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35)
먼치킨 길들이기 35화
맞은편에서 본 소드를 든 로우는 실력 차가 너무 크게 나는 상대여서인지 여유를 부리듯 자세도 잡지 않은 채였다.
‘역시 엄청나게 무시하고 있구나…….’
키네미아는 찔끔 나오려는 눈물을 참아 냈다.
전력 차를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지만…….
그래도 힘을 낸 키네미아가 짐짓 근엄한 어조로 말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하면 다칠 수도 있어, 로우.”
이에 가만히 서서 검을 받아 내려던 로우가 비스듬한 자세를 바로잡았다.
키네미아의 진지한 눈 때문이었다. 그녀가 그저 놀이 상대로 저를 여기까지 부른 게 아님을 알게 되었으니까.
진지한 눈에는 진지하게 상대해야 한다. 그것이 검사로서의 예우였다.
자세를 고쳐 서자 푸르스름한 칼 너머로 새파란 눈동자가 보였다.
‘자세가 완벽하고 기세가 좋아.’
신체 조건만 따라 줬다면 좋은 검사가 되었을지도 모르나, 작은 키와 골격 등으로는 무리가 있겠지.
보통 체구가 작은 검사들은 오러 단련을 위해 노력하지만, 키네미아에게는 마력이 없으니 괜찮은 호신술 정도만 수련해도 큰 성과를 내는 것일 터였다.
‘세 합.’
로우는 두 합은 그냥 받아 내고 세 합째에 검을 튕겨 낼 생각이었다.
‘요정님이 다치시면 안 되니까.’
탓!
그때, 키네미아가 발을 띄웠다.
이에 로우가 검을 빗겨 잡았다. 곧 키네미아의 검과 맞부딪치리라는 예상이 있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
새파란 눈동자가 긴 잔상을 흘리며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스르릉-
그와 동시에 아주 깔끔한 소리와 함께 키네미아의 검이 로우의 검날을 파고들었다.
‘어떻게……?!’
검이 맞붙는 순간, 힘이 센 장정이 단칼에 나무를 베는 것처럼 본 소드가 잘려 나갔다.
로우는 떨어지는 본 소드의 검날을 보며 눈을 크게 벌렸다.
챙-
연무장 바닥으로 떨어진 칼날의 멀끔한 단면이 보였다.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본 소드의 경도는 방금 자신이 직접 확인했다. 본 소드는 분명 철검보다 우수하다. 그런 검을 자그마한 소녀의 검이 별 힘도 들이지 않고 베어 냈다고?
이게 진정 현존하는 검이란 말인가?
로우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는데, 키네미아가 검을 바닥에 끌며 빙글 돌아섰다.
“말했지? 투옌보다 더 뛰어난 검이라고.”
그녀가 검을 들어 보였다. 하늘로 들어 올린 검은 어떤 흠도 없이 아주 멀쩡했다.
“어떻게 세상에 이런 검이 있을 수가…….”
푸르스름한 검날을 보자 전사로서의 심장이 다시 뛰는 것 같았다.
당장 검을 들고 뛰어나가서 미친 듯이 무언가를 베고 싶은 마음이었다.
맥동하는 숨을 겨우 가라앉힌 후에, 그가 마른침을 삼키고 물었다.
“대공녀, 그 검은…….”
“이번에 새로 발견한 미스릴이란 광물로 만들었어. 검의 이름은 아직 미정. 주인을 찾고 있어서.”
키네미아가 로우에게로 다가갔다.
“봐서 알겠지만 난 엄마처럼 검사로서의 큰 자질은 없어. 내가 가지고 있어 봐야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지.”
검이 눈앞에 어른거리자 로우가 마른침을 삼켰다.
키네미아가 점점 다가와 검신을 보일수록 로우는 검을 원하는 마음에 목이 탈 정도였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그가 앞으로 다가온 키네미아를 보며 무릎을 꿇었다.
“제가, 졌습니다…….”
완전한 패배였다.
대공녀의 말을 귓등으로만 들었던 제 한심한 패배. 편견의 실패.
“제 아집의 패배입니다.”
“그래?”
“예.”
키네미아가 로우의 앞에 쪼그려 앉아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그가 빙긋 웃었다.
“하지만 요정님, 검의 법도는 위험했습니다. 다치실 수도 있었어요.”
“흑야를 원해서 그랬어. 그런데 냥파파는 내 말은 듣지 않으려고 했잖아. 그러면 실력 행사를 해야지.”
“아…….”
“뭐, 남의 손 빌리는 것도 싫었고. 냥파파는 내 사람이 될 거니까.”
“대공녀의 사람이요?”
“응응.”
키네미아가 환히 웃었다.
“내 밑으로 들어와, 로우. 다른 길드원들과 함께.”
“그렇지만 저는 그럴 자격이…….”
“이제 슬슬 길드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아봐야 하지 않겠어?”
“…….”
“나라면 길드원들이 지금 어디에서 뭘 하는지 알려 줄 수 있어.”
로우의 눈동자가 떨렸다. 검을 놓고 길드를 해산시킨 이후, 면목이 없다는 핑계로 크샨들을 찾지 않은 지 오래였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길드원들을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진 것도 사실이었다.
이 어린 대공녀는 대체 어디까지 사람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걸까.
“그리고 검의 법도에서 이긴 건 나잖아. 그러니까 이거 받아 줄래?”
로우가 제 앞으로 내밀어진 검으로 시선을 내렸다. 이렇게 된 이상, 계속 거절하는 것도 그저 자존심을 세우는 일일 뿐이었다.
게다가…….
역시 이건 무심코 봐도 어깨가 떨릴 정도로 엄청난 검이었다.
‘이런 검을 받게 되다니.’
크샨의 영혼은 검에 깃든다. 지금 이 순간, 그는 키네미아에게서 생명을 새로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키네미아 리온 대공녀.”
“……?”
로우가 한쪽 무릎을 꿇는 것으로 자세를 바꿨다. 그가 주먹 쥔 오른손을 심장 위에 댔다.
“크샨 로우. 오아시스를 걸고 키네미아 리온에게 충성을 맹세합니다.”
의외의 충성 맹세에 키네미아가 눈을 깜빡였다. 검사의 맹세는 평생 당신을 주군으로 삼아 목숨을 바치겠다는 뜻이었다.
이렇게 무겁게 되돌아올 줄은 몰랐던 키네미아가 어쩔 줄을 모르고 두 손을 내저었다.
“아니, 로우. 나는 흑야 길드와 계약을 하고 싶었던 거고……!”
“그럼 어쩔 수 없지요.”
그의 말에 키네미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로우가 잘린 본 소드를 제 심장 앞으로 들이밀었다.
“주군께 거부당하면 죽는 수밖에…….”
너무 극단적이잖아!
“맹세 받을게!”
눈을 세차게 떤 키네미아가 검을 쥔 그의 손을 꼭 잡아 말렸다.
그러자 미소를 지은 로우가 다시 주먹을 쥔 오른손을 심장에 댔다.
“크샨 로우. 오아시스를 걸고 키네미아 리온에게 충성을 맹세합니다.”
미스릴 검을 들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 키네미아는 검을 그의 양어깨에 댄 후에 엄숙하게 말했다.
“맹세를 받아들이겠네, 크샨 로우. 내 검을 받게.”
고개 숙인 로우가 두 손으로 검을 받아 들었다.
이에 볼을 붉힌 키네미아가 몰래 숨을 밭게 뱉었다.
“이제 일어나도 좋아.”
“예.”
로우는 키네미아의 명에 몸을 일으켜 검을 휘둘렀다.
슉, 슉, 바람을 가르면서 자세를 잡는 모습을 보니 왜 날 무시했는지 알 것 같다. 자세며 속도며 마치 엄마를 보는 것 같았으니까.
‘……그래도 뭐, 기뻐 보이네.’
역시 검사는 레이스나 뜨개질보단 검을 잡는 게 어울리지.
그렇게 키네미아가 흐뭇하게 웃던 찰나였다.
‘그러고 보니 진상이 얌전하네.’
로우와 검을 맞대면서 조마조마했던 이유는 로우 때문이 아니라, 에이얀 때문이었다. 그가 괜스레 나서서 일을 그르치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었는데, 그 걱정이 우습게도 에이얀은 잠잠했다.
‘내 실력을 보고 감동했을지도.’
물론 그녀가 한 건 방심한 상대에게 아이템빨로 기습을 한 정도였지만, 키네미아는 정신 승리를 위해 그 정도 명확한 사실은 무시할 줄 알았다.
괜히 우쭐해진 키네미아가 브이 자를 그리며 에이얀을 향해 고개를 돌릴 때였다.
“……에이얀?”
에이얀이 쓰러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