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44)
먼치킨 길들이기 44화
* * *
톡.
발끝으로 떨어진 물방울 소리에 키네미아가 살며시 눈을 떴다.
주변은 어둡고 눈앞이 흐릿하다.
‘여긴…….’
키네미아는 마지막 기억을 되살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머릿속에서 무작위로 이미지들이 재생됐다.
사탕.
축제.
호랑이.
보석.
찻잎.
피.
바네사.
바네사.
‘맞아. 바네사.’
키네미아가 눈을 번쩍 떴다.
‘유모는? 괜찮을까?’
철컹-
일어서려던 그녀가 무언가에 막혀 움직이지 못했다.
“……?!”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은 채로 온몸이 쇠사슬에 결박되어 있었다.
‘윽!’
벗어나기 위해 몸을 흔들 때마다 쇠사슬이 철컹철컹 부딪쳤다.
“꿈틀거려 봤자 그건 못 풀어.”
남자의 목소리. 아까 바네사를 세뇌했던 마법사의 목소리와 같았다.
키네미아는 곧장 그를 노려보았다.
“너…….”
“라이언이다.”
남자는 그림자 속에 있어 외형이 보이지 않았다.
바라는 게 뭐지? 원한 해소?
“유모는?”
“그대로 쓰러져 있겠지.”
그가 뚜벅뚜벅 그림자 밖으로 나와 키네미아에게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키네미아는 거세게 몸을 흔들며 말했다.
“바라는 게 뭐야. 돈? 땅?”
그런 것쯤이야 얼마든지 줄 수 있다.
“뭐?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그러나 라이언은 배를 잡고 미친 듯이 웃어 젖히기 시작했다.
컥, 커컥 하고 숨이 넘어갈 듯 웃을 때마다 그의 푹 꺼진 눈꺼풀이 들썩였다.
키네미아가 식은땀이 고이는 주먹을 꾹 쥐었다.
그에게서는 거친 풍랑 같은 광기가 느껴졌다.
“핫하하하! 하핫! 돈? 땅? 나 같은 상위 마법사가 왜 그런 데 연연해. 어차피 쉽게 거머쥘 것들인데.”
옳은 말이었다. 상위 마법사쯤 되면 돈이고 땅이고 원하는 대로 모두 줄 테니 제발 제 곁에 와 달라는 이들이 줄을 서니까.
‘그럼 역시 복수인가.’
누구지? 할아버지? 엄마? 아니면 아빠?
“에이얀이 그런 건 얘기해 주지 않던가?”
“에이얀?”
갑작스레 튀어나온 이름에 키네미아가 바르작거리던 움직임을 멈췄다.
‘에이얀 때문이었나…….’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하긴, 에이얀이 아니면 마법사가 날 노릴 이유가 없다.
아니, 그렇게 생각해도 어폐가 있다. 에이얀과 내가 무슨 상관이라고 날 노린단 말인가.
뭐지? 하나뿐인 친구라서……?
그렇다면 오늘부터 절교다.
“그래, 널 끔찍이 여기는 그 에이얀 말이야.”
뭐라는 거야……. 순식간에 키네미아의 얼굴이 우그러졌다.
설마 상대를 착각하고 잘못 데려온 거 아냐?!
“뭔가 착각했나 본데, 번지수 잘못 찾았어. 그건 내가 아니야.”
“아니, 너야.”
“아니…… 에이얀이 끔찍이 여기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니까.”
“너야.”
라이언은 더 이상 듣지 않겠다는 듯 단호히 말을 끊어 버렸다.
미친. 말이 안 통하네. 키네미아가 얽매인 다리를 짜증스럽게 흔들었다.
에이얀……!
처음 지하 감옥에서 만났을 때부터 예감했어야 했는데……!
지금까지 그렇게 치댔던 것도 전부 오늘을 위해서 큰 그림을 그렸던 건 아니겠지?
“그래서, 에이얀에게 복수하겠다는 거야? 에이얀을 죽이지 못하는 대신 날 죽이겠다?”
퍽이나. 걔가 날 죽인다고 해서 눈 하나 깜빡이라도 하겠냐고!
“에이얀이 그랬지. 죽이는 건 너무 쉽다고.”
“……뭐?”
“그래, 맞는 말이야. 죽이는 건 너무 쉬워.”
죽이는 게 쉽다니. 그게 대체 무슨 뜻인데! 키네미아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라이언은 제 빈 눈에 손을 갖다 댔다.
“내 눈을 누가 파냈는지 알아?”
굳이 답을 듣지 않아도 알겠다.
“……에이얀이겠지.”
“맞았어.”
에이얀, 뭘 하고 다닌 거야. 키네미아가 소리 없이 눈물을 삼켰다.
“난 뭘 할 것 같아?”
라이언이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곧 기구들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응?”
그가 되묻자 키네미아가 등받이에 등을 바짝 기댔다.
‘뭔데! 무서워! 무섭다고!’
키네미아의 온 신경이 라이언의 행동에 집중되었다. 라이언이 커다란 가위를 찰칵거리는 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 * *
‘세상에, 어떻게 이런 괴물이 존재한단 말인가!’
칼슨은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는 이를 악물었다.
이전 습격 사건 때 마력을 봉하는 술식에도 아랑곳없이 라이언을 제외한 모든 마법사들을 손쉽게 죽였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만-
‘저런 게 진정 사람이긴 한가?’
에이얀은 주머니에 두 손을 꽂은 채 마법사의 가슴에 발을 얹고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벌써 두 번째로 잡힌 마법사였다. 첫 번째로 잡힌 마법사는 뭐가 벌어졌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숨이 멎어 버렸고, 에이얀은 지금 힘 조절이 잘 안 된다면서 웃어 보였다. 방금 사람을 죽인 이답지 않게, 무해한 소년처럼 말갛게.
이후로 두 번째 잡힌 마법사는 장난감처럼 농락당하다가 결국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채였다.
“쿨럭!”
괴물이라고 중얼거리는 마법사의 입가에서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그러나 대수롭지 않다는 듯 에이얀은 심드렁한 투로 말했다.
“이대로 죽지 마. 시시하잖아. 먼저 시작했으면 좀 더 힘을 내야지.”
칼슨은 손바닥에 손톱이 박힐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구할까?’
그러나 생각과는 다르게 몸이 따라 주지 않았다. 심장이 거세게 두방망이질치고 몸이 가늘게 떨렸다.
희생은 생각보다 더 강한 의지가 필요했고, 자신은 그런 이가 아니라는 것만 절절히 절감되는 중이었다.
– 이건 계획이랑 다르잖아!
자신과 함께 온 마법사의 전음이었다.
–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칼슨!
어떻게 해야 하냐고? 칼슨은 어떤 말도 되돌려줄 수가 없었다. 머릿속은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물들었고 온몸은 긴장으로 경직되어 있었다.
그저 도망이나 다니면서 시간을 끌려고 했는데, 그것조차 무리라고?
‘괴물.’
지금 에이얀을 지켜보는 마법사들은 모두 한 마음으로 그리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무지막지한 괴물이라고.
숨은 마법사들에게서 반응이 없자 에이얀이 발에 힘을 주었다.
“쿨럭! 쿨럭!”
거세게 기침한 마법사의 입에서 피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에이얀은 해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런, 큰일이야. 우리 두 번째 친구가 정말 죽어 버리겠어.”
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짓궂은 투였다.
칼슨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신음성을 내지 않기 위해 주의했다. 당초 목표는 그를 상대하는 게 아니지 않던가. 어차피 더 이상은 무리다. 상황을 봐서 완전히 도망치리라.
“왜들 몸을 사리지? 전에는 안 그랬는데.”
의아하다는 기색을 띤 새하얗고 미려한 얼굴은 그야말로 천사 같았다.
“이대로 친구가 죽게 놔둘 거야?”
소름이 끼칠 정도로.
‘조금만 더 상황을 보다가…….’
당장 마법을 써서 도망치고 싶지만 결국 잡혀 올 것이 분명하다. 시간을 끌다 보면 누군가는 에이얀의 시선을 끌 테고, 칼슨은 그 순간을 틈타 도망칠 생각이었다.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눈치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 누구도 에이얀을 상대하고 싶진 않을 테니까.
그때 눈매를 좁힌 에이얀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너희…….”
‘……?’
칼슨이 그의 달라진 반응을 눈치채고 그에게로 눈동자를 굴렸다.
돌연 에이얀의 미간이 좁혀졌다.
“……뭐지?”
설마 알아챘나? 순간 칼슨의 손끝이 서늘한 칼바람에 베인 것처럼 차갑게 식고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에이얀이 나직이 말했다.
“네놈들이 나랑 숨바꼭질이라도 하려고 온 건 아닐 테고.”
이런 지난한 각개전투보다는 힘을 모으는 게 자신을 상대하기에 더 낫다는 사실을 모르지도 않을 터.
지난번 습격에도 그렇지 않았던가. 다수가 한꺼번에 힘을 써 왔었다.
이번에 모인 이들이 아무리 지능이 낮은 놈들이라 해도 정말 자신을 죽이려 했다면 이렇게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목적이 따로 있다는 건가.
“너희, 따로 노리는 게 있어?”
“……!”
“시간을 끌라고 했나?”
생각에 잠긴 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라이언?”
새카만 눈동자는 나무 뒤에 선 칼슨을 향해 정확히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