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70)
먼치킨 길들이기 70화
‘왜 안 믿는데?!’
부아가 치민 키네미아가 재차 아니라는 변명을 하려는 데, 로메오 남작이 문을 두드렸다.
“대공녀, 록도어 상단주께서 오셨습니다.”
“아, 그래?”
키네미아는 곧장 로메오 남작을 따라 응접실로 향했다.
오늘 계약만 마치면 전부 해결이겠지. 그녀는 부질없이 호미질을 하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눈물을 머금었다.
이제 그 부끄러웠던 현재의 흑역사도 과거의 흑역사로 남을 때가 됐지.
그러나 문제는 늘 남아 있다. 늘!
록도어 상단주는 풍채가 커다란 남자였다. 그는 제 앞에 앉은 키네미아에게서 한시도 시선을 떼지 못하는 중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키네미아는 차를 음미했다. 향이 좋다. 그래, 이렇게 좋은 날인데. 어쩌면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왜 주저하는 거지? 시세의 1.5배를 쳐준다고 했잖아.”
느른하게 앉은 키네미아가 머리를 쓸었다.
키네미아의 얼굴을 홀린 듯 바라보던 록도어 상단주는 차로 목을 축이곤 입을 열었다.
“아, 저, 그것이-”
하지만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키네미아가 선수를 쳤다.
“자네도 그 온천이 산 정상 부근에 있어서 사람들이 찾을 만한 입지가 아니라는 건 잘 알겠지.”
일례로 제국의 인기 온천들은 모두 평지에 있었다. 평지에도 잘 조성된 온천 단지가 있는데, 누가 굳이 산 정상까지 올라가서 온천을 즐기겠는가.
“자령초를 대량 재배할 거고, 손이 많이 필요한 귀한 약초라서 일꾼은 모두 근처에서 뽑을 거야. 기반 시설을 짓는 것부터 전부 그 지역 안에서 이루어질 테니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나쁘지 않을 텐데? 설마 가격을 더 올리려는 거라면-”
그에 록도어 상단주가 머리를 흐트러트리다가 잽싸게 말했다.
“제가 말입니다. 대공녀께 허튼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고…… 아, 우선 함스는 대공녀께서 생각하시는 그런 온천이 아닙니다. 지하수가 아니고…….”
그가 말을 이리저리 중언부언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에게 록도어 산맥 부지는 애물단지에 불과하다고 하니 이제 와서 안 팔 생각인 건 아닐 테고…….
“음, 알았으니 요점부터 말해 봐.”
“온천이 얼었습니다.”
“……?”
너무 간략하게 얘기했는데?
혼란에 빠진 키네미아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온천이 얼었다고?”
눈을 내리깐 그녀가 되묻자 록도어 상단주는 정말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조아렸다.
“그게 말입니다…….”
상단주의 설명은 이랬다.
록도어 산맥의 정상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고 그 중앙에는 고대 유물이 박혀 있는데, 고대 유물을 통해 꺼지지 않는 불이 호수를 데우면서 호수의 물을 특별하게 만든다고 한다.
한데 그 불이 꺼지면서 호수도 얼어붙어 버렸다는 이야기였다.
해결법은 쉬우면서도 어려웠다. 호수 중앙에 있는 고대 유물에 다시 불을 붙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꺼지지 않는 불?”
“예, 대공녀. 고대 유물에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불이 붙지 않습니다. 마법으로 만든 불이어야 해서 마법사를 고용해야 하는 문제가 살짝, 있는 편이지요.”
“아아…… 마법사…….”
탄성을 내뱉은 키네미아의 눈이 흐려졌다. 그의 쩔쩔매는 목소리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마법사에게 의뢰를 맡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에, 그래도 구매할 의향이 있으신지 직접 말씀을 올리러 찾아뵌 겁니다…….”
“으응, 마법사…….”
키네미아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함스 온천은 상단주가 표현한 대로 정말 호수였다. 산 정상의 분화구에 물이 고인 호수. 쟁반처럼 매끄러운 투명한 얼음 위로 하얗게 눈이 내려 있었다.
키네미아는 어깨에 멘 작은 핸드백의 끈을 추어올리며 입을 벌렸다.
‘산 정상이라 공기는 좋네.’
이마에 손차양을 댄 그녀가 흐린 눈을 뜨고 꽝꽝 언 호수를 바라보았다.
‘정말 얼었네. 그 때문에 우겨서 반값으로 사긴 했지만.’
그나저나 고대 유물은 어디에 있지.
눈을 가늘게 뜨니, 과연 호수 중앙에 고대 유물로 짐작되는 무언가가 어스름하게 보였다.
‘저기에다 불을 붙이면 된다 이거지.’
바로 앞까지 가서 불만 붙이고 돌아오면 빠르고 간편했을 테지만, 고대 유물이 문제였다.
고대 유물이 있어 코앞까지는 마법으로 이동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걸어가는 수밖에.
호수 중앙까지 성큼성큼 움직이려던 키네미아는 얼음 위에서 발을 든 채 뻣뻣하게 굳었다.
‘안전한가?’
동그란 갈색 부츠의 코가 얼어붙은 호수의 끄트머리에 살그머니 닿았다. 콕콕 무게를 실어 찍어 봐도 깨지지 않고 단단했다.
‘얼추 그래 보이긴 하는데.’
……가 볼까, 생각하는 차였다.
“꺅!”
뒤에서 갑작스레 훅 미는 손길 탓에 키네미아는 비명을 내질렀다.
키네미아가 에이얀을 끌어안듯 잡자 그가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잡았다. 이내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말했다.
“내가 잡아 줬어.”
키네미아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그를 노려봤다.
“애초부터 네가 안 밀었으면 안 넘어졌어……!”
“저런.”
뻔뻔히 대꾸한 에이얀이 키네미아의 허리를 가볍게 잡아 번쩍 들어 올렸다.
“으꺄악!”
“미안하니까 안고 갈게.”
“그럴 필요 없어!”
“그럼 어깨에 얹고?”
에이얀이 짐짝처럼 짊어지려고 하자 키네미아가 퍼덕거렸다.
“더 싫어!”
이래서 다른 마법사를 데려오고 싶었는데!
에이얀에게 다른 마법사를 소개시켜 달라고 해도, 싫다며 온갖 칭얼거림과 애교를 번갈아 사용하면서 혼란스럽게 하는 바람에 결국 에이얀과 함께 오게 된 차였다.
놔 달라, 싫다, 서로 아옹다옹하다가 에이얀이 겨우 내려 준 것은 5분이나 지난 후였다.
‘왜 내가 아는 마법사는 에이얀뿐인 거야……!’
어쩔 수 없지. 내 선택지가 이것뿐인걸. 눈물을 삼킨 키네미아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좋아, 에이얀. 가자.”
씩씩하게 발을 내디디려는데, 에이얀이 손을 잡아 왔다.
“내 손 놓치면 안 되는 거 알지?”
“어떻게 되는데?”
“음, 궁금해?”
늘 궁금하냐고 되묻지 말고 적절한 답을 달라고.
눈살을 찌푸린 키네미아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러자 에이얀이 웃으며 머리카락을 넘겨 주었다.
“넘어져.”
짧게 대꾸한 그가 먼저 호수 중앙으로 움직였다.
“안 넘어질 자신 있는데…….”
자그맣게 투덜거리며 얌전히 뒤를 따라가던 키네미아는 얼음 위로 비치는 두 인영에 시선을 주었다.
원피스에 담비 털 망토를 걸치고 긴 머리를 땋아서 위로 말아 올린 자신과, 검은 망토를 걸친 짧은 머리의 에이얀이 보였다.
키네미아는 그의 얼굴을 힐긋 올려다보았다.
언제 봐도 감탄이 나올 만큼 또렷한 이목구비였다. 키도 훤칠하고, 마법사면서 매일 따로 운동을 하는지 몸도 근육으로 단단했다. 에이얀은 소년 같은 태가 남아 있음에도 묘하게 농염한 분위기까지 풍겼다.
시선을 느낀 에이얀이 고개를 돌리자 키네미아는 시선을 휙 돌렸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른 화제를 입에 올렸다.
“여기 엄청 미끄럽다.”
괜히 이 부츠 신고 왔나. 더 미끄러지는 것 같은데.
작은 얼음 조각을 밟으니 콰직 소리가 났다. 은근 불안해.
“만약에 이 얼음 깨지면 어떻게 해?”
빠지나? 여긴 수심이 몇 m쯤 되지?
그러나 에이얀은 그런 걸 왜 궁금해하냐는 듯 멀뚱히 되물었다.
“내가 있는데 왜 불안해?”
이에 키네미아가 눈썹을 팔자로 늘어트렸다.
“그러게……. 네가 불안한가 봐.”
“서운해, 미아.”
처진 목소리로 말한 에이얀이 두 손으로 우는 척을 하며 손을 빼려고 하니, 그녀가 황급히 손에 힘을 주었다.
“물론 믿음직하지.”
순간 그가 야살스럽게 웃었다.
“나한테는 너밖에 없다 정도는 말해 줘야지.”
에에엥…… 키네미아가 얼굴을 우그러트렸다.
“자, 해 봐.”
응? 해 줘. 달콤하게 말한 에이얀이 어르듯 조르자 그녀가 불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너밖에 없어…….”
“예쁜 얼굴로.”
키네미아가 흐린 눈으로 그와 눈을 마주쳤다.
“너밖에 없어.”
“예쁜 목소리로.”
키네미아가 예쁘게 웃으며 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