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54)
먼치킨 길들이기 54화
‘그동안 너무 말씀을 안 드렸나?’
키네미아가 좋은 것만 보고 자라도록 어릴 적부터 진실을 숨겨 왔던 건 사실이었다.
키네미아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쓸데없는 소리가 돌지 않도록 사용인들을 엄선했고, 가문의 일 때문에 문제가 생겨도 키네미아가 자책하지 않도록 원인을 숨기곤 했다.
그래도 온전히 막지는 못했으나 총명한 키네미아는 그 마음을 알겠다는 것처럼 모른 척해 주었다.
그때는 상황이 상황이었으니 그렇게 배려해 주는 모습이 마냥 고맙고 예쁘기만 했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중증 피해망상 환자로 자라실 줄은…….’
밀려드는 슬픔에 바네사가 입을 막았다.
키네미아는 그런 바네사의 마음도 모르는 채 전투태세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호스트는 로슬린 공작님이셨죠?”
“으응…….”
무섭게 말이지. 키네미아가 쭈글거리며 대답했다.
“흠……. 공작 부인께서는 아직 요양 중이신가 보네요. 보통 데뷔탕트는 안주인이 주최하는데.”
“아.”
키네미아가 입을 벌렸다.
‘맞아. 원작에서도 나왔지. 영지에서 요양하는 로슬린 공작 부인.’
로슬린 공작이 신전에 거액의 기부금을 내는 큰손이 된 이유도 다 부인의 지병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때문에 원작에서 쉔 티엔을 영지에 영입하려 노력하는 인물도 로슬린 공작이었고.
키네미아가 먼저 연금술에 손대지 않았다면 영지에 제일 먼저 연금술사 공방을 세울 이는 로슬린 공작이었을 것이다.
‘엥, 그럼 설마……?’
데뷔탕트 초대가 그저 나를 괴롭히려는 이유가 아니라면?
만약 로슬린 공작이 신전과 거리를 두려 한다는 신호라면?
그렇다면 신전이 이렇게 기를 쓰고 혜민원을 견제하려는 이유도 설명이 된다.
로슬린이 연금술에 흥미를 가진다는 건 신전으로서는 큰손을 놓칠 수도 있다는 뜻.
‘그래서 신전이 혜민원에 목을 매는 거라면…….’
로슬린 공작의 시선을 혜민원이 아닌 신전에 묶어 두기 위해.
그렇다면 이 데뷔탕트는 그저 절망적인 인간 동물원 입성이 아니라, 기회가 된다.
로슬린 공작을 등에 업고 혜민원이 전국으로 지점을 낼 수 있는 기회!
‘그리고 쏟아지는 돈벼락……!’
거기까지 떠올린 키네미아의 주먹에 순간 힘이 불끈 들어갔다.
배금주의에 녹진하게 찌든 영혼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 사이, 한 가닥 남은 이성이 본능을 진정시켰다.
‘물론 로슬린 공작이 신전과 결탁해 날 단단히 망신 주는 게 목적일 수도 있고.’
그건 좀 우울하다.
‘그럼 던져 주는 바나나나 받아 와야 하나.’
키네미아가 여러 상념에 잠겨 있는데 바네사가 의아해하는 얼굴로 물었다.
“로슬린 공작 부인을 아세요?”
키네미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 나야 모르지. 그냥 나도 들어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서…….”
문득 로슬린 공작의 목적을 시험해 볼 방법이 떠올랐다.
“유모, 유모. 나 혜민원에 좀 다녀올게.”
“아가씨, 그럴 시간이 어디 있나요.”
엥?
“금방 다녀올 건데?”
“늘 그러시면서 하루 종일 계시잖아요.”
그거야 매출 전표를 확인하고 약초도 키우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그럼 나 대신 전령이라도 보낼게……!”
“제가 전해 드릴게요. 저한테 말씀하세요, 아가씨.”
“으응…….”
사실 대공령 최고 권력자는 유모가 아닐까……. 키네미아가 눈을 흐리게 떴다.
“좋습니다. 자, 그럼 우리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요?”
“준비되셨죠, 아가씨?”
“으응?”
지금까지 하고 있던 건 뭔데?
입꼬리를 잔뜩 찢어 웃은 리리네가 손뼉을 탁 쳤다.
그러자 방문을 열고 하녀들이 일사불란하게 들어서기 시작했다.
“……?!”
리리네와 셰인이 그들 앞에 우두머리처럼 팔짱을 끼고 섰다. 그녀들은 하녀들을 골라내어 업무를 분담한 뒤 짝짝 박수를 쳤다.
“남은 기한은 일주일. 몸이 부서져라 일합시다!”
“네!”
하녀들이 잘 훈련된 군인처럼 답했다.
저렇게까지?!
그렇게 데뷔탕트 당일이 될 때까지 키네미아의 고통은 계속되었다.
* * *
지금까지는 제법 한가한 나날이었는데. 갑자기 날아온 데뷔탕트 초대장으로 인해 키네미아의 일주일은 하루 종일 데뷔탕트를 위한 스케줄로 가득 차 있었다.
이번 키네미아의 데뷔탕트 속성 강의를 맡아 준 이는 로메오 남작이었다.
키네미아는 집무실 책상 앞에 앉았고, 로메오 남작은 앞에 서서 눈시울을 붉히는 중이었다.
“데뷔탕트라니. 우리 아가씨가 정말 성인이 되신 거군요. 아주 어릴 적부터 모셔 왔는데 이리 훌륭하게 자라시다니, 실감이 안 납니다…….”
키네미아가 눈물을 찍어 내는 로메오 남작을 보며 어설피 웃었다. 17살 생일 때도 저 레퍼토리를 읊은 탓이다. 그때는 다른 가신들과 유모 바네사까지 5중창으로 들어야만 했다.
“이제 곧 혼인도 하시겠죠.”
“왜 다들 혼인 타령인 거야…….”
정작 본인은 혼인 생각이 없는데. 키네미아가 눈매를 좁혔다.
그러거나 말거나 로메오 남작은 손수건을 착착 접어 넣으며 말을 이었다.
“우선 우리 요오오오정님께서 데뷔탕트에 대해 먼저 알아 두셔야 할 것이 있다면 데뷔탕트의 꽃인 첫 춤입니다.”
“첫 춤?”
“예. 대개 첫 춤을 춘 파트너와 추후에 좋은 관계를 맺게 되니까요.”
“그렇구나…….”
물론 전부는 아닙니다, 라고 말하며 로메오 남작이 웃었다.
“그거야 그렇겠지.”
“그렇다 하더라도, 아가씨.”
그가 두 손으로 책상을 짚은 뒤 진지해 보이는 얼굴로 가까이 다가왔다. 덩달아 진지해진 키네미아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응.”
“무슨 일이 있어도 첫 춤을 아저씨랑 추시면 안 됩니다. 막말로 6살 이상이다? 절대 안 됩니다. 마지노선은 5살입니다. 젊은데 머리숱이 조금 없어 보인다? 비상입니다. 대머리는 유전입니다. 키 크고 잘생겼는데 돈과 작위가 없다? 쳐다보지도 마셔야 합니다. 제비입니다.”
제비?!
속사포처럼 쏟아 낸 로메오 남작이 품에 손을 넣었다.
“그래서 제가 리스트를 좀 뽑아 봤습니다. 데뷔탕트 초대장을 받은 참석자 중 나이 적절, 작위 적절, 재산 일정 이상, 외모 상급, 머리숱 풍성, 몸매 흐뭇까지.”
몸매 흐뭇?!
그가 종이 한 장을 책상 위에 비장하게 올려 두었다.
“이 중에 하나. 딱 이 중에 하나로 선택하시면 됩니다.”
“3명뿐이잖아.”
“좋은 남자는 유니콘 같은 존재라서 그렇습니다. 매우 희귀하죠.”
그렇군……!
“참, 아가씨. 유니콘이란…….”
로메오 남작이 뿔을 만들어 붙이고 하늘로 승천하려 하자 키네미아가 단호하게 손을 들어 막았다.
“유니콘은 나도 알아.”
“예, 하강하겠습니다.”
로메오 남작은 아직도 내가 애 같은가 보네. 키네미아가 슬그머니 팔을 내리는 로메오 남작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 유니콘들 중에 하나를 택하셔서 우리 요오오오오정님과 춤을 출 수 있는 영광을 수여하시면 됩니다.”
“영광을 수여하라니…….”
이 몸매 흐뭇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 것 같은데?
“영광일 따름이죠. 우리 아가씨와 춤을 출 수 있다는 건데.”
로메오 남작은 당연하지 않느냐는 듯 자랑스러워하는 얼굴이었지만, 키네미아는 그 정도로 뻔뻔하지 않았다.
‘아니, 근데 이런 몸매 흐뭇들 중 하나가 과연 나랑 춤을 출까?’
키네미아가 이름들을 훑으면서 양팔로 턱을 괴고 숨을 깊게 내뱉었다.
파트너라니, 한 번도 생각 안 해 봤는데.
데뷔탕트에 나갈 수 있으리라 고려해 본 적이 없으니 더더욱.
음…… 목을 울리던 키네미아가 두 팔 위에 턱을 얹었다.
혼인이라니, 성인이 됐다고 하루아침에 남자를 만나야 할 의무가 생긴 것 같다.
‘귀족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인가.’
귀족이 후계를 잇는 건 중요한 책무 중 하나였으니까.
고민하는 키네미아를 보던 로메오 남작이 그녀가 차고 있던 팔찌에 시선을 주었다.
“에이얀 님이 계셨다면 아가씨께서 고민을 덜하셨을 텐데…….”
그가 흘리듯 말하니 키네미아가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높였다.
“갑자기 에이얀?!”
얼굴을 구긴 그녀가 과민 반응을 보이자, 로메오 남작이 왜 놀라냐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보통 어렸을 적부터 교류하던 이와 첫 파트너를 맺기도 하니 드린 말씀입니다만…….”
“아아…….”
수긍하며 말을 줄인 키네미아가 손목에 찬 팔찌의 펜던트를 만지작거렸다.
‘교류라고 하기에는…… 에이얀이 마탑으로 돌아간 이후로 5년 동안 뭐 하는지도 모르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