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69)
먼치킨 길들이기 69화
“대공녀……! 여긴 무슨 일로…….”
“몰튼 대장로님을 만나 뵈러 왔는데, 이렇게 대사제님도 뵙게 됐네요.”
계획된 우연을 돌려 말한 키네미아가 고개를 기울였다. 대사제를 향한 새파란 눈에는 이채가 돌고 있었다.
‘벌써 둘이 손을 잡았다고?!’
대사제가 부르르 턱을 떨었다.
“몰튼! 얼마나 신의 이름을 저버리려고!”
“큼, 신의 이름을 먼저 저버린 게 누구인가 싶습니다만.”
“나는 교단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신의 늑대를 파견한 것뿐이야!”
“허허, 그것뿐이란 말씀이십니까?”
몰튼이 기가 차다는 듯 웃었다.
이에 대사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몰튼이 무언가 알고 있나? 그렇다 해도 증거는 없을 터!
그때 키네미아가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흘렸다.
“어머나. 이런, 떨어져 버렸네?”
어설픈 연기와 함께 미색 종이들이 팔랑팔랑 바닥으로 떨어졌다. 키네미아가 주울 생각 없이 멀뚱히 서 있자 대사제는 하는 수 없이 허리를 굽혔다.
“……!”
한데 대사제의 발밑에 닿은 종이에는 그의 비리와 횡령의 증거, 차명 계좌에 대한 정보가 깨알같이 담겨 있었다.
“이, 이건……! 대공녀가 어떻게 이걸!”
그러자 에헷, 하고 예쁘게 웃은 키네미아가 종이를 빼앗듯 건네받았다.
“주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몰튼 대장로님께 드리려고 챙겨 온 것인데 그만.”
그녀가 밝은 목소리로 말하며 까르륵 미소 지었다.
“……!”
반쯤 정신이 나간 대사제가 그런 키네미아의 멱살을 잡으려 했으나, 표범 같은 인상의 호위가 그의 어깨를 떠밀었다.
“네가 이걸 어떻게 알고 있어! 몰튼, 너는 이것 때문에 대공녀와 손을 잡은 게냐?!”
“뭘 그리 화를 내십니까. 우리는 다들 신의 품에 안긴 같은 종들인데.”
“믿습니다. 주신의 종으로서 드리는 제 첫 기부금입니다.”
노래하듯 말한 키네미아가 차명 계좌 정보가 담긴 종이를 몰튼에게 넘겼다.
‘망했다고?’
지금까지 모아 두었던 전부가 몰튼의 손아귀로 들어갔다.
‘망했다고, 이 내가?!’
그가 눈을 굴리는 사이, 웃는 낯을 굳힌 키네미아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일을 너무 키웠잖아, 대사제.”
순간 대사제는 어느새 수많은 검에 휩싸여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대체 어느 틈에…….’
제 목 앞에 닿은 것은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검이었다.
“대공녀께 예를 표해라.”
표범 같은 인상의 사내가 차갑게 말했다.
마른침을 삼킨 대사제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몰튼은 그저 재미있다는 듯 히죽 웃고 있었다.
“그럼 몰튼 대장로님. 약속대로 대사제의 신병은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대공녀.”
“뭐?!”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대사제가 펄쩍 뛰었다.
그러나 둘은 이미 이야기가 된 것처럼 착착 말을 이어 가고 있었다.
“대공녀께서 제안해 주신 대로, 대사제는 해외로 잠적한 것으로 처리될 겁니다.”
키네미아가 대사제의 횡령과 비리, 차명 계좌를 넘기는 대신 그의 신병을 온전히 넘겨 달라 요구하자 몰튼은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로서도 혹시 모를 대사제의 성공적인 도피 등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단 이렇게 처리하는 것이 훨씬 깔끔했기 때문이다.
“대장로님의 용단에 감사를 표합니다.”
몰튼은 예쁘게 인사하는 키네미아를 보며 어설피 미소를 지었다.
대사제의 비리 자료를 교단에 공식적으로 제출하는 게 아니라 제게 가져왔을 때부터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은 했지만, 자신을 이용해 대사제의 신병을 빼돌리려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차명 계좌의 돈은 대장로님께 빚을 진 부호가 전달한 익명의 기부금이 될 것이고, 대사제의 비리 자료는 모두 몰튼 대장로님께서 직접 찾아내신 대장로님의 공이 될 것입니다.”
당황한 몰튼이 대체 대사제를 어찌할 생각이냐 물었을 때, 키네미아는 정말 알고 싶은 거냐며 되레 물어 왔다.
“몰튼 대장로님께서는 대사제가 앞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전혀 아는 바가 없으시잖아요. 그렇죠?”
몰튼은 이에 찍소리도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처음 그를 찾아왔을 때는 그저 어여쁜 소녀처럼 보일 뿐이었는데, 지금은 마치 호랑이를 앞에 둔 기분이었다.
대사제는 무릎을 꿇은 채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 어, 어째서?”
공식적으로 일을 처리해도 지하 감옥에 갇힐 텐데, 굳이 자신을 데려가려 하다니. 이게 웬 말인가. 끔찍한 상상에 구역질이 치밀어 오를 정도였다.
“어째서라니. 이제 죗값을 치러야지.”
키네미아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버, 법대로…… 법대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음, 법대로. 좋은 말이야.”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쪼그려 앉아 눈을 맞췄다.
“내 영지에서 내 법대로 할 테니 기대해도 좋아.”
“자비를…… 대공녀…… 나는…….”
한쪽 손으로 턱을 괸 키네미아가 생글거리며 웃었다.
“안됐지만 난 내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자들에게는 자비가 없는 사람이거든.”
그저 깔짝깔짝 귀찮게만 굴었으면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을 텐데.
“로우.”
그녀가 명하자 대사제의 머리 위로 검은 자루가 씌워졌다.
“히익!”
눈앞이 캄캄해진 대사제는 몸을 꿈틀거렸다.
하지만 밧줄 같은 것이 그의 육중한 몸을 둘둘 두르고 있었다.
“자비를! 대공녀, 자비를!”
로우의 지시를 받은 크샨이 그를 어깨에 짊어졌다.
“그럼 저는 이만.”
키네미아가 몰튼에게 인사를 했다.
“다음에 시간이 되실 때 저를 한 번 더 찾아 주십시오, 대공녀. 대공령에 다시 파견할 사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호오오오, 다시 영지에 신전을 갖추게 된 키네미아가 눈을 빛냈다.
“예, 그럼 다음에 또 방문하겠습니다.”
이내 그녀는 기쁘게 말하곤 꿈틀거리는 대사제와 함께 사라졌다.
대사제가 그렇게 바라던 잠적이 현실화되는 순간이었다.
* * *
키네미아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보석 카탈로그를 뒤적였다.
‘평화롭다.’
드디어 바라던 삶이 도래했다.
교단도 해결했고, 영지에 새로운 신전도 설립할 거고, 록도어의 상단주에게 산맥 구입 의사를 밝혔으니 자령초 문제도 해결됐고.
개중에는 마지막 부분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돈은 버는 것도 좋지만, 쓰는 것이 더 좋다. 전생, 현생을 통틀어 누구나 내심 이런 목표쯤 가지는 게 아니겠는가.
‘정승처럼 벌어 개처럼 쓰는 삶!’
비록 리온으로 태어나 짊어진 원한은 많다만, 이대로라면 죽기 전 지난날을 떠올리며 ‘그래도 이 한 몸 잘 건사하며 살았다.’ 말할 수 있으리라.
끝까지 잘 살아남아서 비석에는 ‘재주껏 잘 건사한 리온 중의 리온’이라 새겨 달라고 해야지.
키네미아가 가벼운 손길로 카탈로그를 넘겼다.
“아, 이것도 예쁘다. 그렇지?”
새파란 다이아몬드를 보이자 바네사가 미소를 지었다.
“어머, 정말 예쁘네요. 그런데 비슷한 걸 가지고 있지 않으세요?”
“응응, 근데 이건 선물할 거라서. 선물받은 걸 주기는 좀 그렇잖아.”
“보석을 누구한테 선물하시려고요? 로슬린 공작 부인께요?”
얼마 전, 로슬린 공작 부인은 앞으로 연회에서 자주 보자면서 진주가 주렁주렁 달린 부채를 선물해 왔다. 연회에 나갈 생각은 없지만 예쁘긴 했지.
“아니, 아니.”
“그럼요?”
“에이얀한테 팔찌를 주려고.”
자꾸 상을 달라 보채기에 이것저것 떠올리던 차에 이전에 주고받았던 팔찌에 생각이 미쳤다.
여태 차고 다니던데. 남이 준 팔찌를 계속 차고 다니게 놔두는 것도 영 편치 않았고.
‘다시 관계를 정립하는 차원에서도.’
5년의 공백 때문일까. 18살의 에이얀은 퍽 어렵고 아리송한 상대였다.
‘아니, 걔는 5년 전에도 그랬지.’
하나뿐인 친구라곤 하지만, 키네미아는 사실 에이얀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조차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난 에이얀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으니까.’
눈을 내리깐 그녀가 다시 카탈로그를 넘기자 바네사가 입을 가리며 목소리를 떨었다.
“우리 아가씨도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되셨네요…….”
엥? 키네미아가 얼빠진 표정으로 바네사를 올려다보았다. 바네사는 마치 풋풋한 연애를 시작한 딸을 보는 엄마처럼 미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키네미아가 얼굴을 와락 구겼다.
“무슨 착각을 하는 거야? 이상한 뜻으로 주는 게 아니라 인연 팔찌야.”
“으음, 그러시겠죠.”
네 말이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투로 말한 바네사가 후후후, 낮게 웃음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