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56)
먼치킨 길들이기 56화
그렇게 키네미아가 안전한 데뷔탕트 종결을 위해 매의 눈으로 루트를 짜고 있던 그때였다.
‘로슬린 공작……!’
키네미아의 시선이 닿은 곳에 호스트로서 손님을 맞고 있는 로슬린 공작이 서 있었다.
키네미아는 쉔 티엔에게 부탁해 몇 가지 종류의 포션을 그에게 보냈었다.
‘답이 안 왔지만…….’
내가 생각한 그 뜻이라면 당연히 답신을 보내리라 생각했는데, 상대는 묵묵부답이었다.
‘실패인가.’
공작은 그저 내게 바나나를 던질 심산이었나?
원작 설정도 초월할 만큼 원한이 깊었나?
너무해. 나 바나나 안 좋아한다고. 속으로 절망하며 계단을 내려서던 키네미아가 로슬린 공작을 힐끔거리는데, 우연히 둘의 시선이 맞닿았다.
그리고 그의 옆에서 웃고 있는 여자를 발견한 순간, 키네미아는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 * *
로슬린 공작은 계단을 내려서는 대공녀를 보며 샴페인을 머금었다.
‘확실히 예쁘긴 예쁘군.’
확실히 대공녀는 트로이 리온을 닮았다. 제 딸, 페어리의 눈을 홀려 놓았던 그 천사 같은 얼굴의 사특한 악마를…….
그 남자로 인해 어찌나 손해를 보았던가.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로슬린 공작이 무심코 잔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페어리는 트로이 리온이 칼침을 맞고 사망한 후에는 자신도 그를 따라 죽겠다는 헛소리까지 하면서 공작 부부를 더 심란하게 만들기까지 했다.
“대공녀께서도 데뷔탕트에 오시는군요.”
이를 지켜보던 허링 후작이 이죽거리듯 말했다. 리온에 좋지 않은 감정을 품은 사람들로서 동질감을 공유하려는 듯한 어조였다.
“그렇겠지요. 제가 초대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로슬린 공작은 답지 않게 두루뭉술한 대꾸를 내놓았다. 이에 허링 후작은 의문스러워하면서도 화제를 이어 갔다.
“대공녀께서 괜찮은 파트너는 구하실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간 영지에 숨어 있기에 급급하셨을 텐데.”
“글쎄요. 대공녀께서 따로 생각해 두신 바가 있으시겠지요.”
이번에도 기인지 아닌지 분명하지 않은 태도였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허링 후작은 로슬린 공작의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로슬린 공작은 그런 허링 후작을 깔보듯 응시했다.
‘멍청한 놈.’
그저 장남이라 작위를 물려받은 탓에 허링 후작은 머리가 잘 돌아가지는 않는 편이었다. 서로 간의 관계가 중요한 사교계였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상종도 하지 않았으리라.
허링 후작은 짜증스러울 정도로 멍청하긴 하지만 눈치는 좀 있는 모양이었다. 대공녀에 대한 자신의 태도가 애매모호해진 것을 알아차린 걸 보면.
로슬린 공작은 천천히 잔을 흔들었다.
그는 뛰어난 사업가이자, 병으로 고생 중인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이었다.
리온에 대한 개인감정에 휘둘리기 전에, 그는 먼저 기회비용을 따지지 않을 수 없었다.
연금술이라는 신기술에 재빠르게 탑승하지 않는 이유가 단지 그의 사사로운 감정 때문이라면, 재고할 가치조차 없다.
하지만 확인은 필요했다.
정말 그만한 가치가 있는 기술일지. 그리고 저 소문만 무성한 어린 소녀가 교단을 저버리고 손을 잡아도 될 만큼의 인물인지.
데뷔탕트 초대장을 보낸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직접 만나 보고 판단하기 위해.
그러나 대공녀는 초대장 하나만으로 그의 의사를 알아챈 후에 곧바로 전령을 보내왔다.
전령이 데뷔탕트 초대장의 감사 인사라며 내민 것은 다름 아닌 포션이었다. 그것도 아내의 병에 큰 약효를 보이는.
그가 직접 운을 띄우기도 전에, 네 의사를 알아챘다는 듯 연금술의 유효성을 내보이면서 놀라게 만든 것이다.
이에 로슬린 공작은 일부러 답신을 보내지 않았다. 다음엔 대공녀가 어떻게 나올지 지켜보기 위해.
자신이 포션에 대해 어떤 답도 보내지 않은 것을 거절이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이번에도 그의 의도를 정확히 읽어 냈을까.
그녀의 반응에 따라서 지금 대공녀에게 생기려는 자그마한 호의가 계속해서 커질지, 아니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그라들지가 결정될 참이었다.
그때였다.
“……!”
대공녀가 계단을 내려서자마자 곧장 로슬린 공작이 있는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바로 내게 온다고?’
무슨 확신을 가지고?
그의 옆에 있던 허링 후작마저도 의외였던지 입을 벌리고 둘을 번갈아 보며 눈만 굴리는 중이었다.
“로슬린의 발톱을 뵙습니다. 초대에 감사를 표합니다, 로슬린 공작님. 정말 아름다운 별장이에요.”
“리온의 날개를 뵙습니다. 사려 깊은 칭찬, 고맙군요. 대공녀.”
둘 사이에 오가는 이런 의례적인 인사치레 또한 예상치 못했던 터라 주변에서는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 전 저희 쪽에서 보내 드린 포션은 잘 받으셨는지요.”
대공녀의 당돌한 질문에 로슬린이 미소를 지었다.
“보내 주신 포션은 잘 받았습니다. 듣던 대로 뛰어난 효능이더군요.”
그가 포션을 썼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어쩐지 단도직입적으로 운을 띄우는가 싶더라니, 이런 상황까지 고려했나 보군.
로슬린 공작은 대공녀의 수완에 탄복했다.
신전의 큰손인 자신이 포션을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혜민원은 엄청난 홍보 효과를 볼 것이 자명했으니까.
그의 답에 키네미아가 살포시 눈을 접어 웃었다.
“다행입니다.”
조금만 더 시험해 볼까. 그가 샴페인 잔을 쟁반 위에 두며 물었다.
“대공녀, 제게 그런 선물을 보내신 연유가 무엇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시험인 걸 알아챈 것처럼 키네미아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입을 뗐다.
“로슬린 공작 부인께서 지병으로 고생하고 계심을 익히 들어 왔습니다. 제가 미약한 도움이나마 될 수 있다면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과연 대공녀께서는 마음이 깊으십니다.”
“또.”
또? 로슬린 공작이 놀라 되물었다. 다른 이유가 더 있다니?
“제가 아직 변변치 못한지라 로슬린 공작님의 고견이 필요해서였습니다.”
키네미아가 사용인에게서 샴페인을 받아 들고는 말을 이었다.
“혜민원의 네 번째 지점은 대공령 밖으로 나가 볼까 고민 중이던 차였어요. 때문에 공작님께 작은 선물을 보낸 거예요. 공작의 뛰어난 식견에 제 조부께서 늘 감탄을 거듭하셨던 기억이 났거든요.”
맙소사. 로슬린 공작이 웃음을 흘렸다. 자신을 통해 포션을 홍보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 수 더 떠서 자신을 이용해 혜민원을 키우려고 하다니.
게다가 덧붙인 아첨마저 제 맘에 쏙 들었다. 제 능력을 인정한다는 말을 후한 칭찬으로 듣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대공녀께서는 정말 갓 성인이 되시는 겝니까? 어디 안에 능구렁이라도 담아 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17살인걸요.”
에헷, 키네미아가 깜찍하게 웃었다.
전생의 기억이 있으니 살짝 찔리긴 하다만, 이 정도는 뻔뻔한 기색으로 받아들였다.
‘그나저나, 나쁘지 않은 반응이네.’
역시 내 생각이 맞을 줄 알았지. 키네미아는 입꼬리를 올리며 샴페인을 들이켰다.
“조부님을 많이 닮으셨습니다.”
로슬린 공작의 말에 키네미아가 콜록, 기침했다.
……칭찬인가? 아니면 독살하겠다는 뜻인가?
독살당한 할아버지를 떠올린 키네미아가 떨리는 눈으로 샴페인을 바라볼 때였다.
“칭찬입니다. 세간의 소문과는 달리 그분의 좋은 면만 닮으셨어요. 그분이야말로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욕망을 잘 꿰뚫어 보는 능력을 가진 분이셨지요. 대공녀께서 그런 부분을 닮으셨습니다.”
“……과분한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칭찬인가 보네. 키네미아가 머뭇거리며 인사했다.
그녀가 얼굴을 붉히는데 로슬린 공작이 나직이 덧붙였다.
“케네스 리온 대공을 줄곧 존경했습니다. 그런 아드님을 낳으셨다니, 안타까운 일이지만.”
원한이 아직 남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