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72)
먼치킨 길들이기 72화
“바라는 것만 많은 거 봐.”
“역시 스케일을-”
“기다려 봐.”
네가 그럴 거라고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 키네미아는 가방을 뒤적거렸다. 이내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주먹 안에 쥐었다.
“에이얀.”
“응.”
“손.”
에이얀이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손을 올렸다.
“이쪽 말고. 다른 손.”
“……?”
그가 의아해하며 다른 손을 올렸다.
키네미아가 그의 소매를 걷자 주홍색 호박 펜던트가 달린 팔찌가 보였다. 키네미아는 에이얀이 찬 팔찌의 매듭을 풀었다.
“벌이야?”
“상이지.”
이내 그녀가 가방에서 꺼낸 팔찌를 그의 팔에 둘렀다. 푸른 다이아몬드 펜던트가 달린 팔찌였다.
“저번 거는 내가 만든 거 아니야. 이게 내가 직접 고른 거고…….”
키네미아가 말을 줄이며 에이얀의 표정을 살폈다. 굳은 얼굴의 그는 집요하리만큼 뚫어지게 팔찌를 응시하고 있었다.
“별로야?”
“아니, 좋아서.”
에이얀이 한 손으로 얼굴을 쓸며 숙였던 얼굴을 들었다.
“그렇지?”
그제야 키네미아가 뿌듯하게 웃었다.
* * *
봄이 온 호수를 구경하고, 장난을 치고 노는 사이에 어느새 날은 어두워져 있었다.
에이얀은 키네미아가 겁을 먹기 전에 손가락 한마디만 한 광구를 수없이 많이 띄웠다.
호수 위에 광구들이 별처럼 떴다.
“예쁘다…….”
“안 추워?”
“응, 괜찮은데.”
키네미아의 대답에도 에이얀은 망토를 벗어 그녀의 어깨에 둘러 주었다.
“엥, 진짜 괜찮은데……!”
“난 더워서.”
“옷걸이로 쓰는 거였어?!”
“설마. 우리 미아가 추울까 봐 그랬지. 싫어?”
“됐어. 춥다고 다시 달라고 해도 안 줄 거야.”
광구의 빛을 받은 에이얀이 설핏 웃었다.
“다시 달라고 안 해.”
키네미아는 그런 에이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줄곧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지금이 적기가 아닌가 싶었다.
“에이얀.”
“응.”
“나 너한테 궁금한 거 있어.”
“뭔데?”
“무인도에…….”
“응.”
“만약 무인도에 떨어진다고 했을 때, 딱 3가지만 가져갈 수 있다면 뭐 가져갈 거야?”
“……?”
키네미아가 귓가를 붉힌 채 말을 이었다.
“……나는 책이랑 새총이랑 향유.”
에이얀이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우리 미아가 무인도에 떨어지면 내가 구하러 갈게.”
“아니, 그게 아니라!”
그녀가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아, 생각보다 어렵네…….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을 알고 싶은 건 자연스러운 거래. 알아?”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이라는 말에 에이얀이 입술을 살짝 벙긋거렸다가 다물었다.
이에 키네미아가 고개를 들고 그와 눈을 맞췄다.
“그런데 넌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해 주잖아.”
“……어떤 걸?”
“전부. 처음 만났을 때 왜 감옥으로 자꾸 돌아오면서 내 곁에 있으려고 했는지, 왜 지난 5년간 아무런 연락도 없었는지-”
“미아, 그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네가 좋아하는 색깔은 뭔지, 네가 좋아하는 음식은 뭔지, 싫어하는 건 뭔지, 자기 전에는 무슨 노래를 듣고 싶은지.”
“…….”
“전부.”
키네미아가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네가 궁금해.”
“…….”
순간 침묵이 감돌았다.
어렵게 뱉었는데, 에이얀의 새카만 눈동자는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키네미아 자신도 솔직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는 건 안다. 당장 말할 수 없는 것들도 많고.
‘나는 사실 전생을 기억해.’라고 말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그래도…….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 하나씩이라도 너에 대해 알아 갔으면 좋겠어. ……나도 노력할 테니까.”
얼굴이 새빨개진 키네미아가 망토를 들어 올려 눈만 내놓은 채 얼굴의 반을 묻었다.
에이얀은 선뜻 입을 떼지 못한 채 그대로 멈춰 있었다.
불편한 침묵에 키네미아는 눈을 굴렸다.
“싫으면 싫다고 해. 신경 안 써.”
그러자 에이얀이 곧바로 시선을 맞춰 왔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상관없어?”
“……?”
키네미아가 망토를 내렸다.
“응.”
그가 눈을 내리깔고 나지막이 물었다.
“뭐든 이해하고 받아 줄 수 있어?”
“그럴 거야.”
나직이 웃은 에이얀이 마른세수를 했다.
“미치겠다, 우리 미아. 이렇게 순진해서 앞으로 어떻게 혼자 두지?”
“뭐?”
“미아. 정말 내가 솔직해져도 괜찮아?”
“응?”
“내가 무슨 생각을 할 줄 알고.”
낮은 목소리에 순간 심장이 선뜩하게 내려앉았다.
무슨 생각을 하냐니. 키네미아가 눈을 깜빡이는데, 다시 어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미아.”
그가 예쁘게 웃으면서-
“가령 내가 네 친절과 호의를 이용할 수도 있잖아.”
귀를 홀리는 양 달콤하게 말했다.
그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키네미아는 눈매를 가느스름하게 좁혔다.
“……어떤 식으로?”
“지금 내 생각이 알고 싶다고 했지?”
“…….”
굳은 것처럼 보이던 새파란 눈동자가 에이얀을 담았다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귀엽다는 듯 에이얀이 설핏 웃었다. 그러곤 손을 뻗어 키네미아의 볼을 감싸고 엄지로 긴장한 눈가를 문질렀다.
손을 의식하며 눈을 두어 번 깜빡이자 그가 소리 내어 웃는다.
얼굴을 감싼 손이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엄지가 눈과 볼을 지나 턱에 닿았다.
“더 착하게 굴어야겠다는 생각-”
손끝이 입술 언저리를 지났다.
“-하는 중이야.”
하얗고 긴 손가락이 입술 위를 스쳤다.
키네미아는 시간이 멈춘 듯 굳어 버렸다. 무언가가 심장을 할퀸 듯했다.
16장 번뇌하는 17세
중앙 신전에 리온의 깃발이 걸렸다. 영웅, 아이리아 리온 대공비의 장례식 날이었다.
신전을 찾은 귀족들은 애도를 표하면서도, 흥미 본위의 수군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전쟁은 끝났다. 한때는 누구나 아이리아 리온의 용맹함을 칭송했으나, 임무를 모두 마친 영웅의 몰락은 즐거운 화젯거리로 화했다.
어린 키네미아는 제게 밀물처럼 밀려드는 시선들을 뚫고 아빠에게로 갔다.
관은 신전 중앙 제단 앞에 놓여 있었다. 열린 관 안에는 훈장이 잔뜩 달린 정복을 차려입은 엄마가 누워 있었다.
날씨가 흐린 탓에 우려가 많았으나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그러나 엄마의 관 옆에 고목처럼 선 아빠는 소나기처럼 눈물을 흘렸다.
키네미아는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아빠에게 다가갔다.
딸이 온 줄도 모르고 트로이 리온은 애처롭게 흐느끼며 말했다.
“이렇게 끝나는 게 네가 말한 사랑이었어, 아이리아?”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깊게 스민 원망은 키네미아에게도 느껴졌다.
키네미아는 분노와 슬픔으로 점철된 아빠의 눈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꿈자리 사나워.’
키네미아는 퉁퉁 부은 눈으로 부스스 일어났다. 하필 엄마가 돌아가신 날 꿈을 꾸다니…….
‘아아아아- 뭐지…….’
원인을 복기하던 키네미아가 입술을 매만졌다. 맞아, 그날 에이얀의 손이 입술에 닿아서…….
키네미아는 몸을 반으로 접어 이불에 얼굴을 묻었다.
태엽 풀린 인형처럼 내팽개쳐져 있던 두 팔이 이불을 팡팡 때렸다.
미친 키네미아! 잊어버려, 좀! 걔는 자기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도 모를 텐데!
그날 이후로 벌써 보름이나 지났다. 호수는 잘 녹아 자령초 재배를 시작했고,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자라는 자령초는 포션 대량 생산의 초석이 되어 주리라는 행복한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머지않아 레드둠은 역사의 한 글귀로 남을 것이다.
이 기쁜 소식에 황제는 키네미아에게 훈장과 공치사가 담긴 친서를 보내기까지 했다.
‘대충 읽고 치워 버렸지만.’
소식을 들은 대공 성의 사람들이며 영지민들은 영주의 업적을 찬양했으나, 심드렁한 건 키네미아뿐이었다. 머릿속을 꽉 메운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왜 계속 설레는 건데…….’
설마, 나 지금 욕구불…… 키네미아가 차마 생각을 더 잇지 못하고 입을 틀어막았다.
‘정신 차려!’
그녀가 이를 악물고 두 볼을 찰싹찰싹 때렸다.
‘나쁜 생각! 나쁜 생각!’
그날 이후 에이얀을 내내 피해 다녔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치대던 에이얀도 보름이나 지나자 제법 눈치를 보면서 거리를 두고 있었다.
‘정신 차리자, 키네미아. 조금- 아니, 많이 잘생겼다고 해서 혹해서는 안 돼. 에이얀은 친구. 하나뿐인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