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74)
먼치킨 길들이기 74화
“벤자민, 장로들을 불러 결계를 쳐라. 그리고 발투스2를 발동해라. 방어 태세에 돌입해.”
“예!”
“난 에이얀이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
“탑주님, 위험합니다. 상대는 실연당한 에이얀입니다.”
“그러니 내가 아니면 누가 가겠느냐. 마탑은 내 소관이다. 넌 지시한 일이나 잘해 두거라.”
벤자민이 울컥해 입술을 씹었다.
“탑주님…….”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베이커에게 사랑했다고 전해 주려무나.”
“꼭 전달하겠습니다……!”
지시를 내린 뒤 부랴부랴 정원으로 이동한 울프만은 제 제자를 보며 숨을 들이켰다.
“흐…… 흐으…….”
신참 마법사는 귀를 막은 채 신음을 흘리는 중이었고, 맞은편에 앉은 에이얀은 나긋한 목소리로 소곤거리는 중이었다.
“그 미친 에이얀을 찾는다면서. 여기 있잖아.”
“흐윽…….”
신참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울프만은 눈을 질끈 감았다. 굳이 묻지 않아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충 상상이 갔다.
“탑주님.”
“탑주님.”
그때, 울프만을 발견한 마법사들이 허리를 숙였다.
울프만이 다가가자 에이얀이 가볍게 목례했다.
“에이얀.”
“스승님.”
울프만은 쓰러진 신참 마법사에게 시선을 주었다. 신참 마법사는 정말 귀한 존재인 것을…….
울프만이 오랜만에 드는 갑갑함에 마른세수를 했다.
너 때문에 귀한 마법사들이 더 귀해지니 자제하라, 그렇게 일렀는데.
물론 에이얀은 뻔뻔하게 어중이떠중이 1,000명보다 저 하나가 더 나으니 괜찮다고 답하긴 했지만.
맞는 말이라 더 열이 받았다.
그는 뒤따라온 수행원에게 신참의 치료를 맡겼다. 혜민원의 포오션이란 걸 뿌리면 귀는 다시 붙일 수 있겠지. 마탑은 혜민원의 큰 손 고객이 되어 있었다.
“에이얀…… 마탑에는 대체 왜 왔느냐.”
쓸데없이 왜 왔니? 라는 울프만의 의중을 파악한 에이얀이 어깨를 늘어트렸다.
“서운합니다, 스승님. 마탑이 제집인데 못 올 곳을 온 것처럼…….”
“아니…….”
“어디든 절 반겨 주는 이는 하나도 없네요.”
“아니, 내 뜻은 그게 아니라…….”
“저도 구태여 마탑에 오고 싶지는 않았는데 미아가 시찰을 나갔거든요.”
“아, 그렇구나.”
“예. 그것 외에 제가 이 구질구질한 마탑에 올 이유가 있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신기술과 지식, 보화로 가득 찬 마탑에 대한 혹독한 평에 울프만이 오만상을 구겼다.
“넌 마탑주가 되고 싶긴 한 게냐?”
에이얀이 정원수에서 사과를 따 입에 물며 답했다.
“우리 미아 밥은 먹여야죠. 예쁜 옷도 입히고. 마탑의 보고는 제가 받을 겁니다.”
역대 리카샤 중에 이렇게 속물적이고 사사로운 이유만으로 마탑을 이어받고 싶어 한 이가 있었을까.
“그 애는 너 없어도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 텐데.”
그러자 에이얀이 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재밌네요, 스승님.”
“…….”
울프만은 순도 100% 진심이었지만 저 또라이가 더 맛이 갈까 자중하기로 했다.
* * *
“그런데 키네미아가 시찰을 갔어? 널 빼고?”
“……제가 따라갈 만한 일은 아니었거든요.”
그게 무슨 헛소리지?
허, 울프만이 헛숨을 내쉬었다.
시찰에 에이얀만큼 쓸모 있는 존재가 또 있을까? 세상에 키네미아가 기라면 기고 구르라면 구를 리카샤만큼 유용한 존재는 없을 터.
기실 에이얀 자신도 그걸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정말 필요하지 않은 일에도 온갖 억지를 부려 따라다니는 놈이, 마탑으로 돌아와 ‘따라갈 만한 일이 아니었다.’ 말하는 모양새가 묘했던 울프만이 넌지시 물었다.
“혹시 키네미아가 널 피하더냐?”
돌연 에이얀이 말을 잃었다. 정답이었다.
“…….”
풉! 울프만은 웃음을 터트렸다가 자연스레 갈무리했다. 어른의 연륜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보구나.”
“…….”
에이얀은 이죽거리는 스승을 향한 짜증스러움을 애써 참아 냈다.
“없었습니다. 아무 일도.”
차라리 뭐라도 있었으면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았을 것을.
그날, 네가 알고 싶다며 순진하게 물어 오는 키네미아의 말꼬리를 잡아서 분위기에 휩쓸리듯 구슬려 볼까, 고민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키네미아는 분위기에 잘 휩쓸리는 편이니까.
기회를 잡았다는 비열한 희열에 제법 들떴었으나, ……참았다. 키네미아에 한해서는 비교적 정상인에 가까운 에이얀은 ‘키네미아의 감정을 먼저 존중해 준다.’ 따위를 가까스로 생각해 냈다. 스스로 참 대견하게도.
때문에 인내하면서 착하게 굴겠다고 다짐까지 하지 않았던가.
“네가 간과한 일이 뭔가 있었겠지 않느냐.”
간과한 일이라면…… 에이얀이 설핏 눈살을 찌푸렸다.
‘걸리는 건…….’
뭐, 그전까지 모든 행동에 은근한 사심이 담겨 있던 것은 사실이었다.
키네미아는 손을 잡는 것도, 포옹도 대체로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친구 사이에 장난을 치다 보면 이 정도는 가능하다 여기는 듯이.
충동을 못 이겨 입술에 손을 대기 전까지는.
그건가? 쯧, 에이얀이 혀를 찼다. 흑심이 과했었나.
그가 무언가를 직감한 것을 알아챈 울프만이 다시 풉! 웃음을 터트렸다가 갈무리했다.
“넌 직진밖에 몰라서 문제야. 변화구가 있어야지.”
“그 변화구를 날리다 베이커의 머리를 맞추신 거 아닙니까. 이혼하신 걸 보면.”
“베, 베이커! 그 여자 얘기가 왜 나온단 말이냐!”
울프만이 ‘그녀와는 이혼했지만, 그녀가 날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다.’면서 헛소리를 하기 시작하자, 에이얀은 능숙하게 화제를 돌렸다.
“주위에 결계를 치셨더군요, 스승님.”
울프만이 흠칫 떨리는 눈동자를 숨겼다.
“마탑은 마법사들이 늘 결계를 치는 곳이지.”
“발투스3인가요?”
“2다.”
“과연, 스승님께서는 현명하십니다. 제 사랑이 끝나는 날에는 마탑 최후의 날이나 만들어 볼까 고민 중이었거든요.”
벤치에 앉은 에이얀이 사과를 씹으며 우수에 젖은 채로 말했다.
‘이 미친놈이! 죽으려면 혼자 죽을 것이지.’
울프만은 그리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다정하게 입을 열었다.
“에이얀, 난 널 언제나 응원한다. 온 마탑의 마법사들이 너희의 사랑을 축복할 게야.”
“그럴까요?”
“말해 봐야 입 아플 당연한 일이지.”
울프만은 자애롭게 웃으며, 세계의 평화가 이 미친놈의 짝사랑에 걸려 있다니 통탄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키네미아도 내심 널 마음에 들어 할 게다. 네가 빠지는 게 뭐가 있단 말이냐. 머리 좋지, 잘생겼지, 능력 있지, 돈 있지. 성격도…… 그만하면 뭐…….”
“성격은 뭐요?”
“뭐…… 뭐 나름의 매력이 있지.”
에이얀이 청초하게 눈을 떨구고 중얼거렸다.
“미아 앞에선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울프만이 눈을 떨었다. 저놈은 자신이 선을 넘는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문제였다. 선을 지킬 필요가 없어서 안 지킬 뿐이지. 정상인의 8할 정도 흉내는 냈을까?
“마탑 최후의 날을 만든다는 건 농입니다, 스승님. 그리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다행이구나.”
“훌륭한 마탑주는 마탑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걸 늘 스승님을 통해 배우는 중입니다.”
에이얀이 밉살스럽게 말하자 울프만이 눈썹을 치켜떴다. 어디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마탑의 보고를 위해서냐?”
이에 그가 눈을 곱게 접어 해사하게 웃었다.
“예. 키네미아한테 선물을 그리 보내시면서 쏠쏠하셨습니까? 그 자리는 제가 받겠습니다.”
“이놈! 내가 네게 보고를 물려줄 것 같으냐! 죽을 때도 보고는 터트리고 죽을 것이다!”
“스승님께서 정 그러시다면 할 수 없지요. 그럼 다른 어디에서라도 가져와야죠. 세상에 많이 가진 인간들이 한둘도 아니고.”
“에이얀, 돈은 버는 것이다. 빼앗는 게 아니라.”
“벌겠습니다.”
“뭘로.”
“전쟁 배상금?”
울프만은 사고방식이 정상인과는 다른 제자를 둔 스승의 마음 같은 건 평생 알고 싶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그 누구보다 잘 알게 됐지만.
울프만은 짝사랑의 쓴맛을 곱씹고 있는 제자를 보며 고심에 잠겼다.
‘저걸 어쩌나.’
마침 신참이 대거 몰려오는 시기였던지라, 저런 상태의 에이얀을 마탑에 가만히 내버려 두는 건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잠시 고민에 잠겨 있던 울프만은 문득 득 생각에 밝게 운을 띄웠다.
“에이얀, 그러고 보니 마침 잘 왔다!”
“이제 와서요?”
“잘 왔어. 네게 맡길 일이 있었는데.”
“아까는 마탑에 왜 왔냐고-”
“큼! 흠!”
울프만이 목을 다듬는 척하면서 그의 말을 끊어 냈다.
“허링 후작령에 사령술사가 나타났다고 하니 네가 가서 처리를 좀 해 주어야겠다.”
“사령술사?”
“그래. 전염병 때문에 죽은 이들이 많아서 아주 고생이라더라. 가서 너의 광기를- 아니, 강기를 터트리고 오거라.”
에이얀이 피식, 실소를 뱉으며 한쪽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렸다.
“광기를 터트리고 와도 괜찮겠습니까?”
“광기가 아니라 강기라고 했지 않느냐.”
“저도 방금 강기라고 했습니다.”
울프만은 썩어 들어가려는 얼굴을 바로잡았다. 이것도 어른의 연륜이었다.
“……그래. 벤자민이 안내할 테니 그에게 가 보거라. 내 집무실에 있을 것이다.”
“예.”
목례한 에이얀이 사라지자 울프만은 벤자민에게 짧은 애도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