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36)
먼치킨 길들이기 36화
10장 성장통
에이얀이 쓰러진 지 만 하루가 지났다.
부랴부랴 달려온 쉔 티엔은 에이얀의 상처에 포션을 부었다. 환부는 보글보글 끓어오르면서 급속도로 아물기 시작했다.
‘이렇게 쉽게 치료할 수 있었는데…….’
자책감이 밀려왔다. 키네미아는 상처가 아무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다 물었다.
“언제 깨어날 수 있을까요?”
“글쎄다. 상처 때문이 아니라서…….”
“그럼요?”
“이 몸도 마법사에 대해 빠삭하게 아는 건 아니지만, 아마 2차 각성이란 것 때문이겠지.”
연금술사인 쉔 티엔도 마법사들이 2차 각성이란 것을 거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연금술사들에게 이 고통을 멈춰 달라면서 찾아온 마법사들이 더러 있었으니까.
물론 그들이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대부분 하루 이틀이면 금방 털고 일어나더구나. 너무 걱정 말거라.”
“네에…….”
키네미아는 에이얀이 차고 있는 팔찌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정말 괜찮을까. 아는 게 없으니 전부 걱정투성이였다.
너무 오래 상처를 방치해서 2차 각성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아니면 마법사들이 건 저주라는 게 문제가 되는 건 아닌지.
‘이러다 죽기라도 하면…….’
눈을 질끈 감은 키네미아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긍정적인 생각! 긍정적인 생각으로 전환하자!’
그렇게 잠든 에이얀의 옆에서 서성이던 그때였다.
“100…….”
그 숫자는 속삭이듯 들려왔다.
순간 머리에 냉수라도 끼얹은 듯 정신이 깨는 기분이었다.
“100?”
에이얀의 말을 들었는지, 웬 100이냐며 쉔 티엔이 돌아보았다. 그에 마른침을 삼킨 키네미아가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에이얀 옆에는 저 혼자 있을게요.”
“혼자서?”
“네, 지금은 그게 나을 것 같아요.”
돌려 말했지만 결국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무언가를 직감한 쉔 티엔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발걸음을 돌렸다.
“무슨 일이 있으면 오라버니를 부르련.”
“네, 감사해요.”
방문이 닫히자 키네미아가 에이얀의 머리맡에 앉았다.
100이란 숫자를 내뱉은 후, 에이얀의 입은 다시 열리지 않고 있었다.
‘바보.’
키네미아는 속상한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에이얀의 옆에 양팔을 올리고 그 위에 턱을 기댔다.
에이얀이 내뱉은 말. 100은 에이얀이 아버지에게 버려졌을 때 세던 숫자였다.
‘그때의 꿈을 꾸고 있나.’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 과거는 쉽게 잊을 수 없겠지.’
문득 폐부가 찔린 듯 서늘한 통증이 일었다. 키네미아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고개를 기울였다.
“에이얀, 빨리 일어나.”
그녀가 작게 속삭였다.
* * *
괴물 같은 아들을 받아들이기엔 그의 아버지는 겁이 너무나 많은 남자였다.
어머니는 에이얀을 낳다가 죽었고, 이후 술이나 마시며 방치하듯 키운 아들이었다.
술독에 빠져 가정을 내팽개친 아버지가 으레 그렇듯, 에이얀은 어떤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식물처럼 자랐다.
그래, 그것이 문제였다.
얌전히 식물처럼 자라야 하는 아이가 가르치지 않아도 모든 걸 습득했고 ‘무형의 힘’까지 자유자재로 사용했으니까.
그 힘은 에이얀의 그림자 속에 숨어서 어둠의 모습을 한 채 그의 감정과 의지에 따라 수족처럼 움직였다.
아버지는 그제야 덜컥 겁이 났으리라. 아들이 다른 집들처럼 평범하고 힘이 없는 아이가 아닌, 자신을 해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이.
심연처럼 새카만 눈은 언제나 그를 책망하는 듯 바라보았고, 그는 감당할 수 없는 아들의 모습에 매일 밤 잠드는 것을 두려워했다.
함께 사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잠든 아들이 뒤척이는 소리에 눈을 뜨고, 소리 없이 뒤에 서 있기라도 하면 아버지는 알 수 없는 괴성을 질러 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섰다.
그날 에이얀은 생전 처음으로 들떠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하는 첫 외출이었다. 그저 좋기만 했다. 구름도 좋고, 바람도 좋았다.
“이제 이걸 찰 차례다…….”
아버지가 건네준 눈가리개를 하기 전까지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이를 짐작한 에이얀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이후로 느낀 것은 온통 소리와 냄새뿐이었다.
떨리고 불안정한 거친 숨소리.
벌레도 잠든 듯한 고요 속에서 자박자박 빠른 걸음 소리.
질척한 숲의 냄새.
바짝 긴장한 사내의 땀 냄새.
한참을 걷는 듯 뛰는 듯 하던 아버지는 어디선가 서서 에이얀에게 말했다.
“우린 놀이를 하고 있는 거야. ……알지? 여기서 100부터 숫자를 거꾸로 세고 있으면 찾으러 올 거다.”
당시 에이얀은 7살의 나이에도 총명했다. 그렇기에 이 상황이 무얼 뜻하는지 아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버려진 거다. 의심의 여지 없이.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도 찾으러 와 줄 거란 기대감이 살짝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미련하게 숫자를 세기 시작했겠지.
“……100.”
주저하며 100이란 숫자를 입에 올린 순간, 달아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듯 아주 빠른 발소리였다.
“…….”
입을 다문 에이얀은 피가 날 정도로 두 주먹을 꼭 쥐었다. 그리고 다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99.”
“98.”
“97.”
.
.
.
후다닥 멀어지는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55.”
“54.”
“53.”
.
.
.
“20.”
에이얀은 눈가리개를 벗어 손에 쥐었다. 에이얀이 선 곳은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어둠으로 가득한 숲의 한복판이었다. 시야는 새카만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10.”
“9.”
“8.”
.
.
.
“3.”
“2.”
눈가리개를 든 에이얀은 울지 않았다. 절망했을 뿐.
“1.”
제 입에서 흘러나온 숫자에 놀라 에이얀이 눈을 떴다.
“……!”
숨을 몰아쉰 그는 눈을 깜빡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제가 있는 곳은 숲이 아니라 호화스러운 방 안의 침대 위였다.
‘쓰러졌었나…….’
마지막 기억을 되살리던 에이얀이 짜증스럽게 이마를 쓸었다.
이젠 정말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시야에 제 팔을 간질이는 연한 금발이 보였다.
키네미아가 제 침대 맡에 엎드린 채 자고 있었다.
‘……왜.’
여기서 이렇게 자고 있는 거지.
‘내가 쓰러져서?’
순간 시궁창에 처박혔던 기분이 슬그머니 고양되기 시작했다.
마음이 약한 거야, 동정심이 많은 거야.
다른 사람에게도 이랬을까.
문득 든 생각에 왜인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에이얀은 괜스레 키네미아의 볼을 꾹 눌렀다가 말캉하고 부드러운 촉감에 놀라 손을 뗐다.
‘…….’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비빈 에이얀이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움직임을 느꼈는지 키네미아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그리고 들려온 키네미아의 잠긴 목소리.
“……에이얀?”
키네미아가 반쯤 감긴 눈을 깜빡거렸다.
“응.”
짧게 답한 에이얀은 마른 입술을 축였다.
“……괜찮은 거야?”
얼굴 곳곳에 걱정을 주렁주렁 매단 채 그녀가 에이얀의 손을 잡았다.
“당연히 괜찮지.”
에이얀이 애교스럽게 말하면서 웃자 키네미아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두 팔을 크게 벌려 에이얀을 껴안았다.
“……!”
평소처럼 팽 고개를 돌리거나 빽 소리를 높일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키네미아는 그렇게 에이얀을 안고 있었다.
왜? 갑자기? 어째서? 혼란스러워진 에이얀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뭐, 하는…….”
“위로.”
“……왜?”
“왜냐니. 힘든 사람한테 이 정도도 못 해 줄까 봐?”
“내가 왜 힘들-”
“네가 괜찮을 거라고 생각 안 해. 괜찮으면 안 되고.”
에이얀은 생전 처음으로 말문이 막힌다는 걸 경험했다. 어떻게? 머릿속이 전부 읽힌 것 같아 초조하기까지 했다.
“……네가 걱정돼.”
키네미아가 자그맣게 말했다.
눈을 내리깐 에이얀은 입술을 깨물었다. 맞닿은 심장 소리가 귀를 울릴 정도로 크게 들렸다.
방을 주홍색으로 물들인 오후의 마지막 햇빛.
바스락거리는 침대의 시트.
코끝으로 물씬 밀려 들어오는 약재의 고소한 향.
에이얀이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품을 가득 채운 온기에 심장이 맥동하고 있었다.
줄곧 어디에 두어야 할지 헤매던 손이 키네미아의 등에 닿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새카만 어둠으로 잠겨 있던 숲이 부드러운 노을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가 눈을 감았다.
여긴 아버지의 땀 냄새도, 거친 숨소리도 사라진 곳이었다.
“아, 상태가 어떤지 확인해 봐야겠어. 사람을 불러서-”
그때 키네미아가 자리를 뜨려고 하자 에이얀이 황급히 손을 꼭 잡았다.
“……조금만 이대로.”
“응?”
일어서려던 키네미아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제 절박함을 숨긴 에이얀이 부드럽게 말했다.
“마력이 돌아오지 않아서 다른 사람이 없으면 불안해.”
“마력이?”
“응, 그러니까 이대로 옆에 있어. 조금만.”
고개를 끄덕인 키네미아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에이얀은 그녀의 손을 잡은 채 다른 손으로 제 얼굴을 쓸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마력은 그대로였다.
그저 이대로 손을 놓고 싶지 않아서 주워섬긴 말이었다.
‘제기랄.’
마탑의 마법사들 말대로 드디어 미쳐 버린 걸지도.
이런 자신이 생경해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저 놓아 버리면 될 것을.
한데 그럴 수가 없다.
달콤한 수렁에 빠진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