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48)
먼치킨 길들이기 48화
“너도 알고 있겠지. 자칫하면 네가 키네미아를 죽일 수도 있었어.”
에이얀이 입술을 깨물었다. 스승의 말에 반박할 수 없는 자신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안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걸. 그러나 당시에는 어떤 일이 생길지 알면서도 들불처럼 타오르는 감정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그 애와 떨어져 있거라.”
“……스승님.”
“키네미아 곁에서 일희일비하기 전에, 넌 네 힘을 더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해. 그게 너한테도, 키네미아한테도 좋은 일이야.”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도……. 울프만은 내뱉으려던 말을 삼켰다. 그런 건 에이얀에게 의미가 없을 테니까.
지금 에이얀을 설득하는 일에는 키네미아가 유일하고 충분했다.
울프만은 에이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 입을 다물었다.
모질게 굴고 싶지는 않았으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마탑주인 울프만도 어째서 에이얀이 그런 힘을 쓸 수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단순히 마력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어둠은 삽시간에 모든 것을 삼켜 버린다는 것.
에이얀을 버린 아버지가 살던 소국은 어둠에 뒤덮여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잠시간 침묵이 맴돌았다.
먼저 입을 뗀 건 에이얀이었다.
“제가 힘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으면 됩니까.”
“그래. 그때까지만.”
“…….”
그때까지만이라 말했지만 십수 년이 걸릴지, 아니면 평생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 긴 시간 사이에 키네미아에 대한 마음이 식을 수도 있다.
그러면 더 좋은 일이겠지. 에이얀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존재가 사라지는 것일 테니.
물론 키네미아에게도 잘된 일이었다. 키네미아는 마력도 없는 일반인이 아닌가. 제자라고는 하지만 이런 위험 종자가 붙어 있는 건 아무래도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자칫하면 키네미아뿐만 아니라, 제국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었다.
“이틀 후에 마탑으로 돌아갈 테니 너도 따르거라.”
울프만은 모든 대꾸를 잘라 내듯 말했다. 떨어져 있는 것이 최선이다. 사실이 그러했으니까.
그리고 영리한 에이얀은 이를 싫을 만큼 잘 알고 있으리라.
* * *
다리를 앞뒤로 왔다 갔다 저으면서 키네미아는 제 머리를 빗겨 주는 유모 바네사를 올려다보았다.
라이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목과 손의 상처를 제외하면 바네사는 무사했고, 그날 있었던 일들은 모두 잊어버린 듯했다.
‘차라리 그게 낫지.’
바네사가 모두 기억했다면, 자책하며 보름 내내 펑펑 울거나 자신의 곁에 다가오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네사의 책임도 아닌데 그렇게 마음의 짐을 얹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완전 범죄를 위해 키네미아는 포션을 부어 바네사의 상처를 전부 없애 버렸다. 바네사는 처음엔 뚝 잘린 듯 사라진 기억에 조금 의아해하는 듯했으나, 키네미아가 계속 말을 걸며 정신을 분산시키니 곧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탑주님께서는 내일 돌아가신다면서요?”
“응응.”
바로 어제, 울프만은 마탑을 오래 비워 둘 수 없으니 슬슬 떠나야겠다는 말을 전해 왔다.
짧은 만남이 아쉽다며 울프만이 키네미아를 안고 징징거렸지만 키네미아가 다음에 또 만나자고 하자 미소를 지었다.
“신경 쓴다고 쓰긴 했는데, 그간 대공 성에서 편히 지내셨을지 모르겠어요.”
“잘 지내셨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는걸. 참, 유모는 걱정이 많아.”
걱정 많으면 빨리 늙는대. 키네미아가 손을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러자 유모가 부드럽게 웃었다.
“아가씨만 잘하셨어도 제가 5년은 더 젊어 보였을 텐데.”
핫! 키네미아가 눈을 떨었다. 공격을 공격으로 대갚음하다니. 역시 당해 낼 수 없다.
“그나저나, 에이얀 님께서도 내일 마탑으로 돌아가시나요?”
“어? 에이얀?”
“예. 에이얀 님께서는 리카샤시잖아요. 언제까지 대공 성에 있진 않으실 거 아니에요.”
“……그런가.”
줄곧 쫓아내려는 생각만 했지, 에이얀이 제 발로 나갈 거라고는 상상해 본 적이 없다.
그것도 요즘에는 쫓아낸다는 목적조차 흐지부지해졌었다.
‘그동안 조금 친해진 것 같아서 그런가.’
마음이 약해졌어. 방심하는 순간 당하는 건데. 에이얀은 좀처럼 속내를 알 수 없는 사악한 마법사니까.
눈물을 뚝뚝 흘리던 에이얀의 모습을 애써 지워 내며 키네미아가 입을 삐죽였다.
‘그건 예외 상황이니까…….’
그사이 키네미아의 머리를 다 빗겨 준 바네사가 물었다.
“오늘도 성 밖에 나가실 거죠?”
“아, 응응. 오늘이 축제 마지막 날이잖아.”
사흘을 내리 지속한 축제의 마지막 날. 첫째 날과 둘째 날이 산 사람들을 찾아온 무서운 영혼들과 함께하는 날이라면, 마지막 날은 축제를 즐기던 영혼을 떠나보내는 날이었다.
“그럼 조금 이따 물어보시면 되겠네요.”
“응?”
“에이얀 님이요. 마탑으로 돌아가시는지 만나서 물어보시면 되겠어요.”
유모가 빙긋 웃자 키네미아가 입을 부루퉁하게 내밀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걸 내가 왜 물어봐. 관심 없어. 전혀.”
에이얀이 떠나든 말든. 얌전히 자기 발로 나가 주면 차라리 잘됐지.
“물어볼 수도 있죠. 아가씨한테 하나뿐인 친구인데.”
“……!”
하나뿐인 친구라니. 아픈 곳을 건드리자 눈물이 찔끔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마탑으로 돌아가시면 꽤 서운하시겠네요. 하나뿐인 친구랑 헤어지시게 되니.”
왜 자꾸 하나뿐인 친구라고 하는 거야!
이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사실이니까! 리온의 악녀에게 친구 따위는 없으니까!
슬프고 억울하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원작에서 내가 삐뚤어진 것도 전부 불우한 가정 환경으로부터 비롯된 폐해라니까.
“그럼 재미있게 놀다 오세요.”
잔인하게 상처를 후벼 파던 바네사는 마치 그런 적이 없었다는 듯 자상하게 말하며 키네미아의 볼에 입을 맞췄다.
“……으응.”
키네미아가 입꼬리를 축 늘어트린 채 바네사의 볼에 마주 입을 맞췄다.
* * *
거리 곳곳에서 오색 깃발이 휘날리고 음악 소리가 울려 펴졌다.
축제의 마지막 날에는 모두가 거리로 나와 즐겁게 웃고 노래를 부르면서 작별을 슬픔으로 허비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외출하는 때이니, 이를 틈타 시가지에는 가판이 줄줄이 늘어섰다.
그 사이로 즐겁게 노래하며 춤을 추는 커플, 가면을 썼다 벗었다 하면서 동생을 놀리는 남매, 바이올린을 가지고 나와 자리를 잡는 연주가가 보였다.
휘, 거리를 둘러보던 에이얀은 계속 저를 향해 머뭇거리는 키네미아와 눈을 맞췄다.
뭔가 말할 듯 말 듯 힐긋거리는 시선에 얼굴이 따가울 정도였는데, 이렇게 지그시 보면 또 고개를 팽 돌려 버린다.
떠난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스승은 부러 키네미아에게 자신이 떠난다 언질을 주지 않은 듯했는데…….
“미아.”
“응.”
“왜?”
“왜, 왜냐니? 다짜고짜.”
“나한테 할 말이 있는 것 같아서.”
“없어, 없어. 전혀 없어.”
키네미아가 두 손을 내저었다.
“그래?”
에이얀이 갸우뚱 고개를 기울였다. 매우 있다는 기색인데.
“그럼 됐고.”
그가 웃으며 키네미아의 입가에 솜사탕을 물렸다.
합. 솜사탕을 입에 문 키네미아가 우물거렸다. 달콤해.
에이얀은 키네미아가 두 손으로 솜사탕을 받아 들고 입을 크게 벌리고 합, 합, 뜯어 먹는 모습을 보다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평소에는 쓰다듬지 말라며 빽 소리를 질렀을 테지만, 먹는 데 정신이 팔려서인지 키네미아는 에이얀의 손길을 내버려 두었다.
그런 도중, 야무지게 막대기 끝에 붙은 솜사탕을 뜯던 키네미아가 문득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다.
“근데 이거 언제 산 거야? 계산하는 거 못 봤는데.”
그녀가 솜사탕 장수를 돌아보았다. 그는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서 덜덜 떨고 있는 중이었다.
무슨 일이야?!
분명 무시무시한 일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솜사탕 장수는 어린 손님이 제게 솜사탕을 달라고 주문하는데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지 오들오들 떨고만 있었다.
대체 뭐야! 키네미아가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자 에이얀이 말갛게 웃으며 말했다.
“계산 안 해도 된다던데?”
또 갈취했어?!
키네미아는 결단코 됐다는 솜사탕 장수에게 억지로 계산을 해 준 후 에이얀을 끌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허튼짓 못 하게 목줄이라도 달아야 하나.
‘아니야. 안 돼. 그러면 왠지 좋아할 것 같으니까…….’
에이얀과 함께 다니면 숨만 쉬어도 원한이 늘어나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