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39)
먼치킨 길들이기 39화
“……?!”
삽시간에 개미가 지나가는 소리마저 들릴 것 같은 침묵이 찾아왔다.
흑야다……. 흑야는 맞는데…….
뭔가 붙어 있으면 안 될 것들이 더 붙어 있었다.
무슨 요정 뭐시기 같은 게…….
다들 제 귀를 의심하며 침묵한 사이, 간신히 이성을 되찾은 코리가 입을 열었다.
“……길드명이 너무 길어서 등록이 불가합니다.”
“그럼, 반짝 빛나는 요정 키네미아 리온을 따르는 흑야.”
선생님, 두 글자 줄었잖아요.
“그것도…….”
“그렇다면 ‘반짝반짝 우유 빛깔 키네미아 리온 요정님’으로.”
‘키네미아 리온’과 ‘요정’ 빼고는 완전 달라졌잖아. 흑야는 어디다 팔아먹었어.
“그것도…….”
코리의 말에 로우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어렵군.”
이게 어려울 일인가?! 그냥 흑야로 하면 되잖아!
답답해 미칠 것 같은 이는 코리 한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길드 관리 본부의 모두는 마음을 모아 데스크의 코리를 응원했다.
코리는 그렇게 한동안 로우와 길드명으로 씨름을 해야 했다.
기나긴 전쟁의 종지부를 찍은 길드명은 이러했다.
[키네미아 요정님의 흑야]굳이 반짝반짝을 넣어야겠다는 로우와 타협하고 또 타협한 결과였다.
반짝반짝은 키네미아 대공녀와 동일어나 마찬가지이니 넣지 않아도 되겠다고 설득하자 겨우 납득한 것이었다.
“크샨 로우 님. 길드를 새로 등록할 시 이전 길드의 랭크가 사라지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랭크를 포기하더라도 결단코 키네미아 요정님을 버릴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뭔진 모르겠지만- 대단하다, 대공녀…….’
엄청난 요정인가 보네. 식은땀을 닦은 코리에게선 왠지 대공녀를 존경하는 마음이 새록새록 생겨나고 있었다.
덕분에 길드 관리 본부에 있던 사람들의 뇌리에는 키네미아와 요정이라는 단어가 껌딱지처럼 찰싹 달라붙었다.
그렇게 크샨 로우는 새로운 길드를 창설했다.
‘키네미아 요정님의 흑야’를.
* * *
라이언은 연한 금실 같은 머리카락을 들어 올렸다.
“하하핫! 하하하하!”
즐겁고 즐거워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찾아냈다.
에이얀의 약점.
당사자가 눈앞에 없는 이상 마법을 걸기 위해서는 준비가 많이 필요했지만, 그런 건 이미 다 갖추어 놓은 상태였다.
라이언은 춤을 추듯 머리카락을 들고 준비된 술식을 향해 움직였다.
마법사들 십수 명의 마력과 피를 섞은 술식이다. 실패하려고 해도 절대 실패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머리카락을 술식 중앙에 내려놓았다.
에이얀이 끔찍이 여기는 그 소녀에게 지독한 환상을 보여 줄 생각이었다. 완전히 돌아 버리도록.
라이언이 마력을 끌어 올리자 술식에서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크흐!”
그는 재채기처럼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려 노력했다. 비어 버린 눈에 새로운 눈이 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이 개자식. 시름시름 죽어 가는 소녀 옆에서 미칠 듯이 괴로워해 보라지!
그렇게 라이언이 마법을 구현하려 할 때였다.
어떤 전조도 없이 빛이 갑작스레 사그라졌다.
‘뭐?’
몇 번을 반복해도 똑같다.
아연실색한 라이언이 머리카락을 확인했다.
마법이 성공했다면 머리카락이 타들어 가야 하건만, 금실 같은 머리카락에서는 그 어떤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법이 안 걸려?’
‘어째서?’
라이언은 피의 마법진이 그려진 바닥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마법이 걸리지 않는다고……? 어째서!’
부랴부랴 제물까지 가져와 봤지만 술식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단 하나였다. 대공녀에게는 그 어떤 마법도 걸리지 않는다는 것.
‘에이얀이 뭔가 수를 써 뒀나?’
그게 제일 타당한 가설이었으나 그것조차 아귀에 맞지 않았다.
모든 마법을 무효화시킨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라이언은 이를 악물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런 마법은 현존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말도 안 되는 건 이미 그날 직접 보지 않았던가.
라이언의 눈앞에서 다시 그날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분명 십수 명의 마법사가 피와 제물로 술식을 그렸다. 하지만 그렇게 에이얀이 마법을 쓸 수 없도록 막았는데도 새까만 그림자가 스멀스멀 부풀어 올랐다.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던 어둠은 비명을 지르는 마법사들의 혀부터 잘라 냈다.
라이언은 무심코 소름이 돋은 제 팔을 문질렀다.
‘……맞아.’
그 괴물 같은…… 분명 마법이 아닌 그 힘.
그걸 보는 순간 라이언은 살 의지조차 놓아 버렸다. 저런 걸 죽여서 리카샤가 되겠다고? 그건 아예 가망성조차 없는 일이 아니던가.
“제기랄! 젠장! 젠장!”
라이언이 신경질적인 기색으로 일어나 손톱으로 책상을 긁었다.
다시 괴로운 패배감이 온몸을 좀먹기 시작했다.
에이얀이 자신을 살려 놓은 것도 이 때문이리라. 평생 자신이 사는 세상에서 이 고통을 느끼라는 뜻으로. 제 발버둥을 비웃어 주겠다는 의도로.
까득- 까득- 까드드득-
손톱이 더 거세게 책상을 긁어 댔다.
‘절대 안 되지. 내가 그렇게 쉽게 떠나 줄 것 같아?’
자살도 생각해 봤지만 라이언은 그렇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떠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날 자신을 죽이지 않은 걸 후회하게 해 주리라.
어떤 방법으로든 그 웃는 낯이 일그러지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이렇게 괴상한 술수까지 부려 두었다는 것은 그만큼 에이얀이 대공녀를 아낀다는 방증일 터.
“다른 이의 머리카락을 가져와. 대공녀와 가장 가까운 인간으로.”
라이언이 제 옆에서 날고 있는 사역마에게 명했다. 그리고 다른 사역마에게 이어 말했다.
“그리고 휘하의 마법사들을 모두 불러모아.”
시간을 벌어야 하니까.
11장 검은 나비
드레스 룸 안. 키네미아를 옷 갈아입히기 인형처럼 빙글빙글 돌리던 하녀 셰인과 리리네가 제법 진지하게 말했다.
“아가씨, 이번에 사탕 받으시면 저희랑 나누는 거 아시죠?”
“많이 받아 오셔야 해요!”
“응응!”
키네미아가 고개를 끄덕이니 귀와 꼬리가 쫑긋쫑긋 움직였다.
“꺄아- 내가 해 드렸지만 완전 귀여워!”
“너무 귀여워! 어떡해!”
“꺄아아아!”
셰인과 리리네가 귀엽다면서 소란스럽게 굴자 키네미아는 고개를 까딱 기울였다.
“귀여워?”
“최고! 최고!”
“우리 아가씨가 세상에서 제일 귀엽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법이라더니. ‘그래?’라고 답한 키네미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다 이내 울상을 지었지만.
“귀여우면 안 되지. 무서워야 되잖아.”
“무섭기도 한걸요.”
“그럼, 그럼. 귀여움 사이에 피어나는 무서움이랄까.”
표정은 전혀 안 그래 보이는데? 헤- 벌어진 입들을 보며 키네미아가 입술을 삐죽였다.
오늘은 변장 축제의 날이었다.
이전 생의 핼러윈 같은 축제로, 무서운 분장을 하고 나가서 달콤한 간식을 받아 오는 것이다.
그동안은 키네미아가 어리고 위험해서 참가를 못 했지만, 이제 12살이나 된 데다가 같이 돌아다녀 줄 먼치킨 친구도 하나 있으니 참가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자, 여기요.”
키네미아는 리리네가 준 바구니를 받아 들고, 셰인을 따라 거울 앞에 섰다.
거울에는 동그란 호랑이 귀와 꼬리를 달고 호피 무늬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비쳤다.
호오오오오!
‘진짜 귀여워……!’
키네미아가 반짝이는 눈으로 거울에 두 손을 올렸다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가 아닌데!’
키네미아는 조금 더 무섭게 분장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을 피력해 보기로 했다.
“입가에 피를 묻힌다든가?”
그러나 셰인과 리리네는 이대로 충분하다면서 키네미아의 등을 떠밀 뿐이었다.
그렇게 방 밖으로 밀려 나온 키네미아를 누군가가 불렀다.
“미아.”
뒤를 돌아보자 에이얀이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
키네미아는 견장이 달린 제복을 잘 빼입은 에이얀을 보고서 입을 벌렸다.
평소에도 요사스러울 정도로 잘생겼다는 생각은 가아끔 했지만, 오늘은 확실히 힘을 준 티가 났다.
에이얀을 멍하니 바라보던 키네미아가 핫! 정신을 차리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넌 왜 왕자야?”
“유령선 선장인데?”
“그런 컨셉도 있었어?!”
“황가의 5대손인데 어릴 적에 우연히 만난 인어를 사랑해서 바다를 전전하다가, 종국에는 인어의 노랫소리에 배를 침몰시킨 유령선의 선장이래. 선원들의 저주를 받아 유령이 됐는데, 죽어서도 사랑하는 인어를 찾아 떠돌고 있다는 설정이야.”
뭔가 엄청 디테일해! 나한테는 그런 디테일한 설정 안 줬으면서……! 난 그냥 배가 고파 동굴에서 튀어나온 호랑이였는데!
“미아는?”
“나는-”
“미어캣?”
“호랑이야!”
키네미아가 부루퉁해지자, 에이얀이 웃으며 귀여워서 그랬다고 연신 칭찬을 늘어놓았다.
너의 그 영혼 없는 칭찬에 넘어갈까 보냐.
“유령선 선장이면 팔 하나쯤 없어야 하는 거 아냐? 보통 한쪽 손이 갈고리잖아.”
쓸데없이 왕자님같이 꾸며서는……. 그럴듯한 설정까지 주렁주렁 달고. 괜스레 부아가 치민 키네미아가 소매라도 뜯어 버릴까 고민하는데-
“……근데 뭐 하는 거야?”
그녀가 제 귀를 덥석 잡은 에이얀을 향해 물었다. 이에 에이얀이 사르르 눈웃음을 쳤다.
“귀가 쫑긋거리길래.”
“놔. 바보야.”
에이얀의 손을 떼어 낸 키네미아가 홱 몸을 돌렸다.
그때 에이얀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동물 귀를 다는 마법만 있었어도.”
뭐?!
소름이 돋은 그녀가 돌아보니 그가 아무 말도 한 적이 없다는 듯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왜?”
“무슨 말 안 했어?”
“무슨 말?”
“좀 소름 끼치는 말…….”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래……?”
“이제 가자.”
“아, 응.”
에이얀이 앞장서자 키네미아가 종종걸음으로 따라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