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33)
먼치킨 길들이기 33화
* * *
에이얀은 지붕 끝에 앉아 맞은편 창 너머를 응시했다.
어둠이 무서웠는지 키네미아가 몸을 한껏 웅크린 채 벽에 찰싹 달라붙어 움직이는 중이었다.
한동안 이를 지켜보던 에이얀이 그녀가 무언가에 놀라 눈을 질끈 감자 손을 들어 올렸다.
딱-
손을 튕김과 동시에 탁, 탁, 소리를 내며 광구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키네미아가 힉! 소리를 내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에이얀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결국 에이얀을 발견한 그녀가 창문을 열고 몸을 내밀었다.
“에이얀!”
“응.”
그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거기서 뭐 해. 위험하게.”
그 말이 우스웠던지 에이얀이 입꼬리를 올렸다.
“위험해 보여?”
에이얀은 허공을 밟으며 키네미아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곤 눈을 동그랗게 뜬 키네미아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미아. 왜 이제 들어와? 해가 다 진 시간에.”
“할 일이 좀 있었어.”
“할 일?”
“던전 사 둔 것 때문에 길드 좀 섭외하고, 밑 작업으로 미스릴 검도 만들고.”
키네미아는 들뜬 얼굴로 던전에서 미스릴을 발견한 이야기와 로우가 흑야의 길드장이자 크샨이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대단하네.’ 하고 웃은 에이얀이 손을 뻗어 키네미아의 앞머리를 옆으로 넘겼다. 손에 감기는 연한 금실 너머로 새파란 눈이 보였다.
미스릴이며, 흑야 길드며, 다른 이들이 들었다면 모두 대단하다며 추켜세울 일이기에 그리 맞장구를 쳤으나, 에이얀은 그런 것들보다는 들떠 있는 키네미아에게 온 신경이 가 있었다.
“미아, 다음에 나갈 때는 나도 데려가.”
“왜? 넌 자꾸 심술부려서 싫어.”
“안 부릴 테니까. 응?”
“거짓말 마.”
“늦게 와서 걱정된단 말이야. 옆에 얌전히 있을게.”
에이얀이 보이지 않는 꼬리를 흔들며 졸랐다.
“…….”
“내가 지켜 줘야 하잖아, 미아는. 난 그러려고 네 옆에 있는 건데.”
싫어? 응? 턱을 두 손으로 받친 에이얀이 애교 넘치는 목소리로 몇 번을 되물었다.
키네미아는 싫은 티를 내다가 이내 입을 삐죽이며 답했다.
“생각해 보고.”
“정말이지?”
에이얀이 기쁜 기색으로 웃자 키네미아가 두 손으로 창틀을 탁 쳤다.
“생각해 보고!”
그렇게 말한 뒤 그녀가 총총 방으로 들어갔다.
에이얀은 생글생글 웃으며 저린 손을 가볍게 쥐었다 폈다.
그때, 어느새 다가온 종달새가 어깨 위에 앉았다.
– 정신계 마법은 결국 포기했나 보지?
에이얀이 눈을 내리깔았다.
“……예.”
평소의 에이얀이었다면 스승에게 키네미아가 마법에 걸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을 것이다.
아니, 그 전에 키네미아에게 무력을 써서라도 궁금한 일들을 캐물었으리라.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그 어떤 수도 쓰지 못하고 내내 멍청한 모빌처럼 키네미아의 곁을 맴돌기만 하는 중이었다.
– 너도 이제 인간이 되어 가는구나.
그에 에이얀은 빙그레 웃었다.
“제가 스승님보다는 더 진화한 인간종 아니겠습니까.”
– 이 녀석이 보자 보자 하니까-!
그 순간, 에이얀이 미간을 찌푸리며 관자놀이를 짚었다.
– 이놈이 또 꾀병을……!
씩씩대던 종달새는 에이얀이 계속 고통스러워 보이자 눈을 깜빡였다.
– 혹시 2차 각성이냐?
각성 때는 마력을 쓰지 못하게 되는 이들도 있는데, 차라리 통증을 느끼는 게 낫긴 하지. 스승이 나지막이 덧붙였다.
– 그만 돌아오는 게 어떻겠느냐.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에이얀이 숨을 내쉬곤 빙긋 웃었다.
“또 속으셨습니까?”
– ……!
툭, 이성이 끊어진 듯 종달새가 부리로 사정없이 에이얀을 공격했다. 에이얀은 워프 마법을 이용해 가며 휙휙 그의 공격을 피했다.
저 간사한 제자 탓에 속이 타들어 가는 스승이 소리쳤다.
– 너 때문에 내 속이 말이 아니다! 이놈 자식아!
* * *
베히모스 자매의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정말 하루 만에 대검을 만들어 가져다준 것이다.
‘눈은 좀 퀭하고 볼은 홀쭉해졌지만.’
하룻밤 내내 오러를 썼을 테니 그럴 만도 하지.
키네미아는 그녀들에게 연금술사의 원기 회복 포션을 준 후 며칠간의 휴가와 상여금을 건넸다.
“뭘 이런 걸…… 미스릴을 다뤄 본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정말 성장이 되는 작업이었어요. 그리 감사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자매는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몸은 솔직하게 상여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튿날.
키네미아는 응접실 소파에서 로우를 마주한 채 앉았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새하얀 머리카락, 회색 눈동자. 표범을 연상시키는 듯한 사나운 외형의 그에게서는 앉아 있기만 해도 무언가 공기를 묵직하게 만드는 존재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역시 S랭크 흑야 길드의 수장인가……!’
제국에 A랭크 길드도 17개가 채 되지 않는데 무려 S랭크라니.
S랭크! 머릿속에서 찬란한 꽃길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좋아. 흑야를 내 밑으로 들여서 마정석도 캐고!
겸사겸사 세계의 평화도 지키는 거지!
이게 바로 상부상조지, 상부상조!
‘그보다 좀 불편하네.’
키네미아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려 로우를 힐끔거렸다.
그는 하녀들이 준비해 준 차를 마시는 중이었는데-
“맛은 괜찮으신가요?”
“좋습니다.”
“혹 불편한 점은 없으신가요?”
“괜찮습니다.”
“쿠션 좀 갖다 드릴까요?”
“제, 제가 갖다 드릴-”
“아니, 내가-!”
하녀들이 총출동해 저마다 로우에게 한마디씩 걸어 보려고 아우성이었다.
“…….”
게다가 로우를 향한 강렬한 눈빛까지 느껴졌다.
‘로우…… 잡아먹힐 것 같은데.’
그럼에도 로우는 표정 없는 얼굴 그대로였다.
이성에게 별로 관심이 없나? 키네미아가 데구루루 눈을 굴리던 그때였다.
“괜찮습니다만……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네? 네!”
“언제까지 이럴 생각이십니까?”
“……예?”
“대공녀께 폐가 될 것 같으니 이제 슬슬 자리를 비켜 주시죠.”
서늘한 어조였다. 로우가 뻣뻣하게 굳은 그녀들의 눈을 빤히 바라보면서 쐐기를 박았다.
“지금.”
차갑다.
그동안 빙긋거리는 얼굴만 봐 왔기에 실감하지 못했는데, 자상할 줄 알았던 로우는 실상 꽤 냉랭한 남자였던 모양이다.
‘그걸 더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지만.’
하녀들은 로우의 말에 물러나면서도 그런 모습에 더 꽂혔다는 듯 얼굴을 붉히기까지 했다.
‘차가운 남자가 이쪽 세계의 취향이었나.’
아니, 그냥 몸 좋은 미남자가 취향인 건가.
상념을 이어 가던 키네미아는 얼결에 로우와 눈이 마주치자 빙긋 웃었다. 그에 로우가 꽃이 피는 것처럼 방싯 마주 웃어 주었다.
이런데 검만 잡으면 광기가 느껴질 정도의 전투광이라니…….
게다가 놀랄 부분은 하나 더 있었다.
크샨 로우의 나이는 올해로 19살……!
흑야 길드의 수장이 아니더라도, 저 얼굴에 저 몸이 19살이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어 보였다.
로우의 탄탄하고 섹시한 몸은 이미 완성형 원숙미를 풍기고 있었으니까.
“요정님, 오늘은 레이스 머리띠를 떠 왔습니다.”
레이스? 로우가 끝에 묶을 수 있는 끈이 달린 레이스를 건네자 키네미아가 넙죽 받아 들었다.
호오오오!
섬세한 문양에 키네미아는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프로?!’
엄청나게 수준급이다. 일단 대공녀였던지라 그간 이런저런 레이스를 봐 왔지만, 이 섬세함부터 독창적으로 보이는 이국적인 디자인까지. 당장 침방에 데려다 놓고 레이스 장인으로 키우고 싶을 정도였다.
설마 이런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검을 놔도 괜찮았나?!
그러면 곤란한데……!
키네미아가 다급히 물었다.
“로우, 검은 이제 안 잡을 거야?”
“……사부님입니까?”
“아, 응. 쉔 티엔 오라버니께 들었어.”
“저는 다시 검을 잡을 생각이 없습니다.”
“검이 부러져서?”
“예. 투옌은 크샨의 수장들에게 물려주는 최고의 명검이었습니다. 투옌이 부러졌다는 건 크샨의 끝을 의미하는 겁니다.”
검이 부러진 걸로 끝이라고 할 것까지야…… 그러나 상대는 아주 단호한 얼굴이었다.
“그럼 새로운 검은 찾아봤어?”
그가 고개를 저었다.
“그만한 검은 세상에 또 없습니다.”
이에 키네미아가 조금 긴장된 기색으로 말했다.
“로우, 만약에 내가 투옌보다 더 강하고 예리한 검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