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68)
먼치킨 길들이기 68화
* * *
키네미아가 지클린을 다시 만난 것은 이틀 후였다. 그는 선뜻 대공 성으로 찾아왔다.
“혜민원에 큰일이 있었다 들었습니다. 대공녀께서 다치지 않으셔서 다행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조금 더 알려 줬으면 하는 게 있어.”
“어떤 정보를 원하십니까?”
“먼저 교단의 파벌. 교단 내에 파벌이 여러 개 있다고 들었는데.”
“그렇습니다. 대사제와 3명의 대장로를 필두로 4개 정도 존재합니다.”
“그중 대사제의 자리를 제일 위협하는 쪽이 어디야?”
지클린이 생각에 잠긴 듯 뜸을 들였다가 답했다.
“은사회입니다.”
“은사회의 대장로는 어떤 사람인데?”
“대사제보다는 좀 더 진보적인 인물입니다. 폐쇄적인 교단의 운영에 반기를 들고 있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혜민원에도 관대하겠네?”
“성향상 대체로 그렇습니다……. 대공녀, 설마 은사회를 끌어들일 계획이십니까?”
“응.”
지클린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그럴 법도 하지.
“제가 전해 드린 자료를 공식 석상에서 터트리기만 해도 대사제의 죗값은 충분히 물을 수 있을 텐데요?”
“알아. 대신 멀쩡히 살아서 감옥으로 들어가겠지. 대사제니 몇 년 잘 지내면 사면받을 수도 있을 테고.”
“예? 그렇다면 대사제가 어떻게 죗값을 치르길 원하시는 겁니까?”
시종일관 무심하던 지클린의 눈동자가 설핏 떨렸다.
두 손을 모아 잡은 키네미아가 의자에 몸을 묻었다. 그녀는 나직이 되물었다.
“습격 당시 혜민원에 연금술사가 몇이나 있었을 것 같아?”
“40명가량인가요…….”
마른침을 삼킨 지클린이 말을 흐렸다.
“정확히 38명이야.”
키네미아는 잠시 뜸을 들인 이후 말을 이었다.
“알고 있겠지만, 내 가족들은 모두 살해당했어. 그다지 좋은 기억은 아니더라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키네미아의 몸이 쑥쑥 커져 새로운 구두를 맞추러 가자고 약속한 다음 날.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는 이제 전쟁터를 전전하지 않고 꼭 집에만 있겠다 약속했던 날.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는 키네미아가 좋아하는 푸딩을 양손 가득 사 들고 오던 날이었다.
잃는 건 무뎌지지 않는다. 늘 고통이었다. 그 사실을 키네미아는 다른 이들보다 좀 더 일찍 깨달았다.
그 까닭인지, 그녀는 제게 악의를 보이는 사람보다 제 사람에게 악의를 보이는 이들에게 더 격렬하고 예민하게 반응했다.
대사제가 키네미아 자신을 습격하려 했다면 지하 감옥으로 끌려가는 대사제의 몰락으로 만족했을 테지만-
‘타깃을 잘못 잡았잖아.’
키네미아가 깍지 낀 두 손을 턱에 대고 웃었다.
“그래서 나는 대사제를 내 식대로 처벌하고 싶어. 그러려면 교단 쪽으로부터 대사제의 신병을 인도받아야 하거든. 뒤탈 없이.”
올해로 17살이 된 대공녀의 대범한 사고와 기묘한 박력에 지클린은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대사제가 횡령한 자금은 어디로 빠지는 거야? 꽤 거금이니 방 안에 쌓아 두고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차명 계좌가 있을 겁니다.”
오호라, 그렇다면 일은 더 쉬워지지.
“혹시 대사제가 가진 차명 계좌의 정보까지 알 수 있을까?”
“어려운 일입니다만…… 가능하긴 합니다.”
“비용은 걱정 말고. 부탁할게.”
키네미아는 베히모스와 혜민원, 흑야를 운용한 던전 공략만으로도 이미 거금을 손에 쥐고 있었다. 수임비 정도야 힘들지 않게 내줄 수 있다.
“그러시다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키네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클린은 곧장 키네미아 앞으로 종이를 들이밀었다.
“우선 여기에 사인 부탁드립니다.”
“아, 응.”
계약서인가? 키네미아가 종이를 받았다가 끙, 앓는 소리를 내며 뚫어지게 그걸 응시했다.
“지클린, 이건 빈 종이인데?”
“예. 그 종이에 크게 사인해 주세요. 그리고 여기, 이 부분에 하트 2개를 넣어 주시면 됩니다.”
하트?! 키네미아는 빈 종이를 들고 입꼬리를 축 늘어뜨렸다.
“……정말? 진심이야?”
“정 여의치 않으시다면 하트는 하나만 그려 주셔도 상관없을 겁니다.”
지금 하트의 문제가 아니잖아?
하지만 지클린은 진지한 어투로 말할 뿐이었다.
“업무 수임비입니다.”
“아…… 수임비.”
눈을 데구르륵 굴리던 키네미아가 종이에 커다랗고 흘린 듯한 사인을 그렸다. 그리고 하트도 듬성듬성 2개를 그려 냈다.
“대공녀. 그 종이를 들고 여길 보십시오.”
“응?”
키네미아가 저도 모르게 종이를 들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대공녀, 웃으세요.”
그녀가 어설프게 입꼬리를 올리자 그가 무뚝뚝한 칭찬을 내뱉었다.
“입꼬리가 파들거려도 요정처럼 어여쁘십니다.”
칭찬이야?!
이내 지클린이 찰칵, 소리를 내며 영상구에 영상을 담았다.
영상이 잘 나오는지 재생해 본 지클린은 목석같이 딱딱한 얼굴로 정말 우아하고 정중하게 말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무인도에 가져갈 3가지 물건 중 새총을 택한 이유가 꼭 알고 싶으시답니다.”
문득 키네미아는 누가 그걸 왜 알고 싶어 하는지 꼭 알고 싶어졌다.
“업무 수임비입니다.”
“……아, 수임비.”
“예.”
그냥 돈으로 낸다고 할까? 키네미아는 혼미해졌다.
잠시 고민하던 키네미아가 쥐어 짜내듯 말했다.
“그…… 내가 떨어지는 곳이 무인도잖아……?”
“예, 무인도입니다.”
“그러니까 혹시나 해서. 음식을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새총으로 뭐라도 잡아먹으려고.”
“보기보다 야성미가 있으시군요. 역시 그때 그 호랑이 변장은 그런 이유로…….”
“내가 호랑이로 변장했던 건 어떻게 알았어?!”
“말씀해 주신 부분들은 참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답 안 해 주고 그냥 가는 거야?!”
키네미아에게 혼란만 남겨 둔 채, 지클린은 허리를 숙이고 훌쩍 떠나 버렸다.
키네미아는 손깍지를 낀 채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고심에 잠겼다.
그때 집무실로 들어선 로메오 남작이 표정이 어두워진 키네미아를 보고 펄쩍 뛰며 다가왔다.
“표정이 왜 그렇게 안 좋으세요? 무슨 일 있으셨어요?”
“나한테…….”
“예, 대체 무슨 일입니까!”
“……대륙 최대의 정보 길드를 휘하에 둔 스토커가 붙은 것 같아.”
“예? 스토커라니요?! 누가 우리 요오오오오정님께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인답니까!”
당장 병력을 소집하겠다며 로메오가 길길이 날뛰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키네미아가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야. 농이었어.”
* * *
며칠 후, 교단의 본산.
어느새 신의 늑대에 대한 이야기가 교단 전부를 뒤흔들었다.
사제들은 연금술사들을 학살하려 한 대사제의 손속에 기겁을 했고, 분위기는 점점 그에 대한 불신으로 젖어 들어가는 중이었다.
교단 사용인들조차 대사제의 만행이 황제의 귀에까지 들어가는 건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수군댔다.
“제기랄!”
대사제가 황망하게 방 안을 돌아다녔다. 질 좋은 카펫의 폭신한 감촉마저 짜증스러웠다.
몰살? 신의 늑대가 말 그대로 전부 몰살됐다고?
그것도 마법사 하나에게!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이었다.
이제 일은 크게 번져 나갈 것이다. 교단에서 신의 늑대를 파견한 이가 자신이란 것을 모를 리가 없을 터.
원래였으면 발등에 불이 떨어져 자신을 황급히 찾아왔을 장로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걸 보면…….
‘날 버린 건가!’
제 살길을 찾으러 간 것일 터였다.
“안 돼…… 안 돼! 대체 내 꼴이 이게 뭐란 말이야!”
대사제는 가방을 열어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일이 대충 마무리될 때까지 잠적해야 한다. 이대로는 자신이 모든 걸 뒤집어쓰게 될 것이다.
‘내 판단으로만 벌인 일도 아닌 것을!’
억울한 일이었지만 교단의 생리를 잘 알고 있는 그로서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도망가지 않으면 그는 교단의 지하 감옥에서 평생 썩게 되리라.
‘대사제까지 오른 내가!’
몰락을 잠자코 기다릴 수만은 없다.
돈은 차명 계좌에 있으니 문제없을 것이다.
일단 누군가가 먼저 손을 쓰기 전에 성기사들부터 움직여야 한다.
지금 장로회를 제일 위협하는 파벌은 은사회.
아직 제게 권한이 쥐어져 있을 동안 은사회에 성기사들을 파견해 시선을 돌린 후, 몰래 본산을 빠져나가 해외로 도피할 셈이었다.
짐을 싸던 그가 설렁줄을 당겼다. 성기사들을 집합시키라 명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설렁줄을 아무리 당겨도 어쩐 일인지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이럴 때 어디서 농땡이를 피우고 있는 게야-!”
잔뜩 성이 난 대사제가 문을 열 때였다.
“어허어- 어딜 가시는 겝니까? 대사제.”
문 앞에 선 노인은 은사회의 대장로, 몰튼이었다.
“……몰튼!”
침음처럼 그의 이름을 부른 대사제가 뒤로 물러났다.
“딱 봐도 낯빛이 좋지 않으신데 그런 몸으로 어딜 가려 하십니까.”
다 알면서 모르는 척은……. 능구렁이 같은 자식! 대사제가 이를 갈았다.
“이 모두가 이교도로 넘어가는 주신의 광휘를 되찾기 위함이었네. 자네도 다 알고 있잖은가.”
“예. 제 권위를 빼앗기지 않으려던 대사제의 발버둥임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자네! 어찌 말을 그따위로 하는 겐가!”
“어허어, 일이 이렇게 되어 참 아쉽습니다.”
몰튼이 이죽거리며 웃었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오른 대사제는 주먹을 쥐었다.
“이제 몰튼 네 세상 같겠지?! 하지만 그렇게 생각처럼 될까? 내가 없어져도 다른 파벌이 가만두겠느냐, 이 말이야!”
“뭐,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요.”
그의 몰락과 함께 온갖 어중이떠중이들이 자리싸움에 아귀다툼을 벌일 테지.
그러나 몰튼은 대사제에 오를 기회만으로도 충분한 듯 여유만만한 모습이었다.
‘벌써 자리는 지가 쥐고 있다는 표정이군.’
대사제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그런데 왜 혼자 왔지?’
그를 당장 포박해 갈 줄 알았으나, 몰튼은 무심한 얼굴을 한 채 방 안으로 들어설 뿐이었다.
‘어째서?’
다른 꿍꿍이가 있을지 모른다, 생각하면서도 대사제는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몰튼, 몰튼…… 이보게. 내가 모아 둔 돈이 조금 있네.”
“그러십니까?”
“내가 떠난 뒤에 그 돈을 자네의 이름으로 교단에 헌납하면 어떻겠나. 대사제의 자리에 오르고 싶어 했잖나. 큰 도움이 될 텐데.”
몰튼도 욕심 많은 노인네인 것은 마찬가지. 그에게도 나쁜 제안은 아닐 것이다. 어차피 제가 잠적하나, 지하 감옥에 갇히나 몰튼에게는 같은 무게를 가진 일일 테니까.
“어떤가?”
구미가 당기겠지!
순간 몰튼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됐다. 역시 그럴 줄 알았지! 대사제가 그렇게 몰튼을 회유하려던 때였다.
“제가 조금 늦었네요.”
“……?!”
그림처럼 예쁜 소녀가 뒤에서 갑작스레 나타나 미소를 지었다. 이어서 그녀의 뒤로 수행원 몇몇이 따라와 문을 닫았다.
대사제와는 다르게 활력과 생기가 넘쳐 보이는 소녀는 치맛자락을 붙들고 가벼운 인사를 표했다.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대사제. 키네미아 리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