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64)
먼치킨 길들이기 64화
* * *
“……?!”
순간 전신을 휩쓸고 간 이상야릇한 감각에 키네미아가 휙 고개를 돌렸다. 식당의 손님들은 모두 제 일행들과 왁자지껄 떠드는 중이었다.
뭐지? 방금 소름이 돋았는데. 키네미아는 두 손으로 으슬으슬한 팔을 문질렀다.
그때, 지클린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는 키네미아에게 물었다.
“그건 성 엔리케의 팔찌입니까?”
“응. 1회에 한해 착장자에게 걸린 모든 저주를 풀어 주지.”
내내 무료해 보이던 지클린의 눈이 순간 커졌다.
탐이 나겠지. 그에게 걸린 지긋지긋한 저주를 풀 수 있을 테니까.
키네미아는 머릿속에 저장된 책을 촤르륵 펼쳤다.
에피소드, 저주받은 지클린.
잘나가던 대륙 최고의 정보 길드장인 지클린은 거래하던 주 고객의 배신으로 ‘걸신이 내린 저렴한 식탐의 저주’를 받게 된다.
그는 시도 때도 없이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으며, 누구보다 고급스럽던 입맛은 더없이 저렴해졌다.
미식가였던 지클린에게는 무엇보다도 잔혹한 저주였다. 제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레스토랑을 즐겨 찾던 그의 발걸음을 연거푸 은의 노래로 향하게 만들었으니까.
‘내가, 이런 저급한 음식에 손을 대다니!’
사실 지클린은 제국에서 멀리 떨어진 자그마한 왕국 왕실의 방계였다. 평생 제 우아한 품위를 중시하던 그가 은의 노래를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때마침 던전 뺑뺑이를 열심히 돌던 우리 주인공은 천운처럼 성 엔리케의 팔찌를 얻게 되고, 팔찌를 낀 채 은의 노래를 밥 먹듯이 드나들다가 지클린을 낚아 올린다는 에피소드였다.
다시 생각해도 망작은 망작이었다.
하지만 원작을 읽을 때는 뭐 이렇게 하찮고 변변찮은 저주가 다 있나 싶었는데, 막상 당사자를 만나니 이만큼 잔인한 저주가 다 있나 싶어 가슴이 찡했다.
키네미아는 묵묵히 음식을 휩쓸 듯이 먹고 있던 지클린을 안타깝게 응시했다.
순간 지클린이 팔찌로 손을 내밀자 키네미아가 다시 팔찌를 제 쪽으로 슥 잡아당겼다. 안타까이 여기는 것은 여기는 것이고, 받을 건 받아야 하니까.
“제게 뭘 원하십니까?”
“눈치가 빨라서 좋네. 팔찌에 대한 보상으로 3가지를 들어줬으면 해.”
키네미아가 예쁜 미소를 띠었다.
팔찌를 들고 지클린을 만나러 온 것은 그와 거래를 하기 위함이었다.
함스 온천은 깊은 산어귀에서만 종종 나타난다고 하는데, 키네미아로서는 도무지 찾을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제국 온천 도감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 보니 그녀에게 정보를 줄 만한 인물이 필요해진 것이다.
판타지 세계에서 정보를 찾아 줄 수 있는 곳? 당연히 정보상이지!
그리하여 몇 군데의 정보상을 수소문해 봤지만, 함스 온천 부지에 대해선 자신들도 알 수 없다는 답신만 전해 왔다. 마지막 서신의 내용은 이랬다.
[우리 쪽에서 가지고 있는 정보가 아니다. 그러나 딱 하나, 알고 있을 만한 정보상이 있다.]그 정보상과 연결해 주길 원한다면 거금을 보내라는 추신으로 마무리됐지만.
키네미아는 편지를 쫙쫙 찢어 버렸다. 그 정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 것 같았으니까.
결국 그녀는 먼치킨 노트를 펴서 그가 지금 어디에 있을지 확인한 후에 성을 나선 참이었다.
저주받은 지클린은 서대륙 최대 정보 길드의 수장이니까.
“우선 통성명부터 할까? 나는-”
“알고 있습니다. 키네미아 리온 대공녀시죠. 리온의 날개를 뵙습니다.”
지클린이 우아하게 허리를 굽혀 정식으로 인사했다.
역시 정보상인가. 그렇다면 내 악명도…….
“지난 5년 동안 한층 더 미친 리카샤가 전국의 마법사들을 다 찾아다니면서 키네미아 리온에 대한 공격성을 피우지 못하도록 세뇌하고 다녔다는 유명한 풍문의 주인공이시죠.”
……가 아니라 에이얀?
너 5년 동안 그러고 다녔니.
“……그게 유명해질 일이야?”
“예. 정신계 마법이 금술인 것과 성공률이 낮은 걸 차치하고서도, 중급 마법사부터는 마력 저항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클 텐데, 워낙 탈인간급 재능의 소유자라 그걸 해내더군요. 아무리 그럴 능력이 있다 해도 제정신이면 하기 어려운 일인데 말입니다.”
“제정신이면 하기 어렵다니? 어째서?”
“정신계 마법은 페널티가 셉니다. 실패했을 때 낮은 확률이지만 시전자의 뇌에 이상이 생기니까요. 그런데 한두 명도 아니고, 그 마법사들을 전부 따라다녔으니. 자만이나 오만 아니면 제정신을 걸었다고밖에 설명 못 합니다. 어찌 됐든 성공했으니 굉장한 인물이긴 하네요.”
처음 듣는 이야기에 키네미아가 미간을 좁혔다.
말 못 할 사정이 그거였나.
그냥 이랬다저랬다 밝히면 될 것을, 굳이 왜? 그런 무모한 짓을 벌이고 다녔다고 하면 내가 신경 쓸까 봐?
공연스레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그런 건 말해도 되는데.
하여간 바보라니까. 난처한 표정으로 키네미아가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사이 지클린은 조각낸 팬케이크를 한입에 넣고 삼켰다.
제대로 안 씹어?!
“해서, 그 이름난 또라이가 왜 그렇게까지 대공녀를 애지중지하는지 다들 관심이 많습니다.”
“…….”
애지중지라니……. 키네미아가 대답 없이 빙긋 웃었다.
이런 비슷한 얘기 예전에도 들은 것 같은데. 한쪽 눈이 없는 마법사에게서.
그때는 사람을 잘못 찾은 줄 알았는데, 사실이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키네미아가 끙, 앓는 소리를 냈다.
‘왜지? 하나뿐인 친구라서?’
그럼 에이얀이 5년간 그렇게까지 무모한 짓을 벌인 이유는 유일한 친구에게 가진 죄책감 때문일까? 뭐, 그럴지도.
‘내가 죽은 줄 알고 울기까지 했으니까.’
멋쩍어진 키네미아가 손바닥으로 볼을 비볐다.
‘아니, 근데 왜 자꾸 에이얀한테 또라이, 또라이 타령이야?’
애가 약간 소시오패스라 낯을 가리고 심술을 조오오금 부리긴 하지만, 생판 남에게 ‘이름난 또라이’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지 않나?
마법사들에게 세뇌를 건 것도 전부 날 위해서인데. 마력 저항을 뚫고 해냈다면 또라이가 아니라 대단한 거지.
곱씹으니 전부 못마땅해진 키네미아가 미간을 구겼다. 그러나 상대는 조곤조곤 말을 이을 뿐이었다.
“그걸 제외하고서도 대공녀는 이쪽에서 제법 주목하는 분이십니다. 여러 가지로.”
“음, 그렇군.”
무서우니 왜 여러 가지인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예상대로 지클린은 줄곧 팔찌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매우 신중한 성격이었다. 저 목석같은 표정 아래로 갖가지 수를 고심하고 있으리라.
용병들이 왁자지껄하는 소리에 키네미아가 잠깐 눈동자를 돌린 순간, 지클린이 입을 열었다.
“첫 번째는 함스 온천수 부지를 찾으시는 거겠죠.”
“호오오!”
역시 정보 길드의 수장. 키네미아가 눈을 반짝이자 지클린이 뿌듯한 얼굴로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었다.
“찾으시는 부지는 록도어 산맥에 있습니다. 그 지역의 유지인 록도어 상단주의 땅이고요. 돈이면 다 되는 자라 두둑이 챙겨 주시면 쉽게 얻으실 겁니다.”
돈이면 다 되는 자라니, 정말 쉽긴 하네…….
“그리고 두 번째는 교단의 장로파를 무너트릴 수 있는 정보.”
“장로파라면- 대사제를 노리시는군요.”
“응.”
“대공녀께서는 혹시 대사제가 교단의 보물을 밀매하고 있다는 소문을 알고 계십니까?”
“교단의 보물을 밀매해?”
“예. 지금 교단 본산에 있는 신상 몇 개와 성서들은 교묘한 모조품입니다. 진품은 비밀 경매에 올라서 지금은 부호들의 지하 창고에 숨죽여 있죠.”
하! 어쩐지 교단의 돈 밝히는 작태가 예사롭지 않더라니.
“그럼 그 부호들이 누군지 알 수 있을까?”
“그것까지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필요하시다면 대사제가 그들과 접선한 증거까지는 가능합니다.”
“그 부호들이 길드의 ‘주 고객’인 거야?”
“말씀드릴 수 없는 사안입니다.”
지클린이 딱딱하게 대꾸했다.
주 고객인가 보네. 키네미아가 두 손을 들었다.
“알았어. 그것만으로도 좋아.”
“그럼 빠른 시일 내에 인편으로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구태여 부호들의 이름이 없어도 충분했다. 이 정도 증거만 있으면 대사제에게 아주 알차게 써먹을 수 있으니까.
키네미아는 뒤에서 응원이나 하며 지켜보기만 해도 알아서 무너지리라.
키네미아가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가다듬었다.
지클린은 다음 세 번째 요구를 기다리듯 꼿꼿이 앉아 있다가 슬며시 음식에 손을 댔다.
‘힘들긴 힘들겠어…….’
“그리고 세 번째. 나는 지클린과 앞으로도 거래를 지속하고 싶어. 나를 주 고객 명단에 올려 줬으면 해.”
이렇게 큰 정보상의 주 고객이 되기 위해서는 신뢰를 쌓아 가는 데 꽤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정보상 존속에 위험할 수 있는 민감한 정보를 돈만 준다고 아무에게나 팔지는 않을 테니까.
때문에 키네미아의 세 번째 요구는 그의 주 고객 리스트에 자신을 올려 달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