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67)
먼치킨 길들이기 67화
에이얀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자 키네미아가 왜 그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윽고 그가 허탈하게 웃었다.
“우리 미아는 언제 클까.”
그는 멍청한 생각을 잠재우며 키네미아의 정수리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작은 머리가 손안에 폭 싸였다.
키네미아는 세모꼴로 치켜세운 눈으로 날카롭게 말했다.
“정신적으로 너보다 훨씬 성숙하거든? 앞으로 누나라고 불러.”
“네, 누나.”
에이얀이 청초하게 대답하자 키네미아가 픽 웃음을 터트렸다.
“말은 잘 듣네.”
“우리 미아한테 예쁨받으려고 오늘도 힘냈는데, 알아?”
“아, 맞아. 방금 들었어. 오늘 혜민원 구한 거 너라고. 어엄청 대단했다고 호들갑이던데?”
키네미아가 눈을 반짝였다.
“잘했어?”
“응응. 오구오구, 잘했다.”
에이얀이 눈을 휘며 웃었다.
“상 줘야지, 미아. 내가 계속 말을 잘 듣도록.”
이에 키네미아는 선뜻 새카만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에이얀이 그녀의 손깍지를 끼고 제 얼굴 옆으로 부드럽게 잡아당겼다.
“……?”
손을 간질이던 지난번의 감각을 떠올리며 키네미아가 숨을 멈췄다. 그러나 에이얀은 얼굴을 묻는 대신 입을 열었다.
“어쩌지, 이제 이걸로는 부족한데.”
에이얀이 눈을 맞췄다. 그림처럼 웃는 낯임에도 눈은 웃지 않고 있었다.
“……그럼?”
알 수 없는 긴장감에 키네미아의 목소리가 아주 자그맣게 떨렸다. 왜 저러지? 순간 맹렬하게 굴러간 머리가 답을 도출해 냈다.
“대공 성으로 오려고?”
“그건 이제 포기했어.”
“그럼 뭘 원하는데?”
“말해 주면 재미없잖아.”
에엥…….
키네미아가 입꼬리를 내리자 에이얀이 웃었다.
“생각할 시간을 줄게.”
“언제까지?”
“음, 너무 늦으면 큰일 나지 않을까.”
“큰일?!”
“응.”
심술쟁이. 가볍게 투정한 그녀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키네미아는 종종 이렇게 과제에 열중하는 버릇을 보였다. 한동안은 저처럼 답 없는 질문에 매달려 끙끙 앓겠지.
입꼬리를 말아 올린 에이얀이 손으로 키네미아의 긴 머리카락을 쓸었다.
우리 미아, 더 열심히 생각해야지.
조금 더 네 머릿속에 내가 남아 있도록.
오만상을 찌푸리며 고민하던 키네미아의 시선이 문득 에이얀의 팔로 향했다. 셔츠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에이얀은 시선 한 번 더 받은 것에 만족스러워하는 자신을 병신이라 욕하며 자조했다. 스승의 비웃음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키네미아는 작게 한숨을 쉰 후에 말했다.
“더 다친 사람은 없나?”
순간 에이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바로 앞에서 다친 나는 걱정 안 돼? 이거 봐. 피 나는데.”
“살짝이잖아.”
“아아……!”
“안 아픈 거 다 알아. 엄살 부리지 마.”
퉁명스레 말하면서도 그녀의 손길이 다정해지자 에이얀이 웃음을 보였다.
“아까 포션 받아 놨어.”
“포션 없어도 돼. 우리 미아가 만져 주니 다 나을 것 같아. 이것 봐.”
일부러 상처 부위를 꾹 눌러 피를 내니 키네미아가 질겁을 했다. 피를 왜 짜는 건데! 새파래진 그녀가 꺄악 소리를 지르자 에이얀이 애교스럽게 말했다.
“아니었나 봐.”
이 자식……!
“미아.”
에이얀이 포션 병을 따려고 낑낑거리는 키네미아의 손에서 병을 건네받았다.
“응.”
그가 얄미울 정도로 쉽게 뚜껑을 따자 키네미아가 제 손과 에이얀의 손을 번갈아 보며 비교했다.
제 손에 시선을 주는 키네미아를 물끄러미 보던 에이얀이 손으로 키네미아의 턱과 목을 간질이며 장난을 걸었다.
“하지 마-! 꺅!”
간지럼을 잘 타는 키네미아가 몸을 움츠리며 옆으로 쓰러졌다.
침대 헤드에 머리를 박지 않게 손으로 막아 준 에이얀은 색색 숨을 내쉬는 키네미아를 향해 불쑥 물었다.
“교단, 이참에 그냥 없애 줄까? 귀찮잖아.”
이전까지는 귀찮았지만, 지금은 화가 날 정도지.
“됐어. 내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한순간의 유혹에 넘어가 에이얀에게 맡기면 뒤처리가 불안할 테니까.
하지만 키네미아가 뭘 걱정하는지 에이얀도 이미 알고 있었던지 그가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내 탓 해. 저 미친 마법사가 제멋대로 한 일이라고.”
그에 몸을 일으킨 키네미아가 무릎 위에 턱을 괴었다.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라는 에이얀에게서는 오만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하! 이래서 잘생긴 먼치킨이란……. 평생 이렇게 거리낄 것 없이 살았겠지.
누가 자신을 미워하든, 일이 커지든 뒤처리를 할 필요가 없었던 거다. 그럴 능력이 있으니까.
평생 원한이나 단두대 걱정 같은 건 해 본 적 없겠지.
“싫어.”
그녀가 딱 잘라 대답하니 에이얀이 애교를 부리듯 칭얼거렸다.
“왜에에에- 하자, 하자. 그렇게 하자, 미아.”
“안 돼, 아무것도 안 들려.”
에이얀의 투정에 키네미아가 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러자 에이얀이 웃으며 그녀의 얼굴로 바짝 다가왔다. 도자기처럼 빚은 얼굴에 그린 듯한 미소가 감돌았다. 키네미아가 눈동자를 떠는데, 그가 손으로 막은 귓가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하자, 응?”
‘……!’
귓전에 숨이 닿자 키네미아가 소름에 몸을 떨었다.
“내,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키네미아는 커다란 몸을 필사적으로 밀어낸 후 헉, 헉, 숨을 몰아쉬었다.
에이얀은 시무룩해져서는 침대 아래에서 매트리스에 등을 대고 앉았다.
‘……왜 이렇게 잘생겨진 거야.’
심장에 안 좋게. 고개를 돌린 키네미아가 쿵쿵 뛰는 가슴께를 부여잡았다.
‘설마 나한테도 엄마의 피가 흐르나.’
처음 아빠의 얼굴을 보고 혼인을 결심했다던 그 대책 없는 얼빠 기질이 대를 이어 내려왔나…….
그렇다고 하나뿐인 친구 얼굴에 설레는 건 좀……. 침울해진 그녀가 꾸물꾸물 이불을 챙겨 고치처럼 말았다. 나름의 방어막이었다.
“아무튼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쓸데없는 짓 하지 마.”
“알아서?”
“대답해.”
“네에.”
하여간, 전혀 안 그럴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는 대답은 잘해.
저러니까 별소리를 다 듣지.
오늘 지클린의 말을 떠올린 키네미아가 쓰개치마처럼 이불로 얼굴을 감싸곤 부루퉁하게 입을 내밀었다.
“에이얀, 넌 남들이 너한테 그, 미친…… 마법사니 뭐니 해도 아무 생각도 안 들어?”
그 물음에 에이얀은 멀뚱한 얼굴로 답했다.
“응, 전혀?”
“왜?”
사실이니까? 사실에는 타격을 안 받는다 이건가?
“글쎄. 진지하게 여겨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무딘 거야, 오만한 거야? 끙 앓는 소리를 낸 키네미아가 자그맣게 말했다.
“난 싫어.”
순간 에이얀이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네가 싫은 소리 듣는 거 싫어.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게 두지 마.”
예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린 그가 손을 뻗어 키네미아의 앞머리를 쓸었다.
“우리 미아는 착하기도 하지.”
“너 말하는 거야. 좀 착하게 굴라고.”
키네미아가 투덜거리자 곱게 눈을 접어 웃은 에이얀이 부드럽게 말했다.
“노력할게. 네가 바라면.”
네가 바라면, 이라는 소리에 키네미아는 얼굴을 구겼다.
“……노력해, 바보야.”
부끄럽다는 듯이 작게 중얼거린 키네미아가 이불 속으로 쏙 숨었다.
에이얀은 생글생글 웃는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좀처럼 표정 관리가 잘되지 않는다.
아, 어떡하지.
너무 좋아서 큰일인데.
에이얀은 벌떡 일어나 제 침대 위에 동그랗게 산을 만든 키네미아의 옆에 앉았다.
“한 번만 안아도 돼?”
“왜, 왜 갑자기?!”
움찔거린 산이 스스슥 옆으로 움직였다.
“오늘 칭찬은 이걸로 하자.”
“싫어!”
에이얀이 비 맞은 강아지처럼 어깨를 늘어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