가 말을 끊었다.
“그럼 제가 냥파파와 얘기해 볼까요?”
검이 부러진 것 때문이라면 해결은 쉽지 않겠는가.
‘새로운 검을 만들어 주면 되잖아!’
부러진 검보다 더 뛰어난 검을!
마침 미스릴을 캐낸 참이었다. 검사라면 미스릴 검에 눈이 홀리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래, 저 상놈 좀 데려가서 노예로 만들든 어디에 팔아먹든 내 눈앞에서 좀 치워라.”
진절머리가 난다는 표정으로 쉔 티엔이 연초 연기를 머금었다.
이에 키네미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냥파파가 검을 다시 잡도록 손을 써 볼게요.”
노예는 좀 그렇고…….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키네미아는 마정석의 파도에서 헤엄치는 제 모습을 상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아가는 혜민원까지 무슨 일로 왔는고?”
“네? 아, 저 오늘은-”
그때 점원이 양갱처럼 보이는 당과와 차를 들여왔다. 그가 다과와 차를 각자의 앞에 가져다 두자 쉔 티엔이 손을 들었다.
“먼저 들렴.”
“잘 먹겠습니다.”
키네미아가 찻잔을 들었다. 이건 쌍화차 냄새인가? 또 한약처럼 쓰진 않겠지? 걱정하며 호록, 한 모금 입에 물자 달달한 맛이 입 안에 맴돌았다.
‘음, 이건 맛있다.’
키네미아가 차를 제법 잘 마시니 쉔 티엔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성장에 좋은 차니 먹어 두면 좋을 게다. 아가는 너무…….”
그가 위아래로 키네미아를 쓸어 보았다.
“네?”
“…….”
“……?”
“그렇지, 좀.”
그냥 작다고 솔직하게 말해 달라고요!
“그래, 잠은 잘 자고 있고?”
“네.”
키네미아가 양갱을 한입 가득 우물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불편한 곳은 없고?”
“우움, 네.”
그러자 쉔 티엔이 점원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점원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갈 때 이치한테 포션을 받아 가려무나. 꾸준히 먹으면 쑥쑥 클 테니.”
호오오오! 안 그래도 성장 약 때문에 온 거였는데. 양갱을 한 번에 삼킨 키네미아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챙겨 먹을게요, 오라버니.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난 김에 휘리릭 만든 거니 그리 고마워할 필요 없다.”
“그래도요.”
방긋 웃는 키네미아를 보며 쉔 티엔이 픽 웃음을 터트렸다.
‘이리 보면 그저 평범한 아이인데.’
이 조그만 꼬맹이 덕택에 동대륙에서 쫓겨난 연금술사들이 모여 혜민원을 세울 수 있게 되다니.
그런 영리함과 과감함이 이렇게 작은 아이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은 늘 그를 놀랍게 했다.
사실 쉔 티엔이 로우에 대해서 운을 띄운 것도 그 때문이었다. 키네미아라면 로우도 잘 끌어 주겠지, 라는 이유 없는 확신이 있었기에.
쉔 티엔 싱하이도 평생 검을 잡았던 로우처럼, 태어난 이후로 줄곧 연금술만 팠던 장인이었다.
처음 추방이 결정되었을 때는 싱 카칸이 그의 손목을 자르려 했기에, 검을 놓게 된 로우의 절망감을 이해했다.
손을 씻었다느니, 어쩌느니 하고는 있지만…….
‘내심 다시 검을 잡고 싶을 테지.’
그건 비슷한 길을 가던 자로서의 확신이었다. 고집이 센 편이라 잘 들으려 하지 않을 테지만.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상념에 잠겨 있던 쉔 티엔이 키네미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에 감기는 연한 금발도, 눈이 마주치면 환히 웃는 하얀 얼굴도 마음에 찼다.
‘줄곧 애들은 싫어했는데 말이지.’
특별한 아이였다. 혜민원에도, 자신에게도.
그 상놈에게도 그리되어 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