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57)
먼치킨 길들이기 57화
순간 해쓱해진 키네미아가 재차 콜록거리며 얼굴을 돌리자 로슬린 공작이 다시 웃음을 흘렸다.
“한데 대공녀께서 혜민원을 그리 신임하실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예?”
“제가 모두의 앞에서 포션의 효능은 좋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혜민원의 위상은 그야말로 고꾸라졌을 테니 드리는 말입니다. 그리 망설임 없이 포션에 대해 물으실 줄이야.”
“아, 그것도 그렇지만, 이번에는 나름의 확신이 있어서였어요.”
“확신?”
“로슬린 공작 부인께서 옆에 계시잖아요.”
살짝 뒤로 빠져 있던 로슬린 공작 부인이 부채를 흔들며 둘을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것참. 제 생각이 미련한 건지, 대공녀께서 눈치가 빠르신 건지.”
로슬린 공작이 웃으며 한숨처럼 내뱉었다.
“이번에는 제가 눈치가 빠른 걸로 하겠습니다.”
키네미아의 서글서글하게 답에 로슬린 공작이 감사하다며 웃음을 터트리는데, 공작 부인이 옆에서 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아, 대공녀께 소개가 늦었군요. 제 아내인 메리 로슬린입니다.”
“리온의 날개를 뵙습니다.”
정중히 인사한 로슬린 공작 부인이 눈을 빛냈다.
“이렇게 초대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녀. 꼭 만나서 인사를 드리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이이가 어찌나 말이 많은지, 오늘 인사를 못 드리는 줄 알았네요. 제가 늘 달고 다니던 지병이 있었는데 대공녀께서 보내 주신 포션 덕에 눈에 띄게 호전되었어요. 이 빚을 어떻게 갚으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로슬린 공작 부인이 키네미아의 손을 붙들고 다다다 쏘아붙이듯 말했다.
“제 아내가 조금 호들갑이 심한 편이라…….”
로슬린 공작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흐뭇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역시 공처가네.’
키네미아는 둘의 핑크빛 분위기에 웃음을 보였다.
그렇게 한참 동안 키네미아와 로슬린 공작은 공작령에 혜민원의 분점을 내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에게로 잔뜩 시선이 느껴졌지만,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로 사업 이야기를 나누는 터라 끼어들 엄두가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좋아. 이대로 데뷔탕트를 마무리하자!’
키네미아가 나름 선방하고 있는 기쁨을 즐길 때였다.
“대공녀, 데뷔탕트를 즐기지 않으셔도 되겠어요?”
17살짜리 소녀가 내내 사업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 상황이 마땅찮았던지, 로슬린 공작 부인이 걱정스레 말을 걸었다.
“부끄럽지만 오늘 제 목적이 데뷔탕트에 있지 않았던 터라…….”
오늘 키네미아는 바나나를 피하고, 할 수만 있다면 혜민원을 키우는 게 목표였다.
바나나를 맞지 않아서 다행이야…….
“오늘 춤을 출 파트너도 기대하셨을 텐데.”
로슬린 공작 부인이 그리 말하면서 한쪽을 눈짓했다.
키네미아가 무심코 그쪽을 바라보았다가 한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몸매 흐뭇이잖아.’
몸매 흐뭇은 파트너가 되어 달라는 듯 눈웃음을 치는 영애를 무려 3명이나 달고 있었다.
유니콘이라더니, 희소성 때문에 다들 탐을 내나.
‘저런 거랑 엮이면 끝장이지.’
그야말로 아빠처럼 되는 수순이었다. 치정 싸움에 휘말려 별이 될 수 있는 첫걸음.
저 사람은 어떠냐는 로슬린 공작 부인의 권유에 키네미아가 절대 괜찮다며 고개를 붕붕 저었다.
키네미아와 메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로슬린 공작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긴히 드릴 말씀이…….”
“그러지. 대공녀, 제가 잠시 일이 생겨서 자리를 비워야겠습니다.”
공작이 키네미아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피했다.
그렇게 공작이 사라지자 키네미아를 궁금해하며 힐끔대던 사람들이 그녀 쪽으로 발걸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힉!’
순간 수많은 사람들의 목적지가 되어 버린 키네미아가 뒷걸음질 쳤다.
“공작 부인, 저는 바람을 좀 쐬러 후원에 다녀와야겠어요…….”
그에 메리가 걱정스레 말했다.
“후원은 아직 정비 중인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럼요.”
이내 키네미아가 몰려드는 사람들을 피해 잽싸게 몸을 움직였다.
* * *
집주인의 말은 들어야 옳다.
‘괜히 꺼낸 말이 아니었어.’
키네미아는 울퉁불퉁한 산책길을 걸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조금만 더 가면 매끈한 길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괜한 착각일 뿐이었다.
정원을 아예 새로 만들 계획이었는지, 땅을 완전히 뒤엎는 바람에 걷기 좋은 환경이 절대 아니었다. 특히 구두에 드레스까지 갖춰 입었을 때는 더더욱.
‘……돌아가야겠다.’
이에 중앙 홀로 터덜터덜 다시 길을 옮기는데-
“아.”
엥! 키네미아가 하늘을 보며 이마를 비볐다. 설상가상 빗방울이 떨어지는 중이었다.
‘……비까지!’
비가 한두 방울씩 투둑투둑 어깨와 머리 위를 두드렸다. 두 손으로 머리를 막은 키네미아는 근처에 있는 새하얀 대리석 가제보 밑으로 몸을 피했다.
“하아-”
키네미아가 숨을 내쉬며 드레스에 방울진 빗방울을 털어 냈다.
‘젖진 않았네.’
후, 숨을 내쉰 그녀가 위로 시선을 올렸다.
2개의 새하얀 대리석 기둥이 반구형의 유리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구조였다. 유리 밑으로 나무를 얼기설기 덧대 놓은 걸 보면 가제보도 새로 만드는 중인 모양이었다.
빗줄기는 조금씩 거세지고 있었다.
‘조금 더 있다가 돌아가야겠다.’
오랜만에 힘준 드레스까지 맞춰 입고 나왔는데 비를 맞고 싶지는 않으니까.
“금방 그치겠지.”
쏴아아아-
그럴 기미는 아닌가!
키네미아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소나기가 쏟아졌다.
‘이렇게 꼬이다니…….’
세상…… 눈을 흐리게 뜬 키네미아가 갈라진 대리석 테이블에 앉았다.
유리 지붕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중앙 홀 창문 너머로 오렌지빛 조명 밑에서 즐겁게 춤을 추는 사람들이 보인다.
키네미아는 턱을 괴고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즐거워 보이네.’
꽃다발 같은 머리 장식으로 머리를 틀어 올린 영애는 파트너와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다. 파트너는 그녀의 손을 맞잡고 손등에 입을 맞췄다. 영애는 발그레해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모로 봐도 둘은 사랑에 빠진 얼굴이었다.
‘저런 사랑은 못 해 보겠지.’
무심코 키네미아가 팔찌의 펜던트를 만지작거렸다.
‘바보.’
쏴아아아아-
10분쯤 지났지만 아직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냥 맞으면서 돌아갈까 생각도 해 봤지만, 로슬린 공작 부인이 키네미아가 후원에 나와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곧 찾으러 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조금만 기다려 보자.’
그때 삐걱, 하면서 맞물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엥?’
키네미아가 반사적으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유리 지붕을 지탱하는 나무가 세차게 내린 습기를 머금었는지 잔뜩 꺾여 있었다. 그 까닭에 유리 지붕은 눈에 띄게 내려앉아 있었다.
심장이 덜컥거렸다.
‘……!’
사람을 기다릴 때가 아니잖아!
키네미아가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당장 가제보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턱, 하고 무언가가 몸을 잡아당겼다.
“……?!”
갈라진 대리석 테이블에 치맛자락이 잡혀 있었다.
‘도움을 청해야 하는데…….’
중앙 홀과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아직 비가 세차게 내리는 중이었다. 소리쳐 봐야 누구도 듣지 못하리라.
그 순간에도 유리 지붕을 덧댄 나무는 삐거덕거리며 위태로운 소음으로 정신을 불안하게 긁어 댔다.
미친! 키네미아가 다시 한번 치맛자락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아무리 힘을 주어도 천은 늘어나기만 할 뿐이었다.
‘원단은 왜 이렇게 쓸데없이 좋은 걸로 맞춰 가지고!’
치맛자락을 잡고 쭉쭉 늘리던 키네미아의 입에서 가쁜 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벗을까?
끙, 망설여지긴 하지만 더 이상 방법도 없지 않은가.
유리 지붕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린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 자명한데.
결국 키네미아가 등에 있는 단추를 풀기 위해 한 손을 등으로 돌린 그 순간이었다.
끼기긱!
쩌어억-
유리 지붕이 조금 더 내려앉으면서 대리석 기둥 위로 유리에 굵은 금이 갔다.
순간 차가운 손이 심장을 움켜쥔 것처럼 서늘해졌다.
맥박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유리를 가른 굵은 금 옆으로 자잘한 실금이 뻗어 나갔다.
단추를 풀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유리는 당장이라도 깨질 모양새였다. 숨이 거칠어졌다. 입 밖으로는 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키네미아는 다시금 치맛자락을 세게 잡아당겼다.
파직-
그때, 가슴께에서 무언가 완연히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까마귀?’
갈라진 펜던트 사이에서 나온 것은 검은 안개로 만든 것 같은 까마귀였다. 서서히 몸집을 불린 까마귀는 날갯짓을 하며 창공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와 동시에 줄곧 힘을 주고 있던 치맛자락이 빠졌다.
“아!”
반동에 밀려 몸이 기우뚱 기울어졌다. 긴장으로 동공이 조여들었다. 시야가 눕혀지면서 손가락 마디 크기로 갈라진 유리 천장이 쏟아져 내리는 게 보였다.
‘부서진다!’
머리 위로 쏟아질 유리 조각들을 예감한 키네미아가 눈을 질끈 감았을 때였다.
“……!”
소름 끼치는 정적이 몰려왔다.
세차게 내리던 빗소리조차 잠잠했다.
‘……?’
키네미아는 조심스레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