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4)
먼치킨 길들이기 4화
2장 베히모스의 자매
키네미아가 에이얀을 옆에 두고서 깨달은 첫 번째는, 그와 함께 있으면 선망의 시선을 한눈에 받는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리카샤가 아가씨를 호위하신다고?”
“그래!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대공 성에 도는 소문에 의하면 리카샤를 주워 온 키네미아의 영웅담은 이러했다.
뒤통수에서 후광 효과를 달고 다니는 키네미아 리온(대공녀/11세)은 어느 날 자신의 영지에 침범한 잔악무도한 범죄자가 또래의 소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극악무도한 죄인일지 모르겠다만, 아이에게는 자비가 필요한 법!’
이 이야기 속에서 성자급으로 마음이 넓은 키네미아는 친히 죄수를 풀어 주기 위해 지하 감옥으로 향한다.
그리고 죄인에게 매서운 호통과 부드러운 위로를 사용해 그의 마음을 녹이게 되는데…….
그러자 에이얀은 제 힘으로 족쇄를 풀고 일어서서 이렇게 말한다.
‘소녀여, 네 아량에 감동했다. 네 넓은 그릇에 경의를 표하며, 널 위험에서 돕도록 하겠다.’
‘좋다, 리카샤여. 너의 도움, 내 달게 받겠노라.’
결국 키네미아는 리카샤를 호위로 가지게 되었다는…… 과장이 잔뜩 섞인 소문이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역시 큰일을 할 그릇이셨다니까. 태어날 때부터 울음소리가 얼마나 우렁차셨던지!”
“나도! 나는 우리 아가씨가 그럴 줄 이미 배 속에 계실 때부터 알고 있었어.”
“맞아, 그런 악독한 소문이 돌아도 꿋꿋하고 늠름하신 걸 봐. 정신력이 남들과는 다르셔.”
누가 그런 헛된 소문을 퍼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키네미아는 따끔따끔할 정도로 느껴지는 존경 어린 시선에 살짝 볼을 붉혔다.
‘……이건 나쁘지 않을지도.’
그리고 그를 옆에 두고서 깨달은 두 번째. 능청맞은 대형견처럼 굴어도 에이얀 크로츠가 절대 좋은 성격이 아니라는 것.
지금처럼 말이다.
키네미아는 쓰레기통에 쿠키를 와르르 쏟아 버리고 있는 에이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뭐야, 그게?”
“하녀들이 주던데?”
에이얀이 심드렁하게 답했다.
얼굴이 제법…… 아니, 인정하긴 싫지만 엄청나게 반반한 데다 리카샤라는 직함까지 가지고 있으니, 에이얀은 어린 하녀들에게서 제일 인기 있는 인물로 급부상하는 중이었다.
그 때문일 것이다. 하녀들이 굳이 쿠키를 준비해 준 건.
“근데 왜 버려? 안 먹을 거야?”
키네미아가 버려진 쿠키를 아쉽게 바라보자, 에이얀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왜 먹어야 하는데?”
“……?!”
허를 찌르는 답변이었다.
“그거야…… 널 생각해서 애써 준비해 준 거니까…….”
그러나 에이얀은 다른 사람의 정성이나 마음 따위는 전혀 고려해 본 적 없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래서?”
누가 널 위해 준비한 정성 어린 선물이란다, 라는 말에 평범한 사람이 ‘그래서?’라고 답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키네미아는 소시오패스, 반사회적 인격 장애 따위를 떠올리면서 저 녀석에게 아무것도 주지 말라는 명을 대공 성의 사람들에게 내렸다.
그리고 먼치킨 노트를 꺼내 에이얀의 이름 밑에다가 비고를 추가했다.
[에이얀]원한도 : 별 ?/10개
위험도 : 별 10/10개
비고 : 반사회적 인격 장애
‘역시 저건 너무 위험해.’
* * *
대공 성의 회의장.
그곳에 모인 가신들의 침묵을 깬 건 브륀 백작이었다.
“이제 슬슬 준비해야 할 때가 아니겠소?”
“뭘 말이오.”
브륀 백작과는 늘 충돌하는 데니스 백작이 퉁명스럽게 말을 받았다. 그에 브륀 백작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 작위 말이오! 대공의 자리가 여태 비어 있는데, 언제까지 아가씨께서 대공녀로 남아 계셔야 하는 거요. 황제도 참……!”
“거, 입조심하시오. 괜히 아무 말이나 나불거렸다가 대공녀께 폐 끼치지 말고.”
“하여간 황제 폐하께서 계승 인가를 계속 미루고 계시는데, 이번 기회에 우리가 가서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이오.”
“……이렇게 갑자기 말입니까?”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로메오 남작이 끼어들었다.
“갑자기라니, 로메오 남작도 듣지 않았소. 우리 대공녀께서 얼마나 그릇이 큰 분이신지.”
“아…….”
소문을 떠올린 로메오 남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브륀 백작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 조그만 아이가 벌써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진짜 어른인 우리가 보탬이 되어야 하지 않겠소.”
“그 보탬이란 게 작위 계승이란 말이오?”
“큰일을 펼치기에는 그럴듯한 자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쯤 데니스 백작도 아시지 않소.”
“뭐…… 그거야 그렇다지만…… 작위를 받으면 그만큼 대공녀의 책무도 늘어나는 게 아니겠소. 제국 내에서 리온의 입지도 입지거니와…….”
데니스 백작이 말을 줄였다.
키네미아를 예뻐하고 사랑하는 건 다른 가신들과 마찬가지였지만, 더욱이 그렇기 때문에 대공녀가 대공 성 안의 공주님처럼 좋은 것만 보며 살아가기를 바랐다.
지금의 리온은 예전의 리온이 아니었다.
사교계에서는 대공녀를 향한 나쁜 소문이 정설처럼 돌고 있었고, 지금은 대공 성 안에 틀어박혀 죽은 듯 산 듯 그렇게 가신들의 비호를 받으며 커야 하는 게 아닐까.
호탕하게 주장하던 브륀 백작도 데니스 백작의 뜻을 읽고는 말을 잃었다.
그때 로메오 남작이 싱글벙글 웃고 있는 일라이 후작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라이 공.”
“저 말입니까?”
웃는 낯으로 그들을 돌아보던 일라이 후작은 다정히 말했다.
“저는 우리 대공녀께서 어떤 상황이든 잘 이겨 내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일라이 공께서는 대공녀께 특히 무르시니.”
“그렇죠.”
“카이트 대제가 살뤼에서 적장의 목을 베었을 때가 9살 아니었습니까. 대공녀께서는 더 어릴 적부터 한번 보고 들은 건 잊지 않으실 정도로 무척 총명하셨고, 벌써 11살이 되셨으니 그저 어리다고만 치부할 때는 아니지요. 뭐…… 저는 그저 대공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해 드릴 생각입니다만.”
일라이 후작의 말에 가신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침묵하는데, 하인 하나가 회의실의 문을 열었다.
“대공녀께서 드십니다.”
언제 언쟁을 하고 있었냐는 듯 입을 다문 가신들이 일어서서 한곳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시선이 모인 곳에서는 연한 금색 머리칼을 가진 사랑스러운 아이가 회의장 안으로 들어오는 중이었다.
종종걸음을 걷던 아이가 동그랗고 예쁜 눈으로 가신들을 훑어보자 그들의 입꼬리가 슬쩍 풀어졌다.
네 가문의 가신들이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하며 가슴으로 낳아 키운 대공녀였다.
이 자리에 있는 누구 하나 키네미아를 예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한결 부드러워졌던 분위기는 키네미아의 뒤를 따르는 흑발의 수족으로 인해 다시 냉랭해지기 시작했다.
‘소문의 리카샤군.’
‘실물로 보니 더 어려 보이긴 하는데. 분위기가 묘해…….’
‘우리들 앞에서 저렇게 권태로운 눈이라니. 역시 어려도 리카샤는 리카샤란 말인가. 굉장하군.’
가신들은 각자 저마다의 감상을 조용히 주고받았다.
“오늘은 바네사가 오지 않았군요.”
로메오 남작이 말했다. 그의 말에 데니스 백작이 눈동자를 떨었다.
원래 회의가 있을 때마다 키네미아를 따라왔던 건 그녀의 유모 바네사였다.
‘혹 바네사가 아니라 저자를 데려오신 건 가신들 앞에서 자신의 성과를 보여 주시기 위함인가…….’
자신의 성장을 이렇게 표현하시다니. 데니스 백작이 놀라움에 주먹을 쥐었다.
그때, 키네미아가 입을 열었다.
“다들 모였군.”
위엄 있는 말투였다.
보통의 키네미아였다면 예쁘게 웃으면서 ‘다들 모였네.’라고 했을 터였다.
키네미아의 태도가 달라진 것을 느끼자 가신들이 소리 없이 감탄을 내뱉었다.
제 어깨에 달린 책무가 큰 귀족들에게는 어느 순간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는 때가 온다는 걸 그들도 익히 겪어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한순간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사이 키네미아는 자신의 키만 한 테이블을 빙 돌아 상석으로 향했다. 키네미아가 앉을 의자 위에는 두터운 방석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
키네미아는 의자 앞에 서서 침을 삼켰다.
‘뭔데. 에베레스트야?’
원래 이 의자를 쓰던 마지막 사람은 키네미아의 아버지인 트로이 리온이었다.
트로이는 예쁜 얼굴만큼 피지컬도 좋아서 다리가 긴 편이었는데, 작위를 이어받자마자 자기 다리에 맞는 의자를 특별 주문했다.
다리가 긴 의자를. 황금 칠까지 해서.
으, 키네미아가 위로 고개를 꺾었다. 황금으로 도금된 의자는 아이가 앉기에는 꽤 높았다.
기실 이전까지는 유모 바네사가 번쩍 안아서 올려 주었지만…….
키네미아가 슬쩍 가신들의 눈치를 보았다. 모두가 그녀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혼자서 해야 돼.’
키네미아로서는 나름의 꿍꿍이가 있었기에 유모 바네사를 데려오지 않았다.
지난 수난을 겪고 남은 가신들은 단 넷.
그만큼 충성심이 높고 키네미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란 뜻이긴 했지만…….
‘지금부터는 달라져야 하니까.’
이전까지 모든 결정권을 가신들에게 떠넘겼다면, 이제부터는 키네미아 자신에게 결정권이 쥐어져야 한다.
그저 11살짜리로 남아 있어서는 어떤 일이든 간에 사사건건 어른들의 방해를 받을 공산이 컸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수월하게 일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위엄 있는 주인’이란 이미지가 필요하다. 그 기반을 다져야 했다.
그래서 키네미아는 소문을 이용하기로 다짐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대공 성에 틀어박혀 벌벌 떠는 11살짜리가 아니라 대공 위를 마땅히 이어받을 만한 믿음직스럽고 현명한 주인으로 보여야겠다고.
그런데 고작 의자 앞에서 시도도 해 보지 않고 도와 달라 징징댄다면?
주인이 아니라 대공 성에 사는 예쁜 딸내미 정도로 남을 것이 분명했다.
‘좋아. 등반한다……!’
굳게 결심한 키네미아가 의자 위에 두 손을 짚었다.
‘이 정도쯤이야!’
두 손으로 지탱한 후에 의자 위를 무릎으로 짚어 올라갈 생각이었다.
머릿속으로는 완벽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앉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
의자 위로 무릎을 올리는 순간, 매끄러운 방석 표면에 무릎이 흘러내렸다.
“앗!”
어디든 잡고 버티려고 했지만, 허우적대며 미끄러진 키네미아가 결국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
“그런…….”
가신들 사이에서 안타까운 탄식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