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75)
먼치킨 길들이기 75화
* * *
셰넌벨에 딱 하나뿐인 펍의 주인, 마르셀라는 빵이 잔뜩 든 바구니와 버터가 담긴 그릇을 바 테이블 앞에 내려놓았다.
자리에는 금발을 양 갈래로 땋아 내린 소녀가 앉아 있었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모든 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예쁜 소녀였다.
“자, 넉넉히 담았으니 많이 먹어라. 차림새를 보아하니 집은 잘사는 것 같은데, 애가 왜 이렇게 작아? 옷은 사 주는데 밥은 안 사 주디?”
마르셀라의 진심 섞인 농담에, 자그마한 소녀는 퍽 불만이라는 듯 입을 뾰족하게 내밀었다.
“애 아니고, 올해로 17살 성인이야.”
“성이인?”
소녀는 따끈한 빵에 버터를 듬뿍 발라 한입 가득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무슨 17살이 이렇게 작아?”
두 뺨을 볼록하게 채우고 빵을 우물거리는 소녀의 미간에 주름이 파였다.
“……크는 중이야.”
“17살이면 다 큰 것 같구만, 뭘. 하여간 몇 살이든 넌 좀 조심해야겠다. 너같이 예쁜 애들은 외지인들 눈에 쉽게 띄니까. 근데 옆에 잘생긴 남자랑은 아는 사이야?”
앞의 꼬마도 그렇지만, 옆에 앉은 남자도 잘 단련된 기사처럼 단단한 몸을 좋은 옷감으로 감싼 채였다.
“저는-”
남자가 입을 열자 소녀가 말을 막듯 말했다.
“우리 오빠야.”
순간 주군의 오빠가 된 호위 기사가 눈을 굴리며 식은땀을 흘렸다.
마르셀라는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렸다.
“닮지는 않았는데 훤칠하긴 하네. 부모님이 두 분 다 예쁘고 잘생기셨나 봐?”
남자가 차마 뭐라 답하지 못하고 시선을 내리니 소녀가 까르륵 웃었다.
“응응. 그런데 요즘 셰넌벨에 외지인들이 그렇게 많아?”
“그렇지. 마물인지 뭔지를 잡는다고 아우성들이니까.”
“장사는 잘되겠네.”
소녀의 말에 마르셀라가 한숨을 내쉬며 문을 가리켰다.
“저 너덜거리는 문짝 보이지? 어제 그렇게 술을 처마시고 싸우다가 저리된 거야. 행동들이 어찌나 상스러운지…….”
어젯밤을 떠올린 그녀가 혀를 찼다. 자신도 평생 주방 일을 하고 술주정뱅이들을 만나면서 근력이 보통 여자보다 남달랐지만, 모험가들을 상대하기는 무리였다.
“경비대는?”
“이런 시골의 경비로 그런 놈들을 상대할 수 있겠어? 저 살기도 바쁘지.”
“역시 그런가.”
소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서 이제 나도 가게를 접어야 할까 생각 중이지.”
“운영이 힘들어?”
“외지인들이 밀려오니 가게야 잘되는데…… 그놈들 상대까지 하면서 가게를 꾸려 나가기는 어렵지.”
그렇다고 힘 있는 모험가들을 펍에 고용하기도 어려웠다.
마물잡이가 훨씬 돈이 되는데, 누가 굳이 펍에 고용되어 푼돈을 벌려고 하겠는가.
“부모님 대부터 내려온 가게를 접으려니 편치 않긴 해도 별수 있나. 나같이 힘없는 평민은 하루라도 빨리 살길을 찾아야지.”
“평생 살던 곳 아니야?”
“셰넌벨 사람들은 다들 여기서 나고 자랐지. 이제 다들 뿔뿔이 흩어지겠지만. 여기도 곧 외지인들의 마을이 될지도 모르겠어.”
마르셀라가 씁쓸하게 말했다.
“그렇게 놔두지 않을게, 마르셀라.”
소녀가 결연히 말하자 그녀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말만이라도 고맙네.”
마르셀라가 소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가게 곳곳의 이방인들이 한꺼번에 마르셀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
무시무시한 시선의 중심에 선 마르셀라는 눈을 홉떴다. 경계하는 듯한 눈빛을 한 이들은 당장이라도 일어날 듯 엉덩이를 들썩이는 중이었다.
질겁을 한 그녀가 얼결에 소녀의 어깨에서 손을 뗐다.
“저 사람들은 누구…….”
“내 오빠들이야.”
수십 명쯤 되는 오빠들을 달고 다니는 소녀라고?
아무리 마르셀라가 있는 집 자식들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해도 그렇지.
저 눈빛들은 동생을 지키려는 오빠의 시선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얼마나 귀한 집 자제길래 이렇게 극성이야…….’
마르셀라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때 식사를 마친 소녀가 일어섰다.
“얘기 고마워, 마르셀라.”
“……그래, 조심히 가고.”
떨떠름하게 말하던 마르셀라는 금화 5개를 받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란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며 소녀가 빙긋 웃었다.
“받아 둬, 팁이야. 문짝 고치는 데 써. 앞으로 외지 손님이 많이 드나들 테니 가게 정비도 좀 튼튼하게 하고.”
마르셀라가 입을 벌렸다.
“대체 누구신데…….”
기사가 문을 열자 키네미아가 마르셀라를 향해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키네미아 리온. 여기 영주야.”
* * *
“크억!”
키네미아의 호위 기사인 제임스가 뒤를 따라나선 남자의 목을 내리쳤다. 남자가 고꾸라지자 키네미아는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역시 치안이 문제인가.’
그렇다고 기사들을 잔뜩 주둔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닌데.
게다가 기사들을 파견하면 기사들 자체의 불만이 커질 수 있었다.
‘일단 여긴 시골이니까.’
기사를 차출할 시 대공 성 내의 병력에도 애로 사항이 있을 터.
영지민들을 지켜 줄 적당한 자경대가 있으면 좋을 텐데…….
키네미아가 2층짜리 작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인 고즈넉한 거리를 둘러보며 머리를 굴렸다.
쉴 새 없이 원작을 떠올려 보니 제법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다.
‘골렘이라든가.’
원작에서 등장하는 골렘은 일종의 마력 기계였다.
마력석을 사용하니 유지비가 만만치 않겠지만, 병사나 기사들을 주둔시키는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물론 비용이 더 든다 해도 셰넌벨에는 그 정도를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키네미아가 거리를 일직선으로 걸었다.
또다시 키네미아에게 다가오는 그림자에 호위 기사는 우락부락한 모험가의 팔을 꺾었다.
“으아아악!”
그의 비명을 들으며 키네미아는 생각에 잠겼다.
‘골렘은 분명 주술사들이 독점으로 만들었었지.’
보통 ‘마력 기계’라고 하면 마법사들이 만드는 거라 생각하지만, 틀렸다. 마력 기계는 주술사만 독점으로 생산할 수 있었다.
주술사는 보통 제 마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지 못해 마법사가 되지 못한 자들인데, 저주 마법이나 마력 기계 개발에는 비교적 마력의 구애가 덜했다.
그런 주술사들이 마법사들을 제치고 마력 기계 생산의 독점권을 가지게 된 이유는 수백 년 전, 주술사가 황제의 목숨을 구한 이후로 얻게 된 권리 때문이다.
당시 마력 기계를 만들던 주술사가 황제의 목숨을 살렸고.
“네 신묘한 힘이 날 살렸구나!”
그 덕에 황제의 신임을 받은 주술사 협회는 마력 기계 독점 생산권을 수여받는다.
당시에는 던전도 적고 마정석도 아주 희귀했으니 마력 기계 독점 생산권은 그리 큰 권리가 아니었지만, 던전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마정석이 대량으로 채굴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달라진다.
마력 기계에 대한 수요는 상상을 초월했고 이제는 주술사들이 만든 갖가지 발명품들이 쏟아지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혹자는 마탑에서 마력 기계 생산권을 따기 위해 움직일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했으나-
마탑은 워낙 폐쇄적인 데다가 어디와도 지속적인 교역을 하지 않는 터라, 지금까지는 별 마찰 없이 공존하는 중이었다.
‘지금 골렘을 구하기 위해서는 주술사를 찾아야겠지만…….’
기술력은 확실히 주술사들보다는 마탑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지금 상황에서 써먹을 방도가 없다 뿐이지.
“우선 마탑으로 가 볼까.”
“마탑이요?”
키네미아가 흘리듯 말하자 호위 기사 제임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탑에 가실 수 있으십니까?”
“아, 응. 할아버지께서 워프 스톤을 선물해 주셔서.”
“주군, 할아버지라는 분은 역시…… 탑주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응응.”
순간 그가 눈을 반짝거렸다. 제 주군이 마탑주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이 퍽 신기하고 대단해 보이는 모양이었다.
‘……신비주의이시긴 하니까.’
울프만은 황제가 즉위식에 초대해도 내키지 않으면 참석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어쨌든 마탑에 가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닌데……. 키네미아는 설핏 스치는 에이얀의 얼굴을 털어 냈다.
‘괜찮아. 에이얀은 어차피 혜민원에 있을 텐데, 뭐!’
고민을 마친 그녀가 가방에서 자그마한 붉은 보석을 꺼냈다.
“이건 1인용이라 혼자 가야 해. 나는 바로 마탑으로 갈 테니, 경은 일행들과 다 같이 먼저 대공 성으로 돌아가 있어.”
“예, 주군.”
이내 스톤에서 나온 빛이 잡아먹듯 키네미아를 감싸 안았다.