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53)
먼치킨 길들이기 53화
“사부님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아서 아닐까요?”
“음, 그럴지도…….”
“왜 또 내 탓이냐!”
갑자기 희생양으로 선발된 것이 억울했던 쉔 티엔이 빽 소리를 지르던 그때였다.
“아가씨이-!”
세 사람의 대화 사이에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음?”
키네미아가 빼꼼 얼굴을 들었다. 손을 번쩍 들면서 후원으로 뛰어오는 이는 유모 바네사였다.
“유모가 여기까지 웬일이야?”
바네사가 저렇게 뛸 리가 없는데. 뭐지?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혹시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게 아닌지 덜컥 겁이 난 키네미아가 뽀르르 바네사에게로 달려갔다.
바네사는 무릎에 손을 얹고 숨을 가다듬었다.
“왜? 무슨 일 있어? 마물 습격? 화적떼? 산불?”
그러나 숨을 고른 바네사가 내민 것은 편지 한 통이었다.
“헉, 아가씨. 헉…… 초대장이, 왔어요.”
“무슨 초대장?”
그렇게 놀랄 만한 초대장이 있었나.
설마 결투? 결투장인가?! 영지전이라든가?!
키네미아는 바네사가 흔드는 하얀 종이를 보기 위해 눈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러자 바네사가 초대장을 눈앞에 들이밀었다.
“데뷔탕트요.”
“엥? 뭔 탕트?”
“데뷔탕트요! 데뷔탕트 초대장이 왔어요, 아가씨!”
바네사가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키네미아는 오만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왜?!”
* * *
갓 성년이 된 소년, 소녀들의 사교계 입성을 알리는 이벤트, 데뷔탕트.
다른 곳과는 다르게 제국에서는 매년 당대 유력 귀족 중 하나가 데뷔탕트를 여는 호스트로 뽑히게 되는데, 데뷔탕트에 참여하려면 그 호스트의 초대가 필수적이었다.
그런 탓에 제국의 소년, 소녀들은 호스트의 마음에 들기 위해 각종 모임을 다녀 인맥을 넓히고, 17살 성인이 되면 호스트를 위한 선물을 건네며 초대해 달라는 의향을 넌지시 알리곤 했다.
그런데.
‘개중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초대장이 왔다고?’
키네미아는 초대장을 들고 가만히 상념에 잠겼다.
‘원작에서는 못 받았지. 이 초대장.’
대귀족 중 하나인 리온의 후계가 데뷔탕트 초대장을 받지 못했다는 건 무척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유모와 가신들은 그 탓에 올해가 들어서면서부터 줄곧 조마조마하게 마음을 졸였던 모양이다.
그에 반해 이미 받지 못할 거라 예상하고 있던 키네미아는 제법 가벼운 마음이었다. 뭐, 사실 데뷔탕트니 뭐니 애초에 기대도 없었고.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 실망이 없으면 절망도 없는 법!
심지어 이를 이용해서 해탈한 현인처럼 속세에 얽매이지 않는 모습을 연출하려고까지 했는데!
‘그런데 왜 초대장이 오는 거냐고!’
막상 초대를 받게 된 키네미아는 설렘 가득 기대 잔뜩이라는 마음보다는…….
‘어째서어어어…….’
……우울하기만 했다.
17년 동안 영지 밖으로 나가 본 적도 없는데, 갑자기 이런 중대 퀘스트가 떨어지다니.
사교 모임 따위에 참여한 역사가 없었던 키네미아의 머릿속에서 사교계의 이미지란, 어두운 물밑 싸움과 권모술수 따위로 점철되어 있었다.
게다가 자신은 그곳에 등장할 최약체가 아닌가.
사교 Lv.1 키네미아 리온
직업 : 악녀
속성 : 원한
보유 스킬 : 켜켜이 쌓인 가문의 원한 (가만히 있어도 원한도가 높은 자들의 어그로를 끌게 된다.)
힝! 키네미아가 어깨를 감쌌다.
‘무서워……! 우리 안에 갇힌 못생긴 원숭이처럼 취급하면 어쩌지. 나한테 바나나라도 던져 대면…… 받아? 받아야 하나?’
더군다나 키네미아의 걱정은 단지 갑작스레 던져진 초대장이나 무서운 사교계뿐만이 아니었다.
‘무려 로슬린 공작이잖아!’
이 데뷔탕트의 호스트가 바로 로슬린 공작이라는 점. 이 점이 제일 큰 문제였다.
‘왜지? 왜?’
원작에서는 안 보냈잖아! 대공령 내의 신전을 폐쇄하는 것에 더해서 이젠 다른 수단으로 괴롭히려는 건가?
그렇다면 성공이었다.
‘괴로워! 무섭다고!’
그러나 키네미아가 이렇게나 두려워하는 동안에도 대공 성은 축제 분위기였다.
“이럴 줄 알았어요. 우리 아가씨가 어떤 분이신데. 역시 드레스를 준비해 두길 잘했죠.”
“그럼요. 미리 준비 안 했으면 늦었을 거예요.”
“당연히 초대장이 올 줄 알았다니까요!”
하녀 리리네와 셰인, 유모 바네사는 벌써부터 드레스에 맞는 액세서리와 구두를 준비 중이었다.
힝. 울상을 한 키네미아는 그녀들에게 팔 한쪽씩을 잡힌 채 51구역에서 고문당한 외계인처럼 끌려다니기만 했다.
“아가씨, 이거로 할까요?”
“바네사 님, 그건 너무 수수해요. 이건요?”
“너무 화려하지 않나?”
“아가씨께서 워낙 예쁘셔서 이 정도는 해야 눈에 띄죠. 이런 수수한 건 티도 안 날걸요.”
“맞아요. 얼굴만 한 귀걸이를 차고 가도 다들 얼굴만 쳐다보실 거예요.”
“그것도 그렇긴 한데…….”
세 사람이 이것저것 대 보는 통에 눈앞에 현란한 보석들이 반짝였다. 대부분 마탑주 울프만이 꼬박꼬박 보내온 선물들이었다.
울프만은 생일이며 기념일이며 이것저것을 다 챙겨 주면서 선물을 보내왔는데, 어찌나 손이 크던지 드레스 룸을 증축해야 할 정도였다.
키네미아는 이것저것 제 얼굴과 몸에 대 보는 손길을 느끼며 눈물을 참아 냈다.
‘안 간다고 거절하고 싶다…….’
하나 데뷔탕트 초대를 거절한다는 건 귀족들 사이에서는 상상도 못 할 결례였다. 그랬다가는 괜히 건방지고 무례하다는 악명만 더하는 꼴이 될 것이다.
“어머머, 그럴 줄 알았어요! 역시 리온의 악녀라니까!”
“제국 귀족들 따위야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거죠!”
“이런 결례도 정도가 있지! 어떻게 데뷔탕트 초대를 거절해요? 전례가 없어요, 전례가!”
대강 이런 상황이 되려나.
사실 뒷담만이라면 살포시 무시했겠으나, ‘높아지는 악명=높아지는 단두대 확률’의 공식에 따라 키네미아는 데뷔탕트에 참석할 필요가 있었다.
생존을 위해서. 안온한 미래를 위해서!
‘그래, 이렇게 된 거 정면 돌파다!’
아주 자신감 넘치게! 능력 있는 대공녀처럼! 마치 사교계를 쥐락펴락하는 것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있다가 올 것이다!
키네미아가 그렇게 다짐하는 동안, 유모 바네사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참을 수가 없었다.
연이은 가문의 비극으로 인해 영지의 대부분은 몰수당했고, 명예도 떨어질 대로 떨어진 리온이었다.
작고 예쁘기만 한 우리 아가씨가 이런 가혹한 환경을 이겨 낼 수 있을까 늘 걱정스러웠는데.
그 걱정이 우스워질 만큼 키네미아는 잘 이겨 내는 것뿐만 아니라 대공령을 더없이 발전시키는 중이었다.
교단의 견제에 맞서 훌륭하게 혜민원을 성장시키고 있었고, 베히모스를 필두로 기술 단지를 만들어 능력 있는 대장장이들을 모았으며, 흑야 길드를 운용해 영지에 마정석을 적절한 가격으로 공급하고 있었다.
이미 영지민들 사이에서는 키네미아를 훌륭한 영주라고 입이 마르게 칭찬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간 키네미아는 어떤 사교 모임에도 나가지 않았고 사교계에 어떤 관심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뷔탕트의 초대장이 왔다는 건 귀족계에서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키네미아의 입지가 높아졌다는 뜻이었다.
정작 아가씨 자신은 잘 모르시는 것 같지만.
바네사는 웃으며 키네미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거울에 비친 키네미아는 이미 영혼이 반쯤 빠져나간 얼굴이었다.
“다들 그렇게 능력 있는 분이 이렇게 아름다우시기까지 하니 놀라실걸요.”
바네사의 말에 키네미아가 아련히 미소 지었다.
“……?”
“유모. 나 내가 처한 이 상황, 착각하지 않아. 가서 조용히 있다가 올게.”
“착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나 이제 알 거 다 알아. 리온에 대해서도, 나에 대해서도. 나도 어른이잖아.”
“모르시는 것 같은데요.”
“걱정 마. 남들이 뭐라고 해도 잘 이겨 내고 올 테니까! 나 완전 씩씩한 거 알지?”
정말 깨끗하게 모르시고 있어. 바네사는 무슨 승부를 준비하는 것 같은 키네미아를 흐린 눈으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