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47)
먼치킨 길들이기 47화
키네미아는 저를 내려다보는 얼굴 쪽으로 팔을 들었다. 그리고 손끝으로 에이얀의 눈물을 훔쳤다.
눈을 감은 에이얀이 숨을 깊게 내뱉으며 손끝을 따라 얼굴을 기울였다.
키네미아가 손을 펴서 볼을 감싸자 촘촘하게 박힌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에이얀을 달래기 위해 슬쩍 어깨에 팔을 둘러 등을 토닥였다.
그러자 그가 키네미아의 목에 얼굴을 기대면서 힘주어 마주 안았다.
“……안 믿었어.”
“뭘 안 믿었다는 거야.”
“네가 죽었다는 말.”
“……그놈이 나 죽었다고 거짓말도 해?”
얼떨떨한 얼굴로 되물으니 에이얀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키네미아를 안은 팔에 힘이 더 들어갔다. 안 믿었다면서도 왜인지 극심한 불안감을 느낀 모습이었다. 아니면 보자마자 이렇게 울지도 않았겠지.
그래서 그런 얼굴로 보고 있었나……. 키네미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라이언의 거짓말에 놀란 모양이었다. 아무리 어른스럽게 군다 해도 에이얀은 13살이니까.
“이래서야 화도 못 내겠네. 네가 한 짓 때문에 내가 이게 무슨 고생이냐고…….”
“미안.”
나직이 한숨처럼 나온 그의 사과에 키네미아는 왠지 뻘쭘해졌다.
“아니, 사과하라고 한 말은 아니고…….”
“미안.”
“아니, 따지고 보면 네가 그런 것도 아니잖아. 그 자식이…….”
“미안.”
무슨 말을 꺼내도 사과할 기세다. 이에 키네미아는 다른 말을 꺼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이 상황에서 너랑 절교하겠다고 하면 감당 못 하겠는데.
‘하는 수 없나…….’
내가 죽은 줄 알고 울기까지 했는데.
키네미아는 그런 애를 앞에 두고 모진 소리를 내뱉을 정도의 담은 없었다.
“후-”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다시 천천히 내뱉었다.
허탈하면서도, 가슴 안쪽에 더 크게 자리한 것은 안심이었다.
내내 긴장감을 부채질하던 불안감은 어느새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절교니 뭐니 해도, 자신을 구하러 온 에이얀을 보고 안도했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잠시간 키네미아는 자신에게 매달리는 손을 뿌리치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입을 다문 채 에이얀을 안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현실감이 찾아왔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인가?
“에이얀, 그 자식은 어떻게 됐어?”
“…….”
에이얀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의 침묵에서 뭔가를 직감한 키네미아가 덧붙였다.
“화 안 낼게.”
“죽였어.”
“응.”
그랬겠지…….
화내지 말라는 듯 대형견처럼 귓가에서 이마를 비비는 에이얀은 왠지 제 눈치를 보는 기색이었다.
아까 네가 한 짓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투덜댔기 때문인가.
“자, 잘했어.”
일단 유모를 세뇌하고 나를 노리던 자가 아닌가. 죽어도 싸지.
“그, 그건 날 노리던 나쁜 놈이잖아. 화 안 내……. 잘했어.”
키네미아가 더듬더듬 에이얀의 행위를 치하했다.
그러자 에이얀이 더 칭찬받으려는 것처럼 말을 덧붙이려 했다.
“어떻게 죽였냐면-”
“거기까지는 얘기하지 않아도 돼.”
“……응.”
키네미아가 황급히 말을 자르니 에이얀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
‘이걸 어쩐다-’
키네미아는 계속 제 몸을 안고 놔주지 않는 에이얀의 등을 토닥거리면서 고민에 잠겼다.
라이언이 죽었다면 다행이긴 한데, 유모가 정말 무사한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데…….
‘놔줄 분위기가 아닌걸…….’
그보다 여기서 나갈 방법이 있긴 한가?
키네미아가 적당히 그를 토닥이며 여기서 나갈 방법을 알고 있는지 물으려던 참이었다.
누군가가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이런, 키네미아?”
울프만이었다.
키네미아를 보고 놀란 울프만은 둘을 물끄러미 보고 선 채였다.
핫!
울프만을 발견하고 화색이 되었던 키네미아가 울프만의 시선 처리에 그제야 지금의 자세를 눈치챘다.
“하, 할아버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키네미아가 에이얀을 밀어내고는 후다닥 물러섰다.
돌연 나타난 불청객 탓에 한순간에 제 품이 비어 버리자 에이얀이 얼굴을 굳혔다.
“왜 너까지 여기에…….”
울프만은 키네미아에게 다가가 먼저 외상이 없는지 살피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라이언의 아공간과 진동하는 혈 향, 이성을 잃었던 에이얀, 그리고 키네미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대충 알겠구나.”
울프만은 자신을 향해 흉흉한 살기를 쏘고 있는 에이얀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키네미아에게 큰일이 날 뻔했군.’
키네미아가 무사한 걸 보고 있는 자신도 심장이 이리 선뜩한데, 저 녀석이 참을 수 있었을 리가.
탄식을 내뱉은 울프만이 키네미아를 안아 들었다.
“키네미아, 네가 고생한 모양이구나.”
등을 다독이는 손길이나 말투에서 심려하는 기색이 뚝뚝 떨어졌다.
키네미아는 이제 심장이 안정적으로 가라앉은 것을 느꼈다.
“전 괜찮아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키네미아가 안심시키려는 듯 방긋 웃었다.
괜스레 코끝이 찡해진 울프만이 키네미아의 등을 토닥거렸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그를 달래듯 키네미아가 울프만을 두 팔로 감아 꼭 안았다.
‘이 어린 것을…….’
작은 몸을 안고 있자니 뒤늦게 라이언에 대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에이얀이 손을 쓰지 않았다면 라이언을 죽인 것은 바로 자신이 되었으리라.
그렇게 울프만이 간신히 화를 삭이는데-
‘이 녀석이 자꾸…….’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에이얀에게 전음을 날렸다.
– 그런 눈으로 좀 그만 보거라! 스승 얼굴 뚫어지겠다, 이놈아!
– 왜 오셨습니까? 다 끝나고 나서. 타이밍 좋게.
뚝뚝 끊어뜨리면서 말하는 모습이, 늦게 온 것을 책망하는 듯한 말본새였다.
울프만은 매우 억울했다.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알자마자 부랴부랴 도우러 왔건만, 하나뿐인 제자라는 게 적의에 가득 찬 말로 쏘아붙이기나 하다니.
– 넌 어찌! 스승이 도우러 와도 그 모양이야!
– 도운 게 아니잖습니까, 스승님.
초 친 거지.
뒤의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울프만이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떨었다.
이 빌어먹을 제자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였다.
울프만은 보란 듯이 키네미아를 더 꼭 끌어안았다.
역시 녀석의 눈이 더 매서워졌다.
– 이 녀석! 눈으로 스승도 잡아먹겠다!
– 안 먹습니다.
대신 씹어 뱉어 주겠다는 눈이었다.
저 불한당 같은 놈. 내가 키네미아한테 너를 허락할 것 같으냐.
울프만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절대 반대할 거라고 다짐하던 그때였다.
키네미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할아버지.”
“어, 그래.”
“혹시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요? 그 마법사가 절 여기에 데려오려고 유모를 세뇌했었거든요. 그래서 유모가 괜찮은지 확인하고 싶어요…….”
“그랬구나, 그런 일이……. 미안하다. 내가 대신 사과하마.”
그러자 키네미아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뇨, 아뇨. 할아버지께서 그러신 게 아니잖아요. 누굴 탓하려고 한 게 아니라, 저는 그냥 유모만 괜찮은지 확인하고 싶었던 건데…….”
키네미아가 웅얼거리자 울프만이 자그맣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일단 여기서 나가자꾸나.”
“네에.”
몸을 돌린 울프만은 에이얀에게 시선을 주었다.
– 그나저나, 너와는 따로 할 이야기가 있으니 일단 돌아가면 내 방으로 오거라.
– ……예.
왜 자신을 부르는지는 알고 있는지, 에이얀이 얌전히 답했다.
이내 울프만이 키네미아를 안고 걷기 시작했다. 그들 앞에 입구가 열렸고 울프만에 이어 에이얀이 입구를 넘어섰다.
그러자 복도와 연이은 방이 무너져 내리면서 대공 성 안으로 이어지던 구멍이 순식간에 닫혔다.
12장 축제의 끝
타다다닥, 타다다닥. 울프만이 팔걸이를 피아노 치듯 두드렸다.
방 안에는 마법사들을 모두 물리고 울프만과 에이얀 단둘이 마주 보고 앉아 있는 중이었다.
에이얀에게 자초지종을 모두 들은 울프만이 말했다.
“마탑으로 돌아오거라.”
에이얀이 멈칫 어깨를 굳혔다.
생소한 그 반응에 울프만은 에이얀을 마탑으로 데려가야 한다는 걸 더 확신했다.
“저는…….”
“이대로 키네미아 곁에 있어 봤자 그 애가 더 위험해질 뿐이야.”
지금껏 능숙하게 제 감정을 숨겨 왔기에 체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에이얀은 아직 13살. 감정 조절에 미숙한 어린 소년이었다.
다른 이들이라면 괜찮다. 아이들은 그렇게 성장하는 법이니까. 그러나 에이얀만은 그래선 안 된다. 에이얀은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그가 가진 힘을 제어해야 하는 책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