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37)
먼치킨 길들이기 37화
* * *
“어쩐지 저 녀석, 좀 이상하게 군다 싶었지.”
마탑의 수장, 울프만은 제 사역마를 통해 보게 된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물에 빠졌다가 뭍으로 꺼내 주는 손을 잡은 것처럼 절박한 에이얀의 얼굴을 보는 건 또 처음이었다.
문득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를 거두었을 때만 해도 결코 이런 모습을 보게 될 거라고는 상상해 본 적이 없건만.
두 발 달린 건 전부 제 짝이 있다더니, 저런 것도 마음에 담는 이가 생기긴 하는구나.
허 참. 울프만이 헛웃음을 내뱉으니 옆에서 바짝 얼어붙어 서 있던 로메오 남작이 물어 왔다.
“탑주님, 혹여나 불편하신 점이 있으신지…….”
“아아, 전혀. 외려 극진히 대접해 주어 고맙네.”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타다닥 두드린 울프만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로메오 남작은 제 앞의 인물을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 사람이 바로 마탑의 군주. 마법사들의 왕.
울프만.
마법사라는 막강한 병력을 바탕으로 전 대륙 위에 군림하는 자가 아닌가.
마탑이 초대 마탑주의 뜻에 따라 중립을 지키고 있다고는 하나, 그저 객관적인 힘의 우위로 보자면 울프만은 지금 손끝 하나로 제국을 망하게 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인물이었다.
‘역시 리카샤는 리카샤인가…….’
마탑주는 에이얀을 자신의 제자라 칭하면서 그의 상태를 보기 위해 직접 대공 성까지 움직였다.
에이얀은 리카샤라고는 하지만 일단 겉보기에는 소년이 아니던가. 리카샤라는 수식어를 달긴 했어도 그동안 큰 실감은 나지 않았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우리 대공녀께서 지하 감옥에서 꺼내 오기도 했고…….’
그런데 이렇게 마탑주를 마주하니 참 엄청난 인물이 대공 성 내를 아무렇지 않게 활보하고 있었다는 게 체감되는 중이었다.
그리고 에이얀을 강아지처럼 다루는 대공녀도 새삼…….
로메오 남작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상념을 털어 냈다.
그보다 마탑주를 만난 후의 감상은…….
‘젊다…….’
마탑주라고 하면 으레 고정화된 이미지 탓에 그저 노인일 거라 생각했는데, 상상보다 젊고 잘생긴 모습이었다.
희끗한 흰머리가 섞인 적갈색 머리카락을 전부 뒤로 쓸어 넘겨 왁스로 고정시킨 울프만은 눈이 그윽하고 코가 우뚝 솟아 있어 무슨 연극배우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탑주님.”
“딱딱하게 그러지 말고 울프만이라고 불러 주게나.”
“네, 울프만 님. 그보다 에이얀 님께서 쓰러지신 건…….”
“아, 걱정할 필요 없어. 2차 각성으로 죽는 이는 없으니. 저건 꾀병이라네.”
“꾀, 꾀병이요?!”
“저 녀석이 꾀병에 능하거든.”
“예?”
로메오 남작은 그리 말하며 느긋하게 차를 마시는 울프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세상에 어떤 꾀병 환자가 저런 실감 나는 연기를 한단 말인가.
그러나 마탑주는 제자가 걱정스럽지도 않은지 우아하게 차를 들이켤 뿐이었다.
“탑주님.”
그때, 보좌 벤자민이 울프만에게 자그맣게 속삭였다.
울프만이 고개를 돌리자 응접실로 연한 금발의 소녀가 들어서는 중이었다.
“로메오, 탑주님은 어디-”
키네미아였다.
탑주가 왔다는 소식에 에이얀을 억지로 눕히고 응접실로 나온 참이었다.
로메오 남작에게 묻던 키네미아가 울프만을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앞으로 다가왔다.
“마탑의 지엄한 군주를 뵙습니다. 키네미아 리온이라고 합니다.”
“리온의 날개를 만나게 되어 영광이네. 울프만이라고 불러 주게.”
키네미아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니 울프만이 자상하게 인사를 받았다.
살짝 긴장한 기색을 내보이던 키네미아는 그의 대답에 생긋 웃었다. 이에 따라 울프만의 입꼬리도 느슨하게 풀어졌다.
종달새 모습으로 주위를 돌다 보니 이미 제 손녀같이 친근해진 아이였다. 이렇게 저를 보며 정중히 인사하고 웃기까지 하니 더할 나위 없이 기꺼웠다.
“아니면 할아버지도 괜찮고.”
그의 일방적인 호감 표시에 키네미아가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다.
할아버지?! 마탑주를?! 첫 만남에?!
“그래, 아무래도 할아버지가 좋겠어.”
울프만이 껄껄껄 웃었다.
왜죠?!
키네미아는 당황했지만 일단 표정을 숨겼다. 상대는 마탑주. 어떻게 보면 황제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고, 자신은 그를 맞이한 대공녀였다.
안 그래도 자신을 향해 힐끔거리는 사용인들의 시선이 느껴지던 차였다.
좋아, 괜찮은 영주는 손님맞이에도 서투르지 않은 법. 완벽한 대접을 해 보이리라!
그렇게 결심한 키네미아가 아주 어른스럽게 입을 열었다.
“탑주님께서는 에이얀을…… 핫!”
1초 만에 실패했잖아!
리카샤라고 해야 하는데…… 키네미아의 눈동자가 핑글핑글 떨렸다. 에이얀,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녀석…….
“큼……. 리카샤의 상태를 보러 오셨나요?”
키네미아가 커다란 눈을 굴리며 아닌 척 되물었다.
“에이얀이라고 불러도 괜찮단다.”
“아, 네…….”
버릇이 돼서……. 작게 덧붙인 키네미아가 볼을 붉히며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울프만이 헤벌쭉 입술 끝을 끌어 올렸다.
“난 할아버지라 부르고.”
또?!
키네미아의 떨리는 동공에는 아랑곳없이 울프만은 제 무릎을 탁탁 치면서 말했다.
“키네미아,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도 괜찮단다.”
전 이대로 괜찮은데요?!
마탑주의 반응에 사용인들은 키네미아가 노렸던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놀라워하며 수군거렸다.
그리고 그때였다.
“어린애한테 추태 부리지 마시죠, 스승님.”
에이얀이 키네미아의 어깨를 끌어안아 뒤로 물렸다.
“……!”
얼결에 그의 품에 안기게 된 키네미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포션 때문인지 약초 냄새가 코끝에 진동을 했고, 단단한 팔이 허리를 안고 있었다.
키네미아는 후다닥 품에서 빠져나왔다.
“추태라니, 스승한테……! 2차 각성을 거쳐도 네 녀석 말본새는 나아질 기미가 없구나.”
그사이 울프만이 불퉁한 목소리를 냈고, 멀찍이 떨어진 키네미아가 말을 덧붙였다.
“왜, 왜 나왔어. 좀 쉬라니까.”
“널 변태 할아범한테 당하게 놔둘 수는 없잖아. 호위로서.”
“지금 마력도 없으면서.”
“……아.”
키네미아가 퉁명스레 꺼낸 말에 에이얀이 낮게 목을 울렸다.
“그건 좀 아프네.”
그가 씁쓸하게 웃었다.
윽, 마음이 약해진 키네미아는 입을 벙긋거렸다.
“노…… 농담이야, 바보야.”
이에 에이얀은 씰룩이려는 입꼬리를 애써 내리며 되물었다.
“농담이었어?”
“어…….”
“믿을게.”
에이얀이 다시 생긋 웃으며 키네미아 옆에 붙어 섰다.
호위로서는 무슨. 울프만의 히죽거림에 에이얀이 그를 매서운 눈길로 노려보았다.
“여기까진 왜 오셨습니까. 몸도 무거우신 분이.”
“마침 그 생각 중이었다. 어차피 좋은 소리도 못 들을 걸 왜 왔나, 하고.”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냉큼 떠나라는 얼굴로 에이얀이 웃자, 울프만이 위를 쓸었다. 저런 것도 제자라고…… 인생 헛살았지…….
“키네미아.”
“예. 탑주님.”
“할아버지라 부르라니까.”
왜죠?!
“이 할아버지가 부탁이 있는데 말이다.”
울프만은 자신이 키네미아의 조부로 자리매김하는 데 키네미아의 의견은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래서 에이얀의 스승님인가……!’
에이얀이 스승에게서 이런 걸 배운 모양이었다.
“내가 대공 성에서 며칠 머물러도 되겠느냐. 제자의 상태도 봐야 할 것 같고…….”
그가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자 에이얀이 얼굴을 구겼다.
“뭡니까, 스승님.”
“왜? 내 제자가 아파서 상태를 좀 봐야겠다는 것이 무슨 잘못이라고.”
“대체 왜 씨알도 안 먹히는-”
순간 키네미아가 발끈한 에이얀의 말을 끊기 위해 손을 잡았다.
“소리, 를…….”
그러자 말을 흐리다 이내 뚝 멈춘 에이얀이 딱딱하게 굳었다. 작은 손바닥이 제 손가락 2개를 꼭 잡은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