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50)
먼치킨 길들이기 50화
돌아보는 에이얀의 얼굴은 역광 탓에 어두운 그림자가 져 보였다.
“가지 말라고 하면 계속 옆에서 지킬게.”
에이얀의 진지한 투에 키네미아가 잠시 대답을 머뭇거렸다.
‘뭐야, 갑자기 진지하게…….’
영영 떠날 사람처럼.
주춤거리던 키네미아는 이내 새침하게 답했다.
“돌아가서 할 일이나 하세요, 리카샤님. 네가 옆에 있는 게 더 위험해.”
“미안.”
에이얀이 고개를 숙였다.
“한 번만 더 미안하다고 하면 밑으로 떨어트릴 거야.”
“네에…….”
“그냥 평소대로 뻔뻔하게 굴어. 어색하니까.”
빼꼼 고개를 든 에이얀이 부루퉁하게 말하는 키네미아를 보고 짓궂게 웃었다.
“우리 미아가 나 없이 잘 있을까 걱정이야.”
“방금 말한 거 취소야. 그냥 미안하다고 해.”
“또 미안하다고 해? 언제 용서해 줄 건데?”
“몰라. 평생 안 해 줄 수도 있어.”
에이얀의 시무룩한 얼굴에 키네미아가 정면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금방 돌아올게.”
“영영 안 와도 돼.”
“내가 그렇게 싫어?”
“어.”
“너무하네……. 마지막인데.”
“마지막은 무슨.”
키네미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 봤자 얼마 안 가서 지하 감옥에 다시 나타날 것 같은데.
‘잡혀 버렸어.’ 하면서.
그때 에이얀이 꼭 잡고 있던 키네미아의 손을 들었다.
“잠시만 이렇게 있어.”
“응?”
그가 갑작스레 손을 놓았다. 힉! 키네미아는 졸지에 한쪽 팔을 든 채 굳어 버렸다.
그사이 에이얀은 키네미아의 손목에 팔찌를 채우고 매듭을 묶었다.
엥?
키네미아가 손목을 감싼 얇은 팔찌를 보고 놀라 눈을 깜빡였다.
‘인연 팔찌인가?’
둥근 모양의 바탕에 하얀색 흐릿한 무늬가 담긴, 검은 달처럼 보이는 보석 펜던트를 여러 겹으로 땋은 실이 양옆으로 고정한 형태였다.
‘무슨 보석이지?’
처음 보는 것이었는데 화려하진 않아도 단아하고 아름다웠다.
‘비싸 보이네…….’
음……. 키네미아가 눈을 흐리게 떴다.
‘난 호박 줬는데…….’
그뿐인가. 남이 준 걸 선심 쓰듯 내준 거였다.
문득 팔찌를 받고 좋아하던 에이얀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났다.
‘왜지. 마치 훌륭한 쓰레기가 된 기분이야…….’
죄책감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내가 리온의 악녀다. 자책하던 키네미아가 눈물을 삼키며 팔찌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수제인가.’
끈이 실인 걸 보면…… 직접 만든 것 같은데.
‘아, 이거 때문이었나!’
문득 침방을 들락날락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니, 근데 그건 내가 팔찌를 주기 전부터인데?
이에 답하듯 에이얀이 말했다.
“목도리는 무리였어. 전부 포기하라던데.”
“아…….”
그래서 침방의 하녀들이 날 볼 때마다 안절부절못했었구나. 에이얀 좀 다시 데려가라고 말하고 싶어서.
한숨만 푹푹 쉬면서 애처로운 눈길을 보내던 그 모습을 떠올린 키네미아가 웃음을 터트렸다.
“마음에 안 들어?”
에이얀이 낑, 소리를 내는 강아지처럼 처연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아냐, 아냐. 팔찌 때문에 웃은 거 아냐.”
그녀가 에이얀을 달래고는 팔찌를 보며 활짝 웃었다.
“예쁘다.”
에이얀이 이를 눈에 담듯 가만히 응시했다.
“고마워.”
키네미아가 에이얀을 보고는 다시 한번 환히 웃어 보였다.
에이얀은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시간을 멈출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아니면 이 시간을 베어 내어 내내 품고 다닐 수 있다면 좋았을걸.
“에이얀?”
왜 갑자기 조용해진 거지? 키네미아가 의아한 기색으로 고개를 모로 기울이는데, 에이얀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네가 날 잊으면 어쩌지.”
에이얀에게 키네미아 같은 존재는 일평생 처음이었다.
가족, 스승, 적, 외부인.
그 어느 범주에도 들어가지 않는 유일한 사람.
그렇기에 작별이 낯설고 두려웠다. 사람의 기억은 쉽게 풍화되고, 시간은 쉽게 흘러가니까.
이 시간을 영영 잡아 두는 게 불가능하다면 서로의 기억에라도 남고 싶었다.
하지만 에이얀은 이 순간을 평생 기억해도 키네미아는 다를 것이다.
몇 년 후에는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머릿속 한구석을 좀먹었다.
그렇게 에이얀이 걱정스러워하는 동안 키네미아는 얼굴을 파삭 구기고 있었다.
“나 그렇게 머리 안 나빠.”
“믿을게.”
에이얀이 슬프게 답하자 키네미아가 눈매를 좁혔다.
“믿지 마. 지금 너에 대해 싹 잊었어.”
“왜에에…….”
“몰라.”
“한 번만 봐줘.”
“싫어.”
“미아아-”
그가 빌고 달래고 아래로 떨어지겠다는 협박과 잘못했다는 회유를 거듭하고 나서야 키네미아는 표정을 풀었다.
그제야 안심한 에이얀이 입꼬리를 올렸다.
“금방 올게.”
“알았어.”
우물거리듯 키네미아가 작게 답했다. 에이얀은 빙긋 미소 지었다.
“그러니 잊어버리지 마.”
“안 잊어버려.”
“응.”
부디 그렇게라도 너에게 내 흔적이 남아 있기를.
펑-!
그때 마지막 불꽃이 터졌다. 저 멀리 수평선까지 닿을 것처럼 거대한 불꽃이었다. 둘의 시선이 정면을 향했다.
긴 축제의 끝이었다.
13장 데뷔탕트
5년 후.
거대해진 혜민원 안에서 점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동안 증축을 반복했음에도 내부는 밀려드는 손님으로 내내 시끌벅적했다.
손님들 사이에서 포션을 둘러보던 남자는 눈동자만 움직여 사람들의 동선을 살폈다. 점원들은 모두 접객과 계산으로 분주한 때였다.
이내 그가 조심스럽게 혜민원 내부로 들어섰다.
몰래 복도를 지나 뒷문 밖으로 나가자 곧바로 눈에 들어온 것은 혜민원의 후원이었다.
그는 지나는 연금술사들의 눈에 띄지 않게 기다란 교각 아래로 가볍게 뛰어내렸다.
후원까지 침입했으니 간악한 이교도 쉔 티엔 싱하이의 집무실까지 가는 일은 쉬울 것이다.
저 방해꾼만 없다면.
‘젠장.’
남자의 계획을 방해한 자는 커다란 챙이 달린 밀짚모자를 쓰고 꼼지락거리는 자그마한 체구의 소녀였다.
‘왜 이런 길도 없는 다리 밑에 있는 거야!’
소녀는 몸을 동그랗게 말고 쪼그려 앉아 있었는데, 밀짚모자를 벗으려 챙을 잡고 있다가 교각 위에서 떨어져 내린 그와 눈을 지그시 마주치는 중이었다.
‘……!’
커다랗고 새파란 눈동자에 남자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소녀가 밀짚모자를 벗자 연한 금발이 폭포수처럼 흘러 내려왔다.
잘 관리한 듯 매끄럽고 보드라워 보이는 머리카락은 얼굴선을 따라 흘러 허리까지 닿았다.
살결은 눈처럼 새하얗고,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작은 얼굴을 꽉 채우고 있었다. 얇은 쌍꺼풀이 진 큰 눈은 끝이 살짝 날카로워 고양이 같은 느낌이 엿보였다.
그는 소녀를 한마디로 표현했다.
예쁘다. 그를 보며 의아해하는 표정이 깃든 얼굴조차 전설 속에나 나올 법한 미인처럼 예쁘다.
교단에 평생을 바친 그가 순간 정신을 빼놓을 정도였다.
‘그런데 왜 이런 곳에서 밭일을…….’
수려한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소녀는 장갑을 끼고 호미를 든 채 쪼그려 앉아 뭔가를 심고 있었다.
‘……혜민원의 허드렛일을 돕는 일꾼인가?’
뭔지는 몰라도 이런 그늘진 다리 아래에 심다니. 일을 잘하는 편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게 남자가 제 처지를 잊고 정신없이 소녀의 외모를 감상하고 있을 때였다. 자그마한 입술이 열렸다.
“여기, 외부인은 출입 금지일 텐데?”
소녀는 목소리마저 청아했다.
몽롱한 얼굴로 서 있던 남자는 저를 경계하는 시선을 확인하곤 잽싸게 입을 놀렸다.
“제가 길을 잘못 들었나 보군요. 아, 저는 수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지미 골든 남작이라고 합니다.”
“지미 골든 남작?”
“그렇습니다만. 귀족이라고 해서 그리 어려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신분을 속이는 데는 귀족이 제격이었다. 귀족이라고 하면 다들 으레 어려워하며 선을 긋기 마련이다. 특히 잡역부라면 더더욱.
그러나 소녀는 내가 왜 널 어려워해야 하느냐는 표정으로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다. 그러고는 냅다 대답했다.
“그러지.”
귀족이라는데도 상대는 하대에 아주 거침이 없었다. 어려워하지 말라는 것이 그리 말을 편하게 하라는 뜻은 아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