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34)
먼치킨 길들이기 34화
그러자 로우가 미소를 지었다.
“그런 검은 없습니다, 요정님. 포기하세요.”
“만약, 아주 만약에 있다면 말이야. 그런 검이 있다면 다시 검을 잡을 생각은 있어?”
“만약에…….”
“응응.”
“……도 없습니다.”
고집 세!
“그러니까 그냥 상상해 봐. 그런 검이 있다면!”
상상이라……. 그가 나직이 중얼거리면서 눈을 내리깔자 분위기가 묘하게 가라앉았다.
“요정님께서 제게 그런 말씀을 여쭙는 연유가 무엇입니까?”
“나는 흑야 길드와 계약하고 싶어.”
“거절하겠습니다.”
그렇게 단칼에?!
“좀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면?”
“고려할 가치가 없습니다.”
“내 사람이 되면 투옌보다 더 좋은 검을 받을 수 있을 텐데도?”
“세상에 그런 검은 없습니다.”
고집 완전 세!
“있어. 지금 보여 줄 수도 있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왜!
지금 당장 검을 꺼내서 보여 주면 달라질걸……!
키네미아가 검을 가지러 일어서려던 순간이었다.
“죄송합니다, 요정님.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죠.”
딱 자르듯 이야기한 로우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에에에엥…… 어째서. 내가 보여 준다잖아!
비집고 나오려는 눈물을 참아 내며 그녀가 두 손을 모아 깍지를 꼈다.
무리였나?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걸까?
‘저런 고집이었으니 검을 놓았겠지…….’
이대로 원작 후반까지 길드원들이 노조를 일으킬 때를 기다려야 하는 건가…….
키네미아가 그렇게 실패의 아픔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이, 레이스를 묶어 주겠다며 로우가 머리에 레이스를 씌워 주었다.
키네미아는 인형처럼 가만히 앉아 그에게 머리를 맡겼다.
꼼지락꼼지락. 머리께에서 움직이는 손길을 느끼던 중 한 가지 깨달음이 머리를 스쳤다.
‘좀 알겠네…….’
로우에게 나는 기본적으로 귀여운 대공녀일 뿐이지, 동등한 거래 상대나 신뢰할 만한 상대는 되지도 못하는 것이다.
로우가 키네미아의 한마디에 ‘네, 그럴게요, 헤헤.’ 할 만큼 순둥이도 아니었고.
‘베히모스도 내가 돈 많은 대공녀가 아니었다면 진지하게 들어 주지 않았겠지…….’
갑자기 또 슬퍼지네…….
‘바보같이 너무 쉽게 생각했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쉔 티엔 오라버니나 다른 어른들의 입을 빌리고 싶진 않았다.
냥파파는 내 사람이 돼야 하니까!
양도받는 포켓몬이 무슨 소용인가. 손맛이 중요하지.
살짝 승부욕도 도는 중이었다.
아빠의 말을 빌리자면, 자신은 일단 시작하면 뭐든 열심히 하는 타입이었다. 평소 의욕 없이 늘어져 있어도, 일단 과제를 맡기면 밤까지 새고 보는 스타일.
겨울을 대비해 열심히 도토리를 모아 땅에 묻는 다람쥐 같다나.
그러나 다람쥐는 자기가 묻어 놓은 도토리 태반을 찾지 못한다고…….
심지어 노력한 만큼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것마저 다람쥐 같다고 했다.
어떻게 내 앞에서 그렇게 신랄하게 표현할 수가…….
‘핫!’
키네미아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이번에는 결과를 낼 테니까!’
마침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도 하나 스쳐 지나갔다.
돌아가신 엄마가 말씀하시길, 검사는 검으로 말해야 하는 법. 그렇다면 검으로 얘기하면 되지 않겠는가.
이내 결심한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로우. 검의 법도를 신청할게.”
“……예?”
예상치 못한 말에 로우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사막의 규칙이잖아. 모래는 모래로, 검은 검으로.”
“그렇지만 제가 요정님과 검을 맞대다니요.”
“세 합으로 승부를 보자. 오러는 없이.”
“요정님, 저희는 근력부터 차이가 납니다. 말도 안 되는 대결이에요.”
“괜찮아. 난 내 검을 믿거든. 이건 투옌을 넘어서는 검이라는 걸.”
키네미아가 도발적으로 말했다.
로우는 제법 난처한 기색이었지만 검의 법도는 거절할 수 없는 것. 신청한 이가 철회하지 않는 이상은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들이겠습니다.”
물론 아이를 상대로 한 대련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둘의 실력 차이가 상당하니 다치지 않게 검을 놓게 만드는 것은 그에게 쉬운 일이었고, 때문에 조금 곤란한 상황이긴 했어도 끝까지 피해야만 하는 일은 아니었다.
* * *
개인 연무장 한쪽 의자에 앉은 키네미아가 머리끈을 입에 물었다. 긴 머리를 쓸어모아 틀어 올리는데,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따라온 에이얀이 말했다.
“미아, 걱정 마.”
“……응?”
네가 걱정 말라고 하면 더 걱정되는데……?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그가 방싯 웃었다.
“뭔 소리야, 또.”
“저걸 죽이고 싶은 거 아니었어?”
“아니야.”
“그럼 이런 무모한 짓을 왜 하는 건데? 저놈은 그저 검이 좋다고 잡을 수 있을 만한 게 아니야.”
“바보.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무모한 짓이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검의 법도를 신청한 거고.”
머리를 하나로 올려 묶은 키네미아가 벌떡 일어섰다.
“넌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앉아서 보기만 해. 알겠어?”
“난 호위인데?”
여차하면 당장 무슨 수를 쓸 것 같은 진상을 보며 그녀가 벽과 의자를 번갈아 가리켰다.
“벽 보고 서 있든가, 얌전히 앉아 있든가.”
“네에…….”
에이얀이 시무룩한 얼굴로 얌전히 앉았다.
“그럼 갔다 올게.”
“응.”
그녀가 픽 웃으며 몸을 돌리자 그가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진짜 아무것도 하면 안 돼.”
검을 잡고 나서던 키네미아가 휙 몸을 돌리며 으름장을 놓았다.
“알았다니까.”
걱정 말라는 듯 에이얀이 다시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키네미아는 마주 손을 흔들며 재차 걸음을 옮겼다.
그런 키네미아의 뒷모습을 보며 다리를 꼬아 앉은 에이얀은 마력을 끌어 올린 채 팔짱을 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리가.
저 덜 진화된 영장류가 검을 비틀기라도 하면 바로 죽여 버릴 생각이었다.
줄곧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던전 따위, 자신에게 부탁하면 언제든지 공략해 줄 텐데.
자신이 리카샤임을 잊은 걸까. 아니면 그렇게까지 제 힘을 믿지 못하는 걸까.
어느 쪽이든 유쾌하지 않은 건 분명했다.
이참에 위험 분자는 죽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던 에이얀이 문득 제 손바닥으로 시선을 옮겼다.
손안에 식은땀이 고여 있었다.
‘역시 2차 각성인가…….’
며칠 전부터 시작된 악몽과 두통이 그를 더 예민하게 만들고 있었다. 마력을 끌어내는 것도, 몸이 둔해진 것도 짜증스러운데…….
“100, 99, 98…….”
꿈속에서 내내 들었던 목소리가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씨발.’
욕설이 혀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왜 지금 그게…….’
차라리 육체적 고통이 나았다. 이런 더러운 기분에 휩싸이는 것보다는.
에이얀은 숫자를 듣지 않기 위해 다른 곳으로 정신을 집중시켰다.
연무장 중앙으로 나선 키네미아가 로우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섰다. 로우는 베히모스가 현재 주력해서 만들고 있는 본 소드, 이름대로 마물의 뼈로 만든 검을 들고 있었다.
오랜만에 검을 잡은 그의 눈에는 살짝 생기가 도는 것처럼 보였다.
저렇게 검을 잡고 싶어 하는 티가 나는데도 고집을 부리다니…….
로우가 검을 두어 번 휘두른 후에 말했다.
“이것도 꽤 괜찮은 검이군요.”
“색다르지?”
“예. 투옌보단 못하지만.”
이쯤 되면 한번 보고 싶다. 그 투옌.
“그 투옌보다 이게 더 나을걸?”
새침하게 말한 키네미아가 웃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청량하기까지 한 소리가 나면서 검이 뽑혔다.
푸르스름한 검의 끝이 조명을 받아 빛을 냈다.
생소한 색깔에 날이 바짝 선 검을 보자 그가 설핏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직 놀라긴 이르지. 이 검의 진짜 성능은 소리나 형태에서 나오는 게 아니니까.
“후-”
숨을 내쉰 그녀가 검을 잡고 자세를 잡았다.
진검을 잡은 건 오랜만이었다. 묵직한 감각에 주변의 소리가 전부 차단되고, 모든 신경이 두 손과 검으로 쏠렸다.
곧게 선 키네미아가 정면을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